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은 신기하게도 낮과 밤이 존재하였다. 엉클의 집 위로 떠 있는 거대한 빛은, 밤이 되면 동굴의 벽에 붙어 힘을 충전한다. 어떻게 충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동안엔 힘이 약해져 어두워지고 이 때가 밤이었다.
충전이 다 되면 다시 밝아지며 엉클의 수업이 시작됐다. 아니, 지옥이 시작됐다.
엉클은 아침이 되어 어디론가 데려갔는데, 커다랗게 구멍이 뚫린 동굴이었다. 안으로 조금 들어가자, 사마귀와 닮은 마물이 있었다.
< 멘티스 >
성인사람의 두 배만한 크기를 가졌다. 얇고 길쭉한 신체는 동굴의 어디든 갈 수 있게 변형 되었고 낫처럼 생긴 앞발이 한 쌍 달려있다. 호전적인 성향이 강해 자신의 무력을 뽐내고 싶어 한다.
마물 등급 : B
감정스킬을 통해 확인 한 등급은 와이번, 홉고블린과 같았다. 등급 안에서도 경험이나 특성에 따라 나뉘는가 보다. 어쨌든 한 마리 한 마리가 굉장한 힘을 가졌다. 처음 이 곳을 왔을 때, 운좋게도 멘티스 두 마리가 서로 영역싸움을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오래전 자신이 즐겨한 '검객'의 확장판 같은, 혈투가 벌어졌다. 눈으로 쫓아가기 힘든 속도로 멘티스들은 앞발을 움직였고 맞부딪치는 순간마다 불똥이 튀겼다.
"헐헐헐, 저녁에 데리러 오겠네. 힘내보시게나."
엉클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왔던 길로 돌아갔다. 진서는 엉클이 수련을 빙자한 암살계획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럼 더더욱 죽기 싫었다. 그러나 각오만으로 살아남기엔 멘티스들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내가 상대해주지."
갑자기 나타난 진서에게 멘티스들은 당황했다. 멘티스들은 싸움으로 인해 낫 같은 앞발이 모두 잘렸다. 한 마리만 한 쪽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타이밍에 진서가 나타났다. 어부지리를 노린 탁월한 타이밍.
진서가 맹세의 검, 오쓰를 들고 앞발이 없는 멘티스의 신체를 벴다. 얇은 신체에 비해 두꺼운 껍질이, 단단히 보호해주어 껍질에 손상만 갈 뿐 직접적인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낭패네'
진서가 생각한 것 보다 단단했다. 가뿐히 한 마리를 처리하고 앞발 한 쪽만 있는 놈을 싸워 이긴다. 진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덤빈 건데, 생각외로 껍질마저 단단했다. 멘티스의 결투에서 갑자기 끼어든 진서를 죽이고자 멘티스들이 날뛰었다.
앞발이 없는 멘티스는 날카로운 움직임으로 진서를 물어 뜯으려 했고, 아직 앞발이 하나 있는 멘티스는 진서를 노리고 앞발을 휘둘렀다. 검신으로 달려드는 머리를 쳐내고 멘티스 앞발을 흘려보냈다.
급한 상황이지만, 진서는 군더더기 없이 움직였다. 그러나 멘티스들의 민첩한 움직임은 인간과는 차원이 달랐다. 네 개의 얇은 다리가 육중한 멘티스 몸을 날렵하게 움직여 진서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자신의 몸에 두 배나 되는 크기의 멘티스들이 양쪽에서 달려드니 공포가 따로 없었다. 그럼에도 진서는 피가 끓었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오는데 얼굴은 슬쩍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
'너희들을 잡고 내가 강해진다.'
진서는 강해지기 위해 스킬을 봉인했다. 오쓰를 쥐고 정신을 집중했다. 달려드는 멘티스의 방향과 위치를 파악하며 꿈틀거리는 본능을 일깨웠다. 멘티스 앞발과 머리가 지척까지 다가오자 오쓰를 단단히 쥐고 앞으로 굴렀다. 앞으로 구른 진서 위로 멘티스 앞발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대로 오쓰를 휘둘러, 물어 뜯으려던 멘티스 얼굴을 강타했다.
"크라엙!!"
손에 전해지는 타격감은, 라면을 끓일 때 계란을 탁하고 깨서 집어 넣은 듯 시원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 맛이지.'
