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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봉주르 주피터(Bonjour Jupiter.)
작가 : 안경잡이
작품등록일 : 2017.11.17

한류에 빠진 프랑스국적의 저승사자(주피터)가 죽어야하는 사람을 잘못 데려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4.
작성일 : 17-11-23 14:31     조회 : 297     추천 : 0     분량 : 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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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배고프다.”

 “야, 넌 그 말 말고 할 줄 아는 말이 없냐?”

 “지는.”

 

 아빠한테 용돈을 받았을 때만 해도 세은은 온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었다. 하지만 만수르처럼 수 조원대의 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돈은 쓰다보면 언젠가 마르는 법이었다. 게다가 세은과 세은의 베프인 하나는 올해부터 먹으면 바로 소화가 되는 불치병(?)에 걸린 상태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매점과 김밥천국을 들락날락거리면서 5만원에 가까웠던 용돈은 문제집 한 권 사지 못하고, 3일 만에 배설물이 되어 하수도처리장으로 흘러가버렸다.

 

 “엄마한테 제육 좀 해달라고 할까?”

 “요즘 안 바쁘셔?”

 “바쁜 거랑 상관없지. 어차피 제육 만들 때 고기만 조금 더 넣으면 되는데.”

 “하시는 김에 잡채도 좀 해주셨으면 좋겠다. 너희 어머니 잡채 진짜 맛있는데.”

 

 등굣길에 만났지만 세은과 하나는 하교 후 먹거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키하고 외모, 그리고 성격과 식성까지 세은과 하나는 자매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닮아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둘이 처음부터 친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맨 처음 세은과 하나는 친구가 아닌 원수로 만났었다.

 

 “야, 너 규연이가 싫다고 하는데 왜 자꾸 쫓아다녀.”

 “내가 쫓아다니는 거 아니거든. 규연이랑 같은 학원에 다니면서 자주 만나는 거야. 그리고 쫓아다닌 걸로 따지면 내가 아니라 규연이가 먼저 나 좋다면서 쫓아다녔거든?”

 “거짓말하지마. 규연이가 왜 메주같이 생긴 애를 쫓아다니냐!”

 “뭐?!”

 

 눈에 불을 켜고 말다툼하던 세은과 하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상대방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어? 생각보다 쎈데........’

 

 어느 한쪽의 힘이 절대적으로 우세했다면 머리채를 잡고 있는 손을 거칠게 움직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잡히는 순간 상대방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세은과 하나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면서 싸움을 말리기 위해, 혹은 구경하기 위해 온 학생들도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던 세은과 하나는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구경꾼들마저 사라지면서 텅 빈 교실에 단 둘이 남게 된 세은과 하나는 좀처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야!”

 

 의미 없는 대치를 이어가던 세은과 하나는 담임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은 뒤에야 합법적으로 상대방의 머리끄댕이를 놓을 수 있었다. 상대방이 만만치 않다는 걸 확인한 세은과 하나는 힘이 아닌 행동으로 자신이 규연의 여자친구임을 어필하려고 했다. 엉겁결에 세은과 하나의 사랑을 받게 된 규연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랑싸움에서 자존심싸움으로 변해버린 이들의 싸움에서 규연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규연은 그저 장난감마냥 이들에게 휩쓸려 다니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오늘은 학원 끝나고 규연이 나랑 서점가기로 했으니까 먼저 집에 가는 게 좋을 걸?”

 “웃기시네. 규연이가 공부 가르쳐준다고 했거든? 그러니까 서점은 너 혼자 가게 될 거야.”

 

 신경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던 세은과 하나는 건널목 앞에서 규연을 보게 되었다. 방금 전까지 규연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세은과 하나는 경쟁하듯이 달려갔다. 그러면서 규연 옆에 다소곳하게 서 있는 주현이를 보게 되었다.

 

 “하........”

 

 라이벌이 옆에 있는 학생이었다면 세은이나 하나나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주현이는 그렇지 않았다. 튼튼한 다리가 뿌리마냥 땅에 박혀 움직이는 세은과 하나와 달리 주현은 강한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듯 가냘픈 몸이었다. 게다가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장한 소위 말하는 퀸카였다. 도저히 주현이와 대적할 자신이 없었던 세은과 하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패버릴까?”

 

 애초에 규연이가 주현이와 사귀고 있었다면, 아니 사귀진 않더라도 주현이를 좋아한다는 걸 말해줬다면 세은이와 하나는 애초부터 시작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규연이는 그러지 않았다. 세은이와 하나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척하더니 뜬금없이 주현이와 만나는 규연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방과 후 규연을 여자화장실로 불러낸 세은과 하나는 신발주머니와 가방으로 신나게 규연이를 때렸다. 지은 죄를 알고 있던 걸까? 억울하다며 도망갈 법도 했지만, 규연이는 묵묵히 이들의 매질을 버텨냈다.

 

 “수퍼에서 쿨피스 하나 먹자. 내가 살게.”

 

 10여분 동안 이어진 매질을 끝낸 세은은 하나에게 쿨피스를 제안했다. 머리끄댕이까지 잡았었지만 세은이의 외모와 성격이 마음에 들었던 하나는 쿨피스를 마신 후, 간식으로 떡볶이를 샀다. 쿨피스와 떡볶이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세은과 하나는 둘도 없는 단짝이 된 것이었다.

 

 “어. 저기 결이 아니야?”

 

 배고픔에 힘없이 걷고 있는 하나와 세은 앞에 갑자기 큰 길에서 합류하는 무리들이 나타났다. 남자 교복 하나에 여자 교복 세 명. 자연스럽게 의자왕 같은 포스를 뽐내며 학교에 갈 수 있는 남학생은 한결 밖에 없었다. 등굣길에 한결을 보게 된 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세은은 관심없는 듯 발걸음을 더욱 느리게 하며 하나와 거리를 벌렸다.

 

 “우리도 결이랑 같이 가자.”

 “됐어. 난 저 무리에 끼기 싫으니까 갈 테면 혼자 가.”

 

 하나와 달리 세은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한결과 함께 걷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세은을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었던 하나는 어쩔 수 없이 걷는 속도를 늦춰가며 세은과 발걸음을 맞췄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같이 걷자는 건데, 그것도 싫어?”

 “난 저렇게 가식적인 애 싫어.”

 “결이가 가식적이라고?”

 

 한결은 단순히 성적만 좋은 우등생이 아니라 매사에 모범적으로 행동하는 모범생이기도 했다. 그래서 주위 학생들도 한결을 부러워하기만 할 뿐, 질투하지도 않았다. 한결처럼 행동하라고 했을 때, 진짜로 행동할 수 있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하나는 한결에게 가식적이라고 말하는 세은의 말에 귀를 기울일수 밖에 없었다.

 

 “원래 정치인들도 선거 끝나기 전까지만 좋은 사람인 척하고 다니잖아. 나중에 당선되고 나면 얼굴 싹 바꾸고 지들 이익만 찾아다니지, 선거 전에 했던 말들을 기억하기나 하냐?”

 

 질투였다. 세은이 한결에게 느끼는 감정은 질투가 확실했다. 오르지도 못할 나무를 바라보며 투정하는 세은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진 하나는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해. 결이는 나도 부러우니까.”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본의 아니게 속마음을 들켜버리면서 할 말이 없어진 세은은 일부러 쿵쿵거리며 걸었다. 같이 다니면서 세은이의 지금 행동이 뭘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하나는 말없이 세은이 뒤를 쫓아가며 위로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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