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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드래곤 플래닛
작가 : 에르노
작품등록일 : 2017.11.13

[판타지 활극] 흉악한 인간살육병기가 되어 나타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옛 애인을 원래 모습으로 되찾기 위한 한 남자의 모험 이야기.

멸망한 고대왕국의 유산, 신비한 힘을 가진 마법유물 ‘아티팩트’가 지상을 지배하는 욕망의 세계. 그리고 아티팩트 유통을 독점해 절대 패권을 누리는 무역회사 ‘서해회사’와 옛 제국의 복수를 위해 서해회사를 대상으로 암살과 공작을 일삼는 테러조직 ‘쿠샤나바’가 극한 대립을 펼치는 공포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도둑길드의 일원으로 살아가던 아딘의 앞에 죽은 줄 알았던, 그러나 지금은 인간살육병기이자 쿠샤나바의 간부가 된 옛 애인 카멜리아가 나타난다.
아딘은 쿠샤나바에게 복수를 하고 옛 애인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서해회사 소속 유물탐사단에 입단하여 모험을 시작한다.

 
18.까마귀와 수호자(3)
작성일 : 17-12-02 23:43     조회 : 324     추천 : 0     분량 : 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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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라는 수호자를 향해 달려갔다. 그는 땅바닥을 뒹굴다가 장딴지에 박힌 화살을 뽑아냈다.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까만 피였다.

  “흐아아압!”

  카릴이 기합을 내지르며 누워있는 수호자를 향해 주먹을 내리찍었다. 수호자는 몸을 옆으로 빙그르르 돌려 피했다.

  카릴의 주먹은 땅에 꽂혔다.

  바닥의 먼지가 일순 공중에 떴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수호자는 간신히 일어나 비명을 지르며 두 손을 뻗어 까마귀 무리를 방출했다. 카릴은 급히 휘파람을 불었다. 까마귀 무리는 발광하며 이리저리 흩어졌다.

  휘파람을 마친 카릴이 숨을 몰아쉰다.

  “젠장. 숨 차 죽겠네!”

  레이라가 외쳤다.

  “카릴! 넌 뒤로 빠져서 우릴 보조해!”

  레이라는 워 해머를 치켜들며 수호자를 향해 돌진했다. 아딘도 활로 어떻게든 수호자를 맞춰보려고 했지만 너무 잽싸다. 게다가 이제는 카릴의 휘파람도 까마귀한테 잘 안 먹힌다. 그러나 그녀는 씩 웃는다.

  “하지만 휘파람은 종류가 참 많다는 말씀.”

  뒤로 멀찍이 떨어진 카릴은 오른손의 엄지를 입 중앙에 집어넣고 또 다른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삐리리리.

  마치 여치 소리 같다.

  그 소리를 들은 아딘은 몸이 이상하게 고양되는 걸 느꼈다. 몸이 달아오르고 있다. 아딘은 눈을 부릅뜨고 이리저리 내달리는 수호자를 봤다. 이제는 움직임이 궤적이 보인다.

  “좋았어.”

  “하아아아!”

  레이라는 소리를 지르며 워 해머를 내리꽂았다. 이번에도 수호자는 옆으로 풀쩍 뛰어서 피하는 바람에 워 해머는 바닥에 박혔다.

  쿵! 수호자가 레이라의 옆을 공격했다. 그러나 레이라는 낄낄 웃으며 몸을 빙글 돌렸다.

  카릴의 휘파람 때문에 레이라의 전투의지가 불타올랐다. 그래서 레이라의 볼이 빨갛게 상기되었고 숨을 헥헥 거린다.

  레이라는 몸을 돌리며 발로 수호자의 얼굴을 찼다.

  “맞았다! 하하하!”

  수호자는 부러진 코를 부여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코피가 줄줄 새어나왔다. 레이라는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더 고통을 주고 싶다.

  그 순간 아딘이 활을 쐈다. 활은 정확하게 수호자의 왼 손을 꿰뚫었다.

  수호자는 비명을 지르며 화살을 뽑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이 활은 특별했다. 활촉에 갈고리가 달려있어 뽑으려고 하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입는다.

  절망감과 분노감에 까마귀는 소리 질렀다.