진서가 에덴에서 싸운 용인족은 너무 급이 달랐다. 싸울수록 허우적대는 느낌이라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자신과 비슷한 실력의 마물을 때리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진서가 손 맛에 취해 자세를 고치기도 전에, 다른 멘티스 앞발이 진서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날카로운 앞발에 비해 얕은 상처가 생겼지만, 고블린 전사와 차원이 달랐다. 전혀 아프지 않았던 것에 비해, 상처까지 생겼다. 직격을 맞으면 베이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두려움을 일으켰지만 두려움에 떨 시간이 없었다.
진서는 고통에 주춤하던 멘티스에 달려들어 오쓰를 휘둘렀다. 오쓰의 길이 덕분에, 멘티스 머리까지 닿아 다시 한 번 때린 곳을 또 때렸다.
"크라엙!!!"
단단한 껍질은 오쓰의 칼날에도 베이지 않았지만, 타격은 충분히 줄 수 있었다. 진서는 곧바로 길쭉한 다리 밑으로 파고 드니, 다른 멘티스가 진서를 노리려 앞발을 휘두르다, 고통에 힘겨워 하던 멘티스 신체를 그대로 두동강을 냈다. 두동강 난 멘티스는 가루가 되어 스멀스멀 사라졌다.
진서는 가루가 되어 사라진 멘티스 속에서 땅을 딯고 일어났다.
"이제야 둘이서 싸우네, 너네 비겁해"
멘티스가 인간의 말을 알아 들었다면, 어부지리를 노리고 들어온 진서에게 도발이 걸렸을 것이 분명하다. 멘티스는 앞발을 휘두르며 진서에게 다가왔다. 오쓰를 쥐고 상대방을 본다. 상대방의 움직임과 거리, 앞발의 방향까지 세세하게 파악한다. 위험한 상황에서 진서 본연의 능력이 발동 되었다.
멘티스가 휘두른 앞발을, 오쓰를 이용해 미리 준비한 방향으로 흘려보냈다. 그러나 진서 뜻대로 되지 않았는 지, 앞발은 흘려지지 않고 진서를 향해 또 한 번 휘둘러졌다.
'큭, 생각보다 더 강하네.'
가까스로 몸을 숙여 피하고 오쓰를 휘둘러 멘티스 신체를 벴다. 역시 단단한 껍질이 오쓰를 튕겨냈지만, 조금이나마 껍질에 손상을 입혔다.
멘티스는 가까이 있던 진서가 피하지 못하게, 앞발을 빠르게 휘둘렀다. 멘티스가 작정하고 앞발을 휘두르기만 하니, 앞발이 마치 서 너개가 된 것처럼 빠른 속도로 진서를 노렸다.
챙! 챙! 챙!
오쓰와 앞발이 부딪칠 때마다 금속성의 마찰음과 함께 불똥이 튀었다. 진서가 가까스로 막으며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그러나 멘티스가 가만히 지켜 볼리 없었고 위협적으로 다가오며 앞발을 휘둘렀다.
진서는 시간 가속을 사용하면 손쉽게 멘티스를 사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생각을 빠르게 접었다. 봉인 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스킬에 의존할 뻔 했다.
그렇다고 안쓴다면 진서의 상황은 나아질 방법이 없었다. 진서의 검술은 검객에서 다룬 순수 실전 검술. 그리고 인간을 상대로 한 검술이다. 그런 검술을 가지고 마물을 상대하니 검을 효과적으로 쓰지 못했다. 그것도 그렇고 오쓰는 장검이니 진서가 익숙치 않은 것도 있었다.
멘티스가 자신이 우위인 것을 인지 하고 더 위협적으로 앞발을 휘둘렀다. 조금씩 빨라지는 앞발의 속도가 점점 진서를 웃돌고 있었다. 가까스로 막아내고 있지만, 진서의 몸 곳곳에 앞발이 스치며 지나가 상처를 만들어 냈다.
'크윽, 이대로 가면 진짜 죽겠다.'
다급해진 진서가 머릿속에 자꾸 맴도는 스킬의 유혹을 떨쳐내고 최대한 집중했다. 멘티스 앞발을 막아내며 어딜 향해 휘두르는 지 파악했다.
챙! 챙! 챙챙! 챙!
