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오오오오!!”
검은 골렘이 아딘을 노려보며 기합을 내지른다. 어찌나 우렁찬지 땅이 덜덜 떨린다.
이건 겁먹기 싫어도 겁먹을 수밖에 없다.
검은 골렘이 사람으로 치면 오른 주먹에 해당하는 바위를 하늘 높이 들어올린다. 아딘은 땅을 박차 옆으로 몸을 던진다. 그렇게나 멀리 있던 바위가, 순식간에 닥쳐와 아딘이 있던 자리에 부딪친다. 쾅!! 평평했던 지면에 움푹 파였다.
“대체 어딜 어떻게 공략하면 되는 거야? 어엇!”
아딘은 재빨리 몸을 숙여 골렘이 날린 바위를 피한다. 그 바위는 텅, 텅, 텅 소리를 내며 굴러간다. 저런 거에 맞으면 즉사다.
일단 가만히 있는 건 자살행위다. 판단이 선 아딘은 골렘을 중심에 두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어딘가에 약점은 없는지 여기저기 살펴본다.
“쿠아아아아아!!!”
골렘이 포효하며 몸을 한껏 웅크린다.
“뭘 하려는 거지?”
앗!
아딘은 경악한다. 몸통박치기를 하려는 심산이다!
빌어먹을, 피할 타이밍을 놓쳤다. 이미 골렘은 달려들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우오아아아아아!”
아딘은 비명을 지르며 포환처럼 달려드는 골렘의 다리 사이로 앞구르기를 한다. 자칫 잘못해서 다리에 치이기라도 하면 바로 죽음이다.
제발! 아딘은 눈을 꼭 감는다.
쿵. 몸이 땅에 부닥친다. 아딘은 눈을 떠본다. 골렘의 뒷모습이 보인다.
아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간신히 살았... 잠깐, 저건...”
아딘은 사람으로 치면 골렘의 목덜미 부분에 난 상처자국처럼 생긴 것을 발견했다. 깨진 바위의 틈새에 야광석을 부은 뒤 굳힌 듯한 자국이다.
골렘의 동력원이다.
“저기가 약점이군.”
일보전진이다. 그러나 저기에 무슨 수로 접근하면 좋을까.
“쿠루루루루루......”
성이 난 듯 골렘은 이상한 신음을 내며 몸을 돌린다.
“흠.”
인간은 주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동물. 그래서 아딘은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본다. 다섯 개의 첨탑, 하얀 구멍들, 그리고 공중에 떠있는 프린.
이거라면 되겠어.
아딘은 프린을 보며 외친다.
“야!”
멀찍이 떨어져 전투를 감상하던 프린은 화들짝 놀란다.
“어엉?”
다시 한 번 잔소리를 해주고 싶었지만 아딘은 참고 바닥에 떨어진 창을 주워 프린에게 던진다. 프린은 창을 잡고서도 어리둥절한 얼굴이다.
“나 싸울 줄 모르는데.”
“그냥 내 신호나 기다려!”
“쿠가아아아악!!!”
골렘이 또 귀 따가운 고성을 질러대고 아딘에게 바위를 휘두른다. 미리 경로를 예측하고 피한다는 건 너무 힘들다. 한 방만 맞아도 죽으니 더 그렇다.
하지만 이제는 계획이 있다. 아딘은 피하면서 천천히 위치를 첨탑 근처로 옮겨간다.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져간다.
“흥. 약 오르지? 이놈아.”
아딘의 말대로 골렘의 몸을 구성하는 바위들의 움직임이 격하다. 화를 못 이긴 골렘은 포효를 하고 몸을 또 한껏 웅크린다. 몸통박치기다.
도박이다. 이번에도 똑같은 수법을 통할지는 알 수 없지만, 할 수 밖에 없다.
쿠과가가가가강!!
골렘이 땅을 갈아엎듯이 긁으며 육중한 몸을 부딪쳐온다.
아딘은 또 다시 골렘의 다리 사이를 노리며 몸을 던진다.
바위가 아딘의 앞머리를 살짝 건드렸다.
솔직히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았다면 오줌을 지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도 아딘은 성공했다. 살아남는 데도 성공하고, 몸통박치기를 한 골렘이 첨탑에 처박히게 하는 데도 성공했다.
골렘의 일격을 정면으로 맞은 첨탑이 와르르 무너진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땅 위로 흙먼지가 파도처럼 닥쳐온다.
아딘은 콜록대다가 외친다.
“프린! 저 놈의 목덜미에 난 자국에 창을 찔러 넣어!”
프린은 날아가서 첨탑의 잔해더미에 깔려 쓰러져버린 골렘의 위로 간다. 그녀의 눈에도 목덜미에 난 보석 색깔의 자국이 선명하다.
“하아아압!”
프린은 기합을 내지르며 창을 찌르는 자세 그대로 하강한다.
하강에서 온 운동 에너지가 합쳐져 창은 호쾌한 ‘쨍’ 소리를 내며 상처자국을 꿰뚫는다.
정적이 흐른다. 프린은 어리둥절한 채 골렘 주변에 떠있는다.
“된 거야?”
흠칫 놀란 아딘이 소리 지른다.
“거기서 벗어나!”
“응?”
골렘이 갑자기 잔해 더미를 떨쳐내며 일어난다.
“크구아아아아아!!!”
“엄마야!”
프린은 사정없이 날아오는 돌덩이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도망친다.
아딘은 다시 두 눈을 빛내며 자신을 노려보는 골렘을 같이 노려본다.
“질긴 놈. 좀 죽어주면 덧나냐.”
“쿠오오오오오!”
골렘이 높이 도약한다. 그것만으로도 땅이 쿵 흔들린다.
“우와악!”
