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7
일렬로 나란히 선 황하성 일행은 다가오는 인마를 주시했다.
황하성이 눈을 가늘게 뜨며 이민걸에게 말했다.
“과연 계속 올까?”
“사실 꼬리를 말고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했다.
한 놈에게 독고세가의 정예 서른이 도망가는 듯한 볼썽사나운 모습은 끝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놈은 여전히 빠르게 말을 몰아붙이며 질주해 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
서른 명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직 젊은 사내.
얼음장같이 차가우면서도 조각처럼 잘생긴 얼굴. 그리고 그의 오른뺨에 길게 나 있는 검상도 눈에 들어왔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에 대한 소문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물론 외모에 관한 얘기도 마찬가지고.
황하성이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정말 천마검이란 말인가?”
그가 경계의 눈빛을 하는 반면에 이민걸은 흥분했다.
“미친놈입니다. 지휘관이란 놈이 이런 황당한 짓을 벌이다니. 어쨌거나 이건 엄청난 기회입니다.”
황하성과 이민걸의 반응이 갈리는 것처럼 스물여덟 수하들도 불안감과 기대감으로 나뉘었다.
황하성은 작금의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십 년간 마교주 뇌황과 함께 새외 무림을 정복한 불패의 장수가 저리 무모하다는 것이 왠지 섬뜩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는 다시 말머리를 돌려 후퇴하자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럴 기회를 놓쳤다.
어느새 천마검과의 거리가 지척까지 가까워졌다. 기호지세(騎虎之勢)라 이제와 등을 보이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백운회는 황하성 일행의 오륙 장 앞에서 말을 멈춰 세우고는 물었다.
“내가 궁금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말해 주면 각자 손목 하나씩만 받고 살려 주지. 첩자를 간파하고 각개격파하려는 내 의도를 읽은 자가 누군가?”
서른 명의 정예를 앞에 두고도 오연한 시선으로 질문을 던지는 청년.
그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하얗게 웃었다.
그 눈부신 미소에 황하성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 여유와 자신감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대종사의 기도, 절대자의 풍모.
천마검의 나이 스물아홉이라 했다.
그 젊은 나이에 저런 기도를 자연스럽게 흘리다니.
기실 정파의 많은 이들은 천마검에 대한 소문이 과장된 것이라 믿었다.
으레 풍문이란 것이 부풀려지는 법이고, 스물아홉이란 나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림에서 진정한 고수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두 가지가 있다.
무공 초식에 대한 정확하면서도 폭넓은 이해. 그리고 상승 무공을 더 높은 위력으로 끌어 올리는 심후한 내공.
나이가 어리면 내공의 깊이가 얕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천마검이 천마동에서 살아나온, 제아무리 무공의 천재라고 해도 절정의 노고수들과 맞붙으면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천마검은 전혀 태양혈이 도드라지지 않았다.
그 뜻은 내공이 전혀 없거나 매우 깊다는 말이다.
천마검이 공력이 없을 리는 만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공력까지 지녔다는 뜻이다.
황하성은 가슴 깊은, 심연에서부터 솟구치는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들 서른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인(巨人)이었다.
백운회는 천마동에서 천마가 남긴 무공 초식뿐만 아니라 어떤 기연을 얻었음이 분명했다.
최소한 일백, 아니, 어쩌면 훨씬 그 이상의 정예가 있어도 저 청년을 이길 수 없을 거라는 불길함이 전신을 옥죄였다.
정파 무림은 천마검을 너무 막연하게 젊은 천재 고수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여태껏 새외 무림만 떠돌아서일 수도 있고, 정파인의 흑도인을 멸시하는 경향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황하성은 지금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자는 이미 대종사(大宗師)의 자질을 갖추었으며 차후 정파 무림에 재앙이 될 것이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천마검을 바라보는 황하성에게 이민걸이 말했다.
“총관님, 어서 명을 내려 주십시오!”
차아아아앙.
이민걸을 포함한 스물아홉이 기세 좋게 발검 했다.
부총관과 수하들의 반응에 황하성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상대가 얼마나 거대한지 전혀 못 느끼고 있었다.
백운회는 마치 어린아이들 재롱을 보는 것 같은 묘한 미소를 짓다가 창백하게 질린 황하성을 보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모두 허접하지는 않았군. 절정에 근접한 고수인가?”
