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문이 열렸지만 태주는 내릴 생각이 없었다. 그저 가만히 허공만 보고 있었다. 결국 오늘 잡혀있던 진료를 모두 취소하고 일찍 퇴근했다. 무엇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승강기 문이 저절로 닫혔다. 태주는 그러고도 한참을 더 서있었다. 낮에 현서와 있었던 일만 생각하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역하고 더러운 기분이었다. 태주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승강기에서 내렸다. 곧 현관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영을 발견했다. 평소와 똑같이 행동하고 싶었는데 막상 영의 얼굴을 보니 이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졌다. ‘죽음을 보는 눈’에 대한 잡념이 태주를 괴롭게 했다. 태주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영에게 다가갔다.
“왜 밖에 있는 거야.”
태주가 온 걸 모르고 있던 영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영은 확실히 태주인 것을 확인하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잠깐 나갔다 왔는데 비밀 번호를 몰라서….”
“전화를 했어야지.”
“…꺼져 있어 서요….”
“아.”
하루 종일 전화기를 꺼놓고 있던 게 이제야 생각이 났다. 태주가 가방을 뒤져 마스터키를 영에게 건넸다. 영은 왠지 태주의 눈치가 보였다. 태주는 확실히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예상 한 것보다 훨씬 일찍 귀가했다.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영의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태주는 가방을 소파에 던져놓고 그대로 몸을 눕혔다. 저녁 인사 할 타이밍을 놓친 영이 어찌 해야 할지를 몰라 방황하며 태주 근처를 서성이고 있는데 태주가 눈을 감은채로 말했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영이 우뚝 멈춰선 채로 태주를 바라봤다. 어떤 의미로서의 ‘가고 싶은 곳’인지를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답이 없자 태주가 눈을 떴다.
“살 만한 동네 말이야.”
사실 영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하지만 태주는 영을 보기가 힘들었다. 정확한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설명을 하지 못할 만큼 애매한 감정이었다. 형의 죽음을 방관했다고 하는 현서가 그동안 그들이 죽음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며 괴로워했던 영과 어쩐지 겹쳐 보였기 때문일까. 태주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나도 같이 알아보긴 하겠지만 네 의견이 우선이니까 너도….”
“저 그냥 며칠 지낼 곳만 있으면 돼요.”
“며칠 뒤에는?”
영이 입을 꾹 다물었다. 태주의 반응이 어쩐지 빨리 나가줬으면 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태주의 말은 영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했다. 영이 아무 말 않자 태주가 말없이 가방을 챙겨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영이 한참 거실에 혼자 서있었다. 그 따뜻하던 태주마저도 자신과 있길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자 서럽고 무서웠다. 모두에게 미움 받는 존재. 영은 그런 자신이 불쌍하면서도 미웠다. 영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주변과의 정리가 깔끔하게 되어가고 있었다. 영이 방으로 들어갔다. 영은 다시 환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로 가 있을 거냐고 묻는 태주에게 대답하기가 곤란할 것 같아 며칠만이라도 이곳에 있을 예정이었지만 더 이상 있기엔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사용하기 위해 잠깐 풀어뒀던 짐을 다시 박스에 옮겨 담고 있는데 태주가 노크를 하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짐을 싸고 있는 영을 보며 태주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짐은 갑자기 왜 싸는 거야.”
영은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곤란해 하던 태주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내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오늘 선생님 기분이 많이 안 좋아서…. 미안하다.”
“친구 집 가 있을게요.”
뜬금없는 소리였다. 말한 영도 곧바로 후회했다. 본인에게 친구가 없는 것쯤이야 태주가 모를 리가 없었다. 영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태주가 생각에 잠겼다. 묻고 싶은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태주가 나지막하게 영을 불렀다.
“영아.”
“그게 아니라. 저 중학교 때 조금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는데….”
“정말 죽음을 보니?”
태주는 영을 쳐다보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빈 허공을 보고 있었다. 마치 다른 세상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 같았다. 영의 말문이 막혔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기도 하고 태주는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영에게 ‘죽음’이라는 단어를 말한 적은 없었다. 대략 ‘보이는 것들’ 정도로 표현할 뿐이었다. 영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태주가 함께 살게 된 자신을 불편해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보는 아이. 제 아무리 긴 세월을 보고 지낸 사람이었어도 같은 주거 공간 안에 있게 되면 그 사람의 느낌이나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지고 몰랐던 부분에 대해 적나라하게 알게 된다. 오랜 친구사이인 사람들이 함께 살게 된 후로 다시는 보지 않을 원수로 갈라서는 것도 그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영은 태주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린 태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 미안. 신경 쓰지 마.”
그리곤 한결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
“어쨌든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 집은 계속 알아볼게.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게 하진 않을 거니까 걱정 말고.”
“저…. 그냥 친구 집으로 갈게요. 그게 편할 거 같아요.”
아예 호소하는 영의 말을 듣고 태주가 잠시 고민하다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럼 거기가 어딘지 누군지 알려주고 가.”
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이 남자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친구는 현재 나가있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집 비밀번호도 알고 있고 집에 잘 들어가는 모습만 보여주면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태주가 잘 자라고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사는 2주 뒤, 영이 죽는 것은 대략 일주일 쯤 남아있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영이 짐을 다 싸고는 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는 환의 목소리는 한껏 업 되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은 다시 들어갈 때 줄 걸. 괜히 민망해진 영이 헛기침을 했다.
“저 죄송한데….”
