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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당연하게 사랑해줘
작가 : 서언
작품등록일 : 2017.11.21

온몸이 차가워져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불치의 병 '콜드병'. 콜드병으로 엄마를 잃은 천재의사 김세영이 콜드병 환자인 차재훈의 주치의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당연하게 사랑해줘. (9)
작성일 : 17-12-04 17:57     조회 : 259     추천 : 0     분량 : 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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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방에 들어오자마자 테이블위에 놓여있는 진료기록과 일지 파일을 열었다. 파일의 첫장을 열자 어린 시절 차재훈의 얼굴이 맨 먼저 보였다.

 

 “어릴 때부터 뾰족했네.”

 

 어린 차재훈의 얼굴에서 지금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작은 얼굴에 유난히 뾰족하고 긴 눈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참 말 안듣게 생겼다.”

 

 고집 있게 생긴 얼굴을 뒤로 하고 나는 일지와 기록을 번갈아며 쳐다봤다.

 차재훈은 5살의 크리스마스를 맞을 무렵 콜드병임을 알고 그때부터 관리를 시작했다. 관리는 약물로 진행했고 진료기록 상 6살 때부터 주치의 이름은 차경현이었다. 딱히 특별할 건 없었다. 문제는 어째서 콜드병인 차재훈의 손이 따뜻하고, 차재훈이 쓰러지는 것이냐, 였다. 대체 왜?

 

 “대체 왜?”

 

 탁탁, 탁자위로 손가락을 내려 찍었다.

 모순 하나 없는 진료 기록이었지만 거대한 모순이 딱 하나있었다. 콜드병이 확실한 차재훈의 손이 따뜻하다는 것.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어 답답함에 애꿎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 * *

 

 회장은 이른 아침부터 출장을 간다고 했다. 캐나다인가 어딘가, 어디든 일절 관심 없었다. 그저 아침을 같이 먹지 않아도 되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요.”

 

 경현의 습관성 웃음과 친절을 더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왜.”

 

 차재훈이 계단을 내려가길래 따라 내려갔을 뿐인데 차재훈이 경계하며 물었다.

 

 “왜라니?”

 “왜 따라와?”

 

 어처구니없어 웃음이 나왔다.

 “너 혹시 바보야? 나 네 옆에 꼭 붙어있으라잖아.”

 “됐어.”

 “그러다 또 쓰러지면?”

 

 순간적으로 차재훈의 말문이 막힌게 보였다.

 

 “그럴 일 없어.”

 “있어. 너 예전에도 그랬잖아.”

 

 확신을 가지는 차재훈을 보자 기가찼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것도 아니고, 의사 앞에 환자가 제 몸에 확신을 가지는 게 웃겼다. 차재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주기가 있겠지.”

 

 차재훈이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나를 쳐다봤다.

 

 “뭘 놀라냐, 너 내가 교복 입고 있으니까 너랑 똑같은 사람으로 보여? 나 의사야.”

 “참나.”

 

 차재훈이 혀를 차며 계단을 마저 내려갔다. 졸졸 차재훈의 뒤를 따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멈춰서며 나를 쳐다본다.

 

 “깜짝이야, 야, 갑자기 멈추면 어떡해.”

 

 차재훈이 답답한 듯 미간을 구기며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 야, 너 진짜 나한테 왜 그러는데?”

 “몇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나 네 주치의라고.”

 “까지 말고, 솔직히 말해. 병원장 자리 때문에 그러냐?”

 “뭐, 그 이유가 없다고는 말 못하지, 네가 모르는 어른들의 세계가 있으니까 너는 그냥 내가 하는 치료 잘 받기만 하면 돼.”

 “그 세계를 내가 모른다고 생각해?”

 

 차재훈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물어왔다. 순간 벙찐 건 나였다. 그 말을 하는 차재훈이 그때만큼은 어린애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딱 할 일만해, 지킬 거 지키고, 주제 넘지 말고.”

