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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봉주르 주피터(Bonjour Jupiter.)
작가 : 안경잡이
작품등록일 : 2017.11.17

한류에 빠진 프랑스국적의 저승사자(주피터)가 죽어야하는 사람을 잘못 데려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9.
작성일 : 17-12-09 00:53     조회 : 301     추천 : 0     분량 : 2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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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던 세은은 잠시 후 주피터를 바라봤다. 찔리는 게 있었던 주피터는 세은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몇 분 전까지 세은은 주피터가 잘 생겼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신한테 저지른 실수를 알게 되면서 주피터는 더 이상 잘 생겨 보이지 않았다. 주피터는 그저 빙구미 뿜뿜 풍기고 다니는 서양바보로 보일 뿐이었다.

 

 “그러면 나보고 이대로 죽으라는 거에요?”

 “네에.......”

 

 다시 한 번 자신의 운명을 확인한 세은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 세은은 삶에 대한 애착이 적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세은이 특별히 게으르거나 생각이 없는 학생은 아니었다. 현재 나이에 비해 기대수명이 워낙 길었던 탓에 아직은 놀아도 될 때라고 생각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세은뿐만이 아니라 또래 학생들이 하는 아주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은은 기대수명을 반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여자화장실 앞에서 죽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좀처럼 현재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세은의 입에서 나오는 걸 한 숨 밖에 없었다. 세은의 근심걱정을 덜어주고 싶었던 주피터는 다시 한 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여기 있는 것도 좋지만 저승도 나쁘지 않아요. 일단 저승에 가면 다시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그리고 해야 하는 일도 없구요. 그냥 이승에 사는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 지켜보면서 시간만 보내면 돼요. 그러니까 한 번 가보세요. 진짜 후회 안하실 거에요.”

 

 주피터는 마치 홈쇼핑 쇼호스트가 소비자들을 향해 호객행위하듯이 세은에게 저승을 홍보했다. 하지만 아직 죽을 생각이 없었던 세은에게 주피터의 말은 의미없는 개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말조차 아깝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세은이 무서웠던 주피터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가며 환하게 웃었다.

 

 “웃어?”

 “아, 아니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웃은 거였지만 세은의 협박에 가까운 말을 들은 주피터는 잽싸게 입을 다물었다. 방금 전까진 주피터가 갑이고, 세은이 을이었지만, 분위기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하지만 주피터에게 갑질한다고 한들 변하는 게 아무것도 없단 걸 알고 있었던 세은은 계속해서 한숨만 푹푹 쉴 뿐이었다.

 

 “내가 나이는 어릴 거 같지만 억울한 게 있어서 그런데, 말 놔도 되지?”

 “네. 그러세요.”

 “착하네. 우리 주피터.”

 

 죽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두려운 게 없어진 세은은 마치 반려견 다루듯 주피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개한 인간이 머리를 쓰다듬는다는 게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일단 비위를 맞춰야겠다고 생각한 주피터는 고개를 좌우로 15도씩 흔들어주며 기분 좋다는 뜻을 비쳤다. 주피터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 세은은 좀 전보다 편해진 얼굴로 궁금한 걸 묻기 시작했다.

 

 “근데 저승사자도 아프고 그래?”

 “그럼요. 인간들처럼 아픈 건 아니지만 제때 영혼을 수거하지 못하면 아프다가 소멸되요.”

 “소멸된다는 게 뭐야?”

 “존재자체가 없어진다는 거죠.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생각할 수 없는, 진짜 무(無)로 돌아가는 거에요.”

 

 철학에, 그리고 존재에 대해 10원어치도 관심이 없었던 세은은 주피터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 자체도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은 생각 없는 세은조차도 오싹하게 만들만큼 무서운 말이었다. 주피터가 한 말을 서둘러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었던 세은은 황급히 화제를 바꿨다.

 

 “그러면 오늘은 네가 그 아저씨 도와주려고 대신 온 거야?”

 “네. 도와주고 싶은 것도 있고, 최근 불고 있는 한류열풍에도 관심이 있어서 한국에 와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내려왔는데 사고만 치고 말았네요.”

 

 주피터의 말을 들으면서 세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죽음을 삶과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죽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피터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아프다는 것도 있고, 한류에 대해서도 아는 걸 보면 저승이 이승과 전혀 다른 공간일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아직 가보진 않았지만 저승도 이승만큼 살만한 곳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 세은은 천천히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생각을 정리했다.

 

 “아........”

 

 생각을 정리하던 세은은 화장실 앞에서 장렬하게 쓰러져있는 자신의 육체를 보게 되었다. 장렬하게 쓰러져있는 육체의 가랑이사이에선 노란색 액체가 마치 선혈처럼 흐르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쓰러져있는 육체에서 아등바등대고 있었던 세은은 노란색 액체의 정체가 뭔지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 똥쟁이라는 별명이 생기면서 전학까지 생각했었던 세은에게 지금 상황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끔직했다.

 

 ‘진짜 죽어야 되나? 저 모습을 친구들한테 보여주는 건 진짜 죽는 것만큼 싫은데.’

 “그래요. 죽으셔도 돼요. 제가 잘 도와드릴게요.”

 

 자신의 육체를 보며 낙담한 세은은 분명히 속으로 말했었다. 하지만 주피터는 마치 세은의 말을 듣고 있던 것처럼 대답했다.

 

 “난 분명 속으로 말했는데 어떻게 들은 거야?”

 “세은씨는 육체가 없잖아요. 육체가 없으면 속마음도 없는 거에요.”

 

 주피터의 말에 다시 한 번 자신이 죽었다는 걸 실감한 세은은 한 숨만 내쉬었다. 그리고 그런 세은을 바라보던 주피터도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이는 양호실 가서 세은이 죽었나 살았나 한 번 보고 와라.”

 “네.”

 

 세은이 좀처럼 교실로 돌아오지 않자, 수학선생님은 한결을 양호실로 보냈다. 50문제? 아니, 100문제 정도? 수학선생님이 풀고 있는 문제와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적어도 50번 이상 풀었던 한결에게 수학시간은 졸음을 참아야하는 고문과도 같았다. 교실에서 나오기 전까지 표정관리하던 한결은, 복도로 나온 뒤에야 환하게 웃었다. 아무도 없는 복도를 혼자 걷게 된 한결은 마치 김연아선수가 된 것처럼 트리플악셀과 스파이럴을 선보이며 자유가 된 기분을 만끽했다. 복도를 지나 양호실로 내려가는 계단에 도착한 한결은 응고된 피(?)를 보이며 화장실 앞에 쓰러져있는 세은을 발견하게 되었다. 깜짝 놀란 한결은 교실쪽 벽에 몸을 바짝 붙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누, 누구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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