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와 인영은 모험가 길드에서 뜯어낸 쪽지를 들고 일을 시작했다. 카라이트 마을에선 적당히 일을 분배해 처리하면 됐는데, 규모가 크다 보니 청소도 설거지도 힘좀 써야 제 시간에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수가 두 배였다.
진서는 인영에게 이것저것 노하우를 전수해줬는데, 신문배달, 전단지 배포, 택배, 물류정리 등 짧고 굵은 아르바이트 경험의 집합체인 노하우였다. 덕분에 인영도 센스있게 일을 처리했다. 그래도 잘 따라오는 인영이 진서는 고마웠다.
인영이 벌어온 돈도 자신이 관리하기에.
그렇게 열정페이로 일하는 인영과 진서는 카라이트 마을에서 했던 정보 수집을 같이 했다. 진서가 잡일을 하면서 깨달은 점은, 생각보다 잡일을 하는 사람들의 정보 흐름이 꽤나 날카로웠다.
청소하는 사람들의 잡담에서 귀족들의 비밀들을 알 수 있었고, 식자재를 옮기면서 도시의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유추할 수 있고, 음유시인과 같이 일을 하여 소문을 제일 빨리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정보는 상인들이 혹할만한 이야기들이고 진서는 잡일을 하며 겸사겸사 얻어갔다. 나중에 필요할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러다 진서와 인영이 공간의 신인 슈를 모시는 제단을 청소 하러 갔는데, 넓은 제단 앞에 있던, 슈의 모습을 본따 만든 동상이 어디선가 많이 본 느낌이였다. 뭐, 상관없으니 청소나 하러 갔다.
제단 앞에는 견습사제들이 버프를 걸어 주고 있었는데, 버프를 걸어주며 돈을 받았다. 그걸로 제단의 유지비로 사용한다는데, 저런 식의 창조경제가 가능 하다면 진서도 배우고 싶었다. 버프를 주면서 숙련도도 오를테니, 돈도 벌면 그야 말로 치킨먹고 맥주먹는 꼴이다.
진서는 절대 어떤 신이든, 받으면 모를까 돈을 바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성소의 뒷편으로 가자 기다리던 견습사제와 만났다. 진서는 이런 곳에 오래 있기 싫어서 얼른 떠나고 싶었는데, 견습사제가 놀란 눈으로 진서를 쳐다보았다.
"아…아니, 귀하신 분이…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요. 사제장님을 부르겠습니다."
"…뭐야?"
갑작스런 격한 반응에 진서가 중얼거렸다. 견습사제는 헐레벌떡 제단 안으로 들어갔다. 인영은 혹시 자신이 다크엘프라 그런 건가 싶어 안절부절 못했다. 진서가 인영을 진정시켰다. 조금 뒤 사제장을 뒤따라 상급 사제 두 명이 나왔다.
"신에게 축복 받으신 분이시여, 환영합니다. 저는 사제장 토르말입니다."
진서가 자신에게 그딴 소리가 왜 나오냐고 하려다가, 문득 자신의 칭호가 생각났다. 아마 맞는 것 같다.
"귀하신 분이 여긴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혹시 신의 계시가…"
"청소."
"네 그렇죠, 청소…… 예?"
"이거 의뢰하신 것 아닌가?"
"무슨?"
진서는 하급 모험가 의뢰쪽지를 꺼내 흔들었다. 사제장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상급 사제중 한 명이 살짝 귀띔했다.
"모험가 길드에, 청소의뢰를 맡겼는데 귀하신 분이 의뢰를 맡으신 것 같습니다."
"예? 그럼…, 역시 신의 축복을 받는 분은 성품도 남다르시군요. 그럼 청소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제님?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제장은 상급 사제에게 진서를 안내시키고 자신은 제단으로 들어갔다. 진서는 갑작스런 극진한 대접에 떨떠름하였다. 신이 축복을 줘서 얻은 게 청소하는 곳까지 안내 받는 게 전부인가. 역시 신은 축복도 짜게 준다. 짠돌이도 이런 짠돌이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넓은 제단을 부지런히 닦아 댔다. 얼른 여길 뜨고 싶었다.
청소가 끝나고 가려는데 사제장이 진서를 막아세웠다.
"귀하신 분이시여, 신에게 받은 축복의 힘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네."
진서는 나가려는 자신을 막아 세운 것에 짜증이 났고, 세상 이롭게 해봤자 자신이 다 박살낼꺼야 라고 말도 못했다. 아니, 이세상은 관련없나… 어쨌든 진서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나 사제장은 집요했다.
