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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사명
작가 : 성소은
작품등록일 : 2017.11.24

남들의 죽음을 볼 수 있는 한 여자의 지독한 운명과
그로 인한 삶의 비극을 다룬 판타지 소설.

 
27
작성일 : 18-01-08 18:59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10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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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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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봄이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로 풍경이 어쩐지 활기차보였다. 엄마 납골당으로 향하는 길이 오늘따라 유독 멀게 느껴졌다. 죽으려고 마음먹었을 때 다시는 이곳에 못 오게 될 줄 알았다. 그래서 그 날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었다. 그러나 영은 죽지 못한다. 태주 때문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스스로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고 살아온 영이 그 중에서도 제일 용서를 빌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건 엄마였다. 죽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 역시 수경이었다. 그때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면서도 드디어 죗값을 치를 수 있겠다는 마음 뿐 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영은 오늘 수경에게 다음에 가겠다고. 그 죗값 조금만 미뤄 받겠다고 말할 계획이었다. 영이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버스 기사의 얼굴을 쳐다봤다. 기사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을 따라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은 영이 죽음을 거의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때 버스 사고가 있고 난 후였다. 고로 완전히 죽어버려야겠다고 다짐한 이후부터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때문일까 영은 사람들을 보는 것이 조금 편안해졌다. 죽지 않아버리면 언제고 다시 보일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그랬다.

 차 안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바람이 매서웠다. 한 걸음씩 뗄 때마다 바람이 영의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미리 꽃을 준비해오지 못한 영이 납골당 바로 앞에 있는 꽃집에 들렀다. 꽃집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예쁜 여자가 영에게 다가왔다.

 

 “어떤 거 찾으세요?”

 “아. 개나리꽃이요.”

 

 영의 말에 꽃집 여자가 웃으며 화실 안으로 들어갔다. 영은 여자를 기다리며 내부를 조금 둘러봤다. 납골당 옆이다 보니 하얀 국화꽃만 가득할 것 같았는데 다양한 꽃들이 공간을 예쁘게 수놓고 있었다. 그 꽃들을 잠깐씩 보고 있으니 곧 여자가 안에서 나왔다.

 

 “포장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올 때마다 수경이 좋아하던 개나리꽃을 준비해오긴 했지만 한 번도 예쁘게 포장을 한 적은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예쁘게 해주세요.”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꽃이 포장되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서서보고 있는데 여자가 손님인 영에게 능숙하게 이런 저런 말을 걸어왔다.

 

 “납골당 오신 거예요?”

 

 영이 고개만 끄덕여 대답했다. 여자는 아랑곳 않고 계속 상냥하게 말을 이었다.

 

 “요즘 날이 추워서 그런가 찾아오는 분들이 잘 없으세요. 밖에 많이 춥죠?”

 “바람이…. 좀 불더라고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영은 낯선 사람들과 말을 이어나가는 게 매우 어렵고 불편했지만 공간 가득 펴져 있는 향기 때문인지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새 포장은 마무리 단계였다.

 

 “오늘도 딱 한 분 국화 가져가신 거 말고는 아무도 없었거든요.”

 

 말을 마친 여자가 포장이 다 된 개나리꽃을 영에게 내밀었다. 늘 챙겨오던 개나리꽃이었지만 예쁜 포장지에 쌓여있으니 어쩐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값을 지불한 영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밖으로 나온 영이 바람에 꽃이 날아가기라도 할까 급히 납골당 안으로 들어왔다. 꽃집 여자의 말대로 납골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영이 익숙하게 수경의 납골함 앞으로 가 섰다. 여전히 혼자 수경을 보러 오는 건 낯선 일이었지만 그래도 예전 만큼은 아니었다.

 

 “나 왔어. 줄 것도 있고…. 해줄 말도 있어서. 엄마 기일은 내일이지만 내일은 혹시 몰라서 집에만 있어야 하거든.”

