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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고잉홈
작가 : 에이슈
작품등록일 : 2017.11.17

덩치 큰 사회, 덩치 큰 사람들, 덩치 큰 세상속에 작은 사회, 작은 사람들. 치이거나 가려지거나 소멸되거나 하는 이 작은 사람들의 공간에 빛을 비춰주고 싶은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그들의 이야기이다.

 

작성일 : 17-11-17 13:17     조회 : 273     추천 : 0     분량 : 6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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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상처만 주는 변화를 갈구한다.

 

  “네, 박 충만 입니다.”

  “저....... 여보세요?”

  “예, 누구십니까?”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저씨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저........ 저, 승주....... 강 승준데요.......”

  “승주? ........... 아! 승주야! 네가 어쩐 일이야? 야, 인마! 어디 있었어? 아저씨한테 연락도 안 하고........ 자식이!”

  아저씨는 반가움, 의아함 섞인 말투로 꾸짖듯 말씀하셨다.

  “야, 인마! 아저씨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아줌마도 너 궁금해 하시고........ 연락할 방법이 있어야지. 어디니? 승주야, 잘 있는 거지?”

  “예, 전 잘 있어요.”

  “무슨 일 있어서 전화한 건 아니고?”

  아저씨가 물으셨다.

  “아니요. 그냥 잘 지내시는지 해서........ 그 때 감사하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그 땐 감사했습니다.”

  난 아저씨께 뒤늦은 인사를 건넸다.

  “자식이! 그 때가 언젠데? 승주야, 어디니? 멀지 않으면 아저씨 집에 한 번 안 올래? 아줌마도 너 인마, 가끔 나한테 묻는다. 와서 밥이라도 먹고 가. 응?”

  “네......... 네, 그럴게요.”

  아저씨 말에 난 그냥 대답했다.

  “언제 올래? 이번 주는....... 아저씨가 좀 바쁘니까......... 다음 주, 다음 주 주말이면 되겠다. 와라. 아줌마한테도 얘기해 놓을게. 꼭! 알았지?”

  “네, 그럴게요.”

  이번엔 아저씨의 제안을 조금 고려하며 대답했다.

  “자식! 연락 잘 했네. 잘 지낸다니 다행이다. 그럼 아저씨랑 아줌마 기다린다. 다음 주에 보자, 알았지?”

  아저씨는 자꾸 내 대답을 확인하려 하셨다. 난 “네!” 라고만 대답하고 통화를 마무리했지만 정말 가야할지는 망설여졌다. 박 지부장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많이 망설인 후였다. 다시 작은 케이지 안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 듯 이어져가는 내 생활이 무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차갑고 무겁기만 한 겨울을 그렇게 보낼 때에는 모르고 있던 감정들이, 눈이 녹고 볕이 따스해지고 마른 가지에 꽃망울이 앉으니 생겨나기 시작했다. 늘 겪는 계절의 변화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같은 햇볕과 같은 바람과 같은 싹들이 아니었다. 난 그것을 알지 못해 두려웠다. 그 쳇바퀴를, 작은 케이지 안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고민 끝에 겨우 생각해낸 일이 박 지부장 아저씨께 전화하는 일이었다. 그에게 연락을 하면 반가워해 주실까, 아니면 무언가 새로운 변화가 혹시 생기진 않을까. 어림없는 기대와 말도 안 되는 바람일지 모른다고도 생각했는데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쫓겨서였다.

  퇴근 후 ‘골목라면’에서 저녁을 해결하는 일, 잠들기 전까지 두어 시간 자동차 관련 책을 보는 일도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늘 그랬던 것들이지만 그 일상들은 날 괴롭혔다.

  예전엔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엄마가 없었어도, 비록 학교생활이 마음 편하진 않았어도 아빠와 단 둘이 보내는 똑같은 일상들은 완벽히 몸에 배어 내가 되어 있었다. 내가 겪은 일들이 무엇이었건 시간은 모든 고통을 낫게 해줄 줄만 알았다. 거의 그렇게 믿을 뻔 했다. 허나 다시 찾은 평온한 일상은 그리 자연스럽지 못했다. 아무리 시간을 보내도 몸에 배이지 않았다. 시간이 부족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인내심은 시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얼마만이니? 어서 들어와!”

  박 지부장님 댁 아주머니께선 내 손을 덥석 잡으시며 반겨주셨다. 버스 안에서부터 내리기 시작했던 눈이 내 머리와 어깨에 내려앉아있었다. 아주머니는 눈을 툭툭 털어주시며 말씀하셨다. 때 아닌 눈이 왔다. 꽃샘추위다. 따스한 봄과 피어나는 꽃을 시샘하는 눈은 처절했다.

  “춥지? 어떻게 지낸 거니?”

  “잘 지냈어요. 아주머니, 아저씨도 잘 계셨죠?”

