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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사명
작가 : 성소은
작품등록일 : 2017.11.24

남들의 죽음을 볼 수 있는 한 여자의 지독한 운명과
그로 인한 삶의 비극을 다룬 판타지 소설.

 
09
작성일 : 17-12-03 08:49     조회 : 275     추천 : 0     분량 : 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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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에서 인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영이 집 현관문을 쳐다봤다. 지겨운 이 집도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인아는 영에게 서류 봉투를 집어 던졌다. 얼마나 울었는지 인아의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영이 자신의 발 앞에 떨어진 봉투를 내려다봤다.

 

 “내 인생 말아먹으려고 환장했어? 환장했냐고!”

 

 영이 말없이 봉투를 주웠다. 인아가 왜 저렇게 흥분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구구절절 설명 할 기운이 없었다. 영이 신발을 벗고 그대로 인아를 지나쳤다. 인아가 그런 영의 머리채를 부여잡았다.

 

 “그거 제출 안하면 나 대학 못 간다고 했지! 근데 그게 왜 네 방 서랍에 들어있어!”

 

 인아가 온 힘을 다해 악을 질렀다. 계속 머리채가 잡힌 채로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지만 영은 그 어떤 반항도 하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있는 고모의 모습이 보였다. 화를 애써 참으려는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자신의 딸이 영의 머리채를 다 뜯어놓고 있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보였다.

 

 “이거 놔.”

 

 영은 차분했다. 이미 체력이 바닥 나 버린 영은 인아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영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인아의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인아는 아랑곳 않고 다시 영의 머리채를 잡아왔다. 무력을 행사하는 것이 자신의 분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온 힘을 다해 영을 고통스럽게 했다. 그러고도 한참이나 영을 더 휘둘러대던 인아는 뒤늦게야 힘이 빠진 건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곤 잔뜩 뿔이 난 어린 아이처럼 발을 동동 굴리며 소리를 지르고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결국 고모가 소파에서 일어나 영의 앞에 섰다. 고모 역시 인아만큼 영에게 화가 나 있었다.

 

 “은혜를 갚아도 모자란 것이 아예 집안을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이미 적잖이 속앓이를 한 모양인지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이미 이 두 사람에게 영은 대역 죄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영이 덤덤하게 머리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서류….”

 

 영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이었다. 발을 동동 굴리고 있던 인아도 엄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건지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기만 했다. 한 쪽으로 돌아가 있는 영의 고개, 뺨에는 빨간 손자국이 나 있었다. 시종일관 차분하던 영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심장이 지끈거리고 손이 너무 떨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로는 이미 고모를 밀치고 똑같이 인아의 머리카락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데 현실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영의 몸 전체가 옆으로 돌아가 있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 쳤지만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고모는 여전히 씩씩 거렸다. 지금 순간 누구를 동정해야 할까.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가혹한 처벌을 받는 영일까 아니면 자신의 딸이 영으로 인해 대학에 못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오해를 하고 있는 고모일까. 고모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눈을 감고 생각 정리를 했다. 더 이상의 소란은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그저 체력 낭비일 뿐이라는 나름의 판단을 내렸다.

 

 “인아 그만 하고 방에 들어가. 아침 일찍 학교 갈 거니까.”

 

 고모가 방에 들어가려는 듯 몸을 틀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려 영에게 말했다.

 

 “넌 되도록 빨리 나가주고. 더 이상은 부모 죽인 년 무서워 못 키워 먹겠으니까.”

 

 한 쪽으로 돌아가 있던 영이 고개를 치켜들고 고모를 노려봤다. 나가라는 고모의 말을 듣고 더 이상 생각 할 건 없었다. 영이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마구 잡이로 찢었다. 그리고는 안에 들어있던 대학 책자를 그대로 인아의 얼굴 위로 던져 버렸다. 내내 이성적이던 영의 얼굴이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너…. 지금 이게 무슨….”

 

 인아가 말을 더듬었다. 고모도 처음 보는 영의 행동에 당황스러운지 말을 잇지 못했다. 영이 인아 쪽으로 성큼 성큼 걸어가 옆에 떨어진 책자를 주워 들고 한 번 더 인아의 몸 위로 던졌다. 영의 머리채를 잡고 늘어지던 인아도, 뺨을 때렸던 고모도 말이 없었다. 그저 분에 가득 차 줍고, 던지고를 반복하고 있는 영을 기가 막힌 듯 가만히 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책자를 바닥에 집어던진 영이 여전히 주저앉아 있는 인아를 내려다봤다. 인아를 보고 있는 눈에 어쩐지 살기까지 느껴졌다. 인아가 침을 삼켰다. 적어도 자신한테는 잘 따지고 지지 않으려 했던 영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살벌한 모습도 처음이었다.

 

 “네 눈에는 이게 그 서류로 보여?”

 

 인아가 그제야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있는 책자를 쳐다봤다. 인아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이 세어 나왔다. 영이 없을 때 이유 없이 방을 뒤지던 인아는 영의 책상 마지막 서랍에서 대학 봉투를 발견했다.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 해보거나 혹은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 따위는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그동안 영을 괴롭혀 왔던 것에 대한 피해의식 일수도 있었다. 그 정도 복수심이라면 충분히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인아가 천천히 다시 영을 올려다봤다. 영의 눈물이 한 두 방울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번만…. 한 번만 열어서 확인해봤으면….”