 

 사진 속 수경은 언제나처럼 영을 향해 웃어줬다. 영이 고개를 숙이고 손을 꼼지락거렸다. 꽃 포장지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한테 사과하려고…. 일찍 만나러 가고 싶었는데. 아직은 좀 더 있어야 할 거 같아. 미안해 엄마. 빨리 가지 못해서…. 나 조금만 있다가 갈께.”

 

 영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대신에 오늘은 꽃 말고 다른 선물도 가져왔어. 엄마가 아끼던 카메라인데 용기가 안 나서 한 번도 꺼내보지 못하다가….”

 

 덤덤하게 말을 잇던 영의 눈에 뭔가가 띄었다. 납골함 안에 하얀 국화가 들어있었다. 국화꽃을 사 간 사람이 있다는 꽃집 여자의 말이 떠올랐다. 영이 납골함 문을 열었다. 수경의 사진 뒤에는 정말 국화꽃이 한 송이 놓여 있었다. 영은 이곳에 올 때 항상 개나리꽃만 챙겨 왔었다. 게다가 영과 태주가 아닌 이상 수경의 납골함에 꽃을 넣어놓고 갈 다른 사람은 없었다. 영이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흐느낌소리가 영의 귀에 들렸다. 영이 다급히 납골함 문을 닫고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영은 믿을 수 없는 누군가와 마주쳤다.

 

 “왜…. 그 쪽이 여기에….”

 

 환은 누군지도 모르는 납골함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아 입을 틀어막고 울고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으면서도 영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손까지 미세하게 떨렸다. 환은 왜 울고 있을까. 왜 모습을 감추고 혹시라도 들킬까 입을 틀어막고 있을까. 영이 한 걸음 환에게 다가갔다. 환은 그런 영을 피해 도망가지도 못하고 굳어 있었다.

 

 “혹시 저 국화꽃…. 그 쪽이 가져다 놓은 거예요?”

 

 환이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루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환의 얼굴은 심하게 앓기라도 한 사람처럼 수척해있었다. 대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건지 영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환이 소매로 눈물을 닦고 다급히 어색한 연기를 시작했다.

 

 “어 아, 안녕.”

 “저 꽃 그 쪽이 가져다 놓은 거냐고요. 오늘 한 사람 밖에 안 왔다고 했는데….”

 

 환의 연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또 다시 울컥한 환은 영이 보지 못하도록 몸을 돌렸다. 내일이 그 사고가 있었던 날일 거라곤 전혀 알지 못했다. 빨리 용서를 빌어야겠다는 생각 뿐 이었다. 그러나 환은 멀리서 걸어오는 영을 발견하고서야 내일이 그 날이었음을 인지했다. 그런데 도저히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멀리 도망가지도 못하고 반대쪽에 숨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영이 조금 더 환에게 가까이 갔다. 환이 결국 또 다시 입을 막았다.

 

 “우리 엄마…. 알아요?”

 

 질문을 더할수록 영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처음엔 당황스러움이었다면 점차 그 감정이 알 수 없는 격함으로 바뀌어갔다. 영도 왜 그런지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냥 기분이 그랬다. 둘의 만남을 꺼려하는 태주, 영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울던 환, 그리고 납골함에 환이 넣어둔 국화꽃까지. 퍼즐이 맞춰진다는 게 이런 것일까. 영이 한 번 더 물었다.

 

 “왜 여기에 있는지! 우리 엄마를 아는지 묻고 있잖아요! 대답 좀 해봐요!”

 

 끝내 영이 환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를 질렀고 동시에 환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영이 들고 있던 개나리꽃을 놓쳤다. 온 몸에 힘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영의 눈에 간절함과 다급함이 들어찼다.

 

 “그 사람을 죽였다고 했던 말…. 그거 우리 엄마랑 관련되어 있는 거예요? 그 쪽 때문에 죽었다고 했던 거. 그거 혹시….”

