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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드래곤 플래닛
작가 : 에르노
작품등록일 : 2017.11.13

[판타지 활극] 흉악한 인간살육병기가 되어 나타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옛 애인을 원래 모습으로 되찾기 위한 한 남자의 모험 이야기.

멸망한 고대왕국의 유산, 신비한 힘을 가진 마법유물 ‘아티팩트’가 지상을 지배하는 욕망의 세계. 그리고 아티팩트 유통을 독점해 절대 패권을 누리는 무역회사 ‘서해회사’와 옛 제국의 복수를 위해 서해회사를 대상으로 암살과 공작을 일삼는 테러조직 ‘쿠샤나바’가 극한 대립을 펼치는 공포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도둑길드의 일원으로 살아가던 아딘의 앞에 죽은 줄 알았던, 그러나 지금은 인간살육병기이자 쿠샤나바의 간부가 된 옛 애인 카멜리아가 나타난다.
아딘은 쿠샤나바에게 복수를 하고 옛 애인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서해회사 소속 유물탐사단에 입단하여 모험을 시작한다.

 
4.죽다 살아난 밤(4)
작성일 : 17-11-16 20:08     조회 : 312     추천 : 0     분량 : 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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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피와 시체의 산 중앙에 ‘그것’이 서있었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검었다. 검은 장발은 어찌나 긴지 바닥에 닿을 정도이다. 정갈하지 않고 이리저리 뻗어있다. 두피에는 스크래치까지 나있다.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건 알겠는데 그것이 가죽 옷인지 천 옷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몸도 기괴했다. 팔꿈치 아래의 팔과 무릎 아래의 다리는 무슨 작대기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곤충의 팔다리 같기도 하다. 신장은 또 매우 커서 여자인데도 족히 2M는 되는 듯하다.

  “네가, 한 짓이냐?”

  아딘의 말에 그것은 서서히 얼굴을 돌렸다. 마치 기계가 돌아가는 듯.

  “윽...!”

  차마 보고 있기 괴로울 정도이다. 피부는 창백한 나머지 파란 실핏줄이 보일 정도이다. 눈동자는 시뻘겋고 동공은 보이지도 않으며 흰자는 흰색이 아니라 잿빛이다. 그마저도 오른 눈이 왼눈보다 기이할 정도로 비대하다. 입은 검은 베일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마 정중앙에 난 ‘원을 창이 일직선으로 꿰뚫은 문양.’

  쿠샤나바의 문양이다.

  “네가... 네가... 네가...”

  아딘은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한다.

  머리가 목소리들도 가득 찬다. ‘아딘은 이번에도 대단하네~’ ‘카멜리아랑 결혼한다고! 정말?’ ‘망할 유물단 놈들. 또 동료가 한 명 당했다.’ ‘길드장님~ 이 아티팩트 나 가지고 싶은데~ 가지면 안 돼요? 안 된다구요? 너무해!’ ‘인마, 넌 꿈이 뭐냐? 뭐 행복하게 살겠다든가 그런 거 말고...’ ‘어제 쿠샤나바 간부랑 만난 거 있지? 까딱하면 죽을 뻔 했지 뭐야.’ ‘아니, 그 쪽은 우리가 찜했는데 서해회사가 왜 건드려? 하여간 양아치 같은 놈들!’ ‘내일은 다 같이 축제나 가자고~!’ ‘아딘도 올 거지?’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미칠 것 같은 목소리들의 집합체를 비명으로 추방시킨다.

  아딘은 손가락 사이로 쿠샤나바의 간부를 노려봤다.

  쿠샤나바는 태연한 건지 바보 같은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아딘을 보고 있다.

  “절대! 절대 용서 못 해!”

  아딘은 피를 토하듯이 외치고 바닥에 떨어져있던 곡도를 집어 든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달려든다.

  그것은 낡은 기계가 움직이듯 삐걱삐걱 허리춤에 차고 있던 사브르를 집어 든다. 당최 잡은 건지 그냥 손아귀에 걸친 건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괴상한 방식으로 몸을 낮춘다. 정면을 향해 솔직할 정도로 달려드는 아딘을 본다.

  팟.

  그것은 가볍게 뛰어들며 사브르로 아딘을 찌른다. 아딘은 곡도로 사브르를 쳐내며 옆으로 스텝을 밟은 뒤, 횡으로 곡도를 휘두른다. 그러나 그것은 곤충 같은 팔로 곡도를 쳐내버린다. 그리고 손바닥을 펴서 날카로운 손날을 만들어 아딘을 향해 휘둘렀다. 아딘은 옆으로 몸을 굴리며 피한다.

