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공포물
카산드라
작가 : 건망고
작품등록일 : 2017.11.16

앞날을 훤히 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믿지 않는다.
카산드라의 저주.
언어 소통의 종말.
극한의 공포심은 고립감에서 온다.
군중의 한가운데 불통의 무력감이 그를 낭떠러지로 내몬다.

 
가만히 앉아서 신탁을 기다린다
작성일 : 24-03-29 21:36     조회 : 105     추천 : 0     분량 : 165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눈에 보인 건 그 체스판 천정이었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다시 몸을 일으키고 바닥에 발을 댔다.

 역시 내 발이 아니다.

 

 둘러보니 그제서야 세면대와 거울이 보인다.

 그 옆에 변기가 있다.

 천정과 바닥의 체스판.

 여기는 침대가 놓여 있는 큼지막한 화장실이다.

 

 세면대 위 벽거울을 향해 걷는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거울 속을 들여다본다.

 모르는 얼굴이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다.

 

 가만히 서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비현실성에 대해 곰곰 생각해본다.

 너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이게 내가 받은 신탁이었던가?

 

 찬찬히 보니 무척 잘생긴 얼굴이다.

 키도 180은 족히 넘어 보인다.

 더욱 비현실적인 것은 이 남자의 피부 상태다.

 정말 잡티 하나 없이 매끈하다.

 얼굴 뿐 아니라 온 몸의 피부가 깨끗하다.

 막 생산된 공산품 같은 몸이다.

 

 옷을 벗어 본다.

 온 몸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깨끗하다.

 지나치게 깨끗하다.

 그래서 의심해본다.

 사람의 몸이 아닐 지도 모른다고.

 이건 어쩌면 사이보그의 몸인 거다.

 나는 새로 발명된 사이보그 몸에 의식이 이식되는 행운을 얻은 거다.

 

 그런데 곰곰 다시 생각한다.

 어째서 나의 의식일까?

 나 따위는 그저 섬처럼 살아온 메신저에 불과하다.

 나는 원래의 내 몸에 온전히 들어있을 때도 내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런 나 따위에게 왜 이런 과분한 기회를 주는가.

 

 그래서 생각을 고쳐 먹는다.

 이 몸은 사이보그의 몸일 리는 없다.

 이 몸은 분명 사람의 몸이다.

 체취가 있고 기색이 느껴진다.

 체온도 있고 추위도 느껴진다.

 

 다시 옷을 입는다.

 그리고 가만히 침대에 걸터앉는다.

 어차피 신탁은 이뤄졌다.

 그리고 나는 어차피 신탁이 말하는 바에 따르는 자다.

 가만히 앉아서 신탁을 기다리면 된다.

 신탁이 없다면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이다.

 만일 이대로 나를 굶겨 죽이거나 할 작정이라면 이런 몸에 나를 넣어둘 필요조차 없었다.

 

 여기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지운다.

 그저 신탁을 기다린다.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천정이 열렸다.

 택배 상자처럼 가운데가 쭉 갈라지더니 위로 열렸다.

 이곳은 큼지막한 화장실이고 큼지막한 택배 상자다.

 

 그리고 그 위로 무슨 장치 같은 게 음식을 날랐다.

 인형 뽑기 기계의 집게 같은 거였다.

 침대에 걸터앉은 내 무릎 위에 음식이 정확히 배송되었다.

 택배 상자 안에 앉아서.

 인형 뽑기 손으로.

 음식을 배송 받았다.

 

 식판에 든 음식은 꽤 충실했다.

 영양적 균형을 고려한 효율적이고 특색 없는 음식.

 사이보그에게 주는 음식다웠다.

 공산품이나 다름 없는 깨끗한 몸을 유지시키기 위해 딱 필요한 영양만 들어 있는 식사.

 

 나는 맛있게 비워줬다.

 이미 나는 이 상황에 깨끗이 적응했고 모든 것을 달게 받아들였다.

 밥도 제때 나오는 것 같으니 걱정도 하나 줄었다.

 화장실도 바로 옆에 있다.

 침대도 있다.

 

 체스판 패턴의 천정과 바닥도 꽤 맘에 든다.

 무엇보다 이 모델 같은 몸이 맘에 든다.

 원래 내것과 정이 들었지만 깨끗이 단념할 수 있을 만큼 근사하다.

 나는 여기에도 적응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식판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고 다시 침대에 걸터앉는다.

 다시 눈을 감는다.

 그저 생각을 비우고 쳇 베이커의 음성을 떠올린다.

 'Everything Happens To Me'가 머릿속에서 연주된다.

 나는 상상의 반주에 내 트럼펫 소리를 얹는다.

 코드 진행에 맞춰서 임프로바이징을 한다.

 나는 미소 짓는다.

 나는 내 운명을 달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Everything happens to me.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5 성 미가엘 보육원 2024 / 8 / 27 9 0 904   
24 기억의 사진첩 2024 / 7 / 5 14 0 1447   
23 인터뷰 2024 / 7 / 4 17 0 1089   
22 자고 일어나면 2024 / 5 / 23 46 0 1134   
21 히틀러는 아이돌이다 2024 / 5 / 22 42 0 844   
20 이자카야 농부와 상상 공간 체스 2024 / 5 / 2 74 0 2205   
19 체스판의 말 2024 / 5 / 1 73 0 1170   
18 2024 / 4 / 29 68 0 2515   
17 다시 깨어나다 2024 / 4 / 27 92 0 1419   
16 발신인: 메신저 2024 / 4 / 27 73 0 1588   
15 히틀러의 몸 2024 / 4 / 26 80 0 980   
14 내가 네 형제 노릇을 해줄게 2024 / 4 / 25 91 0 1070   
13 당신, 카산드라를 아시나요? 2024 / 4 / 22 114 0 826   
12 신탁의 뜻은 무엇인가 2024 / 4 / 15 91 0 667   
11 의외의 한 수 2024 / 4 / 3 115 0 1028   
10 신탁은 어차피 모든 것을 안다 2024 / 4 / 1 103 0 1354   
9 섬에서 육지로 2024 / 4 / 1 113 0 2418   
8 가만히 앉아서 신탁을 기다린다 2024 / 3 / 29 106 0 1650   
7 체스 - 나는 무엇인가 2024 / 3 / 29 109 0 860   
6 왕은 말하지 않고 경청한다. 2018 / 2 / 20 429 0 1814   
5 너는 무엇인가? 2017 / 11 / 30 409 0 1499   
4 형제의 비밀 - 그곳에 살던 너와 나 2017 / 11 / 22 407 0 2903   
3 그 여자 - 그토록 큰 캐리어 안에는 무엇이 들… 2017 / 11 / 21 417 0 1714   
2 라이프 스타일 - 기생충 2017 / 11 / 17 427 0 978   
1 프롤로그 - 신탁 2017 / 11 / 17 650 0 658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