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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공포물
카산드라
작가 : 건망고
작품등록일 : 2017.11.16

앞날을 훤히 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믿지 않는다.
카산드라의 저주.
언어 소통의 종말.
극한의 공포심은 고립감에서 온다.
군중의 한가운데 불통의 무력감이 그를 낭떠러지로 내몬다.

 
형제의 비밀 - 그곳에 살던 너와 나
작성일 : 17-11-22 01:33     조회 : 406     추천 : 0     분량 : 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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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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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비게이션은 나와 형제를 으슥한 산길로 이끈다.

 형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이윽고 소박한 모양새의 이층집에 도착한다.

 펜션이나 산장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차를 세우자 형제가 내린다.

 거침없이 현관문으로 가 비밀번호를 누른다.

 

 문을 열고 들어서다 뒤돌아 서더니 형제가 말한다.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죠?"

 

 궁금하다. 무척.

 실은 여기 오는 내내 궁금했다.

 나는 아무 때나 환영을 보지는 않는다.

 신탁이 주어질 때나 신탁과 관련하여 필요한 전달사항이 있을 때만 환영을 본다.

 그러니까 그녀의 캐리어는 신탁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나는 알아야만 한다. 신탁과 관련 있는 것은 모조리.

 

 나는 트렁크에서 그녀의 가방을 꺼내 집안으로 옮긴다.

 묵직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난다.

 

 거실에 캐리어를 눕혀 놓고 지퍼을 열어 젖힌다.

 그 안에는 뼈가 가득하다.

 꽤 큰 동물의 뼈일 것 같다. 소나 말 같은.

 

 "별로 안 놀라네. 의외의 반응. 비교적 담력 좋은 편?"

 그녀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뼈들을 유심히 살펴 볼 뿐.

 잠시 후 나는 깨달음의 신음을 내뱉는다. "아!"

 이것은 사람의 뼈다.

 그러나 이상하게 무덤덤하다.

 오히려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어디서 봤더라?'

 나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묘한 그리움을 느낀다.

 '이거 뭐지?'

 

 "아, 그렇구나. 생각이 나는 모양이네, 메신저 씨. 그러면 그렇지. 나는 나 보고도 처음에 몰라 보고 여기 오는 내내 아무 말도 없길래 정말 기억 하나도 안 나나보다 했지. 이제 기억나? 너와 나, 왕과 신하, 그리고 이 뼈들." 형제가 갑자기 살가운 말투로 말한다.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나는 당황한다.

 '그녀와 나는 아는 사이인가?'

 아무 말도 못하는 나를 재밌어하는 표정으로 보다가 그녀가 입을 연다.

 "너랑 나, 같이 살았었잖아 어렸을 적에. 성 미가엘 보육원. 거기서 우리 같이 훈련받았잖아."

 "훈련? 무슨 훈련?"

 "아이 참, 답답하네. 나도 말해주고 싶지만 이번에 전할 말은 그게 아니니 어쩔 수 없지."

 "전할 말?"

 "그래 전할 말. 에헴, 메신저는 신탁을 듣고 이대로 행할지어다."

 "신탁? 신탁이라고? 나한테 전해지는 신탁이 있어? 너도 메신저야? 너도 신탁을 들어?"

 "아이고, 메신저 선생,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 모양이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은 거야 대체."

 점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나를 형제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좋아, 내가 대충 설명은 해주지. 보통은 우리끼리 이럴 여유따위 없지만 우린 어렸을 때 친한 사이였다면 친한 사이였으니까 특별히 설명해 주는 거야."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잇는다.

 "왕이나 메신저, 형제, 신하, 마부 등은 직책을 뜻하는 말이 아니고 그저 편할 대로 붙인 별명이야. 비밀 요원의 코드네임 같은 거지. 그러니까 우리들 모두 신탁을 환영으로 전해 받고 그대로 행하는 자들이란 말이지. 신탁은 틀림없이 이루어지니까. 우린 신탁에 나온 당사자들을 만나 그걸 전달하기도 하고, 때로는 직접 어떤 일을 수행하기도 하고, 뭐 그런 잡다한 일을 하는 거야. 너만 그 일을 하고 다니던 게 아니란 얘기지."

 나는 혼란스럽지만 겨우 입을 열어 묻는다. "그럼, 이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데?"

 "어쭈, 자연스럽게 반말이네. 몇 명인지는 나도 몰라. 원래는 42명이었어. 우리 보육원 원생이 42명이었잖아. 근데 지금은 많이 줄었을걸. 신탁이 끊어지면 우리 생명도 끊어지는 거니까. 내가 어른이 돼서 만나본 녀석은 너랑 신하뿐이야."

 "나는 지금껏 나만이 신탁을 받는 줄 알았어. 난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내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건 기록을 보고 알고 있었어. 하지만 어렸을 때 기억은 하나도 없어. 내 최초의 기억은 스무살 때야. 자고 일어나 보니 어떤 지방 소도시의 허름한 스탠드바 앞이었어."

 

 나도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 정말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든다.

 내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묘한 기분이다.

 지금껏 수많은 여자와 잤지만 그 누구와도 이렇게 순식간에 친밀한 감정을 느낄 수는 없었다.

 나에게도 무언가 뿌리가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을 아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그게 여럿일지도 모른다.

 

 "신탁이 어디로부터 오는 거고 그게 결국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는 나도 몰라. 실은 나도 너처럼 얼마 전까지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했었어. 나도 그저 지난 번에 신하를 만나고 일부 기억이 돌아왔을 뿐이야. 하여튼 중요한 것은 이번 내 신탁의 대상이 너라는 거야. 그래서 너를 만난 거지. 그러니까 잘 들어. 이제부터 신탁의 메시지를 전할 거니까."

 형제는 목을 가다듬고 시문을 낭독하듯 말한다.

 "메신저여, 신탁이 주어졌으니 듣고 그대로 행할지어다."

 나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신탁을 듣는다.

 

 "너는 대장장이를 찾아가라. 대장장이에게 때가 이르렀다 전하라. 그러면 대장장이가 너의 기억을 일부 돌려줄 것이다. 그를 따라 대연회장으로 와라. 이제 시험이 시작된다."

 형제는 똑같은 신탁을 다시 한 번 전한다.

 나도 그 순서는 잘 안다. 내가 늘 하는 일이니까.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 내가 형제에게 묻는다.

 "어째서 나한테 네가 직접 와서 신탁을 전하는 거지? 그 신탁을 나한테 직접 내리면 될 텐데."

 형제가 미소를 띠고 답한다. "너와 내가 만나야만 했으니까 그랬겠지. 나도 너한테 전할 신탁이 있고 너도 나한테 전할 신탁이 있다는 건 말이야. 이것도 다 신탁의 의도겠지. 우리야 알다시피 그저 따를 뿐."

 

 그녀의 말이 왠지 무척 위안이 된다.

 그동안 나는 섬처럼 살았다. 육지의 한 줌 흙덩이가 되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웅크리듯 섬처럼 살았다.

 그녀가 입에 올린 우리라는 말이 따뜻하게 가슴을 찌른다.

 우리는 그저 신탁을 따를 뿐이다.

 의도도 목적도 알지 못한다.

 그 공허한 작업을 해나가는 사람이 나 말고도 여럿 있다.

 그들은 내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다.

 그리고 난 곧 우리의 이 얄궂은 운명의 정체를 알 수 있다.

 대장장이를 만나야 한다.

 

 "신탁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

 형제가 덧붙이듯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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