 

 차마 뒷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전력질주라도 한 것처럼 영의 호흡이 가빠졌다. 입을 틀어막고 계속 울던 환이 바닥에 주저앉은 그대로 몸을 돌리고서는 영의 다리를 잡고 늘어졌다.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몰랐어, 그 때 사고가 날지 모르고. 그냥 도망가고 싶어서…. 그래서 그랬는데….”

 

 환이 영을 붙들고 오열할 때마다 영의 몸이 휘청거렸다.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아찔했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원래는 내가 죽었어야 해. 내가 죽어야 했는데…. 내가 죽지 않아서…. 그래서 그렇게 된 거야. 전부 나 때문이야…. 내가 너무 미안해…. 나도 몰랐어. 몰라서….”

 “죽었어야 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제발…. 천천히 설명을 좀….”

 

 환이 아예 바닥에 눕다시피 쓰러졌다. 모든 걸 놓아버린 사람 같았다. 환은 드디어, 비로소 그 아이에게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엄마가…. 내 죽음을 봤대. 그래서…. 날 가둬놨었어. 죽지 못하도록. 그렇게 갇혀 살았어야 했는데 내가 도망친 거야."

 

 영의 입에서 실소가 세어 나왔다. 그 어느 것 하나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죽음을 봤다고 하는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부터 그의 아들이 환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엄마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것 모두 한 번에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벅찬 진실들이었다.

 

 “그 날 그 사고는…. 내가 당해야 했던 거였어. 원래대로라면…. 근데 내가 아니라….”

 “우리 엄마가…. 그 쪽 대신 죽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우리 엄마는 나 때문에…. 날 살리려다가…. 내가 거기에 가자고 해서 그래서 그런건데….”

 

 그 순간이었다. 영은 무언가에 질린 얼굴을 하고서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빠르게 그곳에서 도망쳤다. 헛구역질이 올라와서 버티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영은 무작정 달렸다. 달리고, 달리다가 갑자기 깨어나면 엄마와 함께 살던 집 침대였으면 좋겠다고, 그저 이 모든 게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어왔던 꿈이길 바라며 계속 뛸 뿐이었다.

 

  현관 앞에 주저앉아 있는 환을 보았을 때 태주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별 수 없이 수면제를 먹여 환을 자신의 방에서 재운 태주가 거실로 나왔다. 계속해서 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메시지 말고 다른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태주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대체 이 늦은 시간에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다니는 곳이 한정적인 영이었기에 가있을 만한 곳을 추측할 수조차 없다는 게 너무 답답했다. 그저 실종신고를 해놓은 경찰 쪽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자정이 지나면 수경의 기일이다. 그건 태주도 잊고 있었다. 영이 그곳에 갈지도 모른다는 걸, 환과 우연히 라도 그곳에서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걸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뜬 눈으로 시간을 보냈다. 날은 어느덧 밝아오고 있었다. 완전히 날을 새어버린 탓에 저도 모르게 졸고 있던 태주를 깨운 건 전화 한 통이었다. 하루가 다 지나서야 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혹여 라도 끊길까 태주가 다급히 전화를 받았다.

 

 “영아! 너 지금 어디니, 잠은 어디서 잤어. 아니, 선생님이 거기로 갈게, 알려주면….”

 “그 사람 주소 좀 알려주세요.”

 “일단 만나서 이야기 하자. 내가 다 설명해줄 수 있어. 전부다 말해 줄 테니까….”

 “죽음을 본다는 그 사람 좀…. 만나게 해주세요.”

 

 태주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한참동안 생각을 하다가 말을 이었다.

 

 “영아. 지금 와서 본대도 달라지는 건….”

 “안 그럼 죽어버릴 거예요.”

 

 태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영을 막지 못할 것 같았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어차피 누구 운명을 대신 가져간다는 그딴 소리…. 믿지도 않으니까…. 만나게 해줘요.”

