궐문 앞에 박동파가 서 있었는데 다른 이들이 그 옆에 여럿 서있었다. 뒤 쪽에는 병졸들이 말 고삐까지 쥐고 있었다.
“음.... 왔는가? 그래 그럼...... 같든 동행 분들과 인사 나누시게.”
온항현이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짐승가죽 옷을 몸에 두른 사내가 노성을 뱉았다.
“이보시게! 관원이 따라가면 난 이만 가보겠네!”
떠렁떠렁한 소리가 향한 곳은 온항현이 아니라 그들은 한 데 모은 것이 분명한 박동파를 향한 것이었다.
“이 사람! 참! 내가 자네에게 해 될 사람을 같이하게 하겠나? 이 사람이라면 괜찮으니......”
“관원이라면 과시를 보아 선발되었을 테고 유학하는 자 일텐데 그런 자가 불도나 무속을 받아들이겠는가? 괜히 나라에 책잡힐 일 하고 싶지 않으니 나는 손 떼겠네!”
말을 듣고는 항현도 대충 짐작이 갔다. 항현의 짐작을 박동파의 변명이 확인해 주었다.
“여기 이 사람도 묘술 기예에 능통한 자일세. 자네처럼 숨기고 있을 뿐이야...... 자네보다 도리어 더 안 좋지. 기예를 숨기고 벼슬까지 하고 있으니 말일세.”
“........”
항현이 함부로 말을 섞진 않았으나 눈살을 찌푸리는 것으로 불쾌감을 대신했다. 박동파는 그런 항현을 아랑곳 않았고 그러자 되려 가죽옷의 사내도 미안한 겸연쩍음에 눈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
“보시게. 온 사용(벼슬의 이름), 이쪽은 강혁춘이라고 산을 요 삼아 구름을 이불 삼아 유랑을 업으로 사는 내 친구일세. 불교와 도학에 통하여 기예, 묘술을 쓰는 사람이지.”
박동파가 혁춘에게 항현을 소개해 주었다.
“이 친구의 가문은 자네보다는 세상사는 눈이 좀 있지. 자연무속의 기예를 익혔으나 벼슬길 만 못하는 걸 깨닫고는 익히되, 감추고 조정에 출사한 현자이지.”
항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파를 쳐다보자 동파는 괜찮다는 듯 눈웃음을 띄우고 손을 들어 손목을 위 아래로 까닥댔다.
“온항현이라 하네, 도총부의 충찬위의 사용벼슬을 하며 효력부위지, 인사하시게.”
항현은 동파를 째려보며 혁춘에게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습니다. 충찬위의 부위 온항현이라 합니다.”
“......말을 막 해서 미안하게 됐네. 나 강혁춘이란 사람일세. 만나 반갑구먼.”
옆에 서있는 여인을 동파는 이어서 소개했다.
“이 사람은 새타니일세, 널 새타니. 새를 부리기도 하고 새의 영혼을 부리기도 하네만 그보다 대단한 것은 남방성수인 봉황 불새와 접응을 하는 역난이란 것이지, 인사하시게.”
동파의 머리말에 이어 여인이 직접 자신의 소개를 이어갔다.
“소인, 혜수빈이라 합니다. 세상 어지럽히는 재주가 있어 숨어 살았사오나 나라가 쓸 일이 있다하여 불러주시어 이리 나왔습니다. 모쪼록 책하지 마시오소서, 나으리.”
“......아...... 아니올시다. 이쪽이야말로 도움 부탁드립니다.”
항현은 여인의 고운 자태에 말을 더듬으며 인사를 받았다. 그 뒤에서 동파가 짖궂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 이제 점심때니 말을 알차게 몰면 해질 녘, 저녁 먹기 전에 도착할 게야! 바로 출발하시게!”
“예? 오늘 내로 도착하란 말입니까?”
항현의 말에 동파는 웃으며 답을 했다.
“미안하이, 내 이제 말해줌세, 수원부에 호환이 생겼는데 그 정황이 아주 요상하여 그러네. 시신을 직접 검시해야 하는데 음양묘술에 능한 사람들이 필요하다하여 지금 검시를 미루고 있다하니 길을 좀 재촉해 주시게.”
“.......아.........저는 괜찮사오나........”
“가세! 관원친구! 말로 내쳐 달리면 수원이야 하루 거리지”
“!”
항현의 생각에는 자신은 무관이니 기승술이 족하나 다른 둘은 어찌할까 걱정하며 말 끝을 흐렸는데 도리어 둘이 먼저 말에 올라 길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동파가 어이없어하는 항현의 뒷통수에 대고 놀리는 두로 말을 던졌다.
“저 둘은 이런 요망지사를 몇 번 다뤄본 자들이니 자네가 어서 따라가야 할 걸세, 무관이 아닌 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지, 어서 따라 가시게!”
