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어둠이 찾아들었다.
서 있다가 지쳐서 앉은 아딘은 자꾸 감기는 눈을 비벼댄다. 이러다가 허탕만 치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된다.
“후아아암.”
아딘은 하품을 하며 몸을 위로 쭉 편다. 요즘 도통 쉬질 못해 찌뿌둥하다.
“돌겠군. 어디 하수구에라도 숨어있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온다. 점심도 걸렀는데 곧 저녁때라서 허기가 심하게 밀려온다. 아딘은 신음하며 배를 어루만진다.
“후딱 먹고 오는 사이에 튀어도 곤란하고, 안 먹고 있다가 정작 중요할 때 배고파서 못 싸워도 곤란하고. 제길, 어쩌지.”
아딘이 푸념하고 있을 때, 도시 어딘가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아딘은 놀라서 퍼뜩 일어난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떠서 어디서 소란이 난 건지 본다. 비명은 점점 더 커진다. 자경대가 분주히 달려가는 발소리도 들린다.
아딘은 등에 매고 있던 활을 집는다.
“늑대 떼라니, 하필 이 때에!”
아딘은 종탑의 벽면을 타고 내달리기 시작한다. 차가운 바람이 볼을 엔다. 쓰리다. 그러나 아딘은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너무 빨리 달려서 땅에 박을 것 같았던 그 때에 아딘은 크게 도약한다. 그렇게 아딘은 건물 지붕에 착지한다. 아딘은 지붕 위를 달린다. 지붕과 지붕 사이를 힘차게 도약한다.
“칫!”
아딘은 건물 위를 달리며 늑대 떼가 습격한 장소를 본다. 늑대 떼가 자경대와 시민 가리지 않고 물어뜯고 있다. 도시 안에까지 들어올 정도면 보통 굶주린 게 아니다. 아딘은 위로 힘차게 뛰어올라 늑대들이 벌이는 참극 속으로 뛰어든다. 제각기 인간을 물어뜯던 늑대들은 피에 젖은 입을 혀로 핥으며 아딘을 바라본다.
“노려보면 뭘 할 건데? 이놈들아.”
아딘은 제일 먼저 으르렁거린 늑대의 미간에 화살을 쐈다. 놈은 휘청거리다가 풀썩 쓰러지고 만다. 당황한 늑대들이 컹컹 짖어댄다.
“10마리 정도인가.”
“우아아아악!”
아딘은 비명이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린다. 바닥에 쓰러진 자경단장이 창으로 늑대의 입을 막고 버티고 있었다. 아딘은 활을 쏘자 늑대의 눈에 쑥 박힌다. 자경단장은 죽은 늑대를 창으로 훅 민 뒤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자네인가! 고맙네, 아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나도 잘은 모르겠네. 아마 동쪽 관문으로 들어온 것 같아. 자경대 놈들이 안으로 밖으로 나가는 것만 신경 쓰다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건 눈치 못 챈 모양이다.”
아딘은 흥하고 비웃는다.
“무능한 것들 같으니.”
“너무 그러지 말게. 전투라는 걸 해본 적이 있어야지. 하아앗!”
자경단장은 아딘의 머리통 바로 옆으로 창을 내질렀다. 창은 정확히 아딘을 잡아먹으려고 앙 벌어진 늑대의 입 사이로 꽂혔다. 아딘은 버둥대는 녀석의 심장에 단검을 찔렀다.
“아슬아슬했군! 이걸로 빚은 갚은 거다?”
“늑대나 잡아요!”
아딘은 달려드는 늑대의 머리통에 화살을 족족 박아 넣었다. 자경단장은 얍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박력 있는 함성과 몸놀림으로 늑대를 죽인다. 아딘은 바로 옆으로 달려드는 늑대를 보고, 몸을 밑으로 훅 낮춰, 놈의 배에 단검을 찔러 넣은 뒤 쭈욱 찢어버린다. 놈은 내장을 쏟으며 죽었다.
“하아아압!”
