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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드래곤 플래닛
작가 : 에르노
작품등록일 : 2017.11.13

[판타지 활극] 흉악한 인간살육병기가 되어 나타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옛 애인을 원래 모습으로 되찾기 위한 한 남자의 모험 이야기.

멸망한 고대왕국의 유산, 신비한 힘을 가진 마법유물 ‘아티팩트’가 지상을 지배하는 욕망의 세계. 그리고 아티팩트 유통을 독점해 절대 패권을 누리는 무역회사 ‘서해회사’와 옛 제국의 복수를 위해 서해회사를 대상으로 암살과 공작을 일삼는 테러조직 ‘쿠샤나바’가 극한 대립을 펼치는 공포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도둑길드의 일원으로 살아가던 아딘의 앞에 죽은 줄 알았던, 그러나 지금은 인간살육병기이자 쿠샤나바의 간부가 된 옛 애인 카멜리아가 나타난다.
아딘은 쿠샤나바에게 복수를 하고 옛 애인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서해회사 소속 유물탐사단에 입단하여 모험을 시작한다.

 
31.또 다른 여정(2)
작성일 : 17-12-15 21:38     조회 : 310     추천 : 0     분량 : 4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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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는 해가 서서히 눈을 감는다.

  레이라 일행은 마을 사람들의 무덤 앞에 서 있는 갈란을 바라보고 있다. 갈란은 마치 죽은 것마냥 가만히 있다. 해질녘의 어스름한 햇빛이 그녀 주위를 감돈다. 신비로운 분위기가 난다. 아딘은 갈란의 뒷모습을 아련한 눈길로 본다.

  “아아......”

  갈란은 신음하며 지팡이를 높이 들어올린다. 그러고는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말을 외기 시작한다. 이 마을에서만 사용하는 장례법이다. 무녀의 영창을 통해 영혼이 저세상으로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 영창에는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담겨있다.

  어쩌면 갈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오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들은 무사했을 수도 있었다. 우리의 책임이다. 아딘은 슬그머니 흐르는 눈물을 슥 닦는다. 레이라와 블뢰즈는 무표정했고, 카릴은 의외로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을 정도로 울고 있다. 보기보다 정이 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창이 끝났다.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괴물 까마귀가 갈란에게 머리를 비벼댄다. 갈란은 어딘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까마귀의 이마를 쓰다듬는다. 그 모습에 아딘인 순간 소름이 돋았다. 꼬마라고는 생각이 안 될 정도로 어른스러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착각이었을까? 갈란이 엉뚱한 말을 한다.

  “나, 이 축생의 이름을 정했도다.”

  아딘이 번뜩 정신을 차리며 대답한다.

  “그래? 한 번 들어보자.”

  갈란은 배시시 웃는다.

  “크라하!”

  아딘은 어깨를 으쓱인다.

  “뭔 의미인지 모르겠는걸.”

  “이 바보! 이 축생이 포효하는 소리에서 따온 것이니라. 이렇게 하지 않더냐. 크라라라라아~”

  갈란의 흉내는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그 결과 블뢰즈를 뺀 모두가 배꼽을 잡고 비웃어댔다. 갈란은 눈살을 찌푸린다.

  “비웃지 말거라! 나쁘다!”

  갈란이 곤란해 하자 크라하도 노여운 듯 갑자기 “크라아아아아!!”하고 포효해댄다. 정작 이름을 지어준 본인이 제일 놀랐다.

  포효가 잠잠해지고 웃는 것도 잦아들자 카릴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그런데 이제 갈란을 어떡하면 좋지? 그냥 두고 갈 수도 없잖아.”

  분위기가 차갑게 식는다.

  갈란은 고개를 푹 숙인다.

  카릴이 이어서 말한다.

  “역시 고아원에 보내는 게 제일 아닐까?”

  하지만 레이라도 바로 선을 긋는다.

