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난 무리야!”
더위를 참지 못한 카릴은 그만 사막 위에 쓰러지고 만다. 동굴족이라 원체 더위에 약하지만 이건 너무도 살인적이다.
아딘은 여태껏 경험해본 적 없는 미친 더위에 아릿한 현기증까지 느낀다. 이렇게 된 이상 빠르게 카멜리아를 해치워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카릴이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
이게 마지막 싸움이다.
아딘, 블뢰즈, 레이라는 다 같이 한 번에 카멜리아에게 달려든다. 아딘은 푸른 섬광을 쏘지만, 또 카멜리아가 붉은 섬광으로 빗겨치는 바람에 빗나가서 엉뚱하게 레이라를 향하게 되고 레이라의 방패가 저절로 움직여 또 섬광을 반사하자 푸른 섬광의 최종 도착지는 하늘이 되고 말아 아딘은 분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레이라는 카멜리아를 향해 워 해머를 휘두른다. 오른쪽으로 휘두르면 카멜리아가 왼 팔로 막고, 왼쪽으로 휘두르면 오른 팔로 막고, 중간에 블뢰즈가 끼어들어 곡도로 찔러도 카멜리아는 발로 튕겨버리고 오히려 붉은 섬광으로 역공을 가하는 바람에 블뢰즈는 옆으로 몸을 날려 피한다. 그 틈을 타 아딘이 양손에 단검을 들고 카멜리아에게 파고들어 현란하게 공격하나 카멜리아의 방어에 번번이 막히고 그러면서도 레이라가 휘두르는 워 해머를 슥 피하고 워 해머를 잡아 위로 뛰어올라 단단한 무릎으로 레이라의 옆머리를 가격하는 바람에 레이라는 사막 위에 쓰러진 채 피가 줄줄 흐르는 머리를 손으로 부여잡고 카멜리아를 노려본다. 노려봐도 별 수가 없다, 카멜리아는 쉴 틈도 주지 않고 레이라를 발로 차서 저 멀리 날려버리고 마지막으로 아예 몸을 꿰뚫어버릴 정도로 발로 찍으려고 했지만 방패가 발을 막자, 카멜리아는 그냥 방패 째로 레이라의 몸을 짓눌러 버리고 레이라는 피를 토하며 버티지만 압력보다도 더위 때문에 공기가 부족해서 숨을 막혀 죽을 지경이다. 다행히 진짜로 레이라가 죽기 전에 블뢰즈가 공간이동 시킨 곡도로 레이라를 향해 휘둘러 뒤로 물러나도록 만들어 레이라를 구하고 레이라는 숨을 헐떡이며 일어나 다시 싸울 태세를 갖추고 아딘이 다시 푸른 화살을 시위에 걸고 쏴 푸른 섬광을 날려 보낸다. 카멜리아는 또 여유롭게 피하지만 피한 그곳에는 블뢰즈가 풀어놓은 화염이 닥쳐왔는데 또 그것도 피하지만 제복 곳곳에 불이 붙어 타버려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마니 흉한 몸체가 군데군데 드러나고 만다. 카멜리아는 갑자기 들려오는 바람소리에 퍼뜩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에서 괴물 까마귀가 화살처럼 몸을 쭉 말고 무섭도록 빠르게 하강하고 있으니 그 날카로운 부리를 보니 한 번만 공격당해도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길게 분명해 살짝 긴장하지만 카멜리아는 제대로 조준해 붉은 섬광을 쏘고 까마귀는 그걸 피하느라 또 자세가 흐트러져 공격에 실패하고 만다, 조종사가 미숙한 꼬맹이라서 살았다. 고작 3분이 지났을 뿐이지만 레이라 일행 모두 더 이상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로 지쳐버리고 말았다, 개미귀신과의 혈투에서도 상당히 힘을 소모했는데 이런 정신 나간 더위 아래에서 싸우니 정말이지 죽을 노릇인데 아지랑이 때문에 저곳에 있는 줄 알았던 카멜리아가 뜬금없이 일행 가운데에 나타나 다들 당황하고 어떻게든 대항해 보지만 도저히 대적할 수가 없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죽음의 사신이 그들 바로 뒤에 있던 그 순간.
아딘은 묘안을 떠올린다. 그는 프린에게 속삭인다. “프린. 너의 축복은 내 화살촉에만 부여되는 건 아니지?” 프린은 즉각 대답한다. 〈한심해라, 한심해. 또 내 도움을 구걸하는 것이냐, 인간.〉 “시끄럽고 묻는 거나 대답해!” 〈뭐든지 가능해. 네가 손을 대면 그걸 통로로 내가 축복을 부여할 수 있어.〉 “좋아, 그러면......” 아딘은 레이라에게 달려가 그녀의 워 해머를 덥석 집는다, 레이라가 놀라서 무슨 짓이냐고 소리 지르지만 아랑곳 않고 워 해머를 계속 잡고 있자 워 해머가 푸른빛을 띠기 시작한다. “내가 네 이름을 외치면 그 때 이걸 사용해!” 아딘은 옆으로 물러나 카멜리아에게 푸른 섬광을 쏘고 카멜리아는 붉은 섬광도 안 쏘고 귀찮다는 듯이 옆으로 슥 피하지만 블뢰즈의 화염이 닥쳐오는 바람에 높이 도약해서 푸른 섬광을 넘어가려고 한다. 그러자 아딘은 공중에 뜬 카멜리아를 향해 푸른 섬광을 또 다시 쏘면서 기세 좋게 레이라이 이름을 외쳐대지만 카멜리아는 그저 아딘이 미쳤다고만 생각하고 붉은 섬광을 빗겨 쏴서 푸른 섬광을 튕겨내지만 레이라가 푸른빛이 감도는 워 해머를 머리 높이 들고 있는 걸 발견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있었다. 레이라는 기합을 내지르며 워 해머를 힘껏 땅 바닥에 내리꽂는다.