 

 차재훈이 말하고 차에 올라탔다. 자연스럽게 조수석 손잡이로 손을 뻗었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딸각딸각, 소리만 났다. 운전석의 기사님이 난처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차재훈이 어린애 같지 않다던 말 취소다.

 

 나는 차재훈이 앉아있는 쪽의 창문을 두드렸다. 차재훈은 모른 척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창문이 열리고 그틈으로 손을 넣어 문을 열었다. 기사님의 당황한 표정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다.

 

 “내리세요.”

 “네?”

 

 놀란 기사님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차재훈이 얼굴을 찡그리며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뭐하는거야.”

 “네가 내가 운전하는 차 타보고 싶어하는 거 같길래.”

 “뭐?”

 “아마 이 세계는 네가 아직 모를 걸?”

 

 내 말에 차재훈이 어이없다는 듯 바람 빠지는 웃음을 터트렸다.

 

 “날도 더운데 그만 힘빼자, 차재훈.”

 

 뒷문을 열어 차재훈의 옆에 앉았다. 차재훈이 얼굴로 황당함과 경악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다.

 

 “전화번호 알려줘.”

 

 내가 내민 핸드폰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던 차재훈이 콧방귀를 뀌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주로 두 번 말해야 알아듣는구나?”

 

 말 없는 차재훈의 뒷통수에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어제 같은 일이 또 있을 수 있는데 내가 그 때 네 옆에 없을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핸드폰 번호...”

 “싫어.”

 

 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하지? 뭐, 다 싫대.

 

 “어차피 너 내 옆에 계속 있는다며...”

 “어.”

 “그러니까 내 번호 필요 없지.”

 “너는 만약이라는 말을 잘 모르나봐?”

 

 차재훈이 어처구니없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네 화장실까지 따라다닐 수는 없잖아. 만약에 네가 화장실을 갔는데...”

 

 차재훈이 인상을 찡그리며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덕분에 말하던 내 입이 합죽이가 되었다.

 나는 차재훈의 이어폰을 뺐다. 생각해보니까 이놈의 버르장머리를 병원에서부터 손 봐주려고 했는데.

 

 “사람이 말하는데 이어폰 꽂는 건 무슨 경우야.”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인상을 구긴다.

 

 “뭐, 구기면 뭐 어쩌라고.”

 “아, 진짜 조용히 가자.”

 “조용히가고싶으면 더 들으면 안되겠네.”

 

 나는 아예 이어폰 두짝을 다 빼버렸다.

 

 “아, 야, 제발 그냥 치료만 해 이런거 저런거 하지 좀 말고.”

 “야, 내가 계속 생각해 봤는데, 반말까지는 내가 백번 양보해서 이해할게, 근데 야, 는 좀 심하지 않냐?”

 

 차재훈이 턱짓으로 내 교복을 가리켰다.

 

 “우리 같은 반이잖아.”

 “너 내 나이 몰라?”

 “알아, 스물여덟.”

 “알면서 야야, 소리가 아주 잘 나온다.”

 “어, 착 붙네 아주.”

 “착 붙어? 와, 이거 진짜.”

 

 한마디 더 하고 싶었는데 기사님이 우리 쪽을 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열 아홉 살의 차재훈을 상대로 이러고 있는게 갑자기 창피해졌다.

 

 “됐고, 앞으론 이거 먹어.”

 

 가방에서 흰약통을 꺼냈다. 차재훈이 받지도 않고 물끄러미 내가 내민 약통을 쳐다보고있었다.

 

 “예전에 만든 신약이야.”

 

 차재훈의 뾰족한 얼굴 중 날렵한 눈썹이 꿈틀거렸다.

 

 “너 내가 콜드병만 몇 년을 판줄 알아?”

 “........”

 “내 인생의 절반을 넘는 시간을 나는 콜드병에 대해 공부했어. 치료제를 찾고 만들고, 그 짓을 10년을 넘게했다고. 너희 아버지가 괜히 나를 네 주치의로 뒀을까?”