온항현이 부끄러워 벌개진 얼굴로 서둘러 앞서 간 둘을 따라 갔다. 눈에 먼저 출발한 두 사람이 눈에 들어 왔을 때 문득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호환? 아니 호랑이가 사람을 덮친 일이라면 중앙 5위부의 말미에 장교인 내가 왜 가는 건가? 귀신이 나와 사람이 홀렸다면 모르되, 이미 사달이 난 후라면 무엇 때문에 가야 하는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항현은 북문으로 나와 한성 성벽을 따라 남으로 방향을 잡은 셋은 그 길로 수원도호부로 내쳐 달렸다.
술시를 지나 어두워 졌을 때 수원도호부에 도착한 셋을 수원 부윤이 직접 맞이하였다. 성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승정원의 파견원이라는 것에 더욱 마음을 쓰고 있었던 탓이었다. 싫은 손님을 늦은 시간에 맞이한 것 때문인지 말허리마다 투정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나 원~ 한양에선 이런 지방의 호환까지 신경을 쓰신단 말인가? 도포수나 하나, 둘 지원해 주시면 끝날 일을 도총부의 사용까지 파견하실 게 무어란 말인가?”
항현이 미소를 지으며 부윤의 투정을 받고 있을 때 다른 두 사람은 눈을 돌려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의아하기만 했는데 곧 이유를 알아챘다.
높은 자리의 관료일수록 난힘을 쓰는 자신들을 경원시하던지, 더 나아가 적대시할지도 모를 일이니 빨리 현장을 안내받아 뜨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떠나 올 때 동파에게 들은 말도 다시 떠올랐다.
‘저 둘은 이런 요망지사를 몇 번 다뤄본 자들이니......’
아마도 다른 일을 맡았던 때에도 일은 해결하고 도리어 비난받은 일이 있었는 직 싶었다.
“저희에게 말해주시면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부윤 영감께서 마음 쓰지 마시지요.”
“아니아니......, 그래도 국록을 받아먹는 몸으로 그리 무책임하게 굴 수는 없지....... 하지만 ..... 내가 도울 일이 없으니........헛허.....”
“수원 도호부의 일이니 반드시 부윤영감의 지시로 일을 행했다 보고를 올릴 것입니다. 심려마시오소서.”
“....오!.... 헛허..... 그래주겠는가?. 하긴 내 잘 아는 일이 아니니, 어찌 해야 할지를 도통 알 수가 없지 않겠나? 부디 부탁하겠네..... 그 마을로 안내할 자가 이미 이 곳에 기거하고 있으니 만나 보고 같이 가시게나. 엣헴!”
공을 갈라주겠다는 다짐을 받은 부윤이 웃는 낯의 턱 끝으로 지시하자 관속인 듯한 사람 하나가 일행을 동헌의 뒤쪽의 딸린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안내되어간 방에는 이미 사람 하나가 들어 있었다.
짐승가죽을 덧대어 이은 겉옷에 토시와 각반 또한 가죽 끈으로 단단히 감싸 묶었다. 머리를 댕기로 땋아 내렸는데 여인인지 나어린 소년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부윤을 상대할 때 한마디도 섞는 수고를 하지 않은 것이 맘에 걸렸던 혁춘은 같은 사냥꾼인 자신이 대화를 이끄는 수고를 해야겠다싶어 먼저 말을 꺼냈다.
“반갑.....”
“서울서 오신 분들이오? 아직 술시가 채 지나지도 않았으니 가십시다.”
방안 사람이 냅다 인사를 끊고는 성큼성큼 걸어 마굿간의 말을 꺼냈다.
“말 타면 얼마 안 멀어요. 인정(밤 10시에 종을 28번 쳐 통행금지를 알리는 것) 전에 관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미 말을 타며 가기를 재촉하자 혁춘이 항현을 멍하게 쳐다 보았다. 항현이 혁춘과 수빈, 두 사람에게 동시에 말했다.
“제가 부윤영감께는 따로 말씀 드릴테니 일단 가시죠. 일이 아주 급한가보니......”
항현이 안내했던 관속에게 지친 말을 바꿔줄 것을 윗 전에 전해 달라하자 관속이 말을 전하기 위해 종종 뛰어 나갔다.
말이 끊겨 무안했던 혁춘이 이미 말에 오른 사냥꾼에게 넌지시 저간의 사정이라도 캐물을 작정으로 얘기를 건네려했다.
“저...... 대체 무슨 일이길래......”
“대문 밖에 먼저 나가 기다리겠습니다.”
이번에도 말을 끊고는 말을 몰아 쪽대문을 훌쩍 나가버리자 혁춘이 얼굴이 무안함과 벌개졌다.
“말을 대기시켜 놓았으니 출발하실테면 언제든지 하시랍니다.”
그때 관속이 다시 와 말이 준비되었음을 알려주자 셋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 치가 맘이 급해 예를 갖추질 못한 것 같습니다. 정말 급한 일인 것 같으니 저희도 바로 이동하여 상황을 파악 하도록 하십시다.”
“..........”
항현이 웃으며 뾰루룽한 혁춘에게 떠나기를 권했다. 그 뒤에서 혜수빈은 빙글빙글, 미소로 웃기만 했다.
셋이 말에 올라 도호부의 대문으로 나가자 그 곳에 있던 사냥꾼이 말을 몰아 앞서 갔다. 셋은 관부에서 나올 때의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그 뒤를 따라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