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가 하고 싶은 기억
아빠는 요리를 제법 했다. 특히 국물요리를 잘 만들었는데 언젠가부터 부엌에 계시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 졌다.
“아빠! 가스 불 좀 꺼줘!”
“어? 어....... 아들! 미안. 아빠가 좀 늦었네!”
욕실에서 발을 씻고 있을 때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난 찌개 끓는 냄새에 집에 막 들어서는 아빠에게 가스 불을 꺼 줄 것을 부탁했고 아빠는 오자마자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아빠의 손에는 비닐봉지 하나가 들려 있었고 그는 그것을 내려놓으며 찌개를 살폈다.
“점심이나 제 때 먹은 거야? 설마 여태껏 농성장에 있다 온 건 아니지?”
난 발을 닦고 나오면서 아빠에게 물었다.
“먹었어. 농성장이든 현장이든, 먹으니까 잔소리 좀 하지 마.”
아빠는 찌개 국물을 한 입 떠먹으며 말했다. 아빠의 회사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늘 그런 식으로 대충 둘러대는 그에게 내 잔소리는 점점 늘어만 갔다. 아빠는 그걸 아주 싫어했다.
“아들 생일인데....... 뭘 살 시간이 없어서....... 오늘 아빠랑 소주 한 잔 하자. 오면서 중국집에 배달 부탁해 놨어!”
아빠는 들고 온 비닐봉투를 가리키며 말했다.
“뭐 하러........ 찌개 데워서 밥 먹으면 되는데.”
내가 말했다.
“매정한 아빠 만들려고 그래? 생일날은 원래 고기도 먹고 오래 살라고 국수도 먹고 그러는 거야!”
아빠는 말했다.
6개월 전부터 아빠가 일하는 자동차 공장에 문제가 생겼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아빠는 대기업 자동차 공장에 취직했다. 타고난 성실함과 정비공으로 십 수 년을 일해 온 경력으로 당당히. 그 날, 아빠가 날 번쩍 안고 동네를 달렸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이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도, 내가 갖고 싶어 하던 것들을 사주는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셨다.
난 어릴 때부터 엄마가 없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 기억에 엄마란 존재는 없었다. 아빠는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내게 설명했지만 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릴 적 아빠가 일터로 나가면 난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할머니는 늘 입버릇처럼 누군가의 욕을 하곤 했다.
‘미친 년, 썅년, 벼락 맞을 년........’
난 어렸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대상은 엄마였고, 병으로 죽은 사람에게 그리 험한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또 내가 잠들어 있을 때 할머니와 아빠가 나누던 대화는 나에게 엄마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승주 애미 년, 연락 오지? 알면서도 모른 척 하면 네 놈도 똑같은 놈이여! 허이구........ 제 애미 고생하는 건 아무렇지 않은 겨? 허이구....... 이놈아! 닮을 게 없어서 못난 애미 팔자를 닮어! 어이구..........”
“내가 왜 엄마한테 거짓말을 하겠어! 그만 좀 해! 승주 깨겠어!”
가끔씩 되풀이되는 할머니의 하소연을 아빠는 신경질적으로 받곤 했었다. 두 분의 다툼에 난 잠이 깨곤 했었는데, 자는 척 하다가 다시 잠드는 일이 내겐 몹시 힘든 일이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날 엄마 대신 돌보다가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가셨었는데 그러고는 약 한 달 만이었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밤낮없이 일해야 했던 아빠는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어린 나를 돌봐 줄 곳을 물색해야 했다. 할머니 외에 다른 가족이나 친척이 없었던 아빤 결국 상황을 해결하지 못했다. 여덟 살 때부터 난 집에서 혼자 있는 법을 익혀야 했다. 아빠와 함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내가 잠들어 있는 새벽 시간뿐이었고 아빠가 쉴 수 있는 날은 내가 등교하는 수요일, 그것도 한 달에 두 번 뿐이었다. 그래도 아빠는 단 한 시간이라도 더 나와 함께 하려고 애썼다는 것을 나는 안다. 쉬는 날엔 꼭 나를 데리고 우리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짜장면을 먹고 들어오기도 했다. 오는 길에 반 친구들이라도 만나면 친구들은 내게 “너네 삼촌이야?” 라고 묻곤 했었는데 난 그럴 때마다 “우리 아빠야!” 라고 대답하는 게 어찌나 우쭐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아빠는 자동차 공장에 취직한 것을 더욱 기뻐하셨다. 게다가 관리직이어서 교대근무를 할 일도 휴가를 반납해야 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실무는 입사조건과는 차이가 있었다. 입사 초반에는 회사 일에 적응하는 것을 꽤 힘들어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유난히 등을 많이 보였고 살도 빠졌던 것 같다. 그래도 아빠는 정비소보다는 나은 급여 조건과 환경으로 위안을 받았다. 나도 어차피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진 참이어서 괜찮았다. 그렇게 아빠는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조금씩 여유를 찾으며 나를 키웠다.
