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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봉주르 주피터(Bonjour Jupiter.)
작가 : 안경잡이
작품등록일 : 2017.11.17

한류에 빠진 프랑스국적의 저승사자(주피터)가 죽어야하는 사람을 잘못 데려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3.
작성일 : 17-11-22 23:02     조회 : 298     추천 : 0     분량 : 2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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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몇 번씩이나 헛구역질하며 검은색 물을 마시던 한결은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이 한, 두 방울 떨어질 때쯤에야 밥 공기를 비워낼 수 있었다. 검은색 물에 들어있던 불쾌한 건더기들이 입 속을 휘젓고 다니자 한결은 물통을 찾아 냉장고로 향했다. 하지만 한결엄마는 한결이 물 먹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냉장고로 향하는 한결의 옷을 잡은 한결엄마는 억지로 입 안에 드레싱이 묻어있는 사과를 집어넣었다.

 

 “이제 수능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조금만 참자, 알겠지?”

 

 입 안에 사과가 들어가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한결은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입 안에 돌고 있는 지네 다리와 말린 아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더기들을 잊고 싶었던 한결은 걸신이 들린 것처럼 접시에 들어있는 채소들을 비워나갔다. 복스럽게 먹는 한결의 모습이 보기 좋았던 엄마는 환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공부는 할 만하니?”

 “네.”

 “어제는 몇 시에 잤는데?”

 “1시쯤에 잔 거 같아요.”

 

 한결의 말에 엄마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뒤늦게 자신이 실수한 걸 깨닫게 된 한결은 앞에 했던 말을 번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든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언변으로 앞에 말한 상황을 뒤집을 자신이 없었던 한결은 엄마의 처분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요즘에 기력이 떨어진 것 같아?”

 “아니요. 그건 아니고 피로가 쌓인 거 같아서요.”

 “어떤 식으로 피로가 쌓인 걸 느끼는데? 자세하게 얘기해봐.”

 

 한결의 이상을 들은 엄마는 아들이 아닌, 한의원을 방문한 환자대하듯 한결에게 증상을 요구했다. 이런 과정을 3번 정도 거치면서 한약에 들어가는 지네 수가 30마리에서 300마리로 늘어난 걸 알고 있었던 한결은 말 한 마디도 꺼내기도 조심스러웠다. 지금 상황을 아무것도 아닌 일인 것처럼 포장해야했던 한결은 샐러드를 먹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괜찮은 핑계거리를 찾아다녔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괜찮은 핑계거리를 발견한 한결은 입 안에 들어있던 음식물들을 모두 식도 안으로 집어넣은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교내 행사가 있었는데 제가 빠지면 안 될 것 같아서 방과 후에도 했었는데, 그게 좀 힘들었나 봐요.”

 “무슨 행사?”

 “사진전이요. 학생들이 교내에서 찍은 사진을 복도에서 전시하고 있거든요.”

 “그걸 왜 아들이 해? 아들이 안 해도 되는 일이잖아.”

 “학생들이 찍은 사진을 컨셉에 맞게 분류해야 하는데, 그 작업이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거든요. 정해진 컨셉은 한정적인데, 한정된 컨셉에 맞춰서 사진을 집어넣고, 사연까지 만드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음........”

 

 한결은 진정성을 갖고 설득에 나섰지만, 엄마는 좀처럼 수긍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엄마가 사진전을 확인하러 학교에 온다거나, 담임선생님에게 연락한다면 한결은 혼자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을 맞아야만 했다.

 

 “그래. 공부만 하는 것보단 잠깐씩은 그렇게 머리를 식히는 게 좋긴 하겠다. 언제까지 하는 건데 그건?”

 “지난 주에 다 끝났어요. 이번 주부터는 평소처럼 공부하면 돼요.”

 

 사진전이 끝났다는 말에 한결엄마는 다시 한 번 만족스런 미소를 보였다. 들키지 않고 무사히 거짓말한 걸 숨긴 한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우리 아들은 수능 끝나고 나면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아뇨.”

 “왜? 대학가면 놀 시간이 더 없을 텐데, 수능 끝나고 시간 빌 때 어디든 떠나는 게 좋아. 그래야 후회 안 해.”

 

 매일매일 정해진 공부량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았던 한결에게 엄마의 말은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지만 한결엄마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한결이 성실하게 공부해서 성적을 내는 스타일이라면 한결엄마는 전형적인 천재였다. 이해력과 암기력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월등하게 뛰어났던 한결엄마에게 100점은 공부해야 맞을 수 있는 점수가 아니고, 학생이라면 당연히 받아야하는 점수였다. 그래서 한결이 전국에서 50등 안에 드는 성적을 내는 것도 피나는 노력의 결과가 아닌,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엄마가 우리 아들 수능 끝나면 같이 알래스카 가려고 비행기 예약해놨어.”

 “알래스카요?”

 “응. 천혜자연이 주는 혜택도 한 번 느껴보고, 오로라도 보고 오려고. 전세계에서 오로라가 가장 예쁜 곳이 알래스카라고 하잖아. 생각만 해도 황홀하지 않니?”

 권유형으로 말했지만 엄마의 말은 사실상 통보에 가까웠다. 엄마의 통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한결은 미소로 대답한 뒤 방으로 들어갔다. 한결의 방은 거실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공부하기 가장 좋은 형태로 세팅되어 있었다. 최고의 환경과 유능한 부모님, 그리고 타고난 성격까지 한결은 공부를 못할래야 못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바라는 최고의 환경이었지만, 숨조차 마음 놓고 쉴 수 없었던 이 환경이 한결은 지독히도 싫었다.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한결은 의식이란 게 생겨날 때부터 의사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초, 중, 고등학교 인적성검사 때 항상 장래희망란에 의사라고 적었으며, 선생님도 한결의 장래희망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한결의 장래희망이 의사인 건 아니었다. 외과의사인 아버지와 한의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의사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고,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의사가 될 수 있는 길을 걷고 있는 것뿐이었다. 한결은 인문학에도 관심이 있었고, 봉사활동에도 관심 있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지만 역사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렇지만 해야 하는 건 의학공부였다. 그건 19년 동안 한결로 살아온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학교나 가자........”

 

 본인의 운명이 원망스러웠지만 거역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한결은 터덜거리며 화장대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완전 다를 순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자신을 만나기 위해 브러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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