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이 운영하는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
아니, 신탁이 세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전염병이 전 세계를 뒤덮었고, 전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자연 재해도 유례 없이 자주 일어난다.
나는 어차피 신탁의 뜻은 모른다.
태초부터 그 존재가 이곳을 운영해왔다면 이번에도 나름 뜻이 있겠지.
세계가 끝끝내 다 무너진다 해도 딱히 아쉬울 것도 없지 않은가.
하잘 것 없는 내 작은 세계가 함께 무너진다 해도.
문제는 거기가 아니다.
문제는 히틀러다.
그 작자가 세계의 전면에 나섰다.
예고했던 대로.
나는 그의 몸을 알고 있기에 그 작자의 행보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행보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는 연예인이 되었다.
그것도 춤을 추며 노래하는 아이돌이 되었다.
깎아 놓은 듯한 얼굴과 모델 같은 몸매로.
그는 지금 7인조 보이 그룹의 래퍼 노릇을 하고 있다.
그가 그런 식으로 세상에 나왔다는 걸 처음 알고는 마음으로 비웃었다.
고작 이딴 방식으로 뭘 해보겠다는 거야, 하고.
그것은 오판이었다.
그가 속한 팀은 데뷔한 지 1년 만에 빌보드 차트 1위를 했다.
그것도 한국어로 부른 노래로.
이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논리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나는 그 뒤에 숨은 엄청난 힘을 아는 사람이었지만.
히틀러의 보이 그룹이 미 유명 토크쇼에 출연한 날.
나는 그의 메니저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다.
"총통께서 부르십니다.
직접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할 얘기가 많다고 하세요.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새벽 1시에 가게로요."
나는 전화를 끊고 트럼펫을 손질하고 무대에 올랐다.
마지막 곡은 "Chelsea Bridge" 였다.
내가 마지막 솔로를 맡았고 아쉬움이 남지 않을 만큼 충분히 긴 연주를 했다.
이제 내 시계도 다시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