“조금만 기다려 봐, 승주야! 다음 주 내로 간부회의가 있을 거래. 고위급까지 다 참석해서 협상한다고 오늘 위원장이 직접 그러더라. 그러니까.........”
아빠가 말했다. 우리는 배달된 짜장면에 탕수육을 소주 두 병에 모두 해치웠다.
“아빠는! 내가 아직 애로 보여? 나도 바빠. 아빠 걱정이나 해!”
난 말했다. 혀가 꼬였다.
“아들....... 입대가 코앞인데....... 그러니까 그러지, 아빠가........ 너 맘이라도 편하게 입대하게 해 줘야지.......”
아빠도 혀가 꼬여 있었다.
“그게 뭐, 대수라고! 남들 다 그렇게 가더만. 일부러 혼자 가기도 해. 나도 그게 편하고.”
난 말했다.
“아빠가....... 미안하니까 그러지. 대학....... 포기하지 말고, 군대 가 있는 동안 잘 계획해 둬. 이번 일만 해결되면 아무 문제없으니까, 그 땐 갈 수 있어, 인마! 알았지?”
아빠는 술기운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자신감 있게 내게 말했다. 난 비어있는 아빠의 잔과 내 잔에 술을 채웠다. 아빠는 웃으며 내게 잔을 치켜들었다. 난 세게 부딪쳤다. 강도를 조절하지 못 해 술잔의 반이 쏟아졌다. 아빠와 난 흐느적대며 웃어재꼈다.
자명종 시계의 초침 소리가 요란했다. 잠이 오지 않아 시계를 수시로 확인했다. 새벽 3시 10분을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았을 때였다. 밖에서 딸그락 소리가 들려왔다. 난 놀라 거실로 나갔다. 어둠속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아빠!”
“어! 깼네. 미안........”
내가 아빠를 부르자, 그는 깜짝 놀랐지만 나지막이 말했다.
“왜 왔어? 못 온다며?”
난 아빠에게 물었다.
“신경 쓰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자. 잠깐 뭐 좀 가지러 왔어. 금방 갈 거야. 미안해, 아들!”
아빠는 여전히 낮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밤 샌 거야? 밥은?”
내가 물었다. 아빠는 옆에 놓여있던 짐 가방을 집어 들며 현관을 나섰다.
“조금이라도 더 자야지! 가뜩이나 첫 날이라 잠 설칠 텐데. 아빠 걱정은 제발 말고! 조심이 잘 가고! 아빠가 곧 면회 갈게. 미안하다.......”
아빠는 또 울먹였다. 난 감정을 억눌렀다.
“아침 꼭 챙겨 먹고 다녀! 전화 할게!”
날 껴안은 아빠에게 난 담담하게 말했다.
3. 마지막 기억
공장 입구 안쪽에는 비정규직 직원들, 입구 바깥쪽은 경찰병력이 무장을 하고 점거 중이었다. 붉은 띠를 두른 노조원들의 함성과 북소리가 함께 허공에 울렸다. 현재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노사관계는 그야말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쇼’였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씻고 난 후, 점호 준비를 하기 전 잠깐이나마 눈치를 보며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다. 선임들이 텔레비전에서 관심이 떠나 있는 동안 아빠의 회사 사태를 보도하고 있는 뉴스를 잠깐 틀었다가 정강이를 몇 번 까이곤 했다. 잠깐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노조원들이 점거하고 있는 농성장의 분위기는 수백 명의 경찰병력과 대치해 매우 폭력적으로 비춰졌고 임원진들은 빠른 협상 타결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하루는 선임이 보고 있던 신문을 힐끗 엿보았는데, 아빠 회사에 관한 기사였다. 각목과 수류탄이 등장한 폭력사태에 대한 긴급 보도였다. 그 날 하루 종일 불안감에 훈련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급히 아빠에게 연락을 취해 보았지만 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집에도 회사에도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그 즈음부터 나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야잇! 강승주! 똑바로 안 해!”
조교가 내 이름을 부른 모양이었다.
“야! 이 새끼야! 미쳤어?”
옆에 있던 후임이 내 팔을 툭 건드렸다. 그제야 난 조교가 내 앞에 서 있는 걸 깨달았다.
“이........ 이병 강승주!”
난 너무 놀랐다.
“지금 뭐하는 건가? 내 말 안 들리나! 정신 못 차리나!”
