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은 한 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형제는 가방을 처분해야 한다며 혼자 나갔고 나는 끝없는 상념으로 밤을 지샜다.
나와 형제, 우리가 살았던 보육원.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떤 훈련인가를 받았다.
그곳은 아마도 아름다운 곳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무수히 쌓인 사람의 뼈를 자주 볼 수 있는 곳이었을까.
무슨 묘지 같은 곳이었을까.
단서는 별로 없다.
형제도 말해주지 않았다.
아마 그녀도 알고 있는 게 그다지 많지는 않은 듯하다.
이쯤에서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실은 내겐 형제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다.
비록 찰나의 한 장면이지만 내겐 그곳의 기억이 남아 있다.
어둡고 축축한 지하의 공간.
정육각형의 쇠창살 감옥.
그 안에 있던 한 친구.
확신할 수 있다. 그는 나와 형제의 또 다른 친구다.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슬픈 감정이 든다.
두려운 감정도 동시에 든다.
그런데 그 친구의 모습만은 명확히 떠올릴 수가 없다.
그저 실루엣으로만 내 기억 속에 존재한다.
냄새와 분위기, 슬픔과 두려움만으로 존재한다.
넌 누구인가?
아니.
너는 무엇인가?
온몸에 갑자기 한기가 든다.
이불자락을 끌어 몸을 꽁꽁 싸맨다.
형제는 오전 중에 이 집에 온다고 했다.
그러면 우리는 각자 왕을 찾아 나선다.
형제도 나도 왕이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신하가 그녀에게 전달한 신탁을 따라 이 집에 한동안 머무르며 근처를 탐색할 것이다.
신하의 신탁에 따르면 형제와 나는 함께 움직여서는 안 된다.
따로 움직이면 둘 중 하나가 왕을 먼저 만나게 된다.
만일 내가 먼저 만나게 되면 나는 그 즉시 형제를 불러 둘을 만나게 해야 한다.
그녀가 먼저 왕을 만나면 그녀는 내게 탐색을 멈추라고 전달하면 된다.
도대체 신탁이 왜 이리 불명확한지 모르겠다.
지금껏 내가 전달해 온 신탁은 모두 명확했다.
어떤 이를 만나야 할 때는 어느 지하철 역 몇 번 플랫폼인지까지도 명시됐었다.
누가 왕을 먼저 만나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신탁은 듣도 보도 못했다.
무언가 많이 달라졌다.
조금 더 앞으로 갔다간 내가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신탁을 거역할 수도 없다.
그것이 나를 죽음으로 내몰 지라도 나는 그 길을 가야만 한다.
42명의 친구들 중 남은 것은 몇 명일까?
이젠 나와 형제가 파멸할 차례인 걸까?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살아남고 죽는가가 결정되고 있는 걸까?
나는 어째서 이런 뜻모를 게임의 일원이 된 걸까?
신탁을 거역할 수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무척 궁금하다.
나는 누구이며, 형제는 누구이고, 왕은 또 누구이며, 지하 공간의 친구는 무엇인가.
여기서 뒤로 물러서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퇴로는 사라진다.
앞으로 전진하는 수밖에 없다.
일요일 오후의 피크닉 같은 한가한 인생이었다.
이제야 나는 비로소 인생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저 신탁을 따라 바퀴벌레처럼 숨어 살아온 인생이었다.
나는 이제 이 좁은 섬을 탈출한다.
신탁의 의지가 아니라 나의 의지다.
나는 물러서지 않으리라.
어떤 시험이 내 앞에 있어도 살아남으리라.
"대장장이를 만나 때가 이르렀다 전하라!"
형제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