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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드래곤 플래닛
작가 : 에르노
작품등록일 : 2017.11.13

[판타지 활극] 흉악한 인간살육병기가 되어 나타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옛 애인을 원래 모습으로 되찾기 위한 한 남자의 모험 이야기.

멸망한 고대왕국의 유산, 신비한 힘을 가진 마법유물 ‘아티팩트’가 지상을 지배하는 욕망의 세계. 그리고 아티팩트 유통을 독점해 절대 패권을 누리는 무역회사 ‘서해회사’와 옛 제국의 복수를 위해 서해회사를 대상으로 암살과 공작을 일삼는 테러조직 ‘쿠샤나바’가 극한 대립을 펼치는 공포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도둑길드의 일원으로 살아가던 아딘의 앞에 죽은 줄 알았던, 그러나 지금은 인간살육병기이자 쿠샤나바의 간부가 된 옛 애인 카멜리아가 나타난다.
아딘은 쿠샤나바에게 복수를 하고 옛 애인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서해회사 소속 유물탐사단에 입단하여 모험을 시작한다.

 
26.파국(3)
작성일 : 17-12-10 19:59     조회 : 320     추천 : 0     분량 : 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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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딘은 갈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고 손을 뻗는다.

  “갈란......”

  “만지지 마!”

  갈란이 날카롭게 소리 지르며 아딘의 손을 팍 쳐낸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아딘을 노려본다.

  “나한테 상관하지 마! 친한 척 말 걸지 말란 말이다!”

  당황한 아딘은 말을 더듬거린다.

  “어... 나는 그냥...”

  “듣기 싫다!”

  갈란은 눈물을 흘리며 외친다.

  “전부 너희들이 우리 마을에 와서 이렇게 된 거잖냐! 아침까지만 해도 모두 무사했는데, 언제나와 다를 게 없는 평화로운 나날이었는데...... 너희들이 온 다음부터 모든 게 망가졌어! 전부 다 죽었어! 대체 왜 온 거야?”

  갈란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한다.

  “대체 왜 온 거냐고오오오! 우아아아아아!”

  카릴과 블뢰즈는 시체들을 묻다 말고 가만히 서서 갈란을 바라본다. 카릴은 갈란을 불쌍히 여긴다는데 눈에 보인다. 블뢰즈는 비록 해골이라 표정은 없지만 진중한 자세에서 연민이 읽혀진다.

  하지만 레이라는 달랐다. 레이라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갑자기 일어서고는 갈란 쪽으로 걸어온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네 아버지를 죽였어? 네 아버지랑 마을 사람들을 죽인 건 쿠샤나바야. 나는 최대한 너희를 배려해서...”

  “잠깐만.”

  아딘은 재빨리 레이라의 앞을 막아선다.

  “하지 마. 더 상처받을라.”

  “마치 우리가 죄 지은 것 마냥 말하잖아?”

  “아직 아이잖아. 어른처럼 생각할 순 없는 거야. 우리가 이해해줘야지.”

  레이라는 아딘의 말을 듣고 화를 삭이는 듯 눈을 감는다.

  “쳇.”

  그러고는 도로 자리로 돌아가 고기를 씹어 먹는다.

  한 숨 돌린 아딘은 다시 갈란에게 말을 건다.

  “갈란. 네 슬픔은 충분히 이해해. 나도 너와 같은 일이 있었어. 화재 때문에 하룻밤 만에 마을 사람들이 전부 비명횡사했지. 내 부모님도 그렇고.”

  아딘이 스스로의 과거를 이야기한 게 통했는지 갈란은 우는 걸 그치고 아딘을 쳐다본다.

  아딘은 계속 말한다.

  “그렇게 난 혼자 남아버렸어. 한 달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안 나네. 며칠 전에도 저 카멜리아라는 쿠샤나바한테 내 동료들이 몰살당하기도 했고. 나야 그래도 어른이니 버티지만, 너한테는 힘겹겠지. 난 이해해.”

  갈란은 눈가를 닦는다. 바로 옆에 같은 참사를 겪은 사람이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러고는 고개를 숙인다.