조교는 불 같이 화를 냈다.
“죄........ 죄송합니다!”
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전부 엎드려!”
조교는 모두에게 소리쳤다. 훈련은 잠시 중단되었고 중대원 모두 한 시간에 걸쳐 얼차레를 받아야 했다. 훈련은 한 시간 이상 지연되었다. 게다가 그 날은 30도가 넘는 폭염이었다.
훈련은 마치고 내무실로 돌아왔다. 극도의 공포감이 밀려왔다. 머릿속은 하얬고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뛰었다.
“야이 씨! 강승주! 이 새끼, 나와!”
최 병장이 내게 말했다. 낮고 단호한 톤으로. 온 몸에 힘이 풀렸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동료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아, 저 또라이 새끼! 요즘 왜 저래?’, ‘병신 아냐, 저 새끼!’, ‘씨X놈.........’
온갖 욕들이 귀에 들려왔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난 그들을 이해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강승주! 안 나와! 야, 끌고 나와!”
최 병장은 주저앉아 있는 나를 보고는 문 앞에 서 있던 선임들에게 말했다. 김 상병과 문 일병이 내게 다가왔다. 문 일병은 내 얼굴을 보더니 멈칫 했다.
“뭐해! 새꺄! 빨리 안 잡아?”
최 병장이 문 일병에게 말했다. 난 곧 그들에게 끌려갔다.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다리에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화장실로 날 데려갔다. 그곳엔 이미 최 병장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김 상병과 문 일병은 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번쩍하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최 병장의 숨소리가 가빴다. 그제야 난 그가 내 얼굴을 가격한 사실을 깨달았지만 아프지 않았다. 몇 초가 지난 후 얼굴이 후끈거리는 게 느껴질 뿐이었다. 최 병장은 상의를 벗었다. 내 턱을 올려 잡고 뺨을 몇 대 때렸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난 그가 하는 행동이 하나하나 또렷이 인식되고 있었다.
“벗겨!”
최 병장은 다시 김 상병과 문 일병에게 말했다.
“예?”
문 일병은 놀라 되물었다.
“벗기라고! 새꺄! 귀 쳐 먹었어?”
최 병장은 고함쳤다.
“최....... 최 병장님........ 그, 그건........ 분대장님이 아시면...........”
문 일병이 말했다.
“야, 이 병신 새끼야! 벗기기 싫으면 닥치고 있어! 분대장은 무슨! 감히 누구 명령인데 네깟 게! 개뿔 모르면 입 닥치고 있어라!”
최 병장은 그렇게 말했다. 조금 화가 누그러진 말투였던 대신 단호하고 자신감 있었다.
“남자 새끼가, 처음부터 딱 이 새끼였어. 비실비실 해가지고 계집애보다 더 쓸데가 없어! 네가 그러면 여기서 봐줄 줄 알았냐? 어디서 감히! 여기가 어떤 곳인 줄 알고! 새꺄! 내가 오늘 아주 확실히 알게 해 준다!”
최 병장은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이어갈 때마다 내 뺨을 쳤다. 난 감각이 없었다. 김 상병이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오히려 그가 떨고 있었다. 옆에서 머뭇거리던 문 일병도 최 병장에게 한 대 맞고서야 거들기 시작했다.
“소......... 속옷은..........”
문 일병이 말했다. 최 병장은 그를 노려보았고 곧 그가 내 속옷을 벗기려 했다. 그제야 난 몸을 웅크렸다. 그들에게 더 이상 몸을 내맡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난 무력했다. 김 상병은 화장실 입구로 다가가 출입문을 잠갔다. ‘딸각’ 하고 문고리 잠금 장치를 돌리는 그 소리가 귀를 찌르고 들어와 뇌에 꽂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난 다시 눈앞이 깜깜해졌다. 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날 일이. 기억할 수가 없다.
깨어나니 의무실이었다. 내 오른 팔엔 링거가 꽂혀 있었다. 의무병은 의무실 한 쪽에서 무언가를 읽는 듯 보였으나 눈을 뜬 나를 힐끗 보고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링거 약이 거의 들어가자 그제야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눈 근육을 한껏 찌그리고 링거주사를 확인했다. 그는 내게 다가와 무표정으로 내 팔뚝의 주사를 제거했다.
“바로 식당으로 갑니다. 식사 많이 해야 됩니다.”
그는 주사약을 정리하며 내게 말했다. 난 몸을 일으켰다. 체육복이 입혀져 있었다. 몸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두려웠다.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질 뿐 몸을 일으킬 수는 있었다. 난 걸음을 떼고 식당으로 향했다. 통증이라기보다는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식당을 들어서니 김 상병이 홀로 앉아 있었다. 식사 시간이 아니어서 주변은 조용했고 그가 앉아있는 테이블에는 밥이 가득 담긴 식판이 놓여 있었다.
