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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사명
작가 : 성소은
작품등록일 : 2017.11.24

남들의 죽음을 볼 수 있는 한 여자의 지독한 운명과
그로 인한 삶의 비극을 다룬 판타지 소설.

 
23
작성일 : 17-12-25 01:57     조회 : 260     추천 : 0     분량 : 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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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주는 언제나처럼 현서에게 커피를 건넸다. 현서는 받자마자 종이컵을 테이블에 올려뒀다. 태주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서 현서를 쳐다봤다. 현서는 태주의 시선을 피했다.

 

 “직접 오시라 해서 죄송해요. 나갈 시간이 없네요.”

 

 현서는 대답 대신 고개만 저었다. 그 날 이후 다시는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태주에게 연락이 왔을 때 현서는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긴장이나 두려움 그런 것조차 없었다. 더 이상 남은 괴로움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태주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단 한 모금 뿐 이었는데도 하루 종일 커피만 마신 사람처럼 심장이 떨렸다. 커피 때문인지, 아니면 웬 종일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 자신들의 상황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다. 태주가 의사 가운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사진을 보던 현서가 무어냐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저한테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에요.”

 “…이 사진을 왜 저한테….”

 “이 아이는 사고로 엄마를 잃었어요.”

 

 현서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잠자코 듣고 있기로 했다. 태주는 다시 한 번 커피를 마셨다. 두 모금 정도 마신 것 같은데 벌써 커피는 바닥에만 얇게 깔려 있었다.

 

 “그 이후로 이 아이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충분히 알 수 있겠죠. 부모를 잃은 대부분의 자식들처럼…. 비참했죠.”

 

 현서는 태주가 환과 자신의 관계를 빗대어 설명하려고 저러나 싶었다. 하지만 잘 와 닿지 않는 듯 현서의 반응은 덤덤했다.

 

 “기억도 안 나겠죠. 형수님은. 그깟 죽음 따위. 그런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을 테니까.”

 

 제 3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감정 없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태주의 말에 왠지 힘이 들어갔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현서가 그제 서야 태주를 마주봤다. 힘이 들어가 있는 건 목소리뿐만 아니라 눈도 마찬가지였다.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태주는 지금 현서에게 화가 나있었다.

 

 “저한테 하는 말인가요?”

 

 이곳에 오고 나서 현서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태주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현서의 목소리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할 정도로 쉬어 있었다. 저 지경이 되기까지 얼마나 울고 얼마나 소리 질렀을까. 냉정하고 잔혹해지려고 했으나 별 수 없는 사람인지라 태주의 마음이 또 다시 착잡해졌다. 하지만 태주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긴. 환이도 기억을 못하는데 형수님이 하고 있을 리가 없죠.”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형수님.”

 

 현서를 부른 태주가 떨리고도 아주 무거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숨소리는 떨렸고 눈 주변은 이미 빨갛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신이 정녕 존재하는 것이라면 어찌도 이리 가혹 할 수 있나 싶었다. 대체 우리가, 아니 그 아이들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냐고. 태주가 눈을 감았다.

 

 “형수님이 그 날 환이 대신 죽었다고 생각하는….”

 

 초점 없던 현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리곤 순식간에 입술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 날’ 이라는 단어는 현서의 모든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데 충분했다. 현서라고 잊고 산 건 아니었다. 메마르지도 않았는지 현서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태주는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그 여자의…. 딸이에요. 사진 속에 이 아이.”

 

 현서의 목에는 핏대가 잔뜩 섰다. 당장이라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두근거리고 눈알이 빠질 것처럼 지끈거렸지만 현서는 애써 태연한 척 했다. 손에 어찌나 힘을 주고 있는지 손톱 때문에 소파가 뜯어져 나갈 것 같았다. 태주도 마찬가지로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분노를 주체 할 수 없을까봐, 이 여자의 잔인함에 혹시나 실수라도 하게 될까봐. 태주가 다른 곳을 보며 말했다.

 

 “사람이…. 죽었어요. 사람이….”

 

 이 세상 소리가 모두 꺼진 것처럼 진료실 안은 조용했다. 끝내 태주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 앞에서 어떻게…. 사람이 죽었잖아! 죽었다고! 그게 당신의 죄든 아니든! 이렇게…. 이렇게 어린 여자아이가 엄마를 잃었다고….”

 “그렇지 않았음….”

 

 현서가 사용이 불가능한 목으로 겨우 소리를 내었다. 이미 온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태주가 여전히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선 현서를 쳐다봤다. 현서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갰다. 온 몸에 힘을 주고 얼마나 가까스로 정신력을 붙잡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그렇지 않았으면…. 환이가 죽었어.”