 

 차재훈이 다시 고개를 창문으로 돌렸다. 동그란 차재훈의 뒷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안먹어.”

 “칭얼거릴 나이 지나지 않았어?”

 

 그대로 차재훈에게 던지 듯 약통을 줬다.

 

 “먹기 싫어도 먹어. 살고 싶으면.”

 

 내 말을 끝으로 잠시 적막이 차안을 채웠다.

 

 “저.. 도착했습니다...”

 

 눈이 마주친 기사님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갈 것처럼 들리고 우리는 학교에 도착했다. 한번 와봤다고 막 어색하진 않았다.

 

 “왜 안먹겠다는건데?”

 

 차에서 내려 차재훈의 옆을 따라 걸으며 물었다. 오늘도 차재훈의 발걸음은 빨랐다.

 

 “내가 널 어떻게 믿고 먹어.”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를 못믿어서 못먹는다고?”

 “어.”

 

 나보단 네 형을 못믿는게 말이 될텐데. 속말은 꾹, 참았다.

 

 “나 의사야.”

 “응, 돈 좋아하는 의사지.”

 

 그 말에 다시 헛웃음이 났다.

 

 “어, 맞아, 나 돈 좋아하는 사람이야.”

 

 차재훈이 여전히 빠르게 걸었다. 따라 걸으려면 다시 경보 수준으로 걸어야했다.

 

 “너희 집에 왜 들어왔냐고 물었지?”

 

 그제야 나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던 차재훈이 나를 슬쩍, 쳐다봤다.

 

 “나는 이 세상에서 콜드병이 없어지길 원해, 너는 완치되길 원하지? 네가 나한테 날을 세울 이유가 전혀 없어. 둘다 윈윈이야.”

 

 최대한 설득하는 말투로 부드럽게 말했다. 어르고 달래듯이 말하자 차재훈이 걸음을 우뚝 멈춰서 나를 쳐다봤다.

 

 “그 약 믿고 먹어도 돼, 그 약을 너한테 복용했을 때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도 봐야하니까.”

 

 차재훈은 날렵하게 올라간 눈으로 말없이 나를 쳐다만 봤다. 마치 내 마음이 진심인지 아닌지 간파하기라도 할 것처럼. 나를 한참을 관찰하듯 쳐다봤다.

 

 “차재훈!!”

 

 우리 둘 사이로 정적이 흐르고 있을 때 뒤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하진 않았지만 낯설지도 않은 소리에 뒤를 돌았다.

 

 “보지마.”

 

 차재훈이 말했지만 이미 나는 저 멀리서 씩씩, 거리며 걸어오는 연지를 본 후였다.

 

 “어? 네 여자친구다.”

 “여자친구는 무슨, 아, 진짜 피곤해 죽겠다.”

 

 짜증난 표정을 지으면서 미간을 구긴 차재훈이 한숨을 쉬었다.

 

 “네 여자친구 근시야?”

 

 내 말에 차재훈이 웃음 터트리며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봐도 연지의 눈이 보였다. 흡사 눈이 좋지 않아 사물이나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찌푸리며 보는 행동 같았다.

 연지가 성큼성큼 가까이 다가오자 연지는 근시가 아니라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걸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슬쩍, 차재훈의 눈치를 봤다.

 

 “뭐 얼마전에 싸우고 헤어졌어?”

 

 차재훈이 나를 한심스럽게 쳐다봤다.

 

 “여자친구 아니야.”

 “그럼 저렇게 째려 볼 이유가 없잖아.”

 

 내 말에 차재훈이 대답하기 전에 연지는 화가 난 표정으로 나와 차재훈 앞에 섰다.

 숨이 찬 연지가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재훈아! 얘 누구야?”

 

 연지가 짜증스러운 눈으로 나를 째려보고있었다.

 차재훈이 쓰러졌을 때도, 지금도, 작은 몸에 비해 연지의 목소리가 큰 편이라고 생각했다.

 슬쩍 쳐다본 차재훈의 얼굴에는 피곤이 역력했다.