  “그럼. 우리야 뭐........ 아저씬 좀 늦으신댔어. 배 많이 고프지?”

  “저........ 이거.........”

  나는 버스 정류장 근처 과일가게에서 산 딸기 한 팩이 든 검은 봉지를 천천히 내밀었다.

  “뭐 이런 것까지 사오느라고, 추운데....... 그래, 식사 후에 먹음 되겠다. 앉아.”

  아주머닌 봉지 안을 들여다보시고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씀하시다가 이내 표정을 바꾸시며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향하셨을 때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곧 낯선 누군가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어, 왔니?”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한 청년이 들어왔고 아주머니는 뒤돌아보시며 그를 맞이했다.

  “상진아, 처음 봤지? 인사해. 엄마가 전에 말한 적 있지? 아빠랑 같이 일하셨던 친구 분, 아들........ 승주.”

  “아, 안녕하세요.”

  아주머니는 나를 그에게 소개했고 그 청년은 내게 먼저 인사했다. 나도 꾸벅 인사했다.

  “우리 아들. 말년 휴가 나왔어........ 나이도 얼추 비슷하겠다. 둘이 친구처럼 지내면 되겠네!”

  아주머니는 밝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엄마, 저 배고파요.”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어색한 듯 내 눈을 한번 마주치고는 부엌으로 향하시는 아주머니를 향해 말했다.

  “어, 그래. 아빠는 좀 늦으시니까 우리 먼저 먹자. 조금만 기다려, 아들.”

  아주머니는 그의 말에 답하셨다. 난 거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냥 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무슨 핑계를 대야하나 생각했다. 약속이 있다고 할지, 갈 데가 있다고 할지........ 잠시 머릿속 가득 핑계거리를 찾고 있을 때 아주머니가 날 부르셨다.

  “승주야! 어서와. 밥 먹자. 아들! 밥 먹어!”

  조용한 목소리로 나를, 우렁찬 목소리로 방에 있는 아들을 아주머니는 부르셨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쭈뼛쭈뼛 식탁을 향해 움직였다. 방 안에 있던 그도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는 나를 어색해 하는 것 같았고 그의 옆자리에 앉게 된 나 또한 그랬다. 마주 보고 앉아 계신 아주머니는 냄비뚜껑을 여시며 말씀하셨다.

  “먹자. 훗! 아들 둘이랑 밥을 다 먹네? 우리 식구들 매일 먹는 거라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다. 많이 먹어, 승주야.”

  아주머니는 특유의 밝은 표정으로 나를 먼저 챙겨주셨다.

  “잘 먹겠습니다.”

  인사를 한 건 내가 아니라 내 옆에 앉은 그였다. 난 작은 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숟가락을 들었다. 무언가 불편했다. 내 앞으로 반찬들을 내밀며 챙겨주시는 아주머니가 고마웠지만 그렇게 내 앞에 놓인 고기반찬을, 허기가 졌는지 복스럽게 먹고 있는 그를 난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 예의를 다하려 노력했다. 수북이 퍼 주신 밥을 한 톨도 남김없이, 반찬은 조금씩 골고루 집어가며 먹어치웠다. 분명 맛있는 음식들이었으나 혀에 붙지 않았다.

  “잘 먹었습니다.”

  난 얼른 젓가락을 내려놓고 아주머니께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는 물을 가지러 가기위해 일어나셨다.

  “엄마, 밥 조금만 더요.......”

  마침 옆에 있던 그가 아주머니께 말했다.

  “친구 만났다며? 아무것도 안 먹고 들어 온 거야? 웬 저녁을 두 그릇이나 먹어?”

  “먹긴 먹었는데, 면을 먹었더니 배가 금방 꺼졌나봐.”

  “다들 군대 가면 살이 쭉 빠져서 오더만. 넌 어째 더 쪄 가지고 왔냐, 너무 배 터지게 먹지 좀 말어.”

  아주머니는 내 앞에 물 잔을, 그의 앞엔 밥 한 공기를 놓으며 말씀하셨다.

  “살이 쪄서 오면 좋은 거 아냐? 난 체질에 맞나봐, 군 생활이. 아니, 군대음식이.”

  모자 사이에 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 말없이 가져다주신 물을 마시고 있던 내게 아주머니는 말씀하셨다.

  “너도 좀 더 먹을래?”

  “아....... 아닙니다. 배불러요. 감사합니다.” “그래....... 맛있게 먹었니? 얘가 원래 밥을 좋아해. 승주 넌? 아이고! 내가 몇 번이나 식사대접을 하면서 뭐 좋아하는지도 한번 안 물어봤네!”

  “.......... 저도 그냥 다 좋아해요. 맛있게 먹었습니다.”

  난 대답했다.

  “그래? 그렇담 다행이구나. 이제 언제든지 놀러와. 가끔 이렇게 밥도 먹고 그러자.”

