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흐으으윽.... 오늘따라 무슨 되는 일이 하나도 없냐...”
대머리 남자는 부하의 부축을 받으면서 흐느꼈다.
“두목, 목소리 낮추세요. 이러다가 들키겠어요.”
부하 하나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 하지만 오늘 일이 너무 꼬이고 꼬여서 미치겠는걸 어쩌라고...”
부하의 말에도 대머리 남자는 분통터지는 심정을 호소했다. 돈 좀 따낼거라 생각한 도박사기에서는 역으로 사기를 당했고 주먹질로 뺏으려했더니 되려 이쪽이 초죽음으로 발렸다. 그리고 마을 바깥의 아지트로 돌아와 부상을 치료하고 있었는데...“
“왜 거신이 우리 아지트 위에 떨어지냐고....”
대머리 남자가 갈대수풀에 숨은 채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갈대수풀 사이로 그의 시야에 비친 것은 동양식 갑옷을 입은 거대한 인간형 형체, 거신(Titan)이었다. 흑백색 갑옷을 입은 그 거신은 대머리 남자의 아지트를 밟은 채로 우두커니 서서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신이 시선이 향하고 있는 지평선 끝에는 다른 거신들과 셰하군의 GCM이 일대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부드드드득
그리고 20M가 넘는 거신이 밟고 있는 대머리 남자의 아지트는 거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점점 무너져 갔다.
“안 돼!! 내 아지트가...!! 내 보물이...!!”
점점 박살나는 아지트를 보며 대머리 남자는 자식잃은 것 마냥 훌쩍였다.
“두목, 조용히 하시라니까요. 거신한테 다 들리겠어요.”
부하가 그를 다독였지만 대머리는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안 돼, 내 아지트, 아지트!!!!”
“들킨다니까요........... 헉, 히이이이익!!!”
대머리 남자의 처량한 울음소리를 들었는지 거신이 그들 쪽으로 고개를 스르르륵 돌렸다. 투구 아래로 보이는 것은 형체가 없는 농밀한 마력덩어리. 눈코입 따위는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그들을 내려다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컥, 두목 어떡해요! 들킨 것 같아요!”
“나, 나도 몰라!!”
일개 인간이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존재와 시선을 마주한 그들은 경외스런 공포에 휩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망치지도 못하고 저항하지도 못하고,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을 감고 죽을 준비를 했다. 이 양아치들이 파란만장했던 인생에 작별을 고하려 하는데..
앗! 눈부셔.”
“응, 뭐지?”
갑자기 눈부신 섬광이 눈꺼풀을 뚫고 들어와 안구를 자극했다. 대머리 남자는 손바닥으로 섬광을 가리고 살며시 실눈을 떴다. 거신이 밟고 있는 대지 주위에서 기하학적 무늬로 가득찬 원형 마법진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강렬한 빛에 대지가 녹아버린 건가, 거신은 늪에 빠지듯 그 마법진 아래로 스르르르륵 잠겨 들어갔다.
“저, 저건....”
“거신이 사라지는 과정이잖아. 처음보냐 멍청아.”
대머리 남자가 부하에게 면박을 주었다. 와일드 센트럴을 나돌아 다니는 부랑아들이라면 다들 한 번 쯤 봤을 것이다. 마법진이 갑자기 생기면서 거신이 솟아오르고 또 갑자기 잠기며 사라지는 광경을.
“아니, 그걸 말한 게 아닙니다. 저기 보십시오. 저 그림자 사람 아닙니까?”
“응??”
대머리 남자는 부하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지면 아래로 잠겨 들어가는 거신의 본체 속에서 무언가가 갑옷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사람의 그림자였다.
멀고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가느다란 어깨 실루엣과 등 뒤로 찰랑이는 머리카락 그림자를 보니 여자인 것 같다. 그 장면을 넉 놓고 우두커니 지켜보던 대머리 남자와 부하. 서로 고개를 돌려 마주보고는 교활한 미소를 짓는다.
“두목, 이거 엄청난 정보 아니에요?”
