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5
한 마리의 비둘기가 빠른 속도로, 전날까지만 해도 무림맹 사천 분타였던 곳으로 쇄도해 들어왔다.
황금빛을 띠고 크기는 마치 독수리처럼 큰 비둘기.
금광구(金光鳩)라 불리는 영물이었다.
주인의 냄새를 맡고 천 리 밖에서도 찾아올 수 있다는 전설의 새.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금광구가 아직도 마교에 두 마리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는 마교주 뇌황이 사용했고, 다른 하나는 백운회의 것이다.
금광구는 이제는 고인이 된, 사천 분타주였던 철혈 맹천후의 집무실 쪽으로 다가서자 날갯짓을 세차게 반복하며 속도를 줄였다.
담담한 표정의 한 남자가 창가에 있다가 미소를 지으며 한쪽 팔을 내밀었다.
그러자 비둘기는 기다렸다는 듯 그 사내의 팔뚝에 앉아 얼굴을 팔에 비벼 댔다. 마치 강아지가 주인에게 애정을 표하는 것과 같은 모습.
“금광구가 천랑대주를 끔찍이도 좋아하는군요.”
집무실 안쪽에서 그 광경을 모두 본 흑랑대주 초지명이 웃으며 말했다.
백운회는 딱히 대꾸 없이 금광구의 다리에 매여 있는 쪽지를 꺼내 펼쳤다.
순간 그의 눈이 의외라는 듯 커지면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백운회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초지명이 안색을 굳히며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백운회는 여전히 말없이 쪽지를 그에게 건넸다.
암호가 적혀 있는 쪽지를 받아 든 초지명은 급하게 해석해 나갔다.
성도 파견한 첩자 실패. 전 인원 무림맹 사천 분타로 향함.
짤막한 내용.
그러나 그 내용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초지명은 신음을 흘리며 백운회를 보며 말했다.
“음……. 이렇게 되면 독고세가와 곤륜을 떼어 놓는다는 작전이 어긋나는군요. 어차피 현무단이야 아무 쪽에라도 붙었을 테니까 상관없지만. 그 셋이 모두 이리 온다라…….”
현재 이곳에 대기하고 있는 전력은 육백.
어젯밤 일백 명의 사상자를 뺀 천이백 중 육백은 흑귀도 마신랑 장로에게 떼어 주고 아미파를 제거하고 돌아오라고 한 상태.
흑귀도는 독고세가의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아미파를 전멸시키고 이곳으로 물러날 것이다.
그사이에 이곳에서는 천마검을 벼르고 있을 무적검 한추광이 이끄는 곤륜파를 제압한다.
마지막으로 아미파의 복수를 위해 흑귀도 장로를 추격할 독고세가를 쳐부순다.
그렇게 정파 모두를 각개격파 하는 것이 바로 이 작전의 요체였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첩자는 실패했고, 모든 인원이 이곳으로 달려온다는 것이다.
초지명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백운회를 보며 말했다.
“차라리 잘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모조리 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패기에 찬 흑랑대주 초지명의 물음.
그러나 백운회는 여전히 침묵하며 금광구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짙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소. 놈들이 떼거지로 몰려오든 말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
“나는 놀라고 있는 거요. 대체 그들이 어떻게 간자인 것을 알아냈을까? 내가 보낸 그녀는 본 교의 마공을 익히지 않았소. 또한, 나와 함께 한 숱한 작전에서 완벽한 연기로 상대를 속여 넘겼었지. 준비성이 철저한 녀석이었는데…….”
초지명은 백운회의 수하 사랑을 알기에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
“아쉬운 인재를 잃었지만 어쩌겠습니까? 전장에 사는 우리 무림인들이야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마찬가지지요. 중요한 건 꿈을 가지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아이도 분명 당당하게 죽었을 겁니다.”
“아까운 녀석이오.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건 그게 아니오. 저들은 그녀가 첩자인 것을 알아차렸을 뿐만 아니라 병력을 나누지도 않았소. 즉, 우리의 각개격파하려는 의도도 간파한 것이지.”
“…….”