  “감히, 감히 날!”

  레이라는 재빠르게 수호자에게 접근했다. 간신히 눈치 챈 수호자는 두 팔을 쫙 펼쳤다. 등 뒤에서 까마귀 떼가 터져 나와 일행을 향해 뻗어나갔다. 순식간이었다.

  카릴은 재빨리 놈들을 물리치는 휘파람을 불었다. 이번에도 까마귀는 흐트러졌지만 흩어지지는 않았다.

  아딘은 자신에게 쇄도하는 까마귀 무리를 향해 아껴두었던 화살 아티팩트를 하나 조준했다. 아딘이 쏘자 그 화살은 맨 앞의 까마귀 머리에 정통으로 박혔다. 그 순간 화살촉을 중심점으로 검은 구가 생겨났다. 무섭게 날아오던 까마귀 무리는 전부 검은 구 안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카릴을 향해 뻗어오던 까마귀 무리는 점점 강해지는 휘파람 소리에 견디지 못하고 이리저리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레이라는 자기 앞에 파르마 방패를 세워두고 몸으로 밀어붙이며 달려 나갔다. 방패에 처박은 까마귀들은 속속들이 죽어나갔다.

  그러나 옆으로 빠져나온 까마귀는 레이라의 몸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웠지만 오히려 좋았다. 아련한 쾌락까지 느꼈다.

  레이라는 킬킬 대며 워 해머를 가로로 크게 휘둘렀다.

  워 해머는 수호자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그 짜릿한 느낌에 레이라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찬다.

  “크허어어억!”

  수호자는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버렸다. 오른 갈비뼈는 전부 부러져버렸다. 땅바닥에 떨어진 수호자는 한참을 구르다가 겨우 멈췄다.

  그는 피를 토하며 몸을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아딘은 그런 수호자를 보며 얼굴을 찡그린다.

  또한 프린도 아딘의 눈을 통해 수호자를 봤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조금 다른 것이 보이고, 들린다.

  수호자의 품, 그 깊은 곳에서 한 소녀가 비명을 지르고 통곡하고 있었다.

  한편, 레이라는 수호자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입가에는 잔인한 미소를 띠고 있다.

  “애먹게 하기는. 수호자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나?”

  수호자는 비통스럽게 외쳤다.

  “컥! 빌어먹을, 개자식들. 저 머리 빨간 년의 휘파람만 없었어도 너희들은 내 손에, 아악!”

  “닥쳐.”

  레이라는 워 해머의 꽁무니로 수호자의 가슴 정중앙을 짓눌렀다. 수호자는 워 해머 자루를 잡고 버둥거렸다. 그러나 레이라는 씩 웃으며 계속 꾹꾹 눌러댔다. 그때마다 수호자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레이라는 입술을 혀로 슥 핥았다.

  “열쇠를 내놔.”

  “헛소리 마라.”

  수호자는 끌끌 웃으며 말했다.

  “넌 뭐가 열쇠인지도 모르잖아... 크악!”

  레이라는 수호자의 얼굴을 발로 차고 다시 한 번 물었다.

  “내놔.”

  “닥치시지.”

  “좋아.”

  레이라는 워 해머로 수호자의 오른다리를 찍어버렸다. 수호자의 비명과 함께 다리뼈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안 돼애애애!”

  구석에 숨어있던 갈란이 뛰쳐나와 수호자 위에 엎어졌다.

  “더 이상 괴롭히지 마!”

  “방해하지 마.”

  보다 못한 카릴이 레이라의 앞을 막아섰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고문이지.”

  “고문?”

  카릴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 미쳤어?”

  “그 외에 어떤 방법이 있지?”

  “그건...... 하지만 우리가 대체 뭘로 저 문을 열 수 있는지 모르잖아! 일단 어떻게든 구슬려서 알아내야지!”

  “정신분열자를 설득하라고? 미친 건 너야.”

  “웃기지 마. 난 용납 못 해!”

  “누가 네 허락을 구했어?”

  “미친 건 너야. 내 휘파람과 피에 취해가지고 제대로 생각을······.”

  레이라는 카릴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카릴은 헉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고 배를 감싸 쥐었다. 고통에 입도 뻥긋 할 수 없었다.