 

 결국 현서의 집 주소를 알려준 태주가 전화를 끊었다. 어찌됐든 태주도 그곳으로 가야 했다. 태주가 환이 자고 있는 방문을 한 번 쳐다봤다. 태주는 환도 이틀 정도는 자지 못했고 약까지 먹었으니 한참을 더 잘 거라 생각 했다. 태주가 환을 남겨두고 현서의 집으로 향했다.

 

  벌써 십 분 전부터 이곳에 도착했지만 영은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현서가 있을 집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영은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첫 차가 올 때까지, 차도 잘 지나다니지 않는 그 곳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 결론도 내릴 수가 없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되었다. 처음부터 일이 어떻게 되어 버린 건지 알기 위해서는 현서를 만나야 했다. 영은 엉킨 모든 실타래를 풀고 나면 끝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때가 되면 완전해지겠지. 영이 심호흡을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태주가 오기 전에 모든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현관 앞에 선 영의 손이 위태로웠다. 동정하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앞섰다. 단호해지고 싶은데 혹여라도 현서가 자신보다 더 비참하고 아프게 살았을까봐, 그래서 차마 그녀에게 아무 소리도 못하게 될까봐 무서웠다. 애써 머릿속을 정리한 영이 천천히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영이 한 번 더 벨을 눌렀다. 소리가 두 번 연속 울렸지만 역시나 인기척은 없었다. 영이 아예 현관문을 주먹으로 치며 사람을 불렀다.

 

 “저기요.”

 

 현관을 치는 영의 손이 조금씩 빨라졌다.

 

 “문 좀 열어주세요! 할 말이 있어요!”

 

 이대로 그냥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현관문을 두드리는 영의 손이 다급해졌다. 하지만 주먹으로 문을 치기 시작한 지 몇 십 초가 지나지 않아 끝내 문이 열렸다. 그야말로 죽은 낯빛을 하고 있는 현서가 문틈 사이로 밖을 내다봤다. 현서는 문 앞에 서있는 영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마치 영이 올 것을 알기라도 한 사람 같았다. 현서가 영이 들어올 수 있게 문을 더 열어주었다.

 영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꽤 깔끔한 살림이었다. 사람답지도 못하게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영도 차라리 이러길 바랐다. 그렇지 않았다면 화가 나지 않았을 테니까. 현서가 물이 담긴 컵을 영에게 내밀었다. 영은 받지 않았다. 곧 현서가 그냥 컵을 바닥에 내려놨다.

 

 “저만 몰랐나 봐요. 바보 등신같이.”

 

 영이 눈 주변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현서는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울지도, 화를 내지도, 미안하다고 빌지도 않았다. 그럴수록 화가 나는 쪽은 영이었다.

 

 “나도 죽음을 봐요…. 누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보인다고요.”

 

 영의 말에 그제야 현서가 고개를 들었다. 아무 감정도 없던 현서의 눈에 놀라움이 담겼다. 이 모든 상황과 별개로 죽음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면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게다가 그 사람이 영이라니. 현서는 기가 막히면서도 어쩌면 두 사람의 만남이 결코 우연은 아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서의 숨소리가 조금 커졌다.

 

 “근데 내가 우리 엄마 죽음은 못 봤거든요.”

 

 현서가 숨을 들이마시고 그대로 내뱉지 않았다. 드디어 피할 수 없는 그날의 일이, 잔인한 진실이 둘 사이에 꺼내어졌다.

 

 “그래서 평생을…. 평생을 자책하면서 살았어요.”

 

 영이 끝내는 어린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내가 그 날 거기에 가자고…. 공연 보러가자고 해서. 엄마가 죽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데려간 건데….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그 거지같은 게 왜 하필이면 그때는 안 보인 거냐고….”