"허허, 귀하신 분은 성품에 재치도 있으십니다. 지금 마신의 부활이 임박하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귀하신 분이 마법사의 탑에 있는 제단으로 가시어…"
"안해요."
"그러지 마시고, 제단의 대사제님을 찾아 제 편지를 드리고 힘을 보태어 주신다면, 부귀영화를 약속드립니다.
"어떤 부귀영환데요?"
"마신의 부활을 저지 하신다면 값진 보물들은 아깝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마신이 부활을 한다니. 세상에 위협이 된다면 지켜야죠."
"역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제가 편지를 써드리겠습니다."
진서는 어쩔 수 없었다. 과거 인마대전을 벌인 장본인이 부활한다면, 자신이 리비아 대륙으로 가는 것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그러기 전에 미리 싹을 제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절대 부귀영화따위 때문이 아니다.
사제장이 자신의 도장이 찍힌 편지를 들고 진서에게 다가왔다. 꼭 힘이 되어 주실 거라 믿는다며 직접 진서에게 버프까지 걸어줬다.
"신이시여 저희에게 내린 축복을 기억하시고, 이 자에게 가벼운 발걸음과 충만한 힘을 주소서. 블레스!"
따스한 빛이 진서를 감쌌다. 처음 받아 본 버프라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몸이 가벼워지는 동시에 기운이 회복되었다. 또 다른 버프는 없나 기대했지만, 사제장은 그대로 배웅해줬다. 역시 없나 보다. 진서는 충만한 기운을 얻어 남은 잡일을 하러 갔다.
해는 저물어 모험가 길드에서, 완료한 쪽지들을 정산한 후 숙소로 돌아 왔다. 인영은 버프를 받은 진서와 페이스를 맞추느라 체력이 완전 방전이 됐다. 진서도 나름대로 인영의 몫까지 좀 도와줬는데, 어짜피 돈은 진서가 받기에 마무리는 진서가 끝냈다.
쓰러진 인영을 뒤로 하고 여전히 스킬 수행에 들어갔다.
"이번엔 느낌이 좋아. 버프기운이 남아 있을 때, 시도 하는 거야. 시간가속"
진서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서 주변의 시간이 멈췄다. 그러나 진서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몇초뿐이므로 그마저도 시간이 부족했다.
'힘을 완전히 빼야해, 방전되지 않게 끊는 거야'
진서는 빠르게 힘을 뺐다. 미동도 않던 시간이 조금씩 흘러갔다.
그래도, 조금 가망이 보였다. 유지시간은 늘어났고, 탈력감은 많이 줄었다. 진척이 없었는데, 가능성이라도 보이니 훨씬 힘이 났다. 진서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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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어 인영과 함께 모험가 길드에 방문했다. 아침이여도 북적이는 건 여전했다. 진서는 일반등급 게시판 앞에 섰다. 드디어 사냥을 나설 때가 됐다.
'어디보자, 슬라임도 여기에 출몰하나? 음... 산늑대, 던전 토벌이 제일 보수가 괜찮네.'
- 고블린 처리.
약초를 채집하던 주민들이 가끔씩 실종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 생존자의 말로는 고블린이였다고 하니, 근처에 고블린 던전이 있을 것이라 판단. 수를 좀 줄여주세요. 30마리정도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위치는 쪽지 참조.
= 주민 에모네. 보수 30은
진서는 적당한 걸 읽고 뜯어냈다. 할만 하다. 진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 던전 >
갑작스레 생겨나 마물을 소환하는 곳. 중간계의 마나가 범람할 시기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던전을 관리하는 마물이 있으며, 이 마물을 퇴치할 시 던전은 효력을 잃는다.
< 중간계 >
태초의 세계로써 여러 신들이 관리하고, 피조물들이 살아 가는 공간이다. 마나가 풍부하고 자원은 풍요로우니 많은 생명들이 잉태되고 죽음을 맞이 한다. 여러 대륙이 있고 그 중 대표격인 판테온 대륙은 세 개로 쪼개어졌다.
진서는 틈틈히 정보를 수집하고, 다시 한 번 복습하며 머릿속에 집어 넣었다. 이제 던전을 토벌하러 가기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진서가 인영을 데리고 대장장이의 대장간에 찾아갔다. 대장간에는 대장장이의 망치질 소리가 들렸는데, 경쾌한 리듬이 진서의 가슴을 울렸다. 판타지 세계의 묘한 묘미 중 하나였다.
"한 번 골라봐."
"응?"
"마음에 드는 걸로."
진서가 웬일로 안하던 짓을 했다. 인영에게 진열되어 있는 무기중에 고르라고 한다. 심지어 마음에 드는 걸로 말이다.