“독고세가에 그럴 만한 이가 있었소? 곤륜? 무적검 한추광이 무공은 뛰어나도 머리는 전혀 아니요. 현무단? 겉멋만 든 풋내기들이 잔뜩 모여 있지. 대체 누굴까?”
초지명은 백운회의 말에 자신도 정체불명의 인물을 유추하려고 해 보았다. 그러나 백운회도 모르는 것을 그가 생각해 낼 리 만무.
“어쨌거나 천랑대주. 우리가 이긴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 않습니까? 그게 제일 중요한 것 아닙니까?”
백운회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아니다.
사천 분타를 점령한 지금 이미 절반의 승리는 확정된 것이다.
문제는 남은 절반의 승리도 순항해야 할 터인데 일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꼬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커다란 둑도 작은 구멍으로부터 붕괴가 시작되는 법.
사소한 것이라고 넘겼다가는 감당하기 어려운 후환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순간 백운회의 눈에 기광이 스쳤다.
“으음……. 아니, 이건 아니야. 첩자를 간파하고 각개격파를 꿰뚫어 본 인간이 아미파를 구하러 가는 게 아니라 이곳으로 온다고?”
“아니, 그게 왜?”
“말도 안 돼! 그 정도의 두뇌를 가진 자라면 우리가 이미 이곳을 점령하고 있음도 간파했을 것이요! 또한, 그런 이유로 이쪽이 아닌 아미파를 구하러 가야 하고!”
백운회가 말하는 도중 벌떡 일어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금광구가 놀라 팔뚝에서 떨어져 창가 옆에 있는 나무로 자리를 옮겼다.
백운회의 날카로운 지적에 초지명은 말문을 잃었다.
늘 그래 왔듯이 천랑대주의 말은 예리했다.
이때 어떤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천랑대주, 제 견해는 이렇습니다.”
급한 표정으로 움직이려던 백운회가 고개를 돌려 초지명을 보았다.
초지명이 예의 우직한 얼굴로 말했다.
“놈들 중에 어떤 똑똑한 놈이 있을지라도 그는 천마검 백운회가 아닙니다.”
“응?”
백운회는 의아하다는 듯이 초지명을 보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말한 내용의 의미는 어떤 인물이 자신이 보낸 첩자를 간파했다고 하더라도 전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꿰뚫어 보는 것은 천마검 백운회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천랑대주를 향한 대단한 칭찬.
백운회는 어이가 없었지만, 초지명을 향해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는 결코 아첨을 일삼는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가치 있는 몇 안 되는 장수 중 한 명이었다.
“음…… 흑랑대주의 말도 일리가 있소. 내가 너무 섣부른 판단을 한 것일 수도 있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나 같으면 분명 아미파를 구하러 움직였을 거요. 보현신니는 인망이 높아서 정파 무림의 명숙들이 무척이나 좋아하오. 또한 아미파가 무너지는 건 전술적으로 사천 분타를 빼앗기는 것보다 훨씬 큰 부담을 안게 된단 말이지. 음…… 아미파로 가는 게 맞아. 아미파로…….”
백운회는 말을 흐리다가 이내 생각에 골몰했다.
그는 엄지와 검지로 눈두덩을 만지며 반 각의 시간을 침묵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저으며 눈을 빛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은 아미파로 향했소. 만약 흑귀도 장로께서 한 시진 내에 아미파를 제압하지 못했다면…… 위기에 처할 수도 있음이야. 지원군을 보내야 하오.”
천마검이 결정을 내렸다.
초지명은 백운회가 과한 우려를 한다고 생각했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두듯이.
그러나 그가 그렇게 판단했으면 따라야 했다.
이번 작전의 지휘관은 그니까.
또한 그는 새외 무림과의 거친 싸움에서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는 불패의 명장이었다.
그때 내실 문 밖에서 인기척이 나고 굵직한 목소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대주님, 관태랑입니다.”
천랑 부대주다.
서른 중반의 나이로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자라 여인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정작 그는 여인 보기를 돌 같이 하는 목석이었다. 오로지 일과 무공에만 미친 인물.
“들어와. 마침 부르려던 참인데 잘됐군.”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관태랑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절도 있게 한쪽 무릎을 꿇고는 힘 있는 어조로 말했다.