 

 영은 그동안 엄마로 인해 느꼈던 모든 감정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듣던 현서마저도 결국은 무너져 내렸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그림자 앞에 한 평생 시달리며 살아야했던 두 여자는 그렇게 하염없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감에 대해서 쏟아내고 또 쏟아냈다.

 

 “그랬는데…. 그게 당신 아들 때문이라고? 그 말을 내가….”

 “그렇게…. 믿고 싶었어. 아니, 믿어야 했고 그건 진짜였어.”

 

 현서의 말에 영이 눈물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봤다.

 

 “사고를 당하는 모습, 시간, 장소까지…. 모든 게 똑같은데 사람만 달라졌어.”

 “그런 멍청한….”

 “그 때 운명이 바뀐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또 다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릴 까봐. 그게 환이 대신이 아니면 안 되니까…. 그렇게 믿었고 환인 죽지 않았어.”

 

 영의 눈에서 또 다시 눈물이 흘렀다. 한 여자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 현서에게 중요한 건 단 한 가지 뿐이었다. 아들 환이 죽지 않았다는 것 말고는 생각할 게 없었다. 환과 또래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구급차에 실려 가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 따위가 눈에 들러올 리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그런 현서라고 완전히 잊고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그때의 기억이 현서를 힘들게 했다. 아들 환에게마저 완전히 버림받았다. 그 기억은 죽음을 보는 현실보다도 더 한 고통이 되어 현서를 휘감았고 이후 더 이상 죽음을 보지는 않았지만 그 날의 대가로 현서는 한시도 편하게 살 수가 없었다.

 

 “그 여자가…. 정말로 환이 대신 죽은 게 아니어도 상관없어. 난 그렇게 믿을 거야. 내가 아들을 살린 거라고…. 환이는 이제 절대 안 죽어.”

 

 현서의 말에 영이 웃었다. 소리 내어 웃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표정은 더하게 일그러졌다. 현서는 주먹에 힘을 주고 눈물을 참았다. 손톱에 눌린 살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힘을 줬다.

 

 “그래. 환이는 더 이상 죽지 않아….”

 “엄마는 나를 살리려다가 사고를 당했고, 나 때문에 죽었어요.”

 “아니…. 내 아들의 대신이야.”

 

 영이 현서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계속 제 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들의 죽음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우리 엄마의 죽음을 그렇게 만든 거죠.”

 

 영이 바닥을 짚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현서는 고개를 돌리고 애써 영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고 많이 생각했어요. 진짜면 어떡하지…. 진짜로 그 사람 때문에 우리 엄마가 죽은 거면. 억울해서 어떡하지….”

 “더 이상 할 말은 없어.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아…. 그러니까….”

 “아니. 당신 아들은 어차피 죽어.”

 “뭐?”

 

 시선을 피하던 현서가 다급히 영을 쳐다봤다.

 

 “그건 우리엄마가 당신 아들의 운명을 대신 가져간 게 아니라는 소리고.”

 “무슨 말이야! 죽는다니!”

 “그 쪽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모양이지만…. 내 눈에는 아직도 보이거든.”

 

 영이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현서가 다급히 일어나 그런 영을 쫓았다. 그리고는 영의 팔을 붙잡았다.

 

 “죽음을 봤다는 거야? 내 아들이 죽는다는 소리야? 그럴 리가 없어! 내 아들의 운명은 그 날 그때 끝났어!”

 “정신 차려…. 우리 엄마가 죽은 건 당신 아들 운명 때문이 아니야.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거 이젠 알아.”

 “그럴 리가 없어…. 죽을 리가 없다고….”

 “그래서 내 운명도 결국은 바꾸지 못할 거야.”

 

 영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영의 팔을 놓친 현서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그리고는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했다.

 

  현관문을 연 환의 손이 허공에 멈추었다. 영이 집으로 올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눈 뜨자마자 곧바로 집으로 온 것이다. 환이 안으로 들어갔다. 영은 창가 아래 서 있었다. 그런 영의 손에는 칼이 한 자루 들려 있었다. 칼을 발견했음에도 환은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영에게 다가갔다.