 ‘또 쓰러지는 거 아니야?’ 걱정스레 차재훈을 쳐다봤다.

 

 “어제 너 또 엄청 차갑더라, 나 정말 놀랐는데 얘가 갑자기 내 손을 이렇게 탁, 쳐내면서.”

 “아!”

 

 애꿎은 내 팔을 왜 때리는 건지, 내가 언제 저렇게 쳐냈다고. 저렇게 말하는거지.

 반짝반짝, 큐빅이 잔뜩 달린 머리띠가 연지가 말할 때마다 반짝거렸다.

 

 ”뭐야, 야, 너 뭘 보는데? 재훈아 얘 누구냐니까.“

 

 어제부터 연지이 머리에 있는 머리띠가 머리띠 치고는 과할 정도로 반짝거렸다.

 나는 한걸음 떨어져 두사람을 쳐다봤다. 차재훈은 여전히 피곤한 표정이었고 연지는 화가 난 채로 나와 차재훈을 번갈아며 노려보고있었다.

 

 “여자친구 아니기는.”

 

 차재훈과 이연지 사이에 낀 나를 보고 이토록 화를 내는 건 여자친구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아니라면서, 짜증만 낼 줄 알았더니 연애도 하고 그랬나보다.

 

 “아니라고.”

 

 내 말에 차재훈이 정색을 하며 쳐다봤다. 연지가 여자친구가 아니라면, 이토록 화 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

 

 아니, 한가지 이유가 있었다. 이연지가 차재훈을 좋아한다면 말이 될 수도 있었다.

 

 “근데 너, 자꾸 왜 재훈이 옆에 따라다녀? 너 진짜 뭐야?”

 

 나를 향해 물어오는 연지의 눈이 꽤 무서웠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빛에 나도 슬슬 기분이 나빠지고 있었다.

 

 “같이 살아.”

 

 “뭐?”

 

 나 기분 나쁘다고 상대도 기분 나쁠만한 말을 뱉는 나도 참 유치했다. 내 말에 목소리를 크게 키운 연지가 나와 재훈이를 번갈아쳐다봤다.

 

 “뭐야 대체, 네가 왜 살아? 뭐 친척이야? 그래? 아니지, 친척이 굳이 재훈이네 집에 살 필요가 없는데.”

 

 차재훈은 머리가 아픈 듯 얼굴을 찡그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재훈아 대체 뭐야? 응? 진짜 얘 뭐야?”

 

 차재훈이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나는 그런 차재훈의 가방을 질질 내 옆으로 끌었다. 그 모습을 본 연지의 눈이 더 무섭게 변했다. 솔직히 조금 겁먹었다.

 

 “교실에서 보자.”

 

 고작 열아홉살인 애한테 쫀거 맞다. 내가 괜히 재촉하자 차재훈이 어처구니 없는 듯 웃으며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본 연지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어제와 아까처럼 단순히 째려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부들부들 거리는 몸으로 열이 오른 얼굴이 붉게 변하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연지의 손이 내 머리를 쳤다. 나, 지금, 맞은거야? 순간 어이가 없어서 고개가 돌려진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마디만 더 해. 죽여버릴테니까.”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연지가 말했다. 세상에 맞았다. 그것도 엄청 세게. 내가 지금, 맞은거야? 왜?

 

 “이연지!”

 

 차재훈도 놀랐는지 급하게 연지와 내 사이를 가로 막으며 섰다. 이제야 말리면 뭐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돌아진 고개를 바로 하며 연지를 쳐다봤다.

 내가 실수한건 맞았다. 그게 맞을 정도로 큰 실수인지는 이해가 잘 되진 않았지만.

 차재훈이 얼굴을 구기며 이연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연지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맞은 건 난데 울기는 네가 왜 우니.”

 “한마디만 더 하면 죽여 버린다고 했지.”

 

 살기가 느껴지는 말을 뱉으며 연지의 그렁그렁했던 눈에서 툭, 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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