그러자 푸른 빛줄기가 번개처럼 지그재그를 그리며 사막 위를 매섭게 내달린다.
공중에 뜬 카멜리아는 아무런 대응도 못 하며 그저 서서히 착지해 갈 뿐이다.
그 빛줄기의 종착점은 카멜리아의 착지점이다.
푸른빛과, 카멜리아의 구두가 서로 맞닿는 그 순간.
푸른 섬광이 위로 작렬하여 카멜리아를 덮쳐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아악!!!”
공중에 높이 띄어 올려진 카멜리아를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한다. 왼다리는 날아가고, 오른 다리는 반절로 부러졌으며, 복부도 뼈만 남고 두 팔은 아예 터져버렸고 검은 피가 사방에 흩날린다. 거의 죽지만 않은 수준이다.
“크라아아아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괴물 까마귀가 하강 비행을 해서 카멜리아를 몸통박치기 해버린다. 카멜리아와 함께 사막 위에 내팽개쳐진 괴물 까마귀는 허우적대다가 날갯질 해 다시 하늘 위로 올라간다.
“끄으으으으......”
사막 위에 비참하게 널브러진 카멜리아는 신음한다.
카멜리아가 빈사 상태가 되자 방금까지만 해도 일행을 짓누르던 미친 더위도 사라졌다. 그들은 비장한 표정을 한 채 카멜리아에게 다가간다.
“하, 하하......”
카멜리아는 어딘지 아련한 얼굴로 아딘을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자 아딘은 그냥 고개를 돌려버린다.
정신 차려! 또 연민을 느끼는 거야?
더 이상은 아니야.
저건 그저 괴물일 뿐이야.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아딘은 입술을 꽉 깨문다.
어째서 떨쳐내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지? 이 망설임은 대체 뭐야?
그 때였다.
괴물 까마귀에 올라타고 있는 갈란이 일행을 향해 다급하게 외친다.
“피해요!!”
일행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본다. 수많은 붉은 광선들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둘러 피했고, 붉은 광선들은 여기저기에 쇄도하여 사막 위에 꽂힌다.
아딘은 눈살을 찌푸린다.
“저건?!”
독수리였다.
카멜리아가 열쇠를 넘긴 갑주의 남자가 타고 있던 그 독수리가 날개를 사방에 넓게 펼치고 카멜리아 옆에 착지했다. 그 크기가 거의 괴물 까마귀에 맞먹는다.
갑주의 남자는 카멜리아를 한 손으로 들어 독수리 등에 태운다.
카멜리아는 떨리는 목소리도 말한다.
“타이밍 한 번... 죽이네...”
그 와중에 블뢰즈는 갑주의 남자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저 자는......”
“안 돼!!!”
레이라가 달려들지만 독수리가 날개를 펄럭여 순식간에 솟아오른다. 이제는 블뢰즈의 화염이 닿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남은 건 아딘의 푸른 화살뿐이다.
갑자기 나타난 저 남자가 아딘의 푸른 섬광에 대해 알 리가 없고, 알고 있는 카멜리아는 초죽음 상태다.
지금이라면 카멜리아를 죽일 수 있다.
아딘은 시위에 푸른 화살을 걸고 신중히 조준한다.
쏠 수 있어, 지금이라면.
쏴야만 해.
나는 지금 내 동료들의 시체와,
마을 사람들의 시체 위에 서 있어.
그들을 위해서라도 쏴야만 해. 끝내야만 해. 미련은 버리고.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계속.
손이 떨리는 거지?
젠장, 쏴!
추억 따위는 죽여 버려.
쏘라고!
아딘은 시위를 놨다.
스스로도 놀란 아딘은 푸른 섬광의 궤적을 본다.
푸른 섬광은 빗나갔다. 단지 카멜리아의 머리카락 몇 올을 앗아갔을 뿐.
카멜리아는 아딘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인다.
비웃음인가, 고마움의 표시인가.
독수리는 창공을 날아올라 순식간에 전장으로부터 벗어난다. 엄청난 속도다. 지금 까마귀가 추격해봤자 이미 늦었다. 포기했는지 까마귀는 독수리를 잠시 쫒다가 그만두고, 갈란을 태운 채 사막 위에 내려앉는다.
“빌어먹을.”
