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헐헐, 이번으로 두 번짼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정신을 차리니, 엉클의 웃음이 들려왔다. 진서가 기억을 더듬으며 쓰러져 있는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무언가 쑥 빠져 나올 뻔 했는데…'
왼 손의 문양을 물끄러미 바라 보며 정신을 차렸다.
"기분은 좀 어떠신가?"
"기분은 왜…"
엉클의 뜬금없는 질문을 이해하려다, 문득 무언가 달라진 걸 느꼈다. 드래곤 레어가 있던 동굴에서 겪은, 마력의 흐름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다른 곳이 아닌, 자신의 몸 속에서.
이전엔 진서의 몸안에서 무언가가 날뛰는 걸 느꼈는데, 지금은 차분하게 또 하나의 심장처럼 마력을 뿜어냈다. 처음 마력이 몸안을 난폭하게 휘저을 때완 달리, 몸 전체를 순환하듯 손 끝에서 발 끝까지 순환했다.
마력의 흐름을 느끼는 동시에, 어제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자신의 손에서 마력이 모아지는 것과 동시에 마력이 폭주했다. 지금은 잠잠하지만, 갑작스럽게 또 폭주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릇에 비해 마력이 너무 크니, 폭주하게 된 것입니다."
진서가 걱정하며 왼 손을 슥슥 문지르고 있으니, 엉클이 곁에서 조언을 했다.
"그릇?"
진서가 어느 순간부터 엉클에게 짧게 이야기했지만, 엉클은 전혀 개의치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
"헐헐헐, 본디 마력이란 사람의 영혼에 가까운 힘입니다. 그렇기에 그 힘은 무한(無限)할 수 있지만, 그 힘을 담은 그릇은 마력에 비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데?"
"헐헐헐, 그건 저보다 제 손녀가 더 잘 알껍니다."
엉클이 자신의 뒤에 숨어서 지켜보던 므레이를 앞으로 내세웠다. 므레이는 두 번이나 진서를 기절시켜 미안한지, 조심스럽게 진서를 쳐다보며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하는데?"
"…그릇을 단련시키거나, 마력을 직접 컨트롤 하거나, 마력을 꺼내지 않고 그릇을 강화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므레이가 잠시 망설이더니 진서에게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단 둘이 있을 때완 다르게, 격식을 조금 갖추면서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을 보던 엉클이 므레이의 머리를 꽁하고 때렸다.
"용사님에게 좀 더 예의를 갖춰라. 아무리 힘이 없고, 고작 멘티스에 쩔쩔 매고, 마력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힘을 가늠도 못하더라도! 용사의 자질을 갖췄다는 것은 세계를 구하실 분이야!"
므레이를 교육하던 엉클이 진서가 째려 보는 것을 눈치 채고 허허허 웃었다. 이쯤되면 즐기는 게 분명했다. 므레이는 엉클의 눈치를 한 번 보더니, 진서에게 말을 이었다. 길게 설명했지만 듣기 좋은 청아한 목소리 덕분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릇 자체를 단련 하는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 그릇에 맞는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마력을 컨트롤 하는 방법은 직접적인 조종이기 때문에 많은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다만, 자칫 잘못하면 그릇이 마력을 감당 하지 못 합니다."
"그럼 강화 하는 건?"
"마력을 사용해 그릇을 강화합니다. 마력을 방출 하지 않고 그릇 자체를 강화하기 때문에, 마력을 이용한 마법들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음, 이 방법들은 마력이 그릇보다 더 강할 때 쓰는 거야?"
"네."
진서가 설명을 다 듣고는 고민에 빠졌다. 여기저기에서 선물마냥 마력을 주더니, 알고 보니까 폭탄이었다. 언제 폭주할 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몸 속에서 느껴지는 마력이 줄줄 새는 것을 느끼고 있다. 넘치는 힘을 사용 하지 못하고 버려야 한다는게 너무 아까웠다.
하지만 마력을 컨트롤 하자니 폭주할까 봐 두렵다. 그릇을 단련하자니 오래 걸리기 때문에 지금 당장 줄줄새는 마력이 너무 아깝다. 일단 넘치는 마력으로 그릇을 강화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럼, 마지막 방법을 가르쳐줘."
"네, 하지만 방출하는 것에 비해 쉬울 뿐이지, 머무르게 하는 것도 힘들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응, 그러니까 빨리 하자."
다소 의욕적인 진서를 보며 므레이는 시큰둥 했다. 이제 막 마력을 꺼낼 줄 알던 사람이 성공 하리라곤 생각 하지 않았다. 그 때에 엉클이 끼어들며 진서를 향해 상쾌한 웃음을 지었다.