  “같은 피해자한테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다.”

  “아하하.”

  아직 어린 주제에 이런 기특한 말도 다 하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딘은 갈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래도 넌 많이 어른스러운 거야.”

  갈란을 고개를 돌려 카릴과 블뢰즈가 시체들을 묻는 것을 본다. 이제 거의 막바지 작업이다. 갈란은 주먹을 꽉 쥔다.

  “나도 도와야겠다.”

  “응? 매장하는 거? 괜찮아. 이제 거의 다 끝난 것 같은데.”

  “아니다. 나는 이 마을의 무녀다. 마을 사람들의 마지막을 지키는 건 나의 사명이다.”

  갈란은 카릴과 블뢰즈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아딘도 뒤따른다.

  “카릴. 나도 매장을 돕고 싶다.”

  카릴은 어깨를 으쓱인다.

  “방금까지 울던 얘가 뭔 바람이 들었대.”

  “나, 난 지금도 울고 싶은 마음이다!”

  갈란은 입매를 찌그러트린다.

  “하지만 무녀의 의무를 다해야만 한다. 나 혼자 살아남았으니까.”

  그러자 옆으로 다가온 블뢰즈가 갈란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네 잘못이 아니란다. 아마 우리가 지하로 들어가는 걸 네가 막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자책하고 있겠구나. 그렇지 않단다. 너는 잘못도, 책임도 없어. 너 스스로를 책망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단다.”

  “나는......”

  갈란은 순간 치밀어 오르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또 다시 눈물을 흘린다. 블뢰즈는 그런 갈란의 등을 토닥여준다. 카릴도 갈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딘은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세상에 비탄은 끊이지 않고,

  언제나 밤만이 무정하게 반복된다.

  대체 언제까지?

 

 

  *************************************

 

 

  레이라까지 합세해 준 덕분에 매장 작업은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하늘을 감싼 어두운 비단은 아직 걷히지 않았다.

  아딘이 한 집의 벽에 기대어 앉아 쉬고 있는데 카릴이 다가온다.

  “흐흥. 생각보다 용기가 있는걸.”

  “뭐가?”

  카릴은 아딘의 옆에 앉는다.

  “아까 레이라가 갈란한테 화내니까 네가 막았잖아.”

  “아... 근데 그건 그냥 몸이 저절로 튀어나간 거라서.”

  카릴은 입을 삐죽인다.

  “뭐야. 적어도 난 죽을 각오는 한 줄 알았는데?”

  “죽을 각오라니?”

  “너도 봤잖아. 레이라가 수호자 고문하려는 거 내가 막으니까 곧바로 내 배에다가 주먹 꽂은 거.”

  “아. 뭐, 봤지. 괜찮아?”

  “동굴족은 치유가 빠르거든. 여하튼 너도 알다시피 단장님이 성격이 많이 더러워서 뭐 하려는 거 막으려고 들면 주먹부터 나가거든. 근데 넌 안 맞았네?”

  아딘은 어깨를 으쓱인다.

  “글쎄다. 왜일까.”

  카릴은 실실 웃으며 아딘의 옆구리를 찌른다.

  “단장이 너 좋아하는 거 아냐?”

  아딘은 입을 떡 벌린다.

  “뭐라고?”

  “아니, 그렇잖아~ 너한테만 이상하게 관대하잖아.”

  “어... 난 잘 모르겠는데.”

  “짜식, 빼기는~”

  아딘은 잠깐 생각해봤다. 레이라가 날 좋아한다고?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아딘은 몸서치리며 일어선다.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그만두-.”

  콰아앙!!!

  갑자기 땅바닥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나풀거리는 흙먼지에 아딘과 카릴은 콜록대며 손을 저어댄다.

  “컥! 쿠훅! 대체 뭐야?”

  흙먼지가 나타나자 아딘의 눈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보였다.

  심층구조의 지하 감옥에서 봤던 괴물 까마귀가 그곳에 있었다.

  시뻘건 십자 눈과 눈이 마주치자 아딘은 약간 움찔한다.

  “말도 안 돼! 사라진 거 아니었어?”

