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판의 방에서 흰색 방호복을 입은 사람 둘이서 곳곳을 청소하고 있다.
한 사람은 변기를.
한 사람은 침대를.
일이 끝나자 택배 상자처럼 열린 천정 위로 크레인이 내려와서 그 둘을 태운다.
이제 체스판 방은 깨끗하다.
원래의 한 치 흐트러짐 없는 무균의 상태로 돌아가 있다.
잠시 후 다시 크레인이 내려온다.
거기엔 그 남자가 타 있다.
그 남자는 침대로 가서 손짓을 한다.
택배 상자 같은 천정이 닫힌다.
이어서 그는 입을 열어 준엄한 말투로 말한다.
"이제 잘 거야.
알다시피 내일은 중요한 날이잖아.
틀림 없이 준비해 뒀겠지?"
어딘가에서 소리가 들린다.
"하일 히틀러."
남자는 눕고 불이 꺼지고 이내 잠든다.--
이 시각 나는 지쳐서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캔맥주를 마시면서 오늘의 일들을 떠올려봤다.
택시 기사가 내려준 곳은 OO시의 번화가였다.
택시 요금이 34,200원이 나오는 곳이었다.
내려서 근방을 계속 탐문했다.
계속 걷고 살펴보고 길을 익혔다.
나는 추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나의 의도를 보이려는 것일 뿐이다.
어차피 신탁을 내리는 자들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쪽에서 접촉해 올 것이다.
신탁을 내리는 방식일 수도 있고.
사람을 보내는 방식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분명 접촉해 온다.
그건 확실하다.
나는 OO시에 와 있는 것으로 내 의사를 충분히 전달한 거다.
오늘 답이 오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시간은 많다.
아니, 사실 한 가지는 나에게 유리하다.
이 몸을 갖고 있다는 것.
어떤 이유인지 그들은 내 몸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그러니 이 몸이 자기들이 원치 않는 곳에 있는 것을 두고 보지는 않을 거다.
반드시 오늘 내가 이 몸을 가지고 있는 동안 접촉이 올 거다.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 쪽으로 남학생 한 명이 다가온다.
교복을 입고 있다. 고등학생.
"어떤 분이 이걸 갖다 드리라는데요."
나는 잠자코 학생이 주는 걸 받아 든다.
그건 일전에 본 하얀 막대다.
나는 그 남학생을 쳐다 본다.
그 학생은 손가락으로 건물 뒤편을 가리킨다.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남학생은 돌아서 간다.
나는 천천히 뜸을 들이며 일어난다.
그 막대를 안 주머니에 넣는다.
캐리어와 트럼펫을 끌고 반대쪽으로 길을 건너서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다.
그리고 휙 돌아서 아까의 편의점 건물 뒤편으로 간다.
나는 캐리어와 트럼펫을 잘 안 보이는 구석자리에 둔다.
그리고는 건물 뒤편에 주차된 차 중에 낯익은 독일 세단의 조수석 문을 열고 얼른 탄다.
운전석에는 형제가 있고 내 뒷좌석에 왕이 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다.
왕과 형제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앞만 본다.
침묵이 한참을 흐른다.
이윽고 뒷좌석의 왕이 먼저 입을 연다.
"네 기억 속에 있는 그 친구는 카산드라야.
너와 체스를 두는 그 남자는 히틀러고."
역시 신탁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