“방금 척후로부터 서른 명의 인마가 이곳에서 오십 리 떨어진 지역을 통과했다는 전서구가 도착했습니다.”
그의 말에 흑랑대주 초지명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하하하, 놈들이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는 가 봅니다. 아무래도 말을 탄 인원들이 더 빠르니 먼저 지나간 게지요.”
초지명의 말에 백운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묘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가? 정체불명의 그자는 두세 수 앞을 보는 재주는 있어도 전체 그림을 파악할 정도는 아니었나?”
기이하게도 그의 음성엔 다행이라는 느낌 외에 아쉬움도 함께 묻어났다.
초지명이 말을 받았다.
“기실 그 정도도 대단한 거지요.”
백운회는 찡그린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관태랑을 향해 명을 내렸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그들을 모두 끝장내야지. 관태랑, 손님 맞을 준비를 갖춰라.”
“존명!”
관태랑은 일어나서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며 명을 받았다.
그가 당당하게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백운회는 미간을 접었다.
찜찜함이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원했던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었다.
적이 흩어지지 않아 약간의 피해가 더 나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세웠던 책략이 중간에 이렇게 허무하게 들통 난 적은 없었다.
“누굴까? 그 다급한 상황에서 첩자인 것을 간파한 인물이.”
혼잣말하는 백운회의 이마에 자신도 모르게 주름이 졌다.
그렇게 천류영은 천마검 백운회를 잡아 두기 위한 시간을 버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
“크으윽!”
흑귀도 마신랑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았다.
무려 삼백여 초에 이르는 보현신니와의 공방.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에 흑귀도는 아직 제대로 된 일격을 그녀에게 가하지 못했다.
아무리 구파일방 중 하나인 아미파의 장문인이라고는 하나, 자신보다 더 높은 내력을 가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특히나 그녀가 내뻗는 장력은 항마(降魔)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자신의 내공과는 극성이었다.
때문에 자신의 마공을 담은 공격은 그녀의 장력만 만나면 몸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 빌어먹을 여래장에 결국 가슴을 얻어맞고 말았다.
성스러운 기운이 자신의 몸 안으로 침투해 진기를 진탕시켰다.
흑귀도가 이를 갈며 뒤로 물러서자 보현신니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 수하들을 보살폈다.
“힘을 내라! 곧 지원군이 올 것이다!”
그녀는 싸움 초반 여섯의 제자를 셋씩 사천분타와 독고세가 일행 쪽으로 급파했다.
그들 중 다섯은 결국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절명했다.
그러나 그 다섯의 희생으로 한 명은 용케 빠져나갔다.
홀로 살아남은 비구는 독고세가 쪽으로 미친 듯 경공술을 펼치며 달려갔다.
이젠 그가 지원군을 이끌고 오기를 기다리며 버티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비구는 독고세가 일행과 만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독고세가 일행이 이미 사천 분타로 향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즉, 그가 향하는 곳은 사천 분타와 성도의 중간 지점이었다.
독고세가 일행은 천류영의 도움으로 성도에서 곧바로 이리 오고 있었으므로 길이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보현신니는 달려드는 흑의인을 연거푸 녹장으로 때려눕히고는 다시 소리를 쳤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조금만!”
그녀의 고함은 차라리 절규였다.
열 개의 항마복룡진은 초반에 뒤를 강타당하는 기습에 일시에 두 개가 무너졌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씩 무력화되고 지금 남은 것은 불과 세 개였다.
평소 친했던 사제 세 명이 싸늘한 시체로 누워 있었다.
아끼던 직전제자 중 둘이 죽고, 한 명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서른 명의 일대제자 중 아직도 건재한 이들은 이제 겨우 일곱.
만약 지원군이 오지 않는다면 전멸을 피할 수 없었다.
아미파 최정예의 칠 할이 이곳에 있었다.
그런 자신들이 무너진다면 결국 사문은 봉문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
몰락의 길을 걷던 아미파를 온갖 고생을 다해 부흥시켰건만 이렇게 어이없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피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한편 물러나 진탕되었던 진기를 가까스로 안정시킨 흑귀도는 전황을 살피며 이를 갈았다.