'무기는 자기에게 맞는 걸 쓰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하지. 어짜피, 자기가 번건데.'
진서는 인영이 번 돈으로 사주려고 했다. 그걸 아는 지 모르는 지 인영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진열 된 검을 둘러봤다.
"그럼. 이거, 이거! 사도 돼?"
진서가 검들에 대해 감정스킬을 쓰며 품질을 확인하다, 인영이 고른 검을 감정했다.
< 단검 >
균형이 잘 잡혀있다. 손잡이 부분이 그립의 모양대로 나있어서 손에 딱 맞을 것 같다.
공격력 5 ~ 6, 장비제한 없음.
'게임처럼 표시가 뜬다. 다른 사람이 감정스킬을 써도 이런 걸까.'
어쨌든 진서는 대장장이에게 가격을 치뤘다. 하나에 20은. 역시 싸다. 진서가 청소하며 엿들은, '품질은 비슷한데 가격이 싼 대장간'에 찾아 오기 잘했다. 여러가지로 철두철미한 진서였다.
"형씨, 40은이야."
"하나에 20은이라면서요?"
"뒤를 봐."
대장장이가 가르킨 손짓의 끝엔 인영이 단검을 두 개 들고있었다. 음. 뭐, 투자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가격을 치루고 나오니, 인영은 기뻐하는 얼굴로 두 손 공손히 단검을 쥐고 있었다. 감정이 격해지면 인영은 길쭉한 귀가 움찔대는 것 같다. 예전에 눈이 마주쳤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움찔거리고 있다.
"좋아?"
"응! 정말 소중히 쓸꺼야! 진서가 준 거니까."
"그걸로 몸을 지켜야돼."
"응응! 지킬께."
자기가 번 돈으로 받은 선물인데, 너무 좋아하니 진서가 조금 찔렸다. 공장에선 아무렇게나 사기치던 진서였는데, 순진하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이 당하던 때가 생각났다. 좋은게 좋은거니, 굳이 말할 필욘 없다.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겐 당하면 안되니, 교육이라도 틈틈히 시켜야겠다.'
그렇게 인영도 장비가 끝났으니, 도란 숲으로 향했다.
도란 숲엔 곳곳에 약초가 있었는데, 뭐가 독초인지 약초인지 진서는 감정스킬 덕분에 바로 알았다.
< 히포 풀 >
체력포션의 원재료. 하얀 꽃이 맺으면 독성이 생기니 주의 해야 한다.
< 대둥말이 풀 >
돌돌 말린 모양의 풀, 달여 먹으면 골절에 좋은 약재다.
< 광대버섯 >
환각을 일으키는 버섯, 화려한 겉모습으로 동물을 유혹한다.
약재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그냥 감정스킬 쓰고 뽑아서 인벤토리 창에 넣는다. 손도 가볍고 마나도 들지 않는 창조경제였다.
'그냥 약재상으로 돈을 벌어서 상단을 꾸린 후에 리비아 대륙을 찾아 가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거인의 땅을 건너려면 돈으로는 안되는 걸 깨닫고 쪽지에 적힌 약초 재배지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재배지에 도착하니, 약초들이 좀 파헤쳐졌고 근처에 발자국이 많았다.
'고블린들이라 그런지 허술한 건가.'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허술한건지 모르겠다. 던전은 이렇게 몬스터가 많아지면, 새로 생겨나는 공간이 부족해고 던전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그걸 방지하기 위해 던전을 미리 토벌하는게 중요했다. 그러나 진서는 수 만 줄이면 되니, 무리할 필요 없었다.
누가 봐도 고블린 발자국을 따라가니, 진서의 세 배만한 크기의 동굴 입구가 보였는데 고블린 두 마리가 보초를 섰다. 좀 더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입구 근처 풀 숲에 숨어 꽤 오랫동안 지켜 봤다. 그러나 고블린들이 던전 밖을 나오진 않았다. 보초는 왜 세워놨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졸고 있다.
딱 그 정도의 수준이였다는 것이다.
고블린의 수준은 진서와 비교하면 어떨지 궁금했다. 그러다 혹시나 해서 감정스킬을 써봤다.
< 고블린 >
트롤의 열성인자로 태어난 마물. 회복력과 힘은 트롤의 반도 못따라간다. 어느 정도 지능이 있지만, 통솔하는 마물이 없다면. 그마저도 짐승과 가깝다. 인간을 닮았으나 외모만은, 가만 보기 어려우리만큼 못생겼다. 초록색피부에, 아이의 키와 비슷하다.
마물 등급 : D
어떤 이유인지 마물은 감정이 되는 것 같다. 거부권이 없어서 그런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충분히 할만하다. 사냥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