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구를 고르는 여인의 손길이 세심하기도 하였다.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너울을 쓴 여인이 무엇인가를 들고서는 이리저리 살피더니 제 뒤에 서 있는 호위로 보이는 이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어떠니? 단희 네 검 손잡이가 허전한 것이 마음에 쓰였는데. 이 유소를 달아 보는 것이?”
단희의 미간에 주름이 갔다.
“음. 이것은 취향이 아니야?”
손에 들고 있던 붉은 유소를 내려놓고 그 옆의 것을 들어 올리더니 또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아가씨. 그만 가셔야 하지 않으십니까?”
상당히 불만스러운 목소리였지만 그 말투만은 정중했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는걸? 그럼 이것은 어떠니? 손잡이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이번엔 아예 검 손잡이에 그것을 척하니 대고는 이리저리 살핀다. 여호위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아가씨!”
“에이, 안 되겠다. 그냥 이걸로 하자. 이보게, 이걸로 주게나. 얼마라고 했지?”
그녀가 셈을 하더니 척하니 그것을 여호위 앞에 내밀었다.
“자 달아봐. 어떤가 보게? 왜? 이상할 것 같아? 내 안목을 믿어 보라니까?”
“하-.”
한숨이 나왔다. 결국 두 손을 든 그녀가 유소를 받아 들었다.
나무를 조각해서 만든 장식 끝에 초록빛 유소가 달려 있었다. 그 무늬가 단순한 듯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어찌 앓은 것인지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것이었다. 세자빈 그녀다웠다.
인적이 드문 곳에 들어선 여호위가 그녀에게 물었다.
“마마, 원래 성격이 …….”
묻기는 했지만, 엄연히 그녀는 웃전이기 때문에 알맞은 단어를 찾을 수 없던 그녀가 뒷말을 삼키자 수빈은 짧게 키득거리고는 그렇다고 대답해 주었다.
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런 성격이었다고 대답했다. 소현이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겠지만, 그녀가 확인할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 그냥 그렇다고 대답해 주면 그런가보다 싶을 것이다. 그리고 여호위의 성격상 이리저리 묻고 다닐 것도 아니었다.
세자빈이 그리 말하자 그간 세자빈의 행동을 뒤돌아보던 그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 긴 시간 동안 제 모습을 감추며 살았을 그녀의 속내가 어떠했을까 싶었다.
외부로 통하는 문은 그녀가 심어놓은 나무들과 화초들로 인해 꼭꼭 숨겨져 있었다. 거기에 착시하게끔 담 하나를 앞쪽에 더 만들어 놓아, 가까이 다가가 직접 보기 전까지는 그곳에 문이 있을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담을 직접 만들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한상궁과 서나인의 표정이란, 분명 나라를 잃은 표정이었다.
몇 개의 문을 지나 궐 밖으로 나선 후 단희가 준비해 놓은 안가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곳을 나선 후부터 그녀는 자신에게 편하게 하대를 하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계산에서였다. 이시대의 양반과 호위무사의 관계대로 행동했다. 그리고 자신을 수빈이라 부르라고 했다. 최수빈. 밖에서 소현이란 이름을 사용할 수 없음에 그러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녀는 궐 안에서 보던 세자빈의 모습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모르는 양반집 아가씨였다. 순간순간 주위를 살피는 눈빛 또한 낯설었다. 지금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보고를 해왔는데. 그것이 모두 부질없는 것이었다.
얼마 후 그녀들은 그럴듯한 모습의 건물 앞에 서 있었다. 문 앞의 사내들이 그녀들을 제지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상단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뜬금없는 여인의 말에 왼쪽에 서 있던 사내의 눈빛이 사납게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수빈이 앞으로 나서며 서둘러 입을 열었다.
“동문 첫 번째 기와집의 여식이 찾아 왔다고 전해 주십시오.”
뜻밖의 말에 사내의 눈이 커다랗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을 하고는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동문 첫 번째 기와집이요?”
“큭, 저기 안 보여요?”
그녀가 손짓하는 곳을 보자 커다란 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이해가 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처음 보는 여인이 사내의 뒤를 따라 나오는 것이 보였다. 처음과는 다르게 잔뜩 긴장한 것이 저에 관하여 들은 것이 분명했다. 여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유모 박씨가 사람들을 데리고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 나오고 있었다.
유모가 반가운 얼굴로 저를 향해 다가와 고개를 숙이자 뒤를 따르던 이들 또한 깊게 고개를 숙여 그녀를 맞이했다.
수빈이 손짓을 하자, 그녀가 사람들을 물렸다. 안쪽으로 더 들어서자 상단주의 집무실인 듯 한 곳이 보였다.
집무실 한쪽에 탁자가 보였다. 의자를 빼고 앉아 주변을 둘러보는데, 집무실이 자신의 취향대로 꾸며져 있었다.
그 것을 알아본 유모가 자신의 집무실은 바로 앞전에 지나쳐 온 곳이고 이곳이 수빈의 집무실이라고 알려주었다. 예전에 세자가 사용하던 곳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자 자신이 자리한 이곳이 새삼 달리 보였다.
단희를 내 보낸 그녀가 그동안 받지 못했던 보고들을 받았다. 그리고 앞으로의 할 일도 일러주며 여러 가지 사항을 확인했다.
“영상의 움직임은 어떠한가요?”
