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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사명
작가 : 성소은
작품등록일 : 2017.11.24

남들의 죽음을 볼 수 있는 한 여자의 지독한 운명과
그로 인한 삶의 비극을 다룬 판타지 소설.

 
07
작성일 : 17-12-01 03:29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7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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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이 책상에 엎드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본인은 그 남자, 그러니까 환과는 전혀 엮일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영은 과연 어떻게 죽는다는 소리일까? 영의 머리가 복잡했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고, 그로 인해 그가 사는 집을 알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잔인하게 살해를 당하기에는 그 남자가 막연한 사이코패스로 보이지도 않았다. 죽는 다는 것은 확실했고 죽음에 대한 준비까지 다 끝내놓은 영이었지만 그 이유에 대한 해답이 떨어지지 않는 건 꽤나 답답한 일이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죽으면 그만인 인생이었지만. 영이 몸을 일으키고 앉아 입 바람을 내뱉었다. ‘푸르르’ 하는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달력에 표시된 날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는데 인아가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영의 집중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영이 신경질적으로 뒤돌아 인아를 바라봤다. 인아가 말했다.

 

 “우체국 좀 다녀와.”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영은 오래 고민하지도 않고 다시 정자세로 고쳐 앉았다. 인아는 굴하지 않고 방 안으로 아예 걸어 들어와 서류 봉투 하나를 영의 책상 위로 던지듯 놓았다. 서류 봉투 제일 아래에는 인아가 지원한 대학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영의 서랍 마지막 칸에 들어있는 봉투와 같은 것이었다. 영이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추가적으로 제출해야 되는 서류야. 나 약속 있으니까 네가 내고 와.”

 “오늘 약속 있으면 약속 없는 내일 네가 보내면 되겠네.”

 

 영이 팔로 서류 봉투를 치워냈다. 봉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인아가 화를 참으려는 듯 숨을 몰아 신 뒤 거만하게 영을 내려다봤다.

 

 “오늘 저녁까지 안내면 너 때문에 나 대학 못 가니까 그런 줄이나 알아. 난 분명히 말했어.”

 

 인아는 영의 대답을 듣지 않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로 제출하지 말아볼까 영이 위험한 생각을 했다. 어차피 곧 죽을 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아에게 복수 한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영이 고개를 저었다. 고작 그런 걸로 복수하기에는 그동안 영이 이 가족 사람들에게 당했던 수모가 그만큼 가벼워지는 것 같아 싫었다. 인아가 집을 나간 듯 현관 닫히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반드시 제출하라며 영에게 다시 한 번 엄포를 놓으려고 일부러 더 크게 닫은 것이 분명했다. 영이 별 수 없이 침대와 책상 사이에 껴있는 봉투를 집어 들었다.

 우체국 안은 마감 한 시간을 앞두고 급히 서류를 보내야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일부러 사람들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영이 가만히 앉아 번호표만 만지작거렸다. 그때 누군가 영의 옆으로 와 앉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 너무 가까이에 있으면 괜히 긴장을 하던 습관 때문에 영은 저도 모르게 몸을 상대에게서 떨어트렸다. 사람 많고 시끄러운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은 자신의 번호가 빨리 뜨기를 바라며 데스크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옆의 누군가가 영에게 말을 걸어왔다.

 

 “참 좋은 눈을 가지고 있네.”

 

 화들짝 놀란 영이 고개를 돌려 바로 상대를 확인했다. 죽음을 볼 수 없는 그 누구라도 그녀의 죽음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늙은 할머니 한 분이 앉아있었다. 분명 할머니는 영에게 ‘좋은 눈’ 이라는 표현을 했다. 단지 예쁘게 생겼다는 듣기 좋은 칭찬을 하는 의미가 아니었음을 영은 알고 있었다.

 

 “누구세요?”

 

 영의 목소리에 경계심이 가득 묻어있었다. 영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할머니의 손이 영의 볼 쪽으로 향했다. 영이 당황스러워하며 그 손을 쳐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영을 따뜻하게 바라봤다.

 

 “왜 이렇게 짐을 많이 지고 살아. 이제 그만 내려놔 아가.”

 “할머니, 대체 누구세요.”

 

 영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자신의 비밀을 들킨 것이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영은 늘 왜 자신만 이런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 하늘을 원망하고 땅을 원망하며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 이상한 눈을 가지고 남들의 죽음을 봐가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 한 명 쯤은 반드시 필요했던 거라면 그게 왜 하필 자신이냐고 듣지도 않는 신에게 울부짖으며 여기까지 버텨왔다. 영은 지금 괜한 기대를 하는 중이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온 몸 가득 퍼져있는 이 할머니도 어쩌면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아왔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그렇대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이 할머니의 손을 간절하게 부여잡았다.

 

 “할머니, 혹시….”

 “엄마!”

 

 영의 간절함이 극에 달해 있을 때, 중년의 여성이 우체국 안으로 들어와 외쳤다. 그 여성은 영의 옆에 앉아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고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영이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곧 여성은 할머니에게 다가왔다.