“그래. 어느 나라 군대에 팔든 간에 엄청난 값을 받을 수 있는 정보야. 아지트 부서진 손해를 메우고도 남을 값어치라고!!”
“지금부터 징계위원회를 시작한다.”
대령 한명이 집무실 테이블에 턱을 괴며 말했다. 레가츠의 상관이자 안테티탄 제5전대의 부대장인 타브가치 대령이었다.
“에이, 또 무슨 어울리지도 않는 폼을 잡습니까, 대령님.”
그리고 그의 맞은 편에는 레가츠가 다리를 꼬고 앉은 채로 히죽이죽 웃고 있었다.
“카시튠 중사, 대령님께 말버릇 제대로 갖추기로 저와 약속하지 않으셨나요? 지키지 않을 시에는 앞으로 일체의 보너스수당과 포상 휴가는 없다고 약속한 것 같은데?”
보좌석에 앉아 있던 발레타 소령이 나긋나긋하면서도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아아아!! 네네네!! 그랬음죠!! 저도 그러려고 노력하는데 대령님이 워낙에 위엄을 안 갖추시니 저도 모르게 만만하게 봐서...”
발레타 소령의 레알 살인미소에 허둥거리는 레가츠거렸다. 왜 여기 부대 여자는 죄다 무서운 것일까. 한 명은 불꽃튀는 열혈여전사(네티엣 원사), 또 한 명은 살이 에일 듯이 차가운 얼음마녀(발레타 소령), 마지막 한 명은 음... 생각하지 말자.
“휴우우... 그건 카시튠 중사 말이 맞아요. 대령님도 계급에 걸맞는 체통을 지키셔야 합니다.”
“최전선에서 싸우는 군인이 실력이 중요하지 체통이 무슨 상관이야, 로메르제.”
그 사이에 발레타 소령과 타브가치 대령은 복장상태를 가지고 실랑이를 벌였다.
칼각이 잡히도록 근무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발레타 소령과 반면에 근무복 단추를 죄다 풀어헤치고 맨발에 슬리퍼 차림인 이 타브가치 대령. 거기다 덤으로 그는 머리도 안 감아 비듬이 떡진 상태. 외관만 보면 두 사람의 계급이 바뀐 줄로만 알겠다. 아니, 중사인 레가츠랑 바뀐 줄 알겄다.
이 동양계 유목민 출신의 프리스타일 대령을 상관으로 둔 발레타소령은 상관의 복장을 지적하는게 이제 몇 번 째인지 모른다. 타브가치 대령 딴에는 부하들도 모두 친근하게 이름도 부르고 그래서 복장도 친근하게 보일려고 일부러 이렇게 입는다고는 주장한다만 그 변변찮은 변명을 받아줄 발레타 소령이 아니었다.
“대령님, 상관의 복장은 부대 군기의 기본입니다. 대령님부터가 이런 상태시니 카시튠 중사가 자꾸만 사고치는 것 아닙니까.”
“그게 왜 내 탓이야. 레가츠 저 녀석의 글러먹은 인성 탓이지.”
“여기서 제 인성 이야기는 왜 나옵니까. 그보다 인성이면 대령님도 한 수 하시지 않습니까? 얼마나 글러먹었으면 40이 넘도록 결혼 못하시는 지 몰라?”
“레가츠, 네가 날 깔게 없으니 인신공격하는 마음은 이해하는데 난 자발적 독신주의자라서 말이다. 노총각이라 놀려도 난 아무 감흥없어.”
“하이구야, 깔 게 없으시단다. 어디 제가 깔 게 안 나올 때까지 까드려봅니까?”
“대령님!! 카시튠 중사!! 그만 하세요!!”
답도 없고 끝도 없는 말싸움을 발레타 소령이 중지시켰다. 자신의 턴에서 말이 끊겨버린 타브가치 대령은 칫하고 혀를 찼다.
“쳇, 알았어. 로메르제. 저 녀석 면상보기 싫어서라도 위원회 빨리 끝내련다. 보고서 읽어 줘, 로메르제.”
