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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전생에 나라를 팔았나
작가 : 황제아
작품등록일 : 2017.11.18

 
02. 마이너스 통장
작성일 : 17-11-21 01:15     조회 : 234     추천 : 0     분량 : 4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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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엄마 갑자기 선은 무슨 선이야. 나 저번에 말한 거 못들었어? 비혼주의라니까, 나?”

 

 전화기 너머의 엄마의 애절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비자발적, 비혼주의자 주원의 통화가 계속됐다.

 가뜩이나 어제 회사의 오차장의 개저씨 발언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다운 되었던 주원에게 엄마의 전화는 피곤 그 자체였다.

 

 -낸들아니, 네 아버지가 갑자기 들어와서 그러시는 데?

 

 “아빠 나 모르게 뭐, 결혼 정보회사 이런데 등록 한 거 아니야? 내가 비혼이라고 말해서?

 

 지난 번 소개팅이 엎어지고 난 뒤에, 서른을 코 앞에 두고도 일만 할 거냐는 부모님의 성화에 비혼을 외치고 나왔던 주원은 밀려오는 두통에 이마를 붙잡았다.

 

 조용조용히 전화를 받는다고 화장실로 들어와 받았지만, 어쩔 수 없이 들리는 그녀의 통화에 화장실을 나오던 여직원들과 마주치며 눈인사를 했다.

 

 주원의 전화통화를 들은 그녀들은 자신들도 이해 한다는 듯 눈을 찡끗해 보였지만, 막상 주원은 기분이 전혀 좋지 않았다.

 

 얼른 엄마의 전화를 끊고 싶었지만 엄마의 앓는 소리에 매정하게 끊을 주원도 아니었다.

 

 -그러게, 왜 아빠 있는 데서 그런 소리를 해. 다 때 되면 좋은 인연 나타날텐데.

 

 굳이 주원에게 결혼 강요를 하지 않는 엄마는 괜한 소리를 아빠 앞에서 해서 난리라며 주원의 탓으로 돌렸다.

 

 “난, 진짜 모르겠으니까. 그리고 우리 요새 바빠. 정신 없다구, 선 보러 나갈 시간도 없어요. 엄마가 해결해. 알았지?”

 

 주원은 전화를 마무리 하기 위해 급하게 엄마에게 상황을 맡겼다.

 

 -난 진짜 몰라. 이번주에 그러니까 집에 와서 아빠랑 얘기해. 난 너한테 전하라는 말만 듣고 전했어. 내가 할 일은 끝이야!

 

 급하게 엄마의 전화를 끊은 주원은 끊어진 휴대전화를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시집은 무슨 시집. 학자금 대출에 전세 자금 대출까지 이제야 겨우 갚고 숨통 트이는 구만. 휴.”

 

 입사 5년만에 드디어 어느 정도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코 앞까지 다가온 그녀에게 결혼은 멀게만 느껴졌다.

 더구나 힘들게 들어온 회사에서 바쁘게 일을 해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난 번 소개팅만해도 그랬다.

 광고회사 대리라는 말에 두 손 들고 반겼던 소개팅남은 2주 정도 연락을 주고 받더니 광고회사가 이렇게 바쁜 줄 몰랐다며 두 손 두발 다 들고 나가 떨어졌었다.

 2주동안 연락을 주고 받으며 어느 정도 정이 들만큼 들었던 주원에게는 허망함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랬던 그녀에게 갑작스러운 선이라니.

 

 연애도 안되는 걸, 결혼을 하라고?

 

 주원은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아빠, 시대가 바뀌었어요. 요즘 남자들도 얼마나 재는 데, 같은 조건이면 이왕이면 안바쁜 맞벌이 하는 여자를 선호하지, 아빠 딸은 이번 생은 망한 것 같네요.’

 

 주원은 씁쓸한 마음을 안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

 

 컴퓨터 모니터에 눈을 고정한 체 올라온 서류들을 검토하던 태오는 뻐근한 눈가 근육을 꾹꾹 눌렀다.