 

 “혼자 어디 가지 말랬잖아.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걱정을 많이 했는지 연신 할머니 머리를 쓰다듬던 여성이 뒤늦게 서야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영을 발견하고서 곤란해 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저희 어머니가 치매 환자라….”

 

 여성이 별 거 아니란 듯 가볍게 웃었다.

 

 “자꾸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편지를 보내야 한다고 여기에 오네요. 혹시 저희 엄마가 이상한 말이라도 하지 않았나요?”

 “아….”

 “그랬다면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여성은 영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공손하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영은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엄밀히는 할 수 있는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끝내 할머니는 그 어떤 말도 더 하지 않은 채 여성과 함께 우체국을 나갔다. 그 주변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도 다시 제 할 일들을 하느라 바빠 보였다. 영의 실소에서 그녀가 느끼고 있는 허탈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럴 리가 없지.”

 

 영이 번호표를 들고 데스크로 향했다. 생각보다 영의 감정은 빨리 돌아왔고 덤덤했다. 어쩌면 이미 그 할머니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헛된 기대였고 일종의 돌파구였다. 본인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는 영이었는데 그런 비현실적이고 비극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걸 인정할 리가 없었다. 우편 처리를 다 한 영이 번호표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밖으로 나갔다. 영이 나간 그 문으로 곧 현서가 들어왔다. 두 여자가 아무것도 모른 채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우체국에서 나온 현서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 6시도 안 된 시간이었지만 겨울의 해는 역시 짧기만 했다. 현서가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을 아련히 내려다봤다. 나중에 전화 드리겠다고 한 태주에게서는 며칠 째 연락이 없었고 먼저 연락을 취해봤지만 바쁜 모양인지 받지 않았다. 환이 자신의 선물을 받지 않을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충격과 슬픔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컸다.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는 현서의 굳은 의지가 왠지 한 풀 꺾이는 느낌이었다. 현서는 본인이 여전히 환을 그리워하고 있는 마음만이라도 전달이 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앞으로의 길이 너무나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현서는 집 청소를 하다가 발견 한 환의 선물 하나를 태주에게 보냈다. 현서가 길가 쪽으로 걸어갔다. 손님이 잠시 빠진 틈을 타 급히 나온 거라 얼른 다시 들어가 봐야 했다. 운 좋게 바로 택시를 잡아 탄 현서가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등받이에 기대앉았다. 잠깐 나와 있는 한 시간도 맘 편히 쉴 수 없고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었지만 현서에게는 간절한 일상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현서는 집 밖으로는 나올 수도 없는 중증 환자였다. 지독한 환청과 환영에 시달렸고 그것들로 인해 현서의 평범하던 일상은 모두 산산조각 나 버렸다. 나아질 거라는 기대조차 없었다. 언젠가부터 시작된 그 증상들은 자살을 생각하게 할 만큼 현서를 괴롭게 했다. 하지만 치료를 받을 수도 없었다. 남들은 현서의 상태가 그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망상 장애의 하나 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현서 본인은 단순한 장애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현서가 보았던 그것들은 모두 어떤 이들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자신이 본 죽음들을 막으려고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현서를 미치광이 정신병 환자로 몰아가기만 했다. 가게 앞에 도착한 현서가 기사에게 현금을 지불하고 차에서 내렸다. 밖은 이제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고 한산하던 가게는 퇴근 후 저녁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금세 가득 차 있었다. 현서가 정신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내려놓고 앞치마를 맬 시간도 없었다. 현서가 온 줄도 모르고 있던 안 여사가 뒤늦게야 그녀를 발견했다.

 

 “옷도 안 갈아입고 뭐해. 내가 보고 있을 테니까 가서 옷 갈아입고 나와.”

 

 현서가 고개를 끄덕이곤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주방도 바쁜 건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려 현서가 구석자리로 가 외투를 벗었다. 그리고 빠르게 앞치마를 매고 다시 홀로 나갔다. 결론만 말하자면 현서는 더 이상 그런 것들을 보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시점은 대략 10년 전 쯤 이었다. 정확히는 그 사건을 통해 아들 환을 극적으로 살리게 된 후였다. 앞치마에 넣어둔 휴대폰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시간 될 때 연락주세요.’ 라는 태주의 문자였다.

 

  태주가 컴퓨터 화면을 보며 빠르게 타이핑했다. 화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용어와 그 약어들이 가득했다. 태주가 안경을 벗었다.

 

 “약은 잘 먹고 있는 거 맞지?”

 

 영이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태주의 시선이 저절로 꼼지락 거리는 영의 손으로 향했다. 태주가 답답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왜 안 먹으려고 하는지 잘 알겠고 이해도 하는데.”