이 대령님 끝까지 체통 따위 세울 생각 없다. 발레타 소령은 이 한심한 상관에게 뭐라 한 마디 하려다가 결국 포기해버렸다.
“후우우우... 보고서를 읽겠습니다. 레가츠 카시튠 중사는 어제 오후 3시경. 카잘라 마을 중앙광장에서 주민일행과 패싸움을 벌이고 나이프로 찌르려까지 했습니다. 인정하십니까?”
발레타 소령이 보고서의 중점만 요약해서 말했다. 그 심문조의 말투에 레가츠는 저도 모르게 주눅 들었다.
“일단 그렇긴 했는데 시비도 저쪽이 먼저 걸었고 나이프도 저쪽이 먼저 뽑았고....”
"어쨌든 간에 위의 혐의는 인정합니까?"
발레타 소령은 레가츠가 변명할 틈도 없이 몰아부쳤다. 그 무시무시한 말빨의 휘몰아침에 레가츠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으....예... 인정합니다."
"알겠습니다. 들으셨습니까, 대령님? 카시튠 중사는 혐의를 모두 인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카시튠 중사에게 적용되는 죄목은 민간인폭행죄와 살인미수죄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발레타 소령은 타브가치 대령을 지긋이 쳐다봤다. 보고한 바에 따라 판단을 내려달라는 의미였다. 타브가치 대령은 턱을 괴고 눈을 찡그린 채로 몇 분간이나 고민하더니 결국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야, 레가츠. 너 쌈박질 벌일 때 군복이나 셰하 군임을 나타내는 다른 징표 같은 것들 착용하고 있었냐?"
"예? 그게 사복을 입고 있었고 기타 신분증은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릴 때 같이 잃어버리고.... 죄송합니다. 얼른 재발급 받겠습니다..."
신분증 분실을 말하는 도중 발레타 소령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한 레가츠는 잠시주춤거렸다.
"워이워이, 딴 이야기로 새지말고 내 말에 집중해라. 여튼 간에 거기서 네가 셰하군이란 걸 알아본 사람은 없던 거지?"
타브가치 대령이 테이블을 탕탕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아, 넵. 없을 겁니다."
"확실해?"
"넵. 아마도."
"그래.....알았다. 그만 가봐."
타브가치 대령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맥락도 없고 갑자기 삼천포로 빠진 이 말에 레가츠는 한동안 눈꺼풀만 깜빡였다.
"넵?"
"아, 이번 사건도 없던 일로 해줄테니까 어서 꺼지라고."
타브가치 대령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홱 돌리고 손사레를 쳤다.
"아, 아하하하하!! 그렇습니까? 이번에도 역시나... 아니아니 생각지도 못한 대령님의 은총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레가츠의 얼굴에 다시 평소같은 천진난만한 화색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징계위원회도 열리고 발레타소령이 하도 조목조목 따져서 정말 그냥 안 넘어가는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어이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여 나가기나 해. 그리고 부대 전체에 3일간 휴가 지급됐으니 어디 멀리 가든지 말든 지 알아서 하고. 대신 제발 또 사고만 치지 마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걱정마십쇼!! 이번에는 아예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다니겠습니다. 정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령님!!"
예상 밖의, 아니 완전 상식을 벗어나는 이 막장스런 선처에 레가츠는 입꼬리를 실실 올리며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그가 떠난 자리를 발레타 소령은 불만스런 눈빛으로 한동안이나 계속 쳐다봤다.
"결국 이번에도 이렇게 넘어가네요. 대령님. 카시튠 중사에게 너무 오냐오냐 하시는 것 아닙니까?"
"오냐오냐가 아니라 아주 대놓고 떠받들고 있지. 이거 참 누가 상관인지 원..."
타브가치 대령이 그녀의 말에 수긍하며 혀를 찼다. 그러자 놀라는 발레타 소령.
"이럴 수가!! 대령님도 자각하고 계셨던 겁니까? 그런데도 왜 계속 이런 대접을..."