  아주머니는 말씀하셨다. 내 옆의 그는 여전히 복스럽게 두 그릇째 밥을 먹고 있었다.

  “저........ 아저씬 많이 늦으시나요?”

  “음....... 글쎄다. 많이 늦진 않을 거랬는데....... 아줌마가 딸기 좀 내 올게. 우리 후식 먹으면서 기다려 보자. 그동안 둘이 얘기 좀 하고 있으면 되지 뭐, 그치?”

  아주머니는 나란히 앉아있는 그와 나를 번갈이 보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저........ 실은......... 오래 있지는 못할 거 같아서요. 이따가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어, 정말? 왜? 좀 더 놀다가 아저씨 오면 뵙고 가지........”

  내 말에 아주머닌 아쉬워 하셨다.

  “죄송해요. 다음에 또 올게요.”

  “흠......... 아쉽네. 하필이면 아저씨가 늦는 날이어서......... 그래, 할 수 없지, 뭐.”

  그녀는 정말 아쉬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했다.

  “먼저 일어나서 죄송해요. 저녁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래. 곧 또 놀라와, 알았지? 우리 아들도 곧 제대하니까 이제부터 왕래하면서 가깝게 지내면 좋겠다.”

  아주머니의 말씀에 내 옆에 있던 그도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럼........”

  난 아주머니께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녀와 그녀의 아들은 얼른 나를 따라 일어났다. 그리고 현관까지 따라 나왔다.

  “그냥 식사하세요! 괜찮습니다. 죄송해요....... 아저씨께 안부 전해 주세요!”

  난 말했다.

  “그래. 조심해서 가고! 꼭 놀러 와라. 승주야!”

  “안녕히 계세요.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내가 두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보며 인사하자 그는 내게 어색하게 말했다. 나 역시 목인사로 어색한 답을 하고 그 집을 나왔다. 조금 전까지 내리던 눈은 그 새 그쳐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둡지만 짙은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꾸물거리는 하늘을 향해 입김을 뿜었다. 연기처럼 하얗게 퍼져 나갔다. 구름의 움직임을 보니 곧 다시 눈이 올 것 같았다. 이번엔 굵은 눈발이 펑펑 내릴 것만 같았다. 봄은 아직 멀었나 보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동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계속 꾸물거리는 어둔 하늘만 바라보다 버스에서 내렸다. 아직 눈은 오지 않고 있었다. 찬 밤공기에서 습기가 느껴졌다. 차갑고 습한 공기 속에서 어김없이 익숙한 국물냄새가 풍겨 왔다. 배가 부른 상태여서 먹고 싶진 않았지만 그 냄새는 따뜻한 느낌을 주며 나를 이끌었다.

  “어서 오세요.”

  귀에 익은 사장님의 목소리가 무척 반가웠다.

  “저........ 기......... 사장님!”

  난 입구에 들어서면서 사장님을 먼저 불렀다. 그는 바로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사장님과 눈이 마주친 건 처음이었다.

  “저....... 제가 저녁을 먹고 와서........ 오늘은 소주 한 잔만 하고 가도 될지.........”

  난 어렵게 말을 꺼냈지만 사장님은 냉큼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손짓으로 내가 늘 앉던 그 자리를 가리키셨다.

  “감사합니다.”

  난 사장님께 인사를 하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잠시 후, 그는 소주 한 병과 나를 이리로 이끌었던 그 국물에 어묵 몇 개를 담아 가져다 주시며 말씀하셨다.

  “날씨가 추워요.”

  “어! 고맙습니다!”

  사장님이 내게 인사 말고 다른 말을 해 주신 것도 처음이었다. 소주의 뚜껑을 열기 전에 국물이 담긴 사발을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아주 따뜻했다. 차게 얼었던 손이 녹는 듯 했다. 한참을 손을 녹이고 소주를 잔에 채웠다. 우선 한 잔을 그냥 마셨다. 그리 쓰지 않았다. 차갑게 소주가 넘어가고 난 사장님이 주신 따뜻한 국물을 떠마셨다. 적절히 체온이 맞춰지는 듯하면서 기분 좋게 넘어갔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금씩 눈이 날리기 시작한다. 난 빈 잔에 소주를 채워 놓고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좀 더 굵은 눈발이 날리더니 이내 펑펑 쏟아진다. 난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았다.

  ‘아빠..........’

  마음속으로 아빠를 불렀다. 눈이 올 때면 작업복 위에 쌓인 눈을 툭툭 털며 집으로 들어오시던 아빠의 모습이 생각났다. ‘눈도 오는데, 아들! 아빠랑 따끈한 국물에 소주 한 잔 할까?’ 하던 그의 목소리. 다시는 울 일은 없을 거라 믿었었는데 어이없이 무너진다. 초봄에 내리는 함박눈과 내 앞에 놓인 소주와 어묵국물을 번갈이 바라보았다. 또다시 눈앞이 흐려진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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