 

 수 번 꾹꾹 눌러가며 어느 정도 피로가 나아 졌을 때, 눈을 뜬 태오는 멀리 하고 있었던 휴대 전화를 꺼냈다.

 급한 용무의 전화는 주로 비서실로 연락이 오기 때문에 개인 전화는 업무중에는 멀리 하게 된 태오는 자신의 전화였지만 주로 시간을 보는 용도나 본가에서 오는 연락을 받는 데 쓰는 정도였다.

 

 부재중 5통

 

 평소 같으면 한 통 전화를 넣은 후에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들인데 5통이나 부재중이 남겨 있는 것을 보고 태오는 미간이 찌뿌려졌다.

 좋지 않은 기운이었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태오는 통화 버튼을 눌러 수화음을 듣고 있었다.

 

 잠시 후, 잠이 들었다 깬듯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태오야. 요새도 바쁜거야?

 

 다행히 전화를 받은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걱정한 만큼의 다급함은 없었다.

 

 “네. 부재중이 많이 남겨진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안도 하면서 태오는 차분히 용건을 물었다.

 

 -다른 게 아니고, 요새 네가 바쁜 건 알겠지만. 언제 한번 내려오지 그래?

 어머니는 바쁜 아들을 오라가라 하는 게 미안한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평소 같았으면 대답만 대충 하고 끊을 태오였지만, 늦은 시간에 전화를 받으신 잠이 묻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 어머니의 뜻으로 그를 내려오라고 하실 분이 아님을 잘 알기에 태오는 한참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주말에 내려갈게요.”

 

 -그럴래? 그래, 할아버지가 꼭 하실 말이 있으시다니까 내려와, 너 좋아하는 소고기 뭇국도 끓여 놓을게.

 

 어머니는 아들의 한 마디에 금세 반기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늦었는 데, 주무세요.”

 

 -그래, 너도 항상 무리하지 말고. 이제 들어가, 응?

 

 태오는 먹먹한 마음으로 어머니와의 통화를 마무리했다.

 태오가 급하게 마무리 할 일은 남아 있었지만, 아까 김실장이 넘기고 간 광고회사 자료들을 보려면 두어시간은 금세 지나 갈 것 같았다.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가 마음에 걸린 태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집어 들었다.

 

 **

 

 “응? 난 몰라. 이번 프로젝트 맡고 마무리까지 하면 유학 갈거야. 도저히 안되겠어.”

 

 -그 정도야? 매번 힘들었어도 잘 버티더니.

 

 한 쪽 귀에 전화기를 가져다 댄 후에 PT자료를 준비하는 주원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 묻어놨다.

 플라잉톡 쪽에서 광고사를 알아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사측에서 꽤나 눈여겨 보고있는 큰 프로젝트였다.

 광고 없이도 오랫동안 1위를 뺏기지 않았던 펜팔어플이었던 플라잉톡이 5년만에 첫 광고를 시작한다니, 이것만 딴다면 회사에서 입지는 물론 성과금도 두둑히 들어 올 걸 예상했다.

 그 정도라면 퇴직을 하고 유학과 해외 광고 회사 취업의 길까지 열릴 것이라 꿈의 계획까지 금세 세운 주원이었다.

 

 학창시절부터 일본 광고 회사에 취업하는 게 주원의 꿈이었던 걸 잘 아는 화영이도 통화를 하며 그녀의 이야기가 막연히 내 뱉는 소리는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현재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극에 치닫고 있지는 않은 지 걱정이 되어 늦은 시간에도 전화를 쉽게 끊지 못했다.

 

 “엄마는 전화해서 갑자기 선을 보라고 난리시고.”

 

 -선? 갑자기 왠?

 

 “몰라, 갑자기 아빠가 선자리 들어왔으니까 주말에 집에 오라는데.”