 

 “곧 삼촌이랑…. 엄마가 올 거야. 집에 가만히 있으라고 문자가 왔거든.”

 “안 무서워요?”

 

 환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무섭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게 느껴질 만큼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무서웠지만 환은 어쩌면 모든 진실을 알았을 때부터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무서워. 무서운데…. 이렇게 사는 게 더 무서워. 죽고 싶어.”

 

 영이 몸을 틀어 환을 마주보고 섰다.

 

 “제발 죽여. 죽이고 싶은 만큼 찔러. 분이 풀릴 때까지…. 난도질 하고 갈기갈기 찢어버려. 그 아주머니한테는…. 가서 죗값 치를게.”

 

 환이 한 마디, 한 마디를 겨우 내뱉었다. 영이 칼을 만지작거렸다. 코앞으로 다가온 죽음 앞에서 영은 슬퍼보이지도, 무서워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죽여…. 이렇게 못 살아….”

 

 찰나의 순간이었다. 영은 환이 발견하고 행동을 막기도 전에 크고 긴 칼을 자신의 명치에 찔러 넣었다. 자신의 행동에 망설임은 없었다. 아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놀란 환이 그대로 쓰러진 영을 부둥켜안고 피가 흐르고 있는 곳을 막았다. 바닥에는 어느새 엄청난 양의 피가 가득 흘렀고 환의 손과 옷에도 마찬가지였다.

 

 “안 돼, 안 돼! 안 돼! 대체 왜! 왜 네가! 왜!”

 

 영을 끌어안은 채로 환이 목 놓아 울부짖었다. 영의 호흡이 가빠졌다. 여전히 가슴 쪽에 꽂혀있는 칼은 치명상이 되어 영을 아프게 했다.

 

 “죽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대체 왜 네가! 왜! 죽여 달라고…. 죽여 달라고 했잖아!”

 

 환이 계속 소리쳤다. 영의 눈에서 피눈물 같은 것이 흘렀다. 영은 알았다. 아주 먼 옛날 자신이 봤던 죽음은 결국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그건 다른 이를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고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는 걸.

 

 “어차피…. 죽어.”

 

 영이 마지막 남은 숨으로 힘겹게 말을 뱉었다. 환은 온 힘을 다해 피가 흐르는 곳을 막으면서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오히려 영보다 더 먼저 숨이 멎어버린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봤어. 내가…. 봤어…. 너도 어차피…. 죽어. 나처럼…. 너도 네 손에 죽을거야.”

 

 납골당에서 모든 사실을 알았을 때 영은 보았다. 환의 처절하고 쓸쓸한 죽음을. 그리고 그때 알았다. 결코 이 운명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영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죽는 모습까지도.

 

 “그러려면…. 내가 먼저 죽어야 해서…. 내가 죽어야 너도 죽어서….”

 “말 하지 마. 안 돼 기다려, 구급차 부를 거야. 이렇게는 안 돼.”

 “네가 죽어야…. 우리 엄마가…. 억울하지 않아. 꼭…. 죽….”

 

 영의 숨이 이내 완전히 끊어졌다. 환의 숨소리도 멈췄다.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는 상태. 환이 몸을 발버둥 쳤다. 밖에선 환을 부르는 태주와 현서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고 곧 사이렌 소리가 주변을 에워쌌다. 영이 죽었다. 예정되어 있던 그 날에, 그 죽음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서 죽었다. 영이 그동안 살면서 느꼈던 수많은 것들이 야속하게 느껴질 만큼 그 죽음은 더 없이 초라하고 쓸쓸했다.

 
작가의 말
 

 이제 드디어 마지막 정리만이 남았습니다. 아주 조금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써내려 간 사무치게 아프고 불쌍한 이들과의 이별을 준비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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