자경단장은 기합을 내지르며 옆으로 뛰어드는 늑대의 몸통을 창으로 관통한다. 그러자 빈틈을 노리고 오른쪽에서 또 다른 놈이 달려든다.
“내가 우스워 보이냐!”
자경단장은 창을 크게 휘둘러 꿰여있었던 늑대를 던져 달려들던 놈과 부닥치게 한다. 놈이 쓰러진 사이 자경단장은 재빨리 달려가 창을 놈의 가슴에 내리꽂아 마무리를 했다.
“읏!”
다른 늑대가 자경단장을 향해 발톱을 휘두르려고 한다. 그가 피하려던 찰나, 아딘이 쏜 화살이 처음에는 늑대의 발에, 몸통에, 머리에, 차례대로 쑥쑥 박힌다. 그리고 다른 시민을 해치려는 놈에게 단검을 던져 대가리를 쪼개버렸다.
“헉... 헉...”
어느 정도 사태가 정리될 무렵, 또 비명이 들려왔다. 아딘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거리도 꽤 먼 골목길에서 난 비명인 듯하다.
“방법이 없군.”
지금 구하러 달려 가봤자 이미 늑대에게 물렸을 게 분명하다.
〈방법이라면 나한테 있지!〉
“응?! 뭐야, 또 너냐.”
화살촉 사이로 비친 프린이 손가락을 퉁 튕긴다.
〈어제와는 다른 축복을 걸어놨어. 한 번 쏴봐.〉
“무슨 헛소리야?”
뭔지는 모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아딘은 축복받은 화살을 시위에 걸고, 하늘 높이 쏘아 올린다. 위로 날아가던 화살은 갑자기 방향을 꺾더니, 노란 궤적을 꽁무니에 달며 비명이 난 곳으로 쇄도한다.
“꺄아아아아악!”
한 소녀가 침과 피로 범벅이 된 입을 벌려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늑대를 보며 비명을 지른다. 이빨이 소녀의 가녀린 목을 콱 덮치기 직전, 노란 궤적을 그리던 화살이 늑대의 목을 관통한다. 늑대는 입에서 피를 쏟으며 풀썩 쓰러진다. 소녀는 바닥에 엎드린 채 뭐가 일어난 건지 몰라 당황해하다가 곧바로 도망쳐버린다.
〈됐다. 이제 안전해.〉
프린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한다.
“너 생각보다 되게 유용하네.”
〈이 거만한 인간! 네놈들은 써먹을 수만 있다면 뭐든 좋겠지!〉
바닥에 쓰러진 늑대 시체를 살펴보던 한 자경대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소리친다.
“단장님! 이 늑대들 뭔가 이상합니다!”
아딘과 자경단장은 그 자 앞으로 달려간다. 둘이 도착하자마자 자경대 앞에 놓인 늑대는 마치 모래처럼 변해 형체가 부스러진다. 그리고 웬 이상한 늑대 모양 흙 인형만이 남았다. 아딘은 그걸 보고 자신의 머리를 쿵 때린다.
“속았다!”
프린이 아딘에게 속삭인다.
〈인간 놈아. 서쪽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져. 어제의 그 녀석인 게 분명해.〉
“이따위 뻔히 보이는 수에 넘어가다니.”
아딘을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경단장에게 외친다.
“어이! 말! 말이 필요해!”
“말이라니, 자네?”
“급해! 도둑길드를 몰살한 놈이 도망치고 있다고!”
자격단장은 눈을 홉뜬다.
“어, 어어! 알았네! 이것들아! 말 가져와, 말!”
단장의 명령을 듣고 한 자경대가 허둥지둥 말을 끌고 온다.
“일단 가장 가까이 있어서 가져오긴 했는데, 얘 요즘 발이 이상...”
“그런 건 됐어!”
아딘은 단번에 말 위에 올라탄다. 자경단장이 아딘에게 말한다.
“우리가 도울 일은 없나?”
“따라오지 마십시오. 도와줘봤자 다 죽을 뿐이니까! 이랴!”