  〈이건 내가 설명해주지!〉

  어김없이 프린이 나타나서 떠든다.

  〈심층구조에서 관리자가 너에게서 고독을 떼어갔잖아? 아마 관리자가 그걸 이용해서 수호자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이 괴물 까마귀만큼은 형체를 만들어 따로 살려낸 것 같아.〉

  “왜 그런 짓을 해?”

  〈어, 음.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그 관리자 같은 족속들은 어떻게든 생명을 이어나가게 하려는 습성이 있거든. 나만 봐도 그렇잖아. 널 살려냈지.〉

  흐음. 아딘은 턱을 문지른다. 그 관리자와 프린은 어느 정도 유사한 존재란 것인가. 뭐, 지금은 됐다.

  “근데 이걸 어쩌면 좋은 거야? 우릴 공격하지는 않겠지?”

  〈공격할거면 이미 했겠지.〉

  “하긴 그렇지.”

  프린의 말대로 괴물 까마귀는 아딘한테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느새 모여든 레이라 일행이 놈의 주위를 둘러싸고 경계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무언가를 찾을 뿐이다.

  그러던 중 괴물 까마귀는 갈란을 발견한다.

  “크르르르......”

  괴물 까마귀는 갈란에게 다가간다. 갈란은 입만 떡 벌린 채 도망치려고도 하지 못했다. 아딘은 혹여나 놈이 갈란을 해치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놈에게서 적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괴물 까마귀는 갈란 앞에 섰다.

  갈란은 가슴 앞에 두 손을 꼭 모으고 괴물 까마귀를 올려다본다.

  둘 사이의 눈빛 교환에서 무언가가 일어났다.

  “크르...”

  괴물 까마귀는 몸을 한껏 낮추고 목을 숙여 머리를 갈란의 발 앞에 놓는다. 마치 등 위에 타라는 듯하다. 갈란은 우물쭈물하며 주위를 돌아본다.

  “저, 어, 어떡하지요?”

  아딘은 미소 짓는다.

  “신기하군. 까마귀라서 까마귀 무녀한테 복종하는 건가보네. 한 번 타봐.”

  “타... 타라니...”

  갈란은 아딘이 권유해도 주저하고 좀처럼 타질 못했다. 그러자 괴물 까마귀가 애교부리는 듯 갈란보다 더 큰 부리로 그녀의 종아리를 문지른다.

  “힉!”

  굳어버린 갈란의 팔의 털이 확 곤두선다.

  그래도 해치려는 마음은 없다는 걸 확인했다.

  갈란은 조심스럽게 까마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본다. 검은 깃털이 예상외로 매우 부드러웠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괴물 까마귀가 골골거리기까지 한다.

  카릴은 신기한 듯 괴물 까마귀를 이리저리 살펴본다.

  “되게 신기하네, 이거. 그 지하에 있던 건가? 난 못 봤는데.”

  아딘이 대답해준다.

  “내가 수호자의 심층구조에 들어갔을 때 봤던 놈이야. 사라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나왔네.”

  “그러면 수호자가 갈란한테 선물로 준 건가?”

  “나야 모르지.”

  까마귀의 머리를 쓰다듬던 갈란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갈란은 까마귀의 깃털을 두 손으로 꽉 잡고 몸을 확 들어 올려 까마귀의 등에 올라탄다. 올라타는데 성공한 갈란은 환하게 웃어 보인다.

  “어! 진짜 탔어요! 느낌은 엄청 신기... 어어억!”

  갑자기 괴물 까마귀가 커다란 날개를 탁 펼치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갈란은 바람에 날려지지 않으려고 까마귀의 등에 착 붙어 꽉 붙잡는다. 괴물 까마귀는 모래바람의 장벽 안을 훨훨 날아다닌다.

  “히이이이이이......”

  공포에 신음하던 갈란은 눈을 살짝 떠본다. 마을이 한 눈에 보인다. 하늘 위를 난다는 감각은 생소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래도 무섭다!

  갈란은 까마귀의 등을 팡팡 두드린다.

  “야! 내려가라! 무서우니까 내려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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