 

 태주가 끝까지 말하지 않고 말을 멈췄다. 뒷말을 더 강조하고 싶을 때마다 태주가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심적으로 아무리 가까웠어도 어쨌든 태주는 영의 담당 의사였고 약이나 치료와 관련해서 영에게 쓴 소리를 할 때면 그 심리적 거리가 어쩐지 멀게 느껴졌다. 단호하게 영을 마주하고 있는 태주와 달리 영은 눈을 맞출 수 없었다. 왜인지 인아가 영을 약 올리기 위해 흔들어댔던 약 봉투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쓰레기통에 버리는 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건 너 아픈 애라고 주는 약 아니고 잠 잘 자라고 주는 약이야.”

 

 영은 고개만 끄덕였다.

 

 “정신과 다니는 환자들만 먹는 거 아니고 누구라도 잠을 못자는 사람들이면 먹는 약이라고. 거부감 가질 거 없어, 영아.”

 

 영이 이번에는 그저 손가락만 계속 꼼지락 거렸다. 미안함을 표현하려는 행동이었다. 꽁해 있는 모습을 보니 그세 괜히 미안해진 태주가 한 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야. 여기에 다니는 환자들 중에는 단순히 잠을 잘 못자서 오는 사람들도 많아. 선생님은 네가 본다고 하는 것들이 다 사실이라는 거 알고 있고 믿어. 다만 잠을 못자니까 그 부분에서 도움을 주려고 하는 거뿐이야.”

 

 물론 영이 먹어야 하는 약에는 수면을 도와주는 약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방금과 같은 말은 정신과 의사들이 약 먹기를 거부하는 환자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었다. 영도 한 봉지 안에 다서, 여섯 개씩 들어있는 약이 전부 수면제일리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이틀 동안 몇 시간 잤어?”

 

 정확히 몇 시간인지 새 본 적은 없지만 남들보다도 수면시간이 월등히 낮다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영은 차라리 피곤한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수면제의 도움을 통해 억지로 잠을 청해도 악몽을 꾸는 건 마찬가지였다. 악몽 없이 잠만 잘 수 있게 해주는 수면제가 있다면 영도 분명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이 편히 잘 수 없는 근본적 이유는 끔찍한 꿈들이었고 잠에 들게 하는 수면제는 오히려 그것들을 불러일으키는 촉진제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태주도 그 속내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피곤함이 가득해 보이는 퀭한 영을 보면 한숨부터 나왔다. 태주는 영이 억지로라도 깨지 않고 하루라도 편히 잤으면 했다. 괜히 서먹해진 두 사람 사이에 꽤 오랜 정적이 흘렀다. 영은 계속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기만 했다. 태주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직도 말해줄 수 없는 거야?”

 

 영이 ‘아차’하며 손을 외투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태주의 유도심문이 시작되기 전에 화제를 돌려야했다.

 

 “저 며칠 전에 납골당 다녀왔어요.”

 

 다행히 태주는 ‘납골당’ 이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심을 보였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벌써 날짜가 이렇게 됐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태주가 아까와 달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혼자서도 잘 가네.”

 

 영도 나지막하게 웃어보였다. 그러다 태주가 책상에 놓인 달력을 한 번 봤다. 작년 영과 함께 납골당에 방문 했을 때의 날짜를 기억해보니 확실히 아직 수경의 기일까지는 며칠 더 남아있었다.

 

 “근데 곧 있으면 기일인데 애매하게 왜 벌써 다녀 온 거야?”

 

 제 발에 찔린 영이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하하 거리며 웃었다. 순수하게 묻던 태주도 평소와 다른 영의 분위기를 알아차리곤 표정을 굳혔다. 꼭 기일에만 방문해야 하는 곳도 아니었는데 별 다른 이유 없이 다녀왔다고 대답하면 될 걸 영이 곧바로 후회했다. 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혹여나 실수라도 할까 영이 섣불리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태주가 아예 의자를 틀어 영을 마주보고 앉았다.

 

 “요즘 들어 네가 숨기고 있는 게 너무 많다는 기분이 들어.”

 “그런 거…없어요. 아시잖아요.”

 “그래도 나한테는 이것저것 곧 잘 말해주더니…. 서운하기까지 하려고 그래.”

 

 영은 절대로 태주에게 자신의 죽음을 말할 수 없었다. 비록 진짜 가족은 아니었지만 영이 가족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영이 남들의 죽음을 볼 때마다 수경이 힘들어했던 것처럼 태주도 힘들어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주는 영을 치료하고자 했던 의사이기도 했기에 숨김없이 다 말해왔지만 적어도 자신의 죽음만큼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 말고는 딱히 숨기는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진료실 전화가 울렸다. 영은 전화벨소리가 고맙게 느껴졌다.

 

 “여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태주가 아주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뒤에 환자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어서 더 이야기는 못하겠다.”

 “네.”

 

 영이 오히려 힘차게 대답했다. 태주가 고개를 저었다.

 

 “약이라도 꼭 먹어. 약속해.”

 

 영이 태주가 내민 약지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진료실 밖에는 태주의 다른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환자가 들어간다고 잠깐 열린 문 사이로 태주가 보였다. 피곤해 보이는 건 태주도 마찬가지였다. 진료실 문이 닫혔다. 영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버릇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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