멘티스 앞발을 막는 와중에도 진서의 몸 곳곳에 생긴 상처는 피를 왈칵 쏟아냈다. 멘티스를 해치우지 못하면, 먹기 좋은 고깃덩이로 전락할 것이다. 힙겹게 막아내던 진서의 몸에 상처가 점점 더 많아졌다. 죽음이 지척까지 다가오고 진서의 다리가 조금씩 떨려왔다. 이세계에 와서 지금까지 참 편하게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에 힘이 풀려가던 중에 새끼용이 마음속으로 소리 쳤다.
'뺙뺙!!!'
새끼용의 포효는 시끄러웠지만, 묘하게 몸 구석구석 활력이 돌았다. 부떨리던 다리가 힘이 넘치고 힘이 풀리던 손은 오쓰를 더 강하게 붙잡았다. 정신을 차린 진서는 눈에 힘을 주어 멘티스 앞발의 방향을 파악했다.
결국 진서는 처음으로 멘티스의 사정없이 내려치는 앞발을 쳐내는데 성공했다. 갑작스런 진서의 움직임에 조금 당황한 멘티스는, 흐트러진 자세를 고치고 있었다.
진서는 활력이 도는 이유가 의아했지만, 죽을 것 같았던 상황에서 생긴 한 줄기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조금 흐트러진 멘티스와 거리를 벌리곤 오쓰를 고쳐 잡아 멘티스를 노려보며, 다리에 힘을 주고 신체를 지탱하여 등을 곧바로 세워 자세를 잡았다.
진서는 자신이 부족한 걸 알면서도 멘티스와 정면대결을 시도했다.
'부족한 건 몸으로 때워야 늘지.'
진서가 멘티스를 마주 보며 입꼬리가 올라 갔다. 멘티스는 그런 진서를 앞에 두고, 자신의 앞발을 혀로 닦으며 날을 세웠다. 날카로운 앞발은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워졌다. 아마, 마지막 싸움이란 걸 직감한 듯 했다.
진서는 머릿속으로 사마귀 구이를 생각했다. 갑자기 시덥잖은 생각이 동했지만, 그런 생각 덕분인지 질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열세였던 진서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멘티스가 앞발의 손질이 끝났는지, 진서를 향해 뛰었다.
진서는 무게를 실어 휘두르는 무식한 앞발을 맞아 줄 여유가 없었다. 오쓰를 젖혀 멘티스 앞발을 뒤로 흘리며 파고 들어, 비어 있는 틈을 향해 휘둘렀다.
멘티스는 자신의 껍질을 믿는지, 진서의 검을 두려워 하지 않았는데 진서가 노린 것은 앞발의 관절 부분이었다.
"키엙!!"
"튼튼하네, 잘리라고 휘두른건데."
정확하게 관절 부분을 내리쳤는데, 그조차도 잘리지 않았다. 그래도 꽤 강한 충격을 받았는지, 멘티스 앞발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느려진 멘티스는 진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진서는 그냥 끝낼 생각이 아니었다.
"이제 먹잇감은 누구냐."
"키에엙!!"
진서는 발악하는 멘티스 앞발을 피하고 다시 한 번 관절을 내리쳤다. 멘티스의 앞발은 가을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톡 하고 부러졌다. 진서는 곤충을 가지고 노는 악동(惡童)처럼, 연구를 가장하여 신나게 멘티스를 유린했다.
"이정돈 각오하고 덤볐어야지."
해부학자마냥 멘티스를 부위별로 나누려다 체력이 다 했는 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가루로 사라지는 멘티스를 보며 입맛을 다시던 진서였다.
한 마리를 잡는데 체력이 너무 낭비 됐다. 좀 더 효율적인 사냥을 해야했다. 진서는 동굴을 돌아 다니다 앞발이 없는 멘티스들을 발견했는데, 필시 싸움에 져서 도망쳐 나온 마물이 분명하다. 진서는 엉클이 오기 전까지 앞발이 없는 멘티스들을 사냥하며 시간을 보냈다.
앞발이 한 개라도 달려 있으면 그 즉시 자리를 피했는데, 그러다 보니 사냥도 많이 못했다. 엉클이 돌아왔을 때까지 세 마리를 더 잡은 게 고작이었다.
"헐헐헐, 살아계셨군요?"
짜증나는 할아범. 말도 이쁘게 한다. 사람 좋은 웃음은 역시 적응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