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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사명
작가 : 성소은
작품등록일 : 2017.11.24

남들의 죽음을 볼 수 있는 한 여자의 지독한 운명과
그로 인한 삶의 비극을 다룬 판타지 소설.

 
22
작성일 : 17-12-22 04:04     조회 : 262     추천 : 0     분량 : 6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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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서울

 

  커튼을 치고 있었지만 살짝 열린 틈으로는 빛이 들어와 환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어쩐지 한 쪽 볼이 빨갛게 부은 환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멍하니 햇빛을 보았다. 빛은 허공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만지려고 했지만 잘 만져지지 않았다. 한바탕 난리가 난 집은 그야말로 아수라장 이었다. 곧 자물쇠를 여는 소리가 들렸다. 환이 벌떡 일어나 섰다. 문이 열리고 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 너무 야위어버린 현서의 얼굴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났다. 하얗고 고왔던 피부 역시 사라져버렸다. 환이 침을 꿀꺽 삼키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화, 환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 저, 정신이 나갔었나봐.”

 

 한 시간 전 현서는 환에게 손찌검을 했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환의 말에 저도 모르게 손이 튀어나간 것이다. 현서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사실 떨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하루 종일 극심한 불안증에 시달리는 현서는 늘 약과 수면제를 달고 살았다. 금세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른 환이 그런 현서를 두려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환에게 엄마의 존재가 행복보다 고통에 더 가깝다고 느끼게 된 건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었다.

 

 “나가면 안 돼…. 절대 안 돼. 꼭 엄마 옆에만 있어. 우리 아들은 내가 꼭…. 꼭 살릴 거니까.”

 

 현서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계속해서 중얼 거렸다. 자신이 끔찍하게도 사랑했던 아들 환을 가두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현서는 여태껏 남편 태환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큰 아픔과 트라 우마를 가지고 살았다. 그 후로 자신이 보이는 죽음들을 막으려고 해보기도 했지만 매번 실패하기만 했고 현서는 더 큰 좌절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 누구도 현서의 말을 믿어주려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 포기하려고 할 때쯤 현서는 환의 죽음을 봤다.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했다. 그것이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만한 일일지어도 상관없었다. 우선은 살리고 봐야했다. 모두를 잃을 수 없었다. 그래서 현서는 아들 환을 방에다 가두고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지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엄마 또 들어올게.”

 

 현서가 방 밖으로 나가 다시 자물쇠를 잠갔다. 두려움에 몸을 떨던 환은 현서가 나가고 나서야 스르륵 주저앉았다. 학교를 가지 못한지도 벌써 한 달이나 지난 거 같다. 방 안에 달력이 없었기 때문에 날짜 개념까지 사라지고 있었다. 환은 엄마 현서가 아픈 사람이라는 걸 알았고 모든 행동들이 아프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라는 질문에는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순수한 물음이었던 그 질문은 끝내 걱정과 공포로 바뀌었고 어쩌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렸을 때 환은 엄마에게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등, 하교 시간에 맞춰 집에만 있겠다고. 하지만 현서는 불같이 화를 내며 환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는 다급히 환을 방에다가 다시 가두고 온갖 가구들을 이리저리 집어던졌다. 그 상황에서 환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귀를 막는 것과 이 방에서 나가는 것을 포기해버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열 살짜리 아이가 느끼기에는 너무나 큰 절망감이자 상실감이었다. 환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튼을 걷었다. 밖은 너무나 화창했고 환했다. 순식간에 방 안이 밝아졌다. 환이 창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환의 집은 아주 작은 주택이었고 안방 창문은 길가로 바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현서는 창문까지 잠가놓지는 않았다. 환의 눈빛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단호한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환이 팔에 힘을 풀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서가 두려웠지만 여전히 그녀는 환에게 사랑하는 엄마였다. 엄마를 두고 갈 수 없었고 간다 한 들 평생 동안 현서를 보지 않고 살 자신이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한 모녀가 서로 손을 잡은 채 환의 눈앞을 지나갔다. 환의 눈이 커졌다. 너무나 슬프고 무겁고 아픈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나는 저렇게 살수는 없는 걸까. 환이 창문을 열었다.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환의 얼굴을 강타했다. 창은 환이 통과하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1층이었지만 지면과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환은 창 밑으로 뛰었다. 그리고는 서둘러 벌써 멀어진 두 모녀를 하염없이 따라갔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로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그냥 따라갔다.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리움이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 한 때에 대한 기억이 환을 그리로 이끌었다. 저렇게 되고 싶어. 마치 눈앞에 있는 이상향을 쫓는 사람 같았다.