“이........ 이병, 강승주!”
“앉아.”
온 힘을 다해 관등성명을 하자 낮은 목소리로 김 상병이 말했다.
“먹어라. 남김없이 다! 상부 명령이다.”
김 상병이 말했다.
“.......... 예!”
난 대답했지만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밥이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깨끗이 비운 거 확인하고 갈 거다. 15분 준다!”
그가 또 말했다. 난 얼른 숟가락을 들었지만 정말 밥은 넘기기 힘들었다. 또 한 번 온 힘을 다해 식사를 했다. 식사를 겨우 마친 나는 내무실로 돌아왔다. 내무실 동료들은 여전했다. 내게 말을 거는 대신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거나 모른 척했다. 시계를 보았다. 저녁 7시.
난 점심시간에 화장실에 있었고 깨어났을 땐 의무실이었다. 오후에 예정되어 있었던 소방 육은 받지 못했다. 무언가 패널티가 또 날 기다리고 있겠지........
점호 준비를 하기 전, 난 내무실 내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 조금 전 먹은 밥이 얹힌 것 같았다. 별 생각 없이 바지를 내리고 용변을 보려 했다. 그 때 느낄 수 있었다. 아팠다. 기억을 잃기 전에도 느껴지지 않았던 통증이 그제야 느껴졌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속이 쓰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느껴졌다. 불안감까지 더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영원과 같은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때 느꼈던 증상들은 그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강승주 이병!”
소대장이 내무실로 들어왔다.
“이병 강승주!”
난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또 무슨 벌이 기다릴지 걱정이 되지도, 긴장이 되지도 않았다. 그저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따라와.”
소대장이 말했다. 내무실의 선 후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난 소대장을 따라 내무실을 나갔다.
‘아........ 안 돼.........’
난 주저앉았다. 머리가 하얘졌다.
“긴급 휴가다. 사무실에서 휴가증 받아서 확인하고 다녀와라!”
대대장이 내게 말했다. 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힘이 없었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고 그냥 달렸다.
‘아빠.......... 안 돼..........!’
난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가능했다. 그렇게 달려 부대 앞 초소를 지나가려는데 헌병들이 나를 막았다. 그들이 하는 말이 들리지 않았고 내게 하는 행동조차 난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야! 강승주!” 하고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김 상병이었다.
“.........어서 가!”
그는 내게 배낭과 종이 가방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헌병들에게 무언가 말하는 것 같았다. 날 잡고 있던 헌병의 손에서 벗어나자 난 다시 달렸다.
아빠가 죽었다. 저기, 저 위에 피어오르는 향의 연기 뒤로 아빠의 사진이 있다.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밤 아홉시를 넘기자 장례식장은 썰렁했다. 향냄새만이 진동할 뿐. 난 홀로 벽에 기대어 아빠 옆을 지키고 있었다.
지난 이틀간 몇몇 언론사의 취재팀이 다녀갔고 아빠의 회사 동료들도 조문을 왔었다. 그들은 오열했다. 바로 옆 장례 객실에는 또 다른 아빠의 동료가 잠들어 계셨다. 조문객들은 아빠를 조문한 후, 그리로 건너가 또 다시 오열했다. 그 쪽에서는 어젯밤에도 밤새 가족들과 친지들이 오갔다. 하지만 아빠 옆엔 나뿐이었다. 난 만 이틀을 꼬박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다음 날이 발인이었다. 전날 밤 열 시를 넘기자 장내가 조금 시끄러워졌다. 노조 위원장이 아빠를 찾아왔다. 그는 아빠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칠 줄 모르고 울다가, “승찬아! 승찬아!” 하고 울부짖다가, “야, 이 새끼들아! 이 천벌을 받을 새끼들아!” 하면서 외쳤다. 난 그를 보고 다시 주저앉았다. 한참을 울던 위원장이 내게 다가왔다.
“아이고, 아이고........ 미안하다! 내가 죽었어야 했다, 내가! 미안하구나!”
나를 껴안고 그는 계속 울었다.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난 그저 그가 빨리 이곳을 떠났으면 했다.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그 때, 장내가 들썩였다. 옆 객실에서 온갖 괴성들이 들려왔다. 위원장은 누군가의 보고를 받고 뛰쳐나갔다. 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서 난 다시 벽에 기대어 앉았다. 아빠 옆에.
“야! 이 개새끼들아! 네 새끼들이 어디라고 여길 와! 이 씨X 새끼들아!”