“…….”
“어쨌거나 피를 원한다면 기꺼이 받아 주지. 다만 방금 내가 던진 질문에 답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언제라도 말하도록.”
“…….”
“자! 내가 세운 책략을 망가트린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보내는 첫 번째 내 반격을 잘 받아 보라고. 나는 이제부터, 원래 내가 그리려 했던 그림을 이어서 완성할 생각이거든. 후후후. 기대되는군. 정체불명의 그자가 어떻게 나올지 말이야.”
스르르릉.
백운회가 시린 검신을 꺼내 들며 말을 이었다.
“이제 공포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거야. 당신들이 먼저, 그리고 나와 맞서려 했던 그 누군가도 말이지.”
***
흑귀도 마신랑의 까만 도가 허공을 질러 보현신니의 허리를 쓸어 갔다.
째앵!
그의 칼이 보현신니의 녹장에 막혔다.
흑귀도는 곧바로 몸을 한 바퀴 돌리며 칼을 반대로 휘둘렀다.
그러자 보현신니가 뒤로 물러나며 왼손을 앞으로 펼쳤다.
파아아아!
마공을 익힌 자가 가장 싫어한다는 여래장이 흑귀도를 짓쳐 들어갔다.
그에 흑귀도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자신이 여래장을 피해 몸을 날리는 순간 보현신니는 제자들을 보살피기 위해 뒤로 물러날 것이다.
“으하하합!”
흑귀도는 공력을 잔뜩 끌어 올린 상태에서 기합을 내지르며 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강대한 도기(刀氣)가 뭉클 피어올라 앞으로 폭사했다.
콰아아앙!
“큭!”
“으음.”
둘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흑귀도는 다시 진기가 끓어오르며 아까 맞았던 가슴께에 시큰한 통증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입가엔 음흉한 미소가 맺혔다.
보현신니는 흑귀도가 자신의 여래장을 맞받아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점차 바닥을 드러내는 공력을 아끼기 위해 많은 공력을 여래장에 담지 않았다.
그 판단 착오로 그녀는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승복과 피부 곳곳이 흑귀도의 도기에 예리하게 베어졌다. 또한 몸 내부의 혈도가 진탕되고 목구멍으로 피가 올라왔다.
‘안 돼. 조금만, 조금만 기다리면 될 거야.’
땀과 피로 절어 있는 그녀는 탈진해 가는 상황에서 입은 부상에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쓰러지면 아직도 힘겹게 희망을 부여잡고 있는 제자들까지 함께 무너진다.
그리고 그건 평생을 바쳐 일구어 낸 사문의 부활이 종지부를 찍는다는 의미.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참았다. 그건 사치니까.
그녀는 허물어질 것 같은 신형을 억지로 추스르며 급히 제자들을 살피기 위해 신형을 돌렸다.
그 순간 그녀의 눈앞으로 먹물 빛깔의 장력과 은빛 검기가 쏟아졌다.
냉혈쌍절의 두 장로가 아미파 제자들을 공격하는 시늉을 내며 몰래 접근하다가 기습한 것이다.
“아……!”
보현신니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본능적으로 들고 있는 녹장을 들었다.
그리고 단전에 있는 마지막 남은 내력을 모두 끌어 올렸다.
콰아아앙!
거친 폭음 그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터져 나오는 아미파 제자들의 절규.
“사부님!”
“장문인!”
그들의 고함에 울음이 한가득이다.
뒤로 붕 떠서 날아갔다가 다시 일어난 보현신니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커어어억!”
각혈.
검붉은 피가 그녀의 입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허공에 산개했다.
뒤로 젖혀지는 허리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다.
그녀는 가물거리는 눈을 억지로 뜨며 부처에게 기원했다.
‘오로지 사문의 부흥만을 위해 달려온 삶. 후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 불쌍한 제자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파파앗!
그녀의 등 뒤로 흑귀도의 날카로운 검기가 날아와 그녀의 옷과 살을 찢었다.
아직 버티고 있던 세 개의 항마복룡진이 무너졌다.
그 제자들은 진을 유지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저 위기에 빠진 장문인을 구하기 위해 앞으로 뛰었다.
쇄애애액.
파아앗! 쨍, 째애애앵!
아미파의 제자들도 정예였지만, 흑의인들도 천랑대와 흑랑대가 함께 있는 최정예.