 

 울고 있는 태주의 입에서 실소가 튀어나왔다. 안면근육은 완전히 고장 난 듯 흉측해보일 정도로 요동을 쳤다. 감정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제발 그 개 같은 소리 좀 집어 치우라고 제발!”

 

 태주가 현서에게 소리를 질렀다. 현서가 눈을 감았다. 태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섰다.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 엄마의 안타까운 죽음을…. 그렇게 더럽게 포장하지 마. 당신 아들 대신이 아니라….”

 

 말을 잇기가 힘든 듯 태주의 몸이 점점 바닥으로 꺼졌다. 현서의 얼굴도 난장판 인 건 매 한가지였다. 두 사람의 얼굴에 이 모든 상황이 다 담겨 있는 듯 했다. 그것은 하나도 정상적이지 않고 순리에 어긋나 있는, 완전히 망가져버린 끔찍함이었다.

 

 “자기 딸을 살리기 위해서…. 그래서 그 여자가 스스로 선택한 거야.”

 “아니.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신 거야. 나는…. 엄마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고…. 우리 아들은…. 내가 살린 거야.”

 

 현서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태주는 너무나 절망스러웠다. 누군가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그 어린아이가 날마다 저런 소리를 하는 엄마로 인해 정말 그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답도 없는 괴로운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비통했다. 영의 입장에서 생각해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뿐인 딸을 살리고자 했던 한 여자의 선택이, 그 고귀하고 쓸쓸하고 뼈저리게 아픈 그 죽음이 ‘누구 대신’ 정도의 죽음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원망스러울까. 태주가 거의 기어서 현서의 앞으로 갔다. 그리고 망설임도 없이 현서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태주는 그녀에게 간절히 호소했다.

 

 “제발 그 아이들 그만 아프게 하고….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사과라도…. 다른 거 안 바랄 테니까 제발 그 아이들 그만 아프게 해줘요. 형수님.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요. 그러니까….”

 

 아이들을 지키고 싶었다. 이미 남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처를 지니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더 이상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너무나 불공평한 일이었다. 태주가 현서의 다리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하지만 현서는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가 없었다. 온 몸이 마치 마비라도 된 것처럼 무감각하고 자신의 몸이 아닌 것같이 느껴졌다. 죽어야 할까, 죽으라는 소리일까. 죽으면 진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걸까. 그 죽음 한 번으로 이 엄청난 죄가 다 용서가 될까. 현서의 머릿속이 온통 ‘죽음’으로 가득해졌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계속 울기만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 둘은 어느 정도 진정 된 듯 처음과 같은 자세로 마주보며 앉아 있었다. 그러나 태주의 눈은 이미 부을 대로 부어있었다. 도저히 오후 진료를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둘은 말이 없었다. 어떤 말을 꺼내야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애초에 그런 말 따위는 없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이 상황을 정리할 수는 없다. 그걸 알고 있기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그러다 태주가 테이블 위에 있던 사진을 집었다. 그리고는 아주 힘겹게 말을 꺼냈다.

 

 “저도…. 형수님도…. 결국 어떤 식으로든 벌은 받을 거예요.”

 

 태주가 사진 속 영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쓸쓸하게 웃었다.

 

 “형수님한테 사과하라고 애원하는 저도 결국 먼저 영이한테 아무 말 하지 못하는 걸요.”

 

 현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태주는 현서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독백하듯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어쩌면 기회를 이미 날려버린 지도 모르겠네요. 용서 받을 마지막 기회…. 두 아이가 같이 있는 것이 사실은 신이 주는 마지막 기회….”

 “같이…. 있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듣기만 하던 현서가 태주의 말을 끊으며 물어왔다. 태주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사진을 가운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리고 힘없이 대답했다.

 

 “진짜 웃기죠.”

 “설마….”

 

 현서의 눈동자에는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지금 그 두 아이…. 구영이랑 이환…. 같이 지내고 있더라고요.”

 

 태주가 정신 나간사람처럼 웃었다. 웃는데 눈에서는 또 다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눈앞에 있는 원수도 못 알아보고. 멍청한 것들…. 지들이 왜 그러고 사는 줄도 모르면서….”

 

 그 아이에 대해서 오래 고민할 것도 없었다. ‘아주머니.’ 하던 영의 목소리가 악몽 속처럼 현서의 귀에 울렸다. 대답을 들은 현서는 충격을 받지도, 울지도 않았다. 그저 진료실 창문 밖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죽어야겠다. 그저 그 말을 수십, 수 만 번씩 되새길 뿐이었다.

 
작가의 말
 

 봐주는 사람도 많지 않고, 추천도 없는.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이었지만 끝이 보이네요.

 꼭 결말 낼 수 있도록 스스로 채찍질하며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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