“살려내! 살려내! 우리 아들! 우리 아들 살려내라, 이 놈들아!”
험한 욕설들과 통곡소리가 건물 안에 쩌렁쩌렁 울려댔다. 그 와중에도 사진 속 아빠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발인식은 오전 일곱 시 삼십분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주위에서 날 걱정했지만 잠도 자지 않았고 밥도 거의 먹지 않았다. 어차피 익숙해져서 괜찮았다. 식을 진행하는 장례사들은 발인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아빠의 시신을 보여주지 않았다. 불에 훼손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고 난 수긍했다. 모르겠다. 난 아빠가 보고 싶었던 것일까.
난 상주다. 그 순간만큼은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장례사가 알려주는 대로 식을 진행했다. 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노조원들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엄숙히 식은 진행되었다. 그리고 곧 발인이 시작되었다.
가족은 나 하나뿐. 난 아빠의 영정사진을 들고 화장장까지 걸었다. 아빠가 누워 있는 이 목관이 그 좁은 공간에 들어가야 했다. 난 또 주저앉았다. 아빠가 들어가고 입구가 ‘탁’하고 닫히는 소리를 듣고는 난 아빠를 불렀다.
“아빠......... 아빠! 안 돼! 아빠.........”
미친 듯이 불러댔다. 다신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멈춰지지가 않았다. 눈앞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이내 기억이 사라졌다.
눈을 떴다. 난 누워 있는 것 같았는데 이곳이 어디인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한참 생각을 해야 했다. 머리가 띵 해오는 게 느껴지자 정신이 좀 차려졌다.
‘아, 깨어나지 말 걸........’
난 생각했다. 병원이었고 내 손등엔 또 다시 주사 바늘이 꽂혀 있었다. 병실을 훑어보니 현실감이 밀려왔지만 꿈이었으면 했다. 병실엔 아무도 없었고 반쯤 열려있는 문을 통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게 얼핏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아주머니가 들어오셨다. 모르는 분이었다.
“어! 이제 깼네요! 아이구........ 정신이 들어요?”
아주머니가 물었다. 난 대답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이고....... 괜찮아, 괜찮아! 말하지 말고 누워 있어.”
아주머니는 내 가슴을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누........ 누구.........”
난 힘을 내어 목소릴 꺼냈다.
“걱정 말아요. 아빠 동료 박 지부장이라고........ 난 그 사람 와이프 되는 사람이야. 화장장에서 쓰러졌어요. 학생이......... 쯧쯧....... 얼마나 힘들었으면........ 주사, 다 맞아야 한 대요. 절대 안정하고........”
아주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내게 말씀하셨다. 그 때 한 아저씨가 들어오셨다.
“어, 깼네?”
“응, 방금.”
두 분이 얘기하셨다.
“음........ 난 아빠 회사 친구 박 지부장이야. 네가 승주였구나. 아빠한테 얘기 정말 많이 들었는데....... 참........ 미안하다, 승주야. 아저씨가 정말 미안해.........”
아저씨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난 왠지 그 모습을 보기 싫었다.
나는 병원에 만 이틀간 입원해 있었다고 했다. 첫 날에는 의식이 없었는데 박 지부장님이 계속 영양제와 신경 안정제를 맞고 있었다고 얘기해 주셨다. 내가 깨어 난 것은 이틀 째였다. 그 때부터 난 미음으로 식사를 하고 속을 달래야 한다고 했다. 목구멍으로 뭔가를 넘기는 일이 힘들었지만 아주머니는 내게 손수 미음을 먹여 주셨다.
사흘 째 아침, 난 퇴원했다. 병실 침대를 벗어나면서 생각했다.
‘내가 왜 여기에 있을까. 주사를 맞고 밥을 먹어서 기운을 차리면, 어디로 가라고........’
“귀대는 언제니?”
아저씨가 짐을 챙기고 있는 내게 물으셨다.
“내일요.”
난 대답했다. 하지만 사실 난 귀대 일을 몰랐다.
“우선 아저씨 집에 가 있자. 데려다 줄게. 몸도 더 추슬러야 하고........ 아줌마가 챙겨 주실 거야.”
아저씨는 말씀하셨다.
“........ 아빠는 어떻게......... 무슨 사고였나요?
내가 물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당황하셨다.
“응? 음........ 그건, 왜?”
아저씨는 내게 되물으셨다.
“제가,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죠?”
난 말했다.
“어........ 그럼, 그래......... 하........ 경찰의 과잉진압이었어. 아빠랑 우리는 막다른 곳까지 밀려 나갔다. 그곳에 화염병이 떨어졌고........ 아빠 옆에 있던 동료가 맞았는데, 아빠가 거기 뛰어들었어. 그래서......... 병원에 도착해서 숨이 끊겼다.”