"아침은, 육체를 단련하는 시간입니다. 어서 동굴로 가시지요 헐헐헐!"
"만약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면 단련 할 필요 없잖아?"
"헐헐헐, 역시 용사님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 아니, 배움이 필요하신 분이군요. 마력을 이용해서 신체를 강화해도 움직이는 건 누가 합니까?"
"난 또, 마력으로 조종하는 줄 알았지."
"헐헐헐, 그런 방법도 있군요, 용사님은 역시 아무나 되는 게 아닌 가 봅니다. 헐헐헐"
엉클과 대화할 때면, 기분이 묘하게 나쁘다.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스르륵 자신을 팽이마냥 돌려 깐다. 그럼에도 온화한 톤의 말은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망할 할아범.
진서는 멘티스 동굴에 쳐들어가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멘티스를 엉클이라 생각하니 생각보다 집중이 더 잘됐다. 처음으로 낙오 된 멘티스가 아닌 한창 전투적인 온전한 멘티스와 상대했는데, 한 마리를 잡고 나니 진이 다 빠졌다.
호전적인 멘티스는 상대방을 집요하게 죽이려 했는데, 자신이 죽어가도 상대에게 앞발을 휘둘렀다. 다만, 실력차이가 엄청 나면 도망칠텐데 죽어가는 와중에도 진서가 얕보였나 보다.
그리고 달라진 점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이전엔 멘티스 동굴에서 눈에 띄지 않게 돌아다니며 낙오 된 멘티스들을 잡았는데, 동굴 벽에 숨어 있더라도 진서를 찾아 부리나케 달려와 진서에게 덤벼들었다. 왜 그런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진이 빠진 상태에서 낙오 된 멘티스들을 상대 해야 했다.
빠르게 죽이지 못하면 근처에 있던 멘티스들이 몰려들었다. 분명 멘티스들은 1:1 싸움을 고집했고 누군가 끼어들면 굉장히 싫어하며, 자신들도 끼어들지 않았는데, 진서만 나타나면 모두 달려들었다. 마치 굶주린 하이에나들에게 고깃덩어리를 던져준 것처럼.
필사적으로 멘티스들과 싸우다 결국 아슬아슬하게 도망쳐 나왔다. 스킬을 사용하게 된다면 분명 이길 수 있을텐데, 그렇게 이기긴 싫었다. 진서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에덴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이르게 돌아와서 그런지 엉클이 집에 보이지 않았다. 다만, 므레이만 남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말을 걸면 안 될 것 같아, 곁에서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명상을 하고 있는 므레이를 찬찬히 살폈다. 앳 된 얼굴이 눈을 질끈 감고, 조금 일그러졌다가 다시 돌아 왔다. 계속 무어라 중얼거리며 집중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또 고통스러운지 얼굴을 일그렸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걸 계속 반복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피부에 무언가 느껴졌다. 거대하고, 강하며, 엄청나게 단단할 것 같은 마력의 파장이었다.
'이게 므레이의 마력…'
므레이가 뿜어내는 마력에 진서가 압도 당했다. 저 가녀린 육체에서 이런 힘이 뿜어진다는 게 놀라웠다. 그렇게 므레이를 쳐다 보다, 므레이의 빨갛게 물든 눈과 마주쳤다.
"…"
"…"
"뭐야?"
이쁘장하게 생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을까. 아니, 인영은 이쁘지만 착하던데, 므레이는 오밀조밀 이쁘게 생겼지만 말하는게 전투적이었다. 목소리도 청아해서 듣기는 좋으나 말투는 진서를 벌레 취급 하는 듯 했다. 므레이는 아무 생각 없었지만, 진서는 그렇게 느꼈다.
"배우러 왔어."
"아직 이르지 않아?"
"시간을 지켜야 하는 이유라도 있어?"
"음, 딱히…"
"그럼 바로 가르쳐줘."
므레이가 진서를 바라 보다, 미묘하게 바뀐 표정을 진서가 읽었다.
'귀찮아 하는 군'
진서가 므레이의 표정을 읽은 후, 다음부터 빨리 돌아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딱히, 므레이의 귀찮아 하는 표정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소소한 복수 하는 것도 아니다. 진짜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진서를 뒤로 하고, 므레이는 천천히 푸른 빛의 마력을 뿜어냈다. 므레이의 온 몸에서 나온 마력은 흩어지지 않고 므레이의 온 몸을 감싸며 맴돌았다.
"근력강화."
므레이가 짧게 말하더니 몸을 감싼 푸른 빛의 마력이 팔에 스며들었다. 그러곤 진서를 슬쩍 밀었는데, 엉클의 집 바깥으로 날아가버렸다.