"이렇게 우리가 고개를 굽신거려서라도 잡아야할 녀석이니까. 어디 그 놈만한 격투실력이 흔한가. 하...정말 재능있는 놈들은 좋겠어."
타브가치 대령은 의자 뒤로 고개를 젓히고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자 발레타 소령은 인상을 찡그린다.
"그런데 말입니다. 카시튠 중사의 실력이 출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 정도 실력자는 우리 군대에 충분히 있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할 이유는..."
"이봐, 로메르제."
발레타 소령이 불만을 토로하자 타브가치 대령이 말을 끊었다.
"유명 스포츠팀들이 탑클래스 선수들을 필요이상으로 영입하곤 하잖아. 그라운드에 보내지 않고 후보석에 앉혀 놓기만 하는데 말이야. 왜 그런지 알아? 그건 바로 그 선수를 우리 팀에 잡아놓고 있는 것 만으로도 상대팀의 전력 강화를 막을 수 있거든."
타브가치 대령이 진지하게 말했다. 모처럼 그가 폼을 잡아봤지만 발레타 소령은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스포츠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요...."
"스포츠에 관심없는 사람이 굳이 스포츠 알려 할 필요 없어. 자!! 레가츠 저 골치덩어리 사건도 해결지었으니 이제 진짜로 제대로 된 일 해보자. 로메르제, 가지고 온 파일들 보여 봐."
타브가치 대령이 기지개를 쭉 피며 말했다.
"예, 대령님. 어제 전투현장을 인공위성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우리 제5전대가 투입되기 직전부터 전투가 끝난 후까지 총 1분에 한 장씩 찍었습니다."
발레타 소령은 미리 챙겨왔던 위성 사진들을 상관의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어제 전투가 거의 30분 넘게 이어졌고 그것을 1분에 한 장 꼴로 찍었다니 자그마치 30장이 넘는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모두 고해상도 컬러 인화에다 B4사이즈라서 타브가치 대령의 테이블은 사진 더미 속에 파묻힌 꼴이 되었다.
"흐으으음...."
그런데 이 귀차니즘 대령께서는 의외로 그 사진더미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세상 만사가 다 귀찮지만 전략전술을 수립하고 그를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에서만은 엄청난 열정과 집중력을 발휘하는 타브가치 대령이었다. 그렇게 명전략을 세우고 나서 정작 그 전략을 실시하는 것은 또 엄청나게 귀찮아 하지만..... 여튼 책상 위에서만큼은 진지하다.
"어이, 로메르제. 어제 전투에서 우리애들이 상대한 거신이 4기라고 했었지?"
"예, 그렇습니다. 2기는 오토븐 중위가 급강하폭격으로 제거했고 나머지 2기는 GCM 부대들이 해치웠습니다."
"그래, 우리애들은 분명히 4기의 거신과 싸웠지..... 그런데 이 사진에는 거신이 5기가 찍혀있네."
"예... 저도 그 점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타브가치 대령과 발레타 소령은 모두 위성사진 한 장을 지긋이 살펴보았다. 어제 전투가 벌어졌던 카잘라 주둔 셰하군 기지는 위성사진으로 보아도 한 눈에 여기가 전투현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검은 포연이하늘에서 내려다본 지형을 가렸고 그 듬성듬성 틈 사이로
무너진 잔해들이 굴러다녔으며 그리고 그 위를 거대한 거신들이 휩쓸고 다녔다.
그런데 거신은 어제 보고 받은 것과 달리 4기가 아니었다.
전투현장으로부터 4KM 떨어진 둔덕 위에 거신 1기가 서 있었다. 전투 당시에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지만 분명 거신은 1기가 더 존재했었다. 그 거신은 마치 전투의 참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야를 어제의 전투현장 쪽으로 향한 채였다.
"도대체 이 남은 한 놈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글쎄요, 그냥 관전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요?"
"그건 누가 봐도 다 알 수 있는 것이잖아, 내 말은 이 녀석이 뭐 때문에 어제의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던 것이냐는 거야. 어째서 거신이 <관전 같은 짓>을 하냐는 말이지."