  “망할! 전신이 무기란 거냐?”

  하지만 아딘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딘은 현란한 손놀림으로 곡도를 놀려 그것을 밀어붙인다. 사브르와 팔 둘 다 사용해 막아도 버거울 정도이다. 못 버틴 걸까? 그것은 갑자기 뒤로 몸을 쭉 뺀다.

  “놓칠 줄 알고!”

  아딘은 놓치지 않고 쫒아가서 공격한다.

  그러나 그것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보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짐작한다. 아딘은 주위를 둘러본다. 시체가 너무 많다. 시체를 안 밟고는 서있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걸 노린 건가. 그것은 시체를 밟는 것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브르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오른발로 아딘을 쉴 새 없이 찌르기 시작한다. 아딘은 시체를 밟지 않고 발차기를 피하느라 거리를 벌릴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휘청한 그 순간, 그것이 왼발로 아딘을 후려갈겼다. 간신히 곡도로 막았지만 곡도는 날아가 버리고 옷도 찢겨져나갔다.

  “젠장...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어?”

  아딘은 숨을 몰아쉰다. 그것은 숨도 안 차 보인다. 애초에 숨을 쉬긴 하는 건지 의심스럽다.

  앗!

  아딘의 눈에 그것 옆에 널브러진 한 시체가 들고 있는 활이 보인다.

  저거면 승산이 있다.

  문제는 어떻게 그것의 공격을 뚫고 활을 손에 넣느냐이다.

  방법이고 뭐고 달리 없다. 그것이 저 자리에서 비켜나도록 할 수밖에. 아딘은 바닥에 떨어진 단검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그것을 향해 달려든다. 왼쪽, 오른쪽, 정면, 쉴 새 없이 몰아쳐보지만 그것은 다리 하나만으로도 여유롭게 쳐낸다. 팅, 팅, 팅! 지루한 정도로 단조로운 음색으로.

  쿠샤나바 간부와 몇 번 싸워본 적은 있다. 한 번 정도는 죽인 적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격이 다르다. 그야 당연히 격이 다를 수밖에. 기습인지 뭔지는 몰라도 회의에 모인 도둑길드 간부를 학살해 버렸다. 게다가 전에 싸웠을 때는 혼자가 아니었다.

  빈틈!

  “하아아아!”

  아딘을 기합을 내지르며 그것이 왼쪽에 허용해버린 공간을 향해 파고든다. 공중에 뜬 그 순간, 아딘은 단검으로 그것의 얼굴을 벤다. 그것은 잽싸게 얼굴을 뒤로 빼긴 했지만 완전히 피할 순 없었다. 잘려버린 검은 베일 마스크가 흩날린다.

  “맙소사...”

  그리고 자신의 눈에 들어온 것에 아딘은 아연실색하고 만다.

  그것의 코 아래는 인간의 입과 턱이 없었다. 대신 곤충의 입과 턱이 붙어있었다. 마치 사마귀를 보는 듯하다. 그 턱은 양쪽으로 수시로 벌려지며 쉭쉭 소리를 냈다. 아딘은 구토감이 치밀어 오르는 걸 참는다.

  “앗!”

  이번엔 이쪽이 빈틈을 보이고 말았다. 그것은 곤충의 턱을, 마치 박이 쪼개지듯 쩌어억 벌리며, 아딘의 얼굴을 집어삼키려고 한다. 아딘은 순간적으로 몸을 밑으로 낮춰 피한다. 그와 동시에 그것이 아딘을 발로 차올린다. 막지 못해 공중에 떠오른 아딘은, 단검 두 개로 몸을 막아보려 하지만, 그것이 발로 뻥 차버리는 바람에 속절없이 날아가 벽에 처박히고 만다.

  “크아아악!!”

  막지 않았으면 분명히 갈비뼈가 다 부러졌을 거야. 아딘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일어나려고 한다. 그걸 놓칠 쿠샤나바가 아니다. 그것은 무서운 속도로 아딘을 향해 쇄도해온다. 피하려고 했지만 그것이 아딘의 두 어깨를 잡아버리고 바닥에 짓눌렀다.

  “크윽!”

  망할. 아딘은 자신을 주시하는 그것의 두 눈을 노려본다. 죽다 살아난 게 어제인데, 또 죽게 생겼잖아. 아딘은 두 눈을 감는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

  분하다. 이렇게 끝나-.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알겠네.”

  응? 아딘은 서서히 눈을 뜬다.