그들은 찾아온 기회를 놓칠 바보들이 아니었다.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흑의인들은 무너진 아미파 제자들을 향해 각자의 칼을 사납게 휘둘렀다.
“장문인! 아아악!”
“스승님!”
아미파 제자들은 죽어 가면서도 애달프게 보현신니를 불렀다.
자신을 낳아 준 모친보다 더 인자했던 분. 또한 아비처럼 엄격했으며,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함께 옆에서 고민하고 격려해 준 벗이자 스승이었다.
아미파의 일대제자 우라는 눈이 뒤집혔다.
고아로 추운 겨울날 굶어 죽어 가던 자신의 손을 잡아 주신 장문인은 말씀해 주셨다.
자신은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라 귀한 사람이라고. 그래서 하늘이 지금 역경을 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 고난을 잊지 말고 나중에 베푸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보현신니는 늘 약자의 편에 섰고, 고귀한 구파일방의 장문인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한없이 낮춘 분이었다.
그런 분이 왜 저리 허망하게 쓰러져야 한단 말인가?
우라는 거칠게 봉을 휘두르며 앞으로 뛰었다.
수비는 일체 도외시한, 장문인을 향한 길을 막는 자는 무조건 처단하겠다는 심정으로 공격만 하면서.
차아아앙! 파팟.
그녀의 허리에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칼에 베인 것이다. 그러나 우라는 멈추지 않았다. 이깟 고통은 백 번, 천 번이라도 상관없었다.
“스승님!”
그녀는 목 놓아 보현신니를 부르며 앞을 막아선 흑의인 둘을 연달아 때려눕히고는 앞으로 뛰었다.
또 누가 막아섰다.
푹!
우라의 가슴에 칼이 꽂혔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상대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그렇게 그녀는 앞으로 나아갔다.
서걱!
왼쪽 팔이 떨어졌다.
우라는 한차례 몸이 휘청하면서 입을 벌렸다. 그제야 망각하고 있던 아픔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아아아…….”
장문인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는 이제 겨우 삼 장 남짓.
그녀의 팔을 베어 낸 노인이 싸늘한 시선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새파란 비구니가 제법이구나. 그러나 여기까지다.”
그녀의 앞을 막아선 노인은 냉혈쌍절의 냉절 장로였다.
우라가 피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비켜 주시오. 스승님이 당신 때문에 보이지가…….”
슈각!
냉절의 칼이 세찬 파공성을 일으키며 움직였다.
우라는 그 순간 세상의 빛이 점멸한다고 느꼈다.
몸과 분리된 그녀의 수급이 땅에 툭 떨어졌다.
그런 우라의 눈에 보현신니가 보였다.
까맣게 변한 세상에서 보현신니만큼은 하얗게 보였다.
‘다행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스승님을 보고 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
그녀의 두뇌가 정지했다.
보현신니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무너지려는 순간 자신을 부르며 달려오는 우라를 보았다.
그리고 그 제자의 팔이 떨어졌다.
“우, 우라야…… 안 돼! 돌아가 진을…….”
보현신니는 들리지도 않을 듯한 힘없는 음성으로 그녀를 부르다가 멍해졌다.
우라의 머리가 땅에 떨어져 굴렀다.
그리고 멈춘 그녀의 얼굴이 자신을 보았다.
보현신니는 알았다.
우라가 자신을 보고 있음을.
그녀가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음을.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에 보현신니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우라 뒤로도 제자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베이고 쓰러지면서도 오고 있었다.
“으허허헝!”
그녀의 사자후가 터졌다.
공력은 이미 바닥났건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신형이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헉!”
우라를 해치운 냉절이 뒤에서 들리는 사자후에 놀라 돌아서다가 기겁했다.
쓰러져 죽어 가야 할 보현신니가 자신에게 섬전과 같이 폭사해 들어왔다.
옆에 떨어져 있던 혈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피해야……!”
그의 경악한 음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콰직!
보현신니의 녹장이 냉절의 심장을 관통했다.
냉절은 자신의 가슴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개 같은…….”
그의 입에서 핏물이 왈칵 솟구쳤다.
설마 하는 한순간의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돌아왔다.
전장에 정적이 찾아왔다.
흑의인들도 아미파의 제자들도 눈을 부릅뜨고 동작을 멈췄다.
