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용돈 좀 주면 안 돼?”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세은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비음까지 섞어가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살랑살랑이 아니라 꿈틀꿈틀거리는 세은의 몸은 귀엽다기보다는 버거워보였다. 남이었다면 풍기문란죄로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겠지만, 다행히도 세은이 애교 부리는 사람은 아빠였다. 세은이 하는 행동이라면 뭐든지 예뻐 보였던 아빠는 잠시도 뜸들이지 않고 대답했다.
“얼마?”
아빠한테서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자 세은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25일부터 거래처수금을 시작하는 아빠가 가장 부유할 때에는 월초였다. 정확한 타이밍에 아빠의 대답을 들은 세은은 이제 적당한 액수를 부르기만 하면 됐다.
“야, 오세은........”
세은이 행복한 고민에 빠질 때쯤, 식탁에 앉아 우유로 매운 맛에 중독된 혀를 달래고 있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엄마가 부른 건 이름 밖에 없었지만, 그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있는지는 세은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문제집 사야 되니까 2만원만.......”
세은의 말에 아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허름한 기지바지를 들었다. 여기저기 헤지고, 얼룩이 묻은 기지바지는 아버지의 인생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세은은 차마 아빠의 기지바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자.”
지갑이 아닌 주머니에서 대충 지폐를 꺼낸 아빠는 2만원 넘는 돈을 세은에게 건넸다. 하지만 뒤늦게 죄책감이 든 세은은 돈을 받지 못했다. 그러자 아빠는 억지로 손에 지폐를 쥐어준 뒤, 다시 밥상에 앉았다. 3만 9천원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으면서 기분은 좋았지만, 그 돈이 다 헤진 기지바지에서 나왔다는 건 세은을 한없이 우울하게 만들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하던 세은은 눈 딱 감고 소리쳤다.
“아빠, 사랑해!”
아직 학생인 세은이 아빠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밖에 없었다. 싸울 듯한 기세로 소리쳤지만, 그걸로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낸 세은은 밝게 웃으며 집에서 나갈 수 있었다. 세은이 집에서 나가자 식탁에서 입 안을 달래던 세은엄마가 천천히 거실로 나갔다.
“내가 용돈을 너무 많이 주죠, 요즘?”
“많기는...... 죽빵쳐서 딴 거야, 어제.”
“뭘 쳤다고요?”
“돈내기.”
“그럼 나도 좀 줘봐요. 사랑한다고 할 테니까.”
엄마의 말에 아빠는 절로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엄마는 도망가지 않고 똑바로 아빠를 쳐다봤다. 그 엄마에, 그 딸이라고 돈을 향한 세은엄마의 열정을 어찌할 수 없었던 아빠는 또다시 기지바지를 들었다.
“눈 감아봐.”
“네?”
“큰 거 꺼낼 테니까 눈 감으라고.”
큰 거라는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엄마는 재빨리 눈을 감았다.
‘얼마를 줄 거길래 눈까지 감으라고 하는 거지? 그새 돈을 모은 건가? 하긴 집에 오면 밥 있어, 술 있어, 안주까지 있는데, 돈 쓸 일이 없겠지. 기름값이라고 해봤자 한 달에 5만원이면 떡 칠 테니까. 용돈 20만원이 적은 건 아니지. 이 참에 한 달 용돈 10만원만 준다고 해볼까?’
세은엄마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사이, 세은아빠는 기지바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엉덩이 골 쪽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푸식푸식 새어나오는 방귀를 손아귀에 모으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방귀를 모은 세은아빠는 코로 가져가며 냄새를 확인했다. 너무 독한 냄새에 세은아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손을 펼칠 뻔했다. 하지만 좀 전 세은과 같이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세은아빠는 그러지 않았다. 정신이 헤롱헤롱한 와중에도 기가 막힌 선물을 주고 싶었던 세은아빠는 방귀가 모여있는 오른손을 세은엄마의 얼굴 앞에 살포시 펼쳐주었다.
“악!!!!!!!!”
큰 선물을 기대하고 있었던 세은엄마는 뜻밖의 선물에 어쩔 줄을 몰랐다. 세은아빠의 과도한 사랑에 보답해야했던 세은엄마는 쿠션과 방석, 파리채등을 집어던졌다. 하지만 세은엄마의 사랑은 끝내 세은아빠에게 도착하지 못했다. 자신의 회피능력이 만족스러웠던 세은아빠는 환하게 웃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쏴아~~~~~~~”
세트장인 건가? 블랙 앤 화이트로 꾸민 거실은 영화세트 혹은 모델하우스로 보일 만큼 깔끔하고 넓었다. 보기에는 굉장히 예뻤지만, 이전에 나온 세은의 집과 달리 사람 사는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잠시 후 샤워기에서 물 나오는 소리가 멈추더니 욕실에서 한결이 머리를 말리며 나왔다. 사람이 인테리어를 닮은 걸까? 아니면 인테리어가 사람을 닮은 걸까? 한결의 외모 역시 일반적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학생들과 달랐다. 큰 키에 삐쩍 마른 몸은 한결이 운동과 거리가 먼 스타일이라는 걸 말해줬다. 그리고 뽀얗다 못해 희멀건한 피부와 단정한 머리스타일은 부모님의 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는 집에서 산다는 걸 말해줬다.
소파에 앉아 머리를 말리던 한결은 피곤한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졸 때 추해지는 것과 달리 졸면서도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걸 보니 외모도 상당히 뛰어난 것 같았다.
“씻었니?”
꾸벅꾸벅 졸던 한결의 고개가 소파 바닥과 닿을락말락 할 때쯤, 한결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목소리를 들은 한결은 익숙한 듯 눈에 힘을 주며 자연스럽게 소파에서 일어났다.
“내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진짜 잘 생겼다, 우리 결이.”
결이의 모습이 마냥 좋았던 엄마는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이른 아침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한결엄마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정갈하게 빗은 머리와 잡티 하나 없는 얼굴, 그리고 주름이 보이지 않는 옷까지 한결의 엄마는 현실 엄마가 아닌,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엄마의 모습이 갑갑하게 느껴진 결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집에선 편하게 계셔도 돼요.”
“아들이 수험생인데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 있겠니? 수능 끝나고 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테니까 그때까지만 힘내자, 우리. 알겠지?”
엄마의 말에 한결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엄마와 함께 주방에 도착한 한결은 맛깔스럽게 차려진 아침상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색 물을 보게 되었다. 일반적인 컵이 아니라, 밥공기에 들어있는 검은색 물은 한 눈에 봐도 양이 많아 보였다. 두려운 눈빛으로 검은색 물을 바라보던 한결은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그러자 엄마는 냉큼 검은색 물이 들어있는 밥공기를 들어 한결 앞에 가져다 놓았다.
“이거 우리 아들만 먹이려고 손님들한테도 안 파는 거야. 맛은 좀 그렇지만 효과는 알잖아, 아들도. 눈 딱 감고 마셔버려.”
엄마는 개구진 표정으로 밥공기를 들더니 마시는 흉내를 냈다. 마시는 척 흉내만 내는 입장에선 웃을 수 있었지만, 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고 있었던 한결로서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선 하수도에 버리고 싶었지만, 이걸 만들기 위해 노력한 엄마의 성의와 노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한결은 눈 딱 감고 검은색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