  “안 돼. 이미 쿠샤나바가 갈란의 얼굴을 알아버렸어. 게다가 열쇠가 뭔지도 갈란은 알고 있지. 분명히 죽이러 올 거야.”

  “그래? 아, 머리 아파라...”

  듣고 있던 아딘이 입을 연다.

  “갈란아. 이 마을 바깥에 친척은 없니?”

  갈란은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아딘은 레이라에게 말을 건다.

  “으음. 잘 모르겠지만, 네가 부탁을 해서 서해회사에 맡기는 건...”

  “헛소리 하지 마. 서해회사는 자선업체가 아니야, 게다가 갈란이 열쇠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걸 들키면 당장 죽이려들걸.”

  아딘은 혀를 쯧 찬다.

  “그러면 우리들 중 누군가의 지인에게 맡기는 법도 있지 않나? 레이라는...... 안 되겠군. 고위 귀족이니까 갈란을 받아줄 리가 없어. 카릴도 아예 종족이 다르니 어렵고, 블뢰즈는... 아니다. 나는 가족도 지인도 없으니 방법이 없네.”

  결국 논의는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던 갈란은 살짝 훌쩍인다. 하지만 다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 다음 선택지는 갈란에게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기에.

  그 가혹한 선택지를 레이라는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쩔 수 없군.”

  아딘은 레이라를 말리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냥 두고 가버리는 건 너무......

  “갈란. 너 내 유물단에 들어와라.”

  “어엉?” “에엑?”

  레이라는 아딘과 카릴을 찌릿 노려본다.

  “어엉은 무슨 어엉이야.”

  레이라는 다시 갈란을 바라본다. 갈란도 고개를 들어 레이라를 마주본다.

  “그래서 대답은? 우리랑 같이 갈 거야, 말 거야?”

  “어... 음... 그게...”

  “일단 나로서는 네가 열쇠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널 최대한 내 곁에 두는 게 최선이야. 그래야 입막음이 되니까. 또 네 까마귀도 아주 도움이 될 것 같고. 너한테도 이 길이 가장 나을 거야. 비록 신입이 들어와도 반년도 안 되어 마구 죽어나가긴 하지만, 너야 네가 직접 전투를 할 것도 아니니 어떻게든 되겠지. 게다가 위험한 만큼 급여도 확실해. 2년만 일하면 네가 사회에 나가 정착할 수 있을 자금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어. 사실 그 정도 돈만 있으면 넌 외모도 괜찮으니까 적당한 데 시집가도 좋을 지도 모르지.”

  레이라의 말은 아딘이 듣기에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갈란은 아직 미성년이다. 통할지는 미지수다.

  갈란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하지만, 하지만...”

  갈란은 고개를 돌려 마을사람들의 무덤을 본다.

  “유물단에 들어가면 또 이런 것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니냐?”

  “그렇겠지.”

  레이라의 즉답에 갈란은 입을 다물어버린다.

  “하지만 이거 외에 네게 남은 길은 이 마을에 혼자 버려지는 것밖에는 없어. 그것보다는 훨씬 희망적이지 않아?”

  “음......”

  갈란은 선뜻 응하지 못하고 계속 고민한다. 그런 갈란이 가여워진 아딘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한다.

  “괜찮아. 내가 반드시 널 지켜줄게.”

  갈란은 아딘을 올려다본다.

  “고맙다. 하지만 같이 다니다가 만약 아딘이 죽어버리면 난 어떡하느냐?”

  의외의 말에 아딘은 뭐라 답할 수가 없었다. 이 아이는 내가 죽는 것까지 염두에 뒀던 건가. 갈란은 내가 죽는 걸 두려워하는 걸까? 내가 벌써 갈란에게 그렇게나 중요한 사람이 된 건가. 아딘은 씁쓸하게 웃는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갈란은 오랫동안 아버지에 의지해왔다. 그러나 지금 그 아버지도 죽어버렸다. 레이라 일행 중에서 남자라고 할 만한 사람은 아딘 밖에 없고, 또 생각보다는 젊었던 촌장과 아딘이 가장 외양이 유사했다. 아버지가 사라진 지금 가장 동질감을 느끼고 의지하고 싶어지는 대상이 아딘이 되어도 이상할 건 없다.