말을 탄 아딘은 전속력으로 달린다. 동쪽에서는 늑대 때문에 난리가 나고, 서쪽에서는 쿠샤나바가 도망치고 있는데, 도시의 중앙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인파가 몰려있었지만 아딘은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비켜! 비키라고!!”
아딘의 외침과 말발굽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뒤늦게나마 비명을 지르며 허둥지둥 길가로 도망쳤다. 장작이 반으로 쪼개지듯 인파가 반으로 쭉쭉 갈린다. 피하느라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은 욕지거리를 하거나 허공에 주먹질을 하거나 한다.
“이랴! 달려! 더 빨리!”
아딘은 활대로 말의 궁둥이를 팍 때린다. 그러자 말이 히히힝 거리며 더욱 빠르게 달려 나간다. 축제행렬을 헤쳐 나오자 길이 한산해진다. 드디어 서쪽 관문에 도착한 아딘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멀리서 보면 자경대들이 문제없이 경비를 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부 죽어있다. 입은 벌어지고 눈동자는 공허하다.
아딘은 서쪽 관문을 지나 사막으로 나온다.
“프린! 어느 방향인지 짐작은 가?”
〈북쪽이다. 기운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어, 서둘러야 해!〉
아딘은 북쪽으로 말머리를 돌려 박차를 가한다. 분명히 최고의 속도를 내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카멜리아는커녕 꽁무니도 안 보인다.
“너무 멀어!”
〈정말 넌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구나!〉
프린은 또 손가락을 튕겨 말발굽에 축복을 건다. 말은 갑자기 히히힝거리며 그야말로 미친 듯이 내달렸다. 적어도 3배는 빨라진 느낌이다. 아딘은 허벅지에 힘을 꽉 주고 고삐를 틀어쥔다. 그렇게 해도 몸이 계속 뒤로 쏠린다.
“야아아아!! 너무 빠르잖아아아!!”
〈감내해라, 인간!〉
아딘은 바람 때문에 자꾸 감기는 눈을 억지로 떠가며 전방을 본다. 3배 빠르게 달린 덕분인지 카멜리아와 그녀가 탄 낙타가 보인다.
“프린! 이제 됐어! 속도 좀 늦춰봐!”
프린은 손가락을 퉁겨 말발굽에 걸었던 축복을 건다. 말은 히이잉거리며 느려진 자신의 속도에 의문을 드러낸다.
“좋아!”
아딘은 등에 맨 활을 꺼내들고 시위에 화살을 건다.
“어제 걸었던 축복 부탁한다!”
그러자 화살촉이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아딘의 시위를 놓자 축복받은 화살이 푸른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다. 제대로 맞기만 하면 어제처럼 뼈와 살이 분리될 것이다. 그러나 카멜리아는 뒤를 슬쩍 보더니 낙타의 방향을 틀어버린다. 화살은 엉뚱하게 사막에 박혀 폭발한다.
“망할, 유도가 아니면 안 되겠어.”
그러자 이번에는 화살촉이 노란빛을 발한다. 아딘이 쏘자 화살은 방향을 휙휙 바꿔가며 착실히 카멜리아를 향해 날아간다. 하지만 카멜리아는 사마귀 턱 사이로 레이저 사출장치를 드러낸다. 붉은 섬광이 화살을 감싸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카멜리아는 레이저 사출장치를 아딘에게로 향한다. 붉은 예후가 아딘에게 꽂힌다.
“위험해!”
원래라면 못 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프린이 재빨리 말발굽에 축복을 걸어준 덕분에, 제때 붉은 섬광을 옆으로 휙 피할 수 있었다, 아딘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싫어도 이 요정님이랑은 같이 어울려줄 수밖에 없겠군.
아딘은 더욱 속도를 내서 카멜리아를 추격한다. 하지만 화살을 쏴 봐도 번번이 막힐 뿐이고, 또 카멜리아가 레이저로 반격해도 아딘이 피해버린다. 교착상태가 한 동안 계속된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아딘이 아니다. 그는 활시위에 푸른빛이 나는 화살을 걸고 기다렸다. 카멜리아가 고개를 뒤로 돌리고 붉은 레이저를 쏜다.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