 

 “환아! 안 돼, 환아!”

 

 환이 창문을 열었음을 금방 알아차린 현서가 다급히 환의 뒤를 따라왔다. 환은 점차 뛰기 시작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집을 뛰쳐나왔으면서도 정작 환은 엄마로부터 도망가고 있었다. 계속해서 빠르게 달렸다. 현서는 울면서 그런 환의 뒤를 쫒았다. 그러다 환이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현서는 그런 환을 껴안았다.

 

 “됐어, 이제 됐어. 환아 아무데도 가면 안 돼. 엄마 옆에만 꼭 붙어 있어야 돼. 우리 아들 절대 죽으면 안 돼. 엄마가 꼭 지킬 거야, 꼭.”

 

 현서는 미친 사람처럼 계속 중얼거렸다. 환이 꼼짝 없이 현서에게 안겨 있었다. 그때 현서와 환 둘의 주변을 구급차가 빠르게 둘러쌌다. 마치 주문이라도 외우고 있는 것처럼 혼이 나가 끊임없이 중얼거리던 현서의 눈에 그제야 주변 상황이 보였다. 이곳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시선과 구급대원들이 향하는 방향이 똑같았다. 그 곳에는 한 여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현서의 숨이 멎는 듯 했다. 정확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가 본 환의 죽음과 지금 길가에 누워있는 저 여자의 죽음이 일치했다. 환을 안고 있던 현서의 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엄마가…. 결국은 널 살린 거야 환아…. 저기 저 여자가…. 엄마 기도를 대신 들어줬어.”

 

 현서가 아무 감정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환이 고개를 돌려 현서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이제…. 엄마 옆에만 있어야 돼. 평생 엄마랑 같이 있어야 돼. 알았지….”

 

 말하고서 현서가 환과 시선을 마주했다. 환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곧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렸다. 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완전한 두려움이자 공포 그리고 체념이었다. 환은 더 이상 눈앞에 있는 여자를 엄마라고 생각 할 수 없었다. ‘완벽하게 나의 인생을 망치려고 하는 사람.’ 힘이 없는 지금은 이 사람에게 복종해야 한다. 힘이 생기면 도망치겠다. 환이 구급대원에게 업혀 나가는 여자 아이를 보며 울고 또 울었다.

 

  영이 노크를 하고 진료실 문을 열었다. 모니터 화면에 집중하고 있던 태주가 어색하게 웃으며 영을 반겼다. 영은 익숙하게 안으로 걸어 들어와 진료 책상 앞에 앉았다.

 

 “잠을 너무 못자는 거 같아서 수면제 때문에 들리라고 했어.”

 

 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가 진료 차트에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수면제는 모두 핑계였다. 사실 그런 것 쯤 이야 그냥 진단서만 끊어주면 그만인 일이지 굳이 이곳까지 영을 부를 것 까지는 없었다. 진료 차트에는 ‘그 사고와 수경, 현서’ 등에 대한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영은 태주가 일을 하는 중이라 생각해 딱히 반응을 하지 않았다. 반면 태주는 혼자서 한참을 망설이다 어렵사리 물었다.

 

 “요즘은…. 이상한 거 안 봐?”

 

 태주의 질문이 이상하다는 걸 영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치료에 대한 진행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여태껏 늘 해오던 질문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영이 태주의 눈치를 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 버스 이후로는 한 번도 없었어요.”

 “아…. 그래?”

 

 태주는 영에게 ‘잘됐다’, ‘다행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혼자 멍하게 생각에 빠져있던 태주가 뒤늦게야 본인의 어색함을 스스로 깨닫고 말을 얼버무렸다.

 

 “다, 다행이다. 약을 이제 조금…. 줄여도 될 거 같네.”

 

 태주의 숨겨지지 않는 어색함에 결국 영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선생님. 저 괜찮아요.”

 

 애써 연기하느라 누가 보아도 이상할 정도로 웃긴 동작으로 타이핑하던 태주가 손을 멈추고 영을 쳐다봤다.

 

 “진짜인가보다…. 저게 전부다 사실이구나. 그렇게 받아들이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겠죠, 그게 당연하고. 선생님이 저 불편해 하신다는 거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집에서도 나오려고 한 건데….”

 “영아 절대로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똑같이 대해주세요. 죽음을 보는 아이가 아니라…. 그냥, 그냥…. 머리가 어떻게 돼서 헛것을 보고 혼자 이상한 망상에 빠져있는 아픈 아이일 뿐이라고. 예전처럼 똑같이…. 그게 더…. 편할 거 같아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게 영을 보고만 있던 태주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선생님이 미안하다.”