아딘은 전력을 다해 달린다. 골렘이 쾅 착지하자 또 당이 흔들려 아딘은 그만 땅에 엎어지고 만다.
“아이쿠야......”
하지만 아파할 틈도 없다. 아딘은 다시 일어나 골렘과 대치한다.
그 순간 하나의 아이디어가 아딘의 뇌리를 뚫는다.
“맞아. 그게 있었지.”
아딘은 품에서 스톡을 하나 꺼내 손잡이에 로프를 친친 감는다. 그러는 사이에 골렘을 또 다시 바위 손을 휘두른다. 아딘은 휙휙 피한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방패를 잡고 이를 간다.
“계속 해봐라. 이 자식아.”
아딘은 로프를 잡고 스톡을 빙빙 돌리기 시작한다.
“쿠아아아아!!”
골렘이 바위 손을 횡으로 휘두른다.
아딘은 옆으로 몸을 날리며, 동시에 빙빙 돌리던 로프를 확 당겨서 날아오는 바위와 스톡이 맞부딪치게 한다.
“됐나?”
아딘은 일어서서 로프를 당겨본다. 팽팽하다.
스톡의 날 부분이 골렘의 바위에 콱 박힌 것이다.
“좋아, 이제... 와악!”
골렘이 바위 손을 원래 자리로 되돌린다. 그것만으로도 속도가 엄청 나서 아딘은 로프를 잡은 채 공중으로 떠올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골렘의 머리 위에 붕 떴다.
실패하면 그냥 추락사로 개죽음이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다.
“흐아아아압!!”
아딘을 기합을 내지르며 잡고 있던 로프를 놓는다. 그리고 방패를 잡고 밑으로 떨어진다. 그의 눈은 오로지 골렘의 동력원에 박힌 창의 끝부분만을 바라본다.
제발, 제발, 제발!
점점 지면이 가까워지자 아딘은 결국 눈을 감아버린다.
그리고 그 때.
콰직.
“어?”
아딘은 눈을 떠본다. 방패는 정확히 창의 끄트머리를 들이받았고, 전달된 힘에 의해 창날은 동력원에 더 깊숙이 박혔다. 직감적으로 이제 끝난다는 생각이 든다.
“쿠루루루루루......”
골렘은 김빠진 신음을 내며 쓰러진다. 아딘은 바위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와 땅에 내려선다. 아딘은 넋이 나간 얼굴로 죽은 골렘을 본다.
“아티팩트도 없이 이걸 죽이다니.”
프린이 짝짝 박수를 치며 다가온다.
“훌륭해! 역시 내가 선택한 남자다워.”
“됐어. 그런 칭찬은.”
아딘은 가장 높은 첨탑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쿠루루루루루루......”
골렘이 신음하며 다시 일어난다. 하지만 전과 달리 바위들이 툭툭 떨어져나가고, 관절 역할을 하는 검은 연기가 많이 약해졌다. 눈도 하나만 밝게 빛난다. 지금의 녀석에게는 오기만이 남았다.
“쿠아아아아!!”
골렘은 다시 아딘에게 달려든다.
“뭐가 이렇게 끈질겨!”
아딘은 다시 도망치기 시작한다.
“쿠아아아... 아그아아아!!”
“응?”
나 살려라 도망치던 아딘은 뒤를 돌아본다. 아니나 다를까, 골렘의 한쪽 다리가 하얀 구멍에 빠져버렸다. 골렘은 애처로운 비명을 질러댄다.
“아주 끝을 내주마.”
아딘은 골렘을 향해 달려간다. 골렘은 그에게 바위 팔을 휘두른다. 그러나 아딘에게 닿기도 전에 와르르 공중분해 되어버린다.
아딘은 골렘의 목덜미에 올라서서 골렘의 동력원을 내려다본다. 꺼지기 직전인지 피식피식 소리도 나고 색도 흐릿하다. 아딘은 단검을 잡고 손잡이 부분으로 창의 끝을 마구 내려친다. 쾅, 쾅, 쾅, 쾅!
“누오오오오오......”
골렘이 단말마를 내지른다.
쾅!
이윽고 창날이 동력원을 끝까지 꿰뚫어버리자, 골렘은 다시 바위로 돌아 가버렸다.
아딘은 한 때 골렘이었던 바위 더미를 보며 뭐라 말하기 어려운 기분이 되었다.
이놈은 나쁜 놈은 아니야. 그저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을 뿐. 인간도 아니지. 괴물이야.
하지만 그런 놈에게도 삶을 향한 의지는 있었던 걸지도 몰라.
“쳇. 그런 걸 생각해봤자 뭐해.”
아딘은 감상적이 되려고 하는 자신을 다그치고 가장 높은 첨탑으로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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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딘은 첨탑의 계단을 올라간다. 벌써 꽤나 올라온 것 같은데도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딘은 잠시 쉬며 뻐근한 다리를 문지른다.
프린이 말을 건다.
“또 숴? 나약하기는.”
“너는 공중에 떠다니니까 모르겠지!”
아딘은 숨을 몰아쉬고 다시 허리를 꼿꼿이 핀다.
“좋아. 다시 가자고.”
아딘은 계단을 오른다.
한 10분 쯤 지났을까, 정수리에 무언가가 닿았다. 아딘은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계단을 오르려고 한다. 그런데 또 뭔가가 닿는다. 아예 아딘이 못 올라가게 미는 듯하다.
“뭐야?”
아딘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든다. 분명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아딘은 손을 머리 위로 든다.
“앗!”
어느 지점 위로 손이 올라가지 않고 막힌다. 보이지 않는 장벽이다. 아딘은 보이지 않는 장벽을 두드려본다. 퉁퉁 소리가 난다.
“야. 이건 또 뭐야?”
“장벽이네.”
“그건 나도 알아! 어떻게 뚫고 지나 가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