 

 -너 취집, 취집 할 때도 있었잖아. 그냥 가볍게 보면 되지 뭐.

 

 “말이 취집이지. 시집가는 것도 다 돈이야. 그리고 취집 갈 애들은 이미 갔어. 우리 같은 애들은 열심히 벌어서 맞벌이 하면서 힘들게 살아야되는 데, 이제 프러스 좀 되나 하는데 또 빚을 지고 시집을 가라고? 됐다. 나는 유학 갈거야.”

 

 한 쪽 귀에 전화기를 낀 체 통화를 하며 마우스를 딸깍딸깍이는 주원은 현실 파악을 아주 잘 하고 있다는 듯 취집이라는 소리에 정색을 했다.

 취집이란 소리도 철 없을 때 했던 소리였다. 그저 스무 살 중반 쯤 되면 사랑하는 사람이랑 눈 맞아 결혼하고, 알콩달콩 살림이나 하면서 사는 게 행복인 줄 알았지만 결혼은 현실이었다.

 그때도 못한 결혼을 모아 놓은 것도 없는데 하라고?

 그것도 새로운 빚을 져 가면서 또 갚으라고?

 

 **

 

 

 절대 선 따위는 보러 나오지 않겠다고 장담했던 주원은 아침부터 미용실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생전 처음 와보는 호텔 로비를 들어서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대리석으로 들어서는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의 널찍한 호텔 로비를 들어서자 어디로 발길을 둬야 할지 그녀는 감이 오지 않았다.

 

 마침 그녀의 앞을 지나치는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보였다.

 

 “저기, 커피숍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해요?”

 

 “아, 네. 중앙로비 오른 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직원의 친절한 안내에 꾸벅인사를 한 주원은 약속장소인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일요일 이른 점심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호텔 커피숍에는 자리 자리마다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뭐야. 나 빼고 다들 이렇게 살아왔어? 선 보면서? 다들 결혼 못해서 안달이 났나.”

 

 남녀가 쌍을 이뤄 서로 조심스러운 대화가 오 가는 분위기의 커피숍 앞에 들어선 주원은 그 분위기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손님. 일행 분 성함이?”

 

 직원이 주원에게 다가와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상대방의 이름을 물었다.

 주말 아침부터, 메이크업까지 완벽하게 맞친 그녀가 온 목적은 맞선 밖에 없다는 걸 직원도 잘 아는 듯한 눈치였다.

 

 “김태오씨요.”

 

 “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미 맞선상대인 남자도 미리 도착해 있었는 지, 주원의 대답에 직원의 표정이 해사해졌다.

 조심스러운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주원도 따라 들어갔다.

 긴장이 좀처럼 되지 않는 주원이었지만, 양 쪽 테이블 모두 서로 하하 호호, 가식적인 웃음을 주고 받으며 호구 조사를 하고 있는 테이블 사이를 지나가니 조금씩 와 닿기 시작했다.

 

 ‘나도 저렇게 웃어야하는 거야?’

 

 입을 가리고 차분하게 웃는 여자들 사이를 지나가니, 주원도 따라 조심스러워졌다.

 

 주원이 걱정을 하는 사이, 직원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넓은 커피숍에서도 중앙 창가자리에 자리 잡은 맞선남을 향해 주원이 조심스럽게 오던 걸음을 멈추고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선 따위는 보지 않을 거라, 비혼 주의를 외치던 주원에게 맞선을 나온 생전 처음 보는 맞선남에게서 후광이 비춰지는 걸 느꼈다.

 

 ‘대박. 원래 잘생기고, 완벽한 남자들은 진작에 예쁜 애들이 낚아 채어가 임자가 있거나, 게이거나. 아니였어?’

 

 헉하는 소리가 나올 뻔 한걸 참은 주원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 주원입니다.”

 

 주원이 도착한 걸 본 맞선남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있을 때 보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의 모습은 더욱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작지 않은 키의 주원이 올려다 볼 정도로 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원을 향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김태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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