 

 영도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만 꼼지락 거렸다. 미안했다, 영에게. 죽을 만큼 너무나 미안해서 사실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현서가 말하는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환을 대신해서 죽었다고 하는 그 사람은 어쩌면. 아니, 사실 태주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쓸데 없는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생각을 멈추고 태주가 기침을 했다. 영이 고개를 들었다.

 

 “약은 집에서 바로 줄 테니까 따로 짓지 않아도 될 거야.”

 

 태주의 말에 영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허리 숙여 인사하고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영은 나와서도 한참이나 문 앞에 서있었다. 태주가 먼 사람처럼 느껴지거나 불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요 근래 들어 태주를 대하기가 너무나 어려워졌다. 차라리 환의 집에 있을 때는 죽는다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영은 아주 잠깐 환의 집에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영은 당분간, 아니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환의 집에 갈 생각이 없었다. 살아도 사는 의미가 없는 삶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살아야 했다. 태주의 조카인 환의 손에 죽을 수는 없다.

 

 “아, 좀 비킵시다. 거.”

 

 문을 막고 서있는 영에게 누군가 신경질을 냈다. 생각에 잠겨있던 영이 그제야 다급히 놀라며 발걸음을 뗐다. 점심시간이 지난 병원의 로비는 한산했다. 그 사람들 중에 유독 한 여자가 영의 눈에 띄었다. 우뚝 멈춰 서서 미간을 찌푸리던 영이 이내 환하게 웃으며 그 쪽으로 걸어갔다.

 

 “아주 머니.”

 

 휴대폰 화면만 보고 있던 현서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이내 영의 얼굴을 확인하고서는 현서도 웃어보였다.

 

 “어…. 그때 그 친구….”

 

 영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연스레 현서의 옆에 앉았다. 현서는 휴대폰을 급히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딱 한 번, 그것도 그런 꼴을 보인 사이였지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누구를 좀…. 아. 그냥 진료 보러 왔어요.”

 

 현서가 대충 둘러대고는 눈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영의 계산이 조금 늦었다. 기억력이 좋은 영은 태주의 형이라고 했던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형의 아들이 환이라면 그의 아내는 현서이고 결국 태주와 현서도 가족이라는 소리였다. 영이 손을 꼼지락 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태주 선생님 만나러 오신 거예요?”

 

 영의 입에서 ‘태주’라는 이름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현서가 동그란 눈을 하고서 영을 쳐다봤다. 영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제 주치의 선생님이세요.”

 

 현서가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갑자기 고갯짓을 멈추고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별안간 현서가 영의 손을 잡았다.

 

 “어디 아픈 거예요?”

 

 갑자기 손을 잡아버리는 현서 때문에 놀란 영이 그녀의 질문에 다급히 손 사례를 쳤다.

 

 “아, 그런 거 아니 예요. 그냥…. 상담 받는 거예요, 단순히.”

 

 현서는 여전히 안타까운 눈을 하고서 영을 바라봤다. 계속된 현서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영이 별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어릴 때 엄마가 병원에 데려오신 적이 있거든요. 그 때 이후로 그냥 계속 상담 받고 치료하는 중이에요. 아 절대로…. 심각한 건 아니고요.”

 “지금은 괜찮아 졌어요?”

 

 영이 대답을 망설였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고 자신을 짓누르는 죄책감에 아직도 고통 받고 있으며 그 때문에 당신 아들의 손에 죽으려고 했었는데 하필이면 또 그가 태주의 조카라서 차마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현재까지의 결과 보고를 완벽하게 하면 되는 건가. 영이 고개를 저었다.

 

 “네. 완전히 괜찮아 졌어요.”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라니까 정말 다행이네요.”

 

 현서가 영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어줬다. 영도 나지막하게 웃었다. 그리고서 두 사람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을 혼자서 고민하던 영이 용기 내어 말을 꺼냈다.

 

 “저기 그 환이 오빠는….”

 “약속한 시간이 다 돼서…. 아무래도 이제 가봐야 할 거 같은데 어떡하죠?”

 “아….”

 

 직감적으로 현서가 일부러 환에 대한 대화를 피하고 있다는 걸 느낀 영이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현서도 일어나서는 영에게 인사했다. 다급히 영도 따라서 허리 숙여 인사하자 현서가 마지막으로 미소를 보이고는 승강기 쪽으로 멀어졌다. 현서가 승강기에 오를 때까지 한참을 보고 있던 영은 시야에서 현서가 사라지고서야 몸을 틀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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