  생각지도 못하게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삶에 불쑥 들어오는 이런 상황은, 뭐라고 할까, 좋기도 하면서 싫은, 하여간 생소한 경험이다.

  그래도 이것 또한 운명이겠지.

  아딘은 싱긋 웃으며 갈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괜찮아. 나는 안 죽어.”

  갈란의 얼굴이 환하게 펴진다.

  “그러면 안심이다!”

  갈란은 아예 아딘을 확 껴안는다. 아딘도 웃으며 받아준다.

  근데 카릴은 혼자 심각한 얼굴로 턱을 문지르고 있다.

  “이건 말도 안 돼. 평소 레이라 같으면 이 꼬맹이를 묻어버리려고 할 텐데... 이렇게 상냥하게 나온다고?”

  카릴은 아딘의 목덜미를 콱 붙잡는다.

  “야. 너 단장님한테 무슨 짓을 했어? 벌써 정을 통한 거냐?!”

  “켁켁... 무슨 헛소리야?”

  무겁던 분위기는 일순 풀렸다.

  그런데 북쪽 하늘을 바라보던 블뢰즈가 갑자기 무어라 말한다.

  “부엉이다.”

  그의 말대로 얼마 안 있어 부엉이가 나타나더니 레이라의 어깨에 날아와 앉는다. 레이라는 부엉이가 입에 물고 있던 종이를 펼쳐 읽는다.

  “소식 참 빠르군. 열쇠 하나를 놓친 게 벌써 이사회의 귀에 들어갔나. 우리를 소환해서 질책할 모양인 것 같아.”

  아딘이 묻는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 거야?”

  “서해회사 본부가 있는 곳으로 가야지.”

  레이라는 부엉이의 입에 다시 종이를 물리고 날려 보낸다.

  일행은 날아가는 부엉이를 바라본다.

  “소린 도시로 간다.”

 

 

  *************************************

 

 

  그 시각, 지하 던전의 최심부.

  몇 백 년만의 소동이 끝난 이후, 더할 나위 없이 고요하다. 원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수호자마저 사라져서 더욱 더 그렇다.

  그러나 수호자가 사라지면서 생긴 이상한 하얀 원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이다. 하얀 원의 주위에는 검은 까마귀 깃털이 한 가득이다. 카라흐가 좁은 원을 통과하면서 남긴 흔적이다.

  다시 말해 이 원은 수호자의 심층구조와 연결된 일종의 문이다.

  그 문으로부터 대량의 피와 살점과 뼈 조각들이 분수처럼 터져 나온다. 계속해서 솟아나온다. 둥글게 원을 그려가며 찰방거리는 인간 잔해의 호수를 만든다. 수백 개의 눈알과 수천 개의 갈비뼈와 수만 컵의 양 정도는 될 핏물.

  수호자를 구성하던 모든 것이 꿀렁꿀렁 원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것도 이윽고 멈췄다.

  심층구조 내부의 모든 것을 게워낸 원은 사라지려는 듯 옅어져간다.

  허나 갑자기 누군가의 손이 원으로부터 나타나 바닥을 짚었다. 그리고 힘껏 밀어, 좁은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자신의 몸을 빼냈다. 누더기 같은 회색 망토로 상체를 두르고 두 눈이 안보일 정도로 갈색 후드를 덮어쓴 그 남자는 옷에 문든 먼지를 털며 일어선다. 오른손에는 멋들어진 석궁이 들려있다.

  그는 그림자가 없는 존재이다.

  아딘의 그림자는 빨간 보를 깐 죽은 자들의 테이블 위에 삐딱하게 서서 석궁을 오른 어깨에 걸쳐본다.

  그가 갈 곳은 명확하다.

 

 

 

 

 (1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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