아저씨는 억지로 말하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말씀해 주셔서. 제가 물어 보지 않으면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을 것 같아서요.”
난 말했다.
“미안하다. 하......... 정말..........”
아저씨는 양 손으로 얼굴을 부비며 말했다.
“갈게요. 아저씨 댁에.”
난 고민 할 수도, 고민이 되지도 않았다. 어차피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저씨는 내 말을 반기시며 날 데리고 나와 자신의 차에 태웠다. 그리고 내일 귀대 시간을 물어보셨다. 그는 내일, 직접 날 데려다 주겠다고 했고 남은 복무를 열심히 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또, 아빠의 억울함을 꼭 풀어주겠노라고, 꼭 싸움에서 승리하겠노라고 내게 굳게 약속하셨다.
“왔어요? 어서 들어와요!”
박지부장님 부인이 현관에 나와 계셨다. 집 안은 된장찌개 냄새로 가득했다.
“잘 왔어요. 좀 불편하더라도 푹 쉰다고 생각하고 편히 있어요....... 배고프죠?”
아주머니는 내게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아저씨가 나를 현관 바로 옆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고 아주머니는 부엌으로 향하셨다. 난 낯선 냄새로 가득한 방 한 구석에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어 그 옆에 두었다. 잠시 아무 생각 없이 방 안을 둘러보고 있을 때 아저씨는 열려 있던 방문을 똑똑 두드리셨다.
“맛이 있을 진 모르겠지만 많이 먹어요!”
“잘 먹겠습니다.”
아주머닌 내 앞에 밥그릇을 놓으시며 말씀하셨고 난 대답했다. 방금 한 하얀 밥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된장찌개도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문득 아빠가 생각났다. 난 아직 현실감을 찾지 못했나보다. 혼란스러웠다. 분명 냄새는 좋았는데 맛을 느끼지 못하고 식사를 했다.
“잠도 못 잤는데....... 오후에 나가지?”
아주머니가 아저씨에게 말씀하셨다.
“밥 먹고 가봐야 해. 전무 온대.”
아저씨는 나를 한번 힐끗 보시고는 아주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저....... 죄송해요! 이것만 먹을게요....... 정말 맛있는데, 속이 아직 좀........”
난 밥을 삼분의 일가량 남겨 놓고 더 이상 넘어가질 않아, 실례를 무릅쓰고 두 분에게 말했다.
“그래, 그래요. 무리하지 마요. 저기, 아까 그 방에 이부자리 펴 놨으니까 좀 자요. 아무 생각 말고.”
아주머니가 내게 말씀하셨다.
“그래, 쉬렴. 아저씬 회사 가 봐야하니까, 푹 자고. 낼 아침에 데리러 올게.”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네........ 감사합니다.”
난 두 분께 인사하고 방으로 향했다. 작고 아담한 방이었다. 포근한 분위기였지만 바닥에 깔린 이불을 무릎까지 끌어다 덮고 벽에 기대어 앉았더니 내 자신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느낌만 들 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난 그대로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눈을 뜨니, 방 안은 어두워져 있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몰랐지만 꽤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불을 켜지 않은 채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홉시 반 정도로 보였다. 난 몸을 일으켰다. 어두운 채로 옷을 집어 입었다. 구석에 놓아두었던 가방을 집어 들었다. 닫혀 있는 방문에 귀를 갖다 대 보았는데, 조용했다. 살살 문을 열었더니 거실엔 불이 켜져 있었다. 눈이 부셨다.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았고 인기척도 없었다. 난 조용히 움직였다. 현관문을 열기 전 집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러고 나서 난 박지부장님의 집을 빠져 나왔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이제야 몸에 기운이 조금씩 돌기 시작했다. 난 걷다가 달리기 시작했다. 주변을 살펴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확인하면서 집을 향해 달렸다. 숨이 차면 걸었다가 다시 달렸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드디어 낯익은 동네로 들어섰다. 퇴근하는 아빠와 가끔 부딪치던 버스 정류장, 그곳을 지나 작은 골목, 또 그곳을 지나 모퉁이, 그 모퉁이를 돌아 은색 대문 집 이층. 우리 집이 보였다. 눈 감고도 찾아갈 우리 집. 아빠가 있는 나의 집에 마침내 도착했다.