“평소와 같았습니다. 그쪽 상단들은 평소와 별반 다른 것이 없었는데, 함경도 쪽 움직임이 조금 이상합니다.”
“함경도라 함은, 김무재라는 자가 있는 곳이 아닙니까?”
“예, 아가씨. 그자는 소심하고 편협한 자인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즘 명과의 거래에 큰돈을 들이고 있다 합니다.”
“함경도, 김무재라?”
톡톡 탁자를 두드리는 그녀의 머릿속에 하나의 사건이 떠올랐다.
“이런, 뭐 같은!”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에 깜짝 놀란 유모가 그녀를 보았다.
김무재, 그자는 영상의 곁에 빌붙어 사는 버러지와 같은 이였다. 왜 그 이름을 듣고 기억해 내지 못한 것인지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이 시기에 그는 큰돈을 들여 명나라와 거래를 트기위해 막대한 금액을 쏟아붓고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어린 여인들을 납치하여 외국으로 팔아먹는 인신매매로 큰돈을 벌고 있었다. 그는 보통사람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큰돈을 쉽게 벌어들였고, 그 돈은 고스란히 영상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무리한 투자로 인해 상단이 망해버렸다고 소문이 났지만, 그것도 그들의 계략이었다.
그들이 투자했다는 돈은 이미 영상의 주머니로 들어간 후였고, 인신매매를 감추기 위해 상단이 망한 것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그리고 장소를 옮겨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결국, 덜미를 잡혀 참형에 처해지지만 납치된 여인들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었다. 영상은 역시나 몰랐던 일이라며 발뺌을 하고 손수 그자를 처벌한다.
“월화 들은 잘 지내고 있지요?”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활동도 수월하게 하고 있고 정보들도 차곡차곡 모이고 있습니다.”
“그래? 며칠 안에 함경도 쪽으로 사람들을 보내야 할 것 같아요. 무술에 능한 자들 열, 정보에 능한 자 둘, 재주에 능한 자 하나, 발이 빠른 자 한 명 정도 뽑아 놓도록 하세요.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할 터이니 말을 탈 수 있는 자들이 좋겠어요.”
“갑자기 함경도에요?”
“네 그리고 조만간 월화 들이 저를 보자고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여태 잘 막고 계시네요?”
“아무래도 조심해야 하는 입장이잖습니까. 그래도 이제 더는 힘들 듯싶습니다.”
“알았어요. 어차피 조만간 만날 일이 있을 듯싶으니 너무 힘 빼지 말라고 해주세요. 그리고 이제 유모보다는 상단주라 불러야겠어요. 보는 눈들이 많으니 말이에요.”
“네 그리하세요.”
“그리고 앞으로 외부에서는 수화나 지필묵으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그리고 지금부터 제 이름은 최수빈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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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웬 여인 둘이 상단을 찾아왔다 그 말이지.”
“예 그래서 뒤를 쫓았는데 놓치고 말았습니다.”
“흠. 형님 아무래도……”
“둘째 너도 나하고 같은 생각인 것 같구나?”
“예, 아무래도 그 여인 중 한 명이 진짜 상단주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그렇다면 검은 너울을 쓴 여인이 상단 주일 것이라 알렸다.
주위를 살피는 이들이 많아서 안쪽까지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설핏 보니 검을 든 여인은 집무실 밖에 서 있었다고 했다.
“그럼 그 여인은 호위인 듯싶군. 얼굴을 보았느냐?”
“아니요, 그 여인도 얼굴 가리개를 하고 있어서 눈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둘째라 불린 사내가 수염을 쓰다듬더니 이내 앞에 앉아 있는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첫째 형님, 아무래도 박씨에게 연통을 넣어 만나자고 해야 할 듯싶습니다. 그자가 우리를 도왔다고는 하지만, 세자빈의 유모였고, 어떻게든 영상과 관련 있는 인물임은 틀림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갑작스레 세를 얻은 것도 그렇고 부를 축적한 것도 그렇고. 하나하나 안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형님 둘째 형님의 말마따나 우리를 구해주는 척하고 이용해 먹으려는 영상 쪽 인물이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 정보망에 걸리지 않는 것도 그렇고 뭔가 이상합니다.”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감정이 떠오를 때였다.
[똑.똑.]
“누구냐?”
“2호입니다.”
2호는 상단주 옆에 붙여놓은 인물이었다. 셋째라는 인물이 문을 열고나겠다. 몇 마디를 주고받은 그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한 통의 서찰이 들어 있었다. 한쪽에 말없이 앉아 있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무엇이냐?”
“상단주가 보냈다 합니다.”
“쯧쯧, 2호의 정체가 들통 난 모양이군.”
첫째라는 이가 고개를 숙이더니 바로 교체하겠다고 말했다.
“되었다. 이미 베렸어. 그냥 놔두거라.”
둘째가 첫째의 앞에 서찰을 내려놓았다. 봉투를 뜯은 그가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점점 굳어가던 인상이 마지막에서는 헛웃음으로 변했다.
그 모습에 궁금함을 못 참은 덩치 큰 사내가 내용을 물어왔다.
“상단주가 말하길, 조만간 만날 일이 있을 듯싶으니 너무 힘 빼지 말고 기다리랍니다.”
그의 말에 노인이 허허 웃으며, 능구렁이 백 마리쯤 품고 있는 여인이 눈앞에 있었다며 혀를 찼다.
이곳은 월화들의 안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