“무슨 일이야?”
“저기 혹시…. 진짜 딱 일주일만 거기서 지내도 될까요?”
“그 의사가 너 나가래?”
환의 언성이 제법 높아졌다. 저도 모르게 영의 입에서 웃음이 세어 나왔다. 영은 들키지 않게 재빨리 웃음을 지우고 대답했다.
“아니요. 제가 가 있겠다고 했어요.”
“내가 누군 줄 알고?”
“친구 집 간다고 했어요.”
영의 말에 환이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전화가 끊긴 건가 싶어 귀에서 전화기를 떼 화면을 확인해 볼 정로도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환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영이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몇 번 환을 불러 웃음을 멈춰보려고 했지만 환은 계속해서 웃어댔다. 자포자기하고 환의 웃음이 멈출 때까지 기다리고서야 영은 그가 웃은 이유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친구라고 하기 에는 서로 너무 아무것도 모르지 않아? 되게 재밌다, 너.”
아직도 목소리에는 웃음이 묻어있었다. 영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 쪽은 모르겠지만 저는 그 쪽에 대해서 웬만큼 다 알고 있는 거 같은데요.”
영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환이 웃음이 뚝 멈췄다.
“하긴.”
괜히 민망해진 환이 급히 말을 돌렸다.
“아무튼 너만 편하면 알아서 해. 내일 올 거야?”
“네. 일찍 갈 거 같아요.”
“마음대로 해. 저기…. 그리고 너 있잖아.”
환이 말을 멈췄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나 영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 쪽이라 하지 말고 오빠라고 해. 차라리 반말을 하던가. 끊는다.”
환은 영이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영이 멍하게 끊긴 전화기를 계속 귀에 대고 있었다.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것 같이 속이 울렁거렸다. 위화감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사이가 조금 편해지고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들수록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생겨났다. 이러다 죽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우선이었다. 영이 침대에 누웠다. 이러다 그 남자의 손에 죽고 싶지 않게 되면 어떡하지. 영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영이 안전벨트를 매자 태주가 차를 출발시켰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도 않은 이른 새벽 시간이었지만 태주가 출근 전에 영을 데려다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단지 밖으로 나온 태주가 영에게 물었다.
“주소가 어떻게 돼?”
“주소는 모르고 위치만 알고 있어요.”
“어디쯤인지는 알아?”
“네. 근처에 있는 대학교를 알아요.”
태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큰 길로 들어섰다. 도로는 벌써부터 조금씩 정체되기 시작했다. 태주의 눈 밑이 퀭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피곤함이 그대로 밀려왔다. 영은 그런 태주를 힐끔거렸다. 영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마지막 인사. 어쩌면 다시는 못 볼 수도 있었다. 아니, 그럴 것이 분명했다. 태주야 그런 미래를 전혀 모르고 있겠지만 영은 알고 있는데 이렇게 말없이 떠나버려도 괜찮은 걸까. 태주는 영에게 부모님만큼이나 크고 감사한 사람이었다. 영이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라디오를 켜던 태주가 그 손가락을 보고는 먼저 물었다.
“하고 싶은 말 있어?”
영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곤 민망했던지 두 손을 등 뒤로 감췄다. 태주는 더 묻지 않고 운전에 집중했다. 영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아직 도착하려면 꽤 남았는데 벌써 작별 인사야?”
태주의 입가에 그래도 아주 조금 미소가 번졌다. 분명 어제보다는 기분이 한결 괜찮았다. 차가 신호에 서고 태주가 아예 고개를 돌렸다.
“게다가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말하네.”
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태주는 가볍게 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제는…. 미안해. 괜한 거 물어봐서. 머리가 복잡해서 아무 말이나 막 나온 거 같아.”
“아니요. 저는…. 선생님 이해해요.”
“이해?”
태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다행히 태주가 한 번 더 되묻기 전에 신호가 바뀌었다. 계속해서 이동하던 차는 어느새 대학가 근처로 들어섰다. 태주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 근처에 조카가 사는데 신기하네.”
길을 찾느라 집중한 나머지 영은 태주의 말을 듣지 못했다. 차로 오긴 처음이라 길이 낯설었다. 영은 아예 창문을 내려 고개까지 빼고 골목 주변을 살폈다. 곧 익숙한 빌라가 눈에 띄었다. 영이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켰다.
“저기예요!”
빌라를 확인한 태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우연이겠지 하면서도 괜히 드는 불안함이 등골을 싸하게 했다. 신나게 빌라를 가리킨 영도 아무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그제야 태주를 바라봤다. 태주는 애써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며 물었다.
“친구가 여기 몇 층에 사는데?”
태주의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영이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이 태주가 질문을 바꿨다.
“친구 이름이 뭐야? 알려주기로 했잖아.”
혹시나 남자인 것이 들킬까봐 이름만큼은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태주의 질문이 너무 단호했다. 영이 별 수 없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환이요. 성은 잘 기억이….”
“영이 네가 환이를 어떻게 알아?”
‘환’이라는 이름에 끝까지 듣지도 않고 태주가 쏘아 물었다. 그 순간 영의 머릿속에 삼촌에게 걸려오던 전화와 삼촌 도움 받아 집에서 나온 거라고 말하던 환의 말이 번쩍 떠올랐다. 영이 세웠던 모든 계획이 무너져버렸다. 환의 삼촌이 태주일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영의 손이 떨려왔다. 끝까지 저를 괴롭히시는군요. 영이 신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