현관문 위쪽 작은 벽돌 틈을 더듬었다. 역시 열쇠가 만져졌다. 언제부터 놓여 있었던 걸까. 난 문을 열고 들어가 현관 벽에 있는 스위치를 켰다. 익숙한 냄새와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그대로였다. 집안은 깨끗했다. 방 안도, 부엌도 아무런 흔적이 없었고 방바닥은 얼음장 같았다. 베란다 쪽으로 가니 빨래 바구니가 눈에 띄었다. 언제였을까, 아빠의 옷들이 담겨 있었다. 매일같이 입던 작업복에 탈색된 팔꿈치, 헤진 소맷단, 땀 얼룩이 드러난 목덜미. 까만 기름때가 묻은 바지의 한 쪽엔 벨트걸이가 떨어져 있었고 그 옆엔 구멍 난 양말이 있었다. 볼 수가 없어 다시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난 냉장고 문을 열었다. 한 구석에 김치가 담겨있는 반찬통 하나뿐이었다. 거의 국물만 남아 있었는데 그나마도 입구 주변이 바짝 말라 굳어 있었다. 제대로 된 내용물이라고는 빈 물통 옆에 소주 한 병이 전부였다. 난 그것을 꺼내어 뚜껑을 돌려 딴 뒤 몇 모금을 내리 마셨다. 갑자기 숨이 가빠지면서 난 주저앉았다. 조금 전 들춰 보았던 아빠의 낡은 작업복이 만져졌다. 말라있던 눈물이 쏟아졌다. 오직 아빠의 모습 하나만 떠올라서 온 몸이 눈물이 되어 흐르는 것 같았다.
‘아빠.......... 아빠............’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불빛들이 반짝거렸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한기가 느껴졌고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여기! 여깁니다!”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빛이 내 얼굴을 쏘아댔고 난 다시 정신을 잃었다.
난 다시 눈을 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내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건지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아빠의 장례식부터 박지부장 아저씨, 아주머니........ 차례로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 아빠의 옷가지. 그리고 희미하게 떠오른 건, 담장을 넘던 나의 모습이었다. 그랬다. 난 그곳에 있었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있던 현장. 굳게 닫힌 정문, 부서진 담벼락과 검은 재들, 여기저기 쳐 있던 폴리스 라인.
아직 살아있는 내 머릿속에 남은 건 단 하나의 생각이었고 그것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 행적들을 기억해 내자 비로소 난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병원 같아 보였지만 무언가 느낌이 달랐다. 난 몸을 움직였다. 그 때,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파티션 뒤에서 나타났다.
“깨어났습니다!”
그는 나를 확인하더니 바깥쪽을 보고 말했다. 그러자 밖에서 헌병이 들어왔다.
“강승주 이병, 정신이 드나?”
그 헌병은 내게 물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난 대답하지 못했다.
“강승주 이병! 부대 무단 미복귀로 군검에 송치된다. 회복하는 대로 조사 받을 수 있도록!”
그는 군의관으로 보이는 흰 가운의 사내와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병실을 나갔다. 눈을 뜨자마자 다시 혼란이 찾아왔지만 왜 그런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난 나의 오른 팔에 꽂혀 있는 바늘을 따라 주사액을 확인했다. 그 옆에서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가습기의 수증기와 병실의 알콜 냄새, 피부에 빳빳하게 느껴지는 환자복의 촉감이 그렇게 느끼게 했다.
다음 날, 난 헌병대에 이끌려 군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고 군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곳에 가니 온전히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다시 부대에 복귀할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잠시이지만 괜찮았다.
수감 된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쯤 난 풀려났다. 순간 엄청난 공포와 불안감이 몰려왔다. 또 다시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헌병들이 날 데려간 곳은 부대가 아닌 군 병원이었다. 그곳에서 난 몇 가지 검사와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내 몸은 이미 영양실조와 심신미약 상태라고 했고, 우울증 위험도도 높다고 했다. 그제야 난 알게 되었다. 내가 수일 간 군 미 복귀 상태였다는 사실을. 그 때 집을 나와 약국에서 약을 샀던 기억도.
난 극심한 불면증이라고 약사에게 설명했었다. 약사가 건네준 약을 들고 난 아빠가 사고를 당했던 현장을 찾아갔다. 박지부장님이 들려주었던 얘기를 떠올리며 어둠을 헤맸다. 바리 케이트가 쳐져 있었지만 아직도 탄내가 남아있는 곳으로 점점 들어갔다. 현장을 막고 있던 바리 케이트를 움직여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난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약사에게 받아온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아빠가 보고 싶었다.
난 부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전과기록이 남게 되었지만 괜찮았다. 부대를 나오면서 생각했다.
‘이제 어떡하지........?’
잡으면 사라지는 허상을 계속 쫓는 기분이었다. 난 박지부장 아저씨를 찾아갔다.
“승주야!”
아저씨는 놀라 나를 한참 바라보셨다.
“........ 죄송해요.......”