아딘은 고개를 푹 숙이고 주먹을 꽉 쥔다. 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거야? 천하의 글러먹은 놈 같으니!
아딘은 살며시 고개를 들어 올려 일행을 본다.
분위기가 싸하다.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아딘은 카멜리아와 그 갑주의 남자를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결국 하지 못했다. 카멜리아가 옛 연인이었기 때문에, 그 정을 뿌리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놓쳤다. 최후의 아티팩트의 열쇠를 또 하나 뺐겨 버렸다.
블뢰즈는 팔짱을 낀 채 불만스러운 건지 아니면 평온한 건지 모를 분위기를 풍긴다. 카릴은 그나마 아딘을 이해한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까마귀에서 막 내린 갈란은 차갑게 식어버린 공기에 당황한 듯 고개를 이리저리 저어댄다. 레이라는 아딘은 빤히 바라보며 걸어오고 있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아딘.”
아딘은 답 없이 고개를 돌린다.
“변명의 기회를 줄까?”
“아니, 됐어.”
“그래.”
레이라는 감정이라고는 한 톨도 섞이지 않은 말투로 아딘에게 고한다.
“넌 해고야.”
아딘은 눈을 꽉 감는다. 가슴이 짓눌리는 느낌이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아딘은 고개를 숙인다.
레이라는 이어서 말한다.
“이렇게 돼서 아쉽네.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 마음에 들었는데. 하지만 아티팩트, 더구나 최후의 아티팩트의 열쇠를 눈앞에 두고 놓쳐버리는 놈은 내 유물단에 있을 자격이 없어.”
아딘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렇겠지.”
바보 같은 놈.
어중간한 자식.
결국 이도저도 아니다가 모든 걸 놓쳐버리고 말다니.
돌이켜보면 항상 이랬지.
잔혹한 운명이다.
아딘은 아련한 눈길로 일행들을 한 번 둘러본다. 작별인사를 할까 했지만, 역시 안 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 그냥 몸을 돌려버리고 만다.
아딘은 터벅터벅 걸어서 일행으로부터 멀어진다.
이젠 정말로 어쩌면 좋을까?
그런 의문을 떠올릴 무렵이었다.
“잠깐만인 것이다!”
갑자기 갈란이 소리친다. 다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다.
“지금 그...... 이상하게 생긴 칼 때문에 그러는 것이냐?”
갈란은 잠시 망설이다가 품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거라면...”
갈란은 품에서 ‘열쇠’를 꺼내 높이 들어 보인다.
“나한테 있도다!”
아딘 “어라?” 카릴 “으에엑?” 레이라 “하.” 블뢰즈 “오호라.”
다들 굳어있는 찰나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카릴이었다. 카릴은 갈란에게 달려들어 어깨를 부여잡고 소리친다.
“뭐, 뭐야! 너, 너! 이거 언제 손에 넣은 거야? 엉?”
“아... 아까 내가 까마귀로 저 괴물 여자를 치지 않았느냐. 그 때 슬쩍 훔쳤다. 섬광 때문에 옷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잘 보였다!”
“요, 요 귀여운 자식! 내가 특별히... 와아악!”
레이라가 카릴을 옆으로 치워버리고 갈란 앞에 선다. 가만히 내려다본다. 레이라에게 위압감을 느낀 갈란이 어깨를 움츠린다.
“내, 내가 뭐 잘못한 것이냐?”
그런데 갑자기 레이라가 갈란의 볼에 키스를 한다. 갈란은 경악하며 손바닥으로 볼을 마구 문질러댄다.
“이게 무슨 짓이냐! 으아아악!”
“만세!”
레이라는 갈란을 들고 하늘에 띄우며 헹가래를 한다. 어느새 카릴과 블뢰즈, 아딘도 합심해서 같이 한다.
“갈란, 만세~”
“우아아아아! 무섭도다! 그만, 그만하거라아아!”
정말로 레이라가 그만 두는 바람에 갈란은 사막 위에 털썩 쓰러지고 만다. 레이라는 은근슬쩍 옆에 낀 아딘을 빤히 바라본다.
아딘은 머리를 긁적이며 발길을 돌린다.
“아... 음... 나도 모르게 기뻐가지고... 난 갈 길 갈게.”
“됐어.”
“엉?”
레이라가 피식 웃는다.
“분명 잘못은 했지만, 여차저차 열쇠는 손에 넣었으니 특별히 봐주도록 하지. 그리고 그 석조 문을 연 건 분명한 너의 공이니까 그것도 감안해야겠지.”
“그, 그럼...”
“해고는 없어.”
우중충했던 아딘의 얼굴이 한 번에 확 풀려간다.
“단장님! 사랑합니다!”
그러고는 레이라를 와락 껴안는다.
“야, 야. 갑자기 뭐하는 짓이야!”
레이라가 뭐라 하든말든 아딘은 놓아줄 생각을 안 한다. 어느새 카릴도 옆에 와서 배실 배실 웃으며 박수를 쳐댄다.
“사궈라~ 사궈라~ 사궈라~”
아딘은 신나게 웃어본다.
이렇게 웃어보는 게 대체 얼마만인지 본인도 알 수 없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