떼굴떼굴 구르며 순식간에 배경이 바뀐 진서가, 자신의 몸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클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진서가 고개를 들어 엉클의 집을 바라보니 므레이가 보였다. 그리고 웃음을 참고 있는 것도.
진서는 콧방귀를 흥 뀌고, 다시 엉클의 집으로 돌아왔다. 므레이는 그런 진서를 보며 웃음을 참고 말을 이었다.
"쉽게 보여 준거야, 원래는 온몸을 감쌀 필요도 없이, 몸 내부에서 마력을 움직여. 그런 후에 마력을 뿜어내면서 원하는 장소에 힘을 머무르게 하는거야."
"…두고 보자."
"왜? 무슨 일 있어?"
"…"
할아버지에 그 손녀였다. 진서는 부들거리는 몸을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얼른 저걸 성공시켜서 똑같이 날려 보내리라 다짐 하고 수련을 시작했다.
므레이는 곧바로 진서에게 무신경해졌다. 어찌어찌 마력을 방출하는데 성공했지만, 그정도는 기본이었다. 하지만, 그 기본도 한 달은 족히 걸렸는데, 저러다 지칠게 뻔했다. 므레이가 보기엔 진서는 재능이 없는 것이다.
솔직히 진서는 조금 걱정했다. 여기서 마력을 컨트롤 하다가 폭주하거나,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기까지 너무 오래걸리진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진서의 발목을 잡았지만, 의외로 마력은 쉽게 해결 됐다.
눈을 감고 진서 내부의 마력에 집중했다. 매일 하던 일이라 훨씬 수월하게 집중을 했지만, 고고하게 흐르는 마력을 뜻대로 움직이려니 힘이 들었다. 그러다 마음 속에서 새끼 용이 소리쳤다.
'뺙!!'
'어, 그래.'
'뺙뺙!!'
무언가 반가워 하는 새끼 용과는 다르게 진서는 시큰둥 했다. 무엇보다 이때까지 방해만 놓았으니, 별로 달갑진 않았다. 그럼에도 새끼 용은 반가워했다. 그런데 반가워 하는 것과 동시에 마력이 요동쳤다. 고고하게 흐르던 마력이 줄기차게 흐르고, 조금씩 흘러 넘치던 마력이 콸콸 흘러넘쳤다.
'자… 잠깐만.'
'뺙?'
진서가 당황해 새끼 용을 진정시키니, 새끼 용은 의아해했다. 그러자 줄기차게 흐르던 마력도 차분해졌다. 또 새끼 용이 방해 하는 구나 싶어서 살짝 짜증이 나려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진서의 눈을 두 배나 크게 만들었다.
'……설마?'
진서는 마력은 그저 영혼의 힘인 줄 알았다. 그러니 내 영혼의 힘이며 내가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만약,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 자신의 몸에 들어와 마력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게 바로 새끼 용이라면……
진서가 생각을 멈추고 새끼 용을 불렀다.
'저기, 용아?'
'뺙!!! 뺙뺙!!'
진서가 새끼 용을 부르자, 자신을 부르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행복해하며 대답했다. 마력이 요동치는 것은 덤이었다.
'음, 부르기 어려우니 판으로 할께. 괜찮아?'
'뺙? 뺙!!'
그냥 생각난 이름을 붙이고 새끼 용을 불렀다. 굉장히 저렴해 보이는 이름이었지만, 새끼 용은 엄청 기뻐하며 대답했다.
'판, 진정하고, 혹시 마력을 뿜어내는게 너야?'
'뺙뺙!! 뺙!! 뺙뺙뺙!!'
병아리처럼 소리를 지르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마치 자랑스러운 듯이. 그런 판을 느끼며 진서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밖으로 나올 수 있어?'
'뺙?'
'음, 내 몸에서 나올 수 있냐구'
'뺙!'
진서는 자랑스럽게 대답한 판을, 자신의 몸에서 나올 수 있게 도와주었다. 요동치던 마력이 조금씩 차분해지고 손등의 문양이 밝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진서는 속으로 쾌거의 웃음을 지었다. 멋대로 들어온 입주 용(?)을 내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문양에서 나온 밝은 빛은 진서가 뿜어내는 마력을 타고 스멀스멀 모양을 잡아갔다. 동굴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 두 쌍의 뿔과 미끈한 피부, 우주를 담은 듯한 눈동자와 짤막한 손과 발. 그리고 몸에 비해 현저히 작은 날개가 열심히 파닥였다. 이윽고 진서의 몸에서 빠져나간 빛은 판으로 변했다.
"해냈다!"
"뺙!!!"
"…"
기뻐 외치는 진서와, 뭔지 모르겠지만 진서가 기뻐하니 기쁜 판과, 그 모습을 휘둥그레 쳐다 보는 므레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