난 고개를 숙이고 아저씨에게 말했다.
“들어와라.”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내게 손짓하셨고 아주머니도 나를 반겨 주셨다. 아빠의 장례식 이후,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나조차 모두 기억해내기 힘들었지만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내게 아무 것도 묻지 않으셨다.
“어휴........ 반쪽이 됐네, 반쪽이........”
아주머니는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하셨다. 그녀는 또 한 번 내게 밥을 해 주셨는데 그 맛은 예전과 달랐다.
“이제 어떡할 거니? 힘들면 당분간 여기 있어도 돼. 저기 네가 썼던 방, 아저씨 아들 방인데 지방에서 학교 다니느라 잘 안와.”
아저씨는 말씀하셨다.
“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 고맙습니다.”
난 말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서로를 한 번 마주 보셨다.
“집에 가려고? 괜찮겠어요?”
아주머니기 물으셨다.
“제 집이잖아요........”
난 대답했다. 그리고 두 분은 나를 한참 쳐다보셨다.
“아빠 일은........ 위원회에서 검찰에 고발장을 냈어. 아직 조사 중이고......... 경찰 상대라 쉽진 않겠지만 회사하고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으니까 좀 더 기다려 보자. 여론도 그렇고, 회사에서도 어차피 단단히 발목 잡힌 상황이니까 대충 넘어가진 못할 거야. 넌 아무 걱정 말고 네 생각만 해. 알았지? 아저씨도 최선을 다 하마!”
그는 어렵게 말을 꺼내며 나를 위로하려 애쓰셨다.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어차피 아빤 없어요........”
난 말했다. 박지부장님과 아주머니는 맘을 놓지 못하셨지만 난 끝내 집으로 돌아왔다. 걱정 말라는 부탁을 오히려 내가 해야 했다.
며칠만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집에 돌아오니, 현관문은 걸리지 않은 채 있었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나의 흔적이 있었다. 가슴 속이 텅 비었다. 난 집안을 대충 정리했다. 그러고 나서 집주인이 살고 있는 일층으로 내려갔다.
“누구세요?”
초인종을 누르자 주인집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아,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하자 아주머니는 놀라셨다.
“어? 네가 어떻게........ 벌써 제대했어? 아, 아닌가........ 무슨........ 일이니?”
“저....... 집을 빼려고요. 될까요?”
당황하는 아주머니에게 난 물었다.
“집을? 음........ 아직 좀 남았을 텐데.........왜? 그냥 살어, 웬만하면. 한 삼 개월 남은 것 같은데.........”
“부탁드립니다!”
아주머니는 말을 더듬으시며 나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설득을 시도하셨지만 난 거듭 정중히 부탁드렸다. 아주머니는 눈동자를 왔다갔다 움직이시며 잠시 생각하셨다.
“그래요......... 바깥양반한테 얘기해 볼게.”
아주머니는 말씀하셨다.
“감사합니다. 집 나가는 대로 날짜 계산해서 보증금에서 제할게요.”
난 아주머니에게 인사하고 바로 고색동으로 향했다. 일과 새 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난 찾고 또 찾았다. 어떤 일이든, 어떤 곳이든 가리지 않았다. 간혹 신분확인이 필요할 때마다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처음엔 이것이 꽤 당황스러웠지만 곧 괜찮아졌다. 그러고 부터는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도 마다않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알아보았다.
2주 정도 수원 시내를 훑고 다녔지만 난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고색동의 한 찜질방에서 지내며 운 좋게도 잠깐 그곳에서 새벽 아르바이트를 할 수가 있었다. 주야를 모두 활용할 수 있었다. 며칠 후, 난 근처에 작은 셋방을 하나 구하게 되었다. 산업 개발 예정지 근처에서 싼 값에 얻게 된 구옥의 작은 단칸방이었다. 난 방을 계약한 후 예전 집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했다. 당장 필요한 집들만 싸 놓고는 나머지 물건들은 버리기로 했다. 아빠가 쓰던 것들은 모두 모아 동네 공터로 가지고 갔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듯한 소각장에 아빠의 물건들을 넣고 성냥불을 붙였다. 옷가지에 붙은 불은 아빠가 공부하던 자동차 관련 책들, 헤진 운동화에 차례로 옮겨 붙었다. 그리고 딱딱 소리를 내며 이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타오르는 불이 나를 의식할 리 없다. 그래서 나도 그러려고 했다.
‘맘껏 타라. 다 가져가라. 난 괜찮으니까. 다 빼앗아가도 나에겐 굳이 남아있는 게 있으니까. 내가 버리지 않으면 완전히 괜찮은 거야. 그러니까 아빠, 괜찮아. 거기, 맘 편히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