  이 목소리는......

  “아딘.”

  그것은 아딘의 이름을 불렀다.

  아딘은 고개를 들어 그것을 본다. 사마귀 턱은 사라지고 인간의 턱과 입이 생겨났다. 쿠샤나바는 원래 겉모습을 바꾸는데 능하니까 놀랄 일은 아니다.

  “아, 아아...”

  신음하는 아딘의 두 눈이 점점 경악으로 부풀어 오른다.

  “이제 좀 알아보겠어? 그런데 너무 참 야위었네. 나 없다고 밥도 제대로 안 먹고 다니는 건 아니지?”

  이 목소리, 이 얼굴의 윤곽, 이 말투.

  아딘은 이것들의 소유자가 누군지 안다.

  “카멜리아?”

  카멜리아는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카멜리아는 죽었는데 왜 여기 있지? 카멜리아는 평범한 의사였는데 왜 쿠샤나바의 간부가 되어있지? 많고 많은 쿠샤나바 중에서 왜 하필 카멜리아가 도둑길드에 잠입해 모두를 죽인거지? 왜 내가 알고 있던 카멜리아의 외양과 이렇게나 다른 거지?

  그리고 카멜리아는 애초에 누굴 죽이거나, 상처 줄 만한 사람이 아니었어.

  조그만 개미 하나도 안 밟으려고 하는 여자였어.

  근데 지금은 흉악한 인간살육병기가 되어있네.

  “왜 그래? 오랜만에 만나서 기뻐서 말도 안 나오는 거야?”

  “그게... 아냐...”

  이 멍청한 새끼!

  네 눈앞에 있는 게 카멜리아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쩔 건데?

  뭐가 됐든 카멜리아가 네 동료들을 전부 죽여 버렸잖아.

  전부 죽어버렸다고!

  “으아아아아!”

  아딘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어깨를 붙들고 있던 카멜리아의 두 팔을 튕겨낸다. 카멜리아가 휘청하는 사이, 아딘은 땅을 박차고 벽에 두 발을 붙인다. 그리고 벽면을 뛰어서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아딘은, 힘차게 도약해서 자신이 노렸던 활이 있는 지점에 착지한다. 재빨리 시위에 화살을 걸고 카멜리아를 조준한다.

  “예의가 안 되었네. 얘기를 하다말고 공격하다니.”

  카멜리아의 턱은 다시 곤충의 턱으로 변해있다. 두 눈은 붉게 빛난다.

  아딘은 시위를 놓으려고 했으나, 순간 자신을 향한 의문이 들었다.

  ‘내가 정말로 카멜리아를 쏠 수 있을까?’

  빌어먹을!

  아딘은 시위를 놨다. 하지만 카멜리아는 화살을 간단히 쳐내버린다.

  아딘은 카멜리아를 노려보며 소리 지른다.

  “감히 나한테 친한 척 하지 마! 네가 카멜리아든 아니든, 이제는 상관없어. 넌 살인자일 뿐이니까!”

  카멜리아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짓더니 킬킬 웃기 시작한다.

  “킥... 키키킥! 키킥... 끼히히힉... 쿠히히히힛!”

  아딘은 입술을 깨문다.

  “뭐가 웃겨?”

  “어이가 없네, 아딘.”

  카멜리아는 오른 입 꼬리를 쭉 올리며 히죽거린다.

  “너도 사람 많이 죽였잖아.”

  “......윽.”

  순간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카멜리아의 말대로다. 도둑길드의 일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참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래도 이건 달라.

  “난 너처럼 일방적으로 사람을 학살한 적은 없어!”

  속이 메슥거린다. 난 대체 카멜리아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현실은 이미 죽어 없어졌고, 난 환상 속을 걷고 있는 건가?

  빨리 이 악몽이 끝났으면......

  “아딘,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

  “뭔데?”

  “난 이미 여기 온 목표를 달성했어. 너랑 잠깐 놀아준 건 재밌었지만, 슬슬 질리네. 넌 살려줄게. 그러면 너도 날 못 본 척 해주는 거야.”

  아딘은 피가 확 끓어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이건 카멜리아가 아니야.

  예전에는 카멜리아였을지 몰라도, 이제는 아니야.

  지금은 그저 괴물일 뿐.

  “입 닥쳐!”

  아딘은 다시 카멜리아를 향해 활을 쏘기 시작한다. 하지만 번번히 막힌다. 빌어먹을, 역시 혼자서는 무리인가?

  카멜리아는 머리를 긁적인다.

  “별 수 없네. 그럼 빨리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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