육백의 인원으로 삼백을 포위 공격하는데, 한 시진이 다 되어 가도록 아직 승리는 요원했다.
천랑대주의 비웃음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아 입맛이 썼다.
백운회는 자신에게 보현신니를 태만히 보지 말라고 경고했었다.
초반에 냉혈쌍절의 두 장로와 힘을 합쳐 그녀를 최대한 빨리 제거하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흑귀도는 그 말에 자존심이 상해 지금껏 홀로 보현신니를 상대했다.
돌아가 일대일의 싸움으로 보현신니를 제압했다고 백운회 앞에서 자랑을 하려던 계획을 이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제길, 빌어먹을 할망구!”
흑귀도는 눈에 살기를 불태우며 보현신니를 쏘아보았다.
그는 백운회의 건의를 무시하고 새로운 책략을 짰었다.
즉, 자신이 보현신니를 제압하고 냉혈쌍절 장로들은 수하들과 함께 아미파 제자를 도륙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실패했고, 냉혈쌍절 장로들도 아미파의 항마복룡진을 파훼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흑귀도는 초조해졌다.
이러다가 독고세가의 지원군이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우세한 판세는 난전이 될 판이다.
아미파는 이백이 쓰러졌지만, 아직 백여 명이 건재했다.
그는 결국 냉혈쌍절 두 장로들을 불러들였다.
“당최 지금까지 무얼 한 것이오? 내가 보현신니를 상대하는 동안 저 빌어먹을 비구니들을 쓸어버리지 못하다니!”
흑귀도가 버럭 성을 내자 냉절은 할 말이 없다는 듯 머뭇거렸다. 그러나 혈절은 같이 짜증으로 되받았다.
“보현신니를 흑귀도 장로께서 제대로 상대해 주셨다면 벌써 끝내고도 남았을 겁니다. 몇 번이나 무너뜨리려는 순간에 보현신니가 끼어드니…….”
혈절의 불만에 흑귀도는 본론을 꺼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소. 보현신니가 나와 상대를 하면서도 틈틈이 빠져나가니 나 역시 짜증이 나 죽을 지경이오.”
흑귀도의 말에 냉혈쌍절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낯빛을 보였다.
보현신니가 구사하는 신행미종보(神行迷踪步)라는 보법은 앞으로 나아가는 듯하다가도 어느새 뒤로 빠져나가는데, 그 행보가 마치 귀신같았다.
덕분에 흑귀도는 보현신니의 공격을 경계하다가 수차례나 허탈감을 느껴야 했다.
반면 아미파 제자들이 위급할 때마다 복귀한 보현신니 덕분에 냉혈쌍절과 휘하 흑의인들은 애를 먹어야 했고.
흑귀도가 말을 이었다.
“내가 다시 보현신니와 싸우며 유인하겠소. 그녀의 뒤를 두 장로께서 막아 주시오.”
그 말에 냉혈쌍절은 둘 다 얼굴을 찡그렸다.
“결국…… 천랑대주, 그 애송이 말대로 하자는 겁니까? 그 높은 콧대가 또 우리 장로들 위에 서겠군요. 가뜩이나 놈의 인기가 높아 장로들 위신이 깎이고 있는 판에.”
상대가 아무리 아미파의 장문인이라고는 하지만, 자신들은 마교의 장로였다.
마교 장로 세 명이 한 사람에게 들러붙어 싸운다는 것은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흑귀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오. 아니, 벌써 우리는 망신을 당한 것이나 진배없소. 천랑대주의 예상대로라면 이제 곧 독고세가 놈들이 들이닥칠 것인데…….”
혈절이 말을 받았다.
“맞습니다. 이러다가는 정말 죽도 밥도 안 됩니다. 보현신니만 제거한다면 남은 이들은 결국 희망을 잃고 자멸할 것이니 그렇게 합시다.”
혈절이 동의하자 냉절도 받아들였다.
분명 아미파를 몰아붙이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었지만, 시간에 쫓기는 것도 자신들이었다.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의 우려대로 천류영 일행은 초원을 가로질러와 작은 야산 하나만을 앞에 남겨 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