냉절이 신형을 한차례 부르르 떨다가 이내 땅으로 허물어졌다.
그리고 이번 한 수에 모든 것을 다 쏟아 낸 보현신니도 무너졌다.
두 명의 절정 고수가 그렇게 죽었다.
“으아아아악!”
혈절이 분노의 일갈을 터트렸다.
냉절과는 의형제 사이였다. 어디를 가든 늘 함께 다니는 평생 벗이었다.
그가 시뻘겋게 충혈 된 눈으로 외쳤다.
“다 죽여라! 단 한 명도 남기지 말고 죽여라!”
아미파의 제자 역시 이를 갈며 소리쳤다.
“장문인의 원수를 갚자!”
“장문인 뒤를 따르자!”
아주 잠깐 멈췄던 싸움이 재개됐다.
무려 한 시진 넘게 치열한 싸움이 있었던 사람들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게 더 격렬한 혈투가 펼쳐졌다.
흑귀도 마신랑은 한 발 떨어져서 전황을 훑으며 입맛을 다셨다.
두 배의 인원으로 기습했고 양쪽에서 포위했다.
그런데도 마교 장로의 희생이 난 것은 뼈아픈 손실이었다.
그리고 대충 살펴본 결과 육백의 인원이 백 명이 넘게 줄어 있었다.
“쯧쯧. 이래서야 천랑대주를 볼 면(面)이 안 서는군. 그놈이 나에게 얼마나 잔소리를 늘어놓을지. 쩝.”
아미파의 숫자는 팔십에서 칠십으로 그리고 육십으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항마복룡진으로, 굳건한 수비 일변도로 버텨 왔는데, 이제는 사방에서 흑의인들과 맞붙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흑귀도는 냉절을 잃어 마구 날뛰는 혈절을 보며 자신도 싸움에 합류하기 위해 발을 떼었다.
너무 많은 시간이 소모됐다. 그리고 예상보다 더 많은 전력 손실.
그때 그의 뒤에서 커다란 함성이 일었다.
“와아아아아!”
“아미파를 구하라!”
“여기 독고세가가 왔다.”
거친 고함을 지르며 샛길을 가로지르며 뛰어오는 자들.
그 소리에 점차 희망을 잃고 쓰러져 가던 아미파 제자들이 다시 투지를 일으켰다.
“지원군이 왔다아아아!”
“살 수 있다, 싸워라!”
“살아남아서 장문인 시신을 보전해야 한다.”
흑귀도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독고세가를 보았다.
결국 시간을 너무 많이 소요한 것이 작금의 사태를 만든 것이다.
자신들이 가야 할 방향에서 쏟아져 오는 정파인들.
혈절이 난전에서 빠져나와 흑귀도에게 다가왔다.
“흑귀도 장로!”
흑귀도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잠깐만.”
혈절은 전혀 당황하지 않는 흑귀도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흑귀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우리 아이들도 싸우느라 지쳤지만, 저들 역시 만만치 않은 것 같소.”
“그야 저들도 죽어라고 달려왔을 테니…….”
“그럼, 한판 붙어 볼 만하지 않겠소?”
혈절이 당황하다가 이내 서릿발 같은 살기와 흉흉한 미소를 흘렸다.
“그렇군요. 어차피 우리가 갈 방향을 저들이 막고 들어오니 피하려면 전열이 흐트러져 자칫 위험에 처할 수도 있고, 또한 독고세가가 합류한다 해도 우리의 수적 우세는 변함이 없군요.”
“그렇소. 또한 독고세가가 팔대세가라 불리지만, 말석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처지. 우리의 상대가 아니오. 내가 독고가주를 초반에 제거하면 의외의 대승을 거둘 수도 있을 것이오.”
흑귀도는 이미 계산을 끝냈다.
천마검에겐 독고세가가 생각보다 훨씬 일찍 당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냉절 장로와 적지 않은 수하를 잃은 것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혈절 장로가 말을 받았다.
“저야 좋습니다. 이대로 가기엔 냉절 동생의 복수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찜찜한 참이었는데.”
그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이를 갈았다.
전황이 요동치는 와중에 그들을 감싸고 있는 야산의 정상에 마침내 천류영 일행이 당도했다.
또한 흑랑대주 초지명이 이끄는 흑랑대도 무서운 속도로 이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마검 백운회도 천랑대와 함께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