타브가치 대령이 조용히 말했다.
거신(巨神; Titan)은 과거 대전쟁시대에 동아시아의 친 제국(秦 ; Chin)이 셰하에 맞서기 위해 투입한 결전병기다. 동양식 마술이라 할 수 있는 도(道)와 기(氣)를 통해 원격으로 움직이는 거신은 열반응장갑이라는 초유의 무장을 앞세워서 기존의 화약병기들을 완전 무효화시켰다.
막강한 화력이 장기인 셰하 군은 거신의 등장에 속수무책으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또 50년 전 전쟁 당시에는 GCM이나 급강하폭격이나 스파이더링 같은 대(對)거신 전술도 정립되기 전이었기에 거신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셰하는 우선 거신을 조종하는 도사들을 암살하는 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친 제국이 도사들의 호위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면서 막혀버렸다.
결국 궁지에 봉착한 셰하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했다. 바로 도사와 거신을 연결하는 용맥(龍脈)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셰하는 중앙아시아의 용맥이 교차하는 요충지마다 총 19발의 수소폭탄을 투하했다. 주변 지형을 변화시켜 버릴 정도의 이 엄청난 핵공격에 용맥은 결국 끊어져 버렸고 친 제국은 자신들이 중아아시아에 연성해 놓은 거신소환 마법진을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친 제국의 제어에서 벗어난 거신들이 평화조약이 체결 된 이후에도 중앙아시아 일대를 무차별적으로 휩쓸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거신들은 평소에서는 마법진 속의 가상 정보 공간 속에서 휴식을 취하다 무작위적으로 현실세계에 재현하여 주변물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곤 했다. 굳이 셰하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에 주둔한 모든 나라의 군부대를 습격하고 있기 때문에 거신은 국제적으로 매우 큰 골칫덩이가 되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지만 여튼 요지는 이것이다. 지금 중앙아시아를 휩쓸고 다니는 거신들은 친 제국의 제어에서 벗어난 상태다. 그냥 파괴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야생동물과 마찬가지라 볼 수 있다.
그런 야생동물들이 <관전>이라는 행위를 할 리가 없다. 관전이라는 것은 전투를 유심히 관찰하고 그에 대한 판단을 내려 '누군가'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다분히 의식적이고 목적이 뚜렷한 행위다.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면 전투를 보고 바로 같이 뛰어들거나 아니면 도망갔어야만 했다. 그러므로 거신이 관전을 했다는 의미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거신습격을 조종하고 있다는 거야.'
불안한 직감이 타브가치 대령의 뇌리를 스쳤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그는 통계 데이터를 살펴보기로 했다.
"로메르제, 최근 1년 간 와일드 센트럴에서 일어난 거신 출몰 건수 좀 보고해 봐."
타브가치 대령이 발레타 소령에게 명했다. 발레타 소령은 태블릿pc를 꺼내 능숙하게 조작해서 데이터 파일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예, 지난 1년 동안 거신은 총 242건 출몰했습니다.”
“그 중 최근 한 달 동안의 출몰은?”
“예, 최근 한 달간 출격횟수는 82건....!!!”
타브가치 대령이 무얼 이상해하는지 발레타 소령도 눈치챘다. 최근 한 달 들어서 거신의 출몰이 급속히 증가한 것이다.
“우리 셰하군이 습격을 받은 비율은 어떻게 되지? 1년간비율이랑 최근 한 달간 비율 모두 말해봐.”
“우리 셰하군이 거신에게 습격받은 비율은 최근 1년간 242건 중 75건. 최근 한달간의 비율은....... 82건 중 61건입니다..."
발레타 소령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불길한 예감은 꼭 들어맞는 법이라고... 답이 너무 뻔히 보이는 노골적인 수치다. 본래 거신은 국적을 불문하고 그냥 닥치는 데로 파괴행위를 일삼는 존재, 라고 알려졌건만
"... 왜 요즘들어 자꾸 우리 셰하군만 습격하는 걸까 이 녀석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