  레이라는 워 해머를 높이 들어올렸다.

  “꼬맹이, 비켜. 반대쪽 다리도 분질러야 하니까.”

  갈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수호자의 남은 다리를 온 몸으로 감쌌다.

  “안 돼. 안 돼! 제발 더 이상 나쁜 짓 하지 마!”

  “죽어도 모른다?”

  “싫어어어! 아, 안 돼! 죽이지 마. 죽이면 안 돼. 제발, 이제 그만 해!”

  “흥.”

  레이라는 워 해머를 내리꽂으려고 했다. 그러나 아딘이 몸을 날려 레이라를 덮쳤다. 둘은 함께 뒤엉키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딘은 레이라의 손에서 워 해머를 뺏고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두 팔을 꽉 붙잡았다. 아딘은 레이라를 노려봤다. 레이라는 어딘지 졸린 눈으로 아딘을 응시했다.

  “과격한데?”

  “말장난 하지 마.”

  “이런 짓을 했다는 건, 짤리는 것 정도는 각오했겠지.”

  “너야말로 이성적으로 생각해봐! 저건 고대의 존재야. 네가 고문 따위 한다고 저 문을 열어줄 리가 없잖아!”

  “그러면 대체 뭘 어떡할 건데? 설득한다고? 헛소리.”

  “젠장, 그건......”

  〈방법은 있다, 인간.〉

  ?!

  아딘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 우왕좌왕 하다가 레이라에게 엄포를 한다.

  “기다려봐. 방금 좋은 생각이 났어. 그러니까 절대 수호자한테 손대지 마!”

  아딘은 걷는 척하며 일행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프린에게 속삭인다.

  “빨리 말해줘. 그 방법이 뭐야?”

  〈저 문을 여는 열쇠는 수호자의 팔이야. 하지만 억지로 팔을 넣어봤자 문은 열리지 않아. 어디까지나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 거지.〉

  “뭐? 그러면 별 의미가 없잖...”

  〈이 멍청한 인간 놈아! 내 말을 끝까지 들어! 저런 강력한 수호자를 만드는 방법을 내가 알아. 강력한 마법을 담은 매개체, 아마도 까마귀와, 육체를 지탱할 제물과 정신을 지탱할 제물을 합쳐 만드는 거지. 제물이라 함은 육체 쪽은 건장한 남성이고 정신 쪽은 순결한 여성이다. 인간 제물이지. 우리가 처음 이 던전에 들어올 때 언뜻 보인 과거의 풍경 속의 소녀는 아마 그거인 것 같아. 성노예 같은 게 아니라. 여하튼 그런 합체 과정을 통해 지금의 수호자라는 육체와 인격이 만들어지지. 그런데 매개체와 육체가 되는 제물의 인격은 소멸하지만, 정신을 지탱하는 제물의 인격은 사라지지 않고 저 수호자의 심층구조 깊숙한 곳에 갇히고 말아. 그리고 수호자가 사라질 때까지 불안정한 정신을 떠받치느라 고통스러워하지. 수호자가 쓰러졌을 때 그의 내면속에서 울부짖는 소녀가 보였어.〉

  아딘은 한숨을 쉰다.

  “믿을 수가 없군. 결국 인체실험이라는 거잖아. 고대왕국이 이런 터무니없는 짓거리를 해댔다니.”

  〈여하튼 저 수호자에게 저 문을 열 힘이 있다면, 네가 내 도움으로 수호자의 심층구조로 잠입해서 그 힘을 빼앗으면 돼.〉

  “그게 가능해?”

  〈그래. 수호자의 정신을 지탱하는 제물소녀를 해방시켜주면 수호자는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말거야. 그 사이에 문을 여는 힘을 빼앗으면 돼. 자세한 건 저 놈의 심층구조로 들어가면 다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그래도 심층구조로 들어간다니. 그건 대체 어떻게 되먹은 거야?”

  “내면세계라고 할까. 설명하기 어렵군. 일단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어.”

  아딘은 신음하며 고민한다.

  그러다가 결정한 듯 고개를 휘휘 흔든다.

  “어쩔 수 없지.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잖아? 좋아, 하겠어.”

  프린은 킥킥 웃는다.

  〈그렇게 나와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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