 

 울면 지는 거라는 생각에 절대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더 흐를 눈물이 남아 있는 건지 야속하게도 영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렀다.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오해를 받는 게 서러워서가 아니었다. ‘부모 죽인 년.’ 고모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지만 않았어도 영은 그들이 오해하는 대로 모른 척 그냥 방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 전에도 고모에게서 수없이 듣던 말이었지만 적어도 오늘 만큼은 잔인하게 박히는 저 말을 못 들은 척 할 수가 없었다. 고모가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는 방금 전 사고에 대한 속보가 흘러 나왔다. 끝내 영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고모는 그런 영을 혼자 내버려두고 당황스러워 하는 인아를 일으켜 자신의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영은 이 모든 불행이 다 자신이 지은 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고 텔레비전 화면이 하얗게 바뀌었다. 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있던 탓에 무릎이 저렸다. 영이 절뚝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인아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영이 어지럽혀진 책상에서 수경의 사진과 달력을 집어 침대 위에 두었다. 옷장에서 꺼낸 옷 두어 벌도 그 위로 올려뒀다. 하나, 둘 물건들을 정리할 때마다 영의 기분이 차분해졌다. 왜 그동안 한 번도 나갈 생각을 안했었을까 한 평생을 이렇게 살았던 자신의 멍청함이 한스러울 지경이었다. 많지 않은 영의 짐이 침대 위에 쌓였다. 이 집에서 십 년이 넘도록 살았음에도 영의 짐은 한 박스를 다 채우지 못했다. 영이 짐을 담은 박스를 한 쪽 구석에 두고 침대에 누웠다. 방 안이 조용해지자 귀에 도로에서 들었던 경적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귀를 막았다.

 

  환이 중년의 남자와 함께 낡은 건물에서 걸어 나왔다. 집이 마음에 안 드는지 환의 표정이 어두웠다. 집을 빼주어야 하는 날이 많이 남지 않았기에 빨리 새로운 집을 구해야 했는데 그세 시세가 오른 건지 괜찮을 집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 가격에 갈 수 있는 집은 다 보여준 거예요.”

 

 아침부터 계속 걸어 이 일대를 돌아다닌 탓에 부동산 직원도 힘들어보였다. 잠시 고민하던 환이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거 참 젊은이가 까다롭기도 하지. 쯧. 돈이나 많이 가지고 오던가.”

 

 환의 대답에 이골이 난 부동산 직원이 환에게 다 들리도록 구시렁거리며 언덕 아래로 빠르게 내려가 버렸다. 급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 집에 강제로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태주가 구해줬던 첫 번째 집의 계약이 끝나고 급히 다른 집을 구해 들어갔을 때 얼마나 고생했었는지 전부 다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일러를 틀어놓아도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은 기본이며 여름철에는 걷기만 해도 바닥에서 물이 세어 나왔다. 밤마다 들리는 바퀴벌레 기어 다니는 소리는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였다. 환이 불현 듯 떠오른 당시의 기억에 고개를 내저었다. 환이 다시 한 번 건물을 올려다봤다. 사실 부동산 직원 말이 맞았다.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도 안 되는 돈으로 하자 없고 전망 좋은 괜찮은 집 보여 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이치에 어긋난 일이었다. 다섯 번이나 이사를 다녀 본 환이었기에 그걸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섣불리 선택할 수가 없었다. 자주 밀리는 월세 때문에 쫓겨나지만 않았어도 이런 고생은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환의 눈앞에 현재 집주인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냥 빌어볼까.”

 

 하지만 그것도 방만 빠지면 들어올 사람이 줄을 섰다고 주장하는 집주인에게는 부질없는 짓이었다. 환이 속으로 딱 백 만 원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보증금이 그 만큼만 더 올라가도 갈 수 있는 집은 훨씬 많아졌다. 불현 듯 태주가 떠올랐다. 밀린 월세 육 십 만원에 부족한 생활비까지 보태 받아 빌린 돈이 백 만 원이었다. 더 이상 태주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태주에게 싸늘하게 말하고 돌아선 지도 벌써 며칠이나 지났다. 먼저 연락을 해봐야하나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지만 환은 차마 먼저 연락 할 수가 없었다. 그깟 엄마 선물이 뭐라고. 안 받으면 그만 인 걸 그렇게 까지 말해야 했을까.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괜한 생각에 빠져있는 환의 전화벨이 울렸다. 깜짝 놀란 환이 발신자를 확인하고선 다급히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여기 부동산인데요, 좋은 집이 나서 연락 드렸어요.”

 

 바로 옆에 있는 부동산이었다. 환의 눈에 생기가 차올랐다.

 

 “아 정말요?”

 “역세권에 시설도 정말 좋고 주변에 편의점, 마트까지 다 있는데다가 월세도 저렴해서 바로 연락드린 거예요.”

 “혹시 지금 바로 보러 갈 수 있나요?”

 “네. 아 저기 근데…. 말씀 하신 것보다 보증금이 조금 더 높아요.”

 

 보증금이 높다는 말에 환의 얼굴이 바로 일그러졌다. 이기적이었지만 또 다시 태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짧은 한숨을 내쉰 환이 대답했다.

 

 “일단 지금 보러 갈게요.”

 

 환이 전화를 끊고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완전히 독립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환은 주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엄밀히 하면 이것은 독립이라 할 수도 없었다. 도망, 오히려 그 단어가 자신의 상황을 더 잘 대변해줬다. 더불어 생각나는 사람이 태주뿐이라는 것 또한 환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일을 구해도 잠깐이었다. 당장 먹고 사는 것 때문에 돈을 모을 수도 없었고 모을 수 있을 만큼 많이 받지도 못했다. 이 나라에서 중졸이라는 학력은 단순한 최종학력을 넘어서서 그런 의미였다. 환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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