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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대군주
작가 : 진설우
작품등록일 : 2016.4.4
대군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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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악룡 크로크슈가 지배하는 하늘산은 발 붙인 자는 있어도 생환한 자는 없는 금지된 곳으로 크로크슈에 맞서기 위해 한 기사가 걸음을 들였다. 그리고 그가 하늘산을 내려왔을 때 그의 영혼은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수하들을 위해 목숨마저 내걸었던 중원 천년신교의 2공자, 소군악의 영혼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거짓 정의와 거짓 평화는 진실인 척 가증스럽다. 위선 가득한 자들의 비열한 구원, 부패한 자들의 그릇된 자비로 인해 세상은 이미 지옥과 다름이 없으니, 내 친히 명왕이 되리라. 세상을 송두리째 갈아 치울 검은 기사의 행보가 펼쳐진다.

 
23화
작성일 : 16-06-08 16:42     조회 : 763     추천 : 0     분량 : 7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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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쓰러진 대장의 곁으로 모여든 용병대는 두려운 눈으로 소군악을 쳐다보았다.

 맨손으로 일개 용병대를 초토화시켜 버린 사내였다.

 용병으로 따진다면 A급, 아니, 어쩌면 전설로 회자되는 S급의 용병일 수도 있었다. 그런 자가 왜 자신들을 노린단 말인가?

 용병들은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자세한건 제이크에게 듣도록.”

 제이크가 누구인지 몰라 용병대원들이 어리둥절해 하는데 제이크가 어색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소군악이 곧장 2층으로 올라가버리자 한쪽에서 숨죽이며 구경하던 종업원들이 나와 난장판이 되어 버린 식당을 정리했다.

 그들의 입을 통해 오늘의 일이 소문날 것은 자명했다.

 “으윽. 시발. 젠장. 아우우우우!”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벌떡 일어선 카포네는 절규에 가까운 욕설을 연신 내뱉었다.

 제이크는 그런 카포네를 잘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제이크가 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미 압도적인 실력의 소군악이 한바탕 휘젓고 갔던 터라, 제이크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을 어르고 달래어 수긍하게 만드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소군악의 용병패와 제이크의 용병패가 붉은 늑대 용병대의 소속으로 바뀌었다. 명목상으로는 카포네가 대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소군악이 장악해 버린 붉은 늑대 용병대 22인은 원래 받았던 의뢰를 파기했다. 선수금의 세 배를 위약금으로 물어 준 채, 그들은 호리스시를 떠났다.

 소군악이 탄 흑마 무영을 선두로 하는 22기의 기마가 라이츠시로 향하는 가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말을 타고 빨리 달려도 이틀은 걸릴 거리였다.

 한순간 대장에서 부대장이 되어 버린 카포네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으나, 감히 뭐라 말하지는 못하고 소군악의 뒤를 따랐다.

 국경까지 더 이상 마을은 없기에 날이 어두워지자 야영을 하게 되었다.

 야영용 텐트를 치고 모닥불가에 둘러앉았을 때, 소군악은 붉은 늑대 용병대를 어느 정도 달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카포네가 앉은 자리로 걸어가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을 걸었다.

 “카포네.”

 “말하슈, 대장.”

 소군악이 카포네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네 꿈은 뭐였지?”

 “으응?”

 갑자기 왠 꿈이야기란 말인가?

 카포네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표정인데 오히려 제이크가 더욱 대화에 주목했다. 카포네는 다시 퉁명스럽게 말하려다가 소군악의 표정이 워낙에 진지한지라 그간 지니고 있었던 꿈을 떠올려 보았다.

 “뭐, 꿈이랄 게 뭐요? 그냥 돈 많이 벌어서 굶지 않고 사는 거지.”

 “그렇군. 왜 용병이 되었나?”

 “아, 뭐 딴 이유가 있겠소? 본래 농사꾼의 자식이었는데 우리집 땅을 영주에게 빼앗기고는 아버지도 영주성을 증축하는 공사에 끌려 갔소. 그것까지만 해도 내가 집은 안 나왔을 텐데, 공사 중에 아버지가 죽었지 뭐요? 어머니와 나 단둘이서 어찌 먹고 살겠소?”

 카포네의 과거는 처음 듣는지라 붉은 늑대 용병대의 용병들도 귀를 기울였다.

 “가진 건 몸뚱아리뿐인데, 내가 원체 타고나길 장사로 태어나서 힘이 좋았지. 이리저리 짐꾼 노릇 하며 품삯 받아 겨우 먹고 살았는데, 그때 같이 다니던 용병의 보수를 보니 엄청 많더구만, 나보다 비리비리하게 생긴 놈이 칼만 허리에 찼다고 돈을 더 받더라 이 말이오.”

 용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사정이라고 별반 다를 리 있겠는가? 모두 먹고 살기 위해 칼을 들었고 오래 살기 위해 용병대로 뭉친 자들이었다.

 “그 길로 용병 길드에 가서 등록하고는 용병이 되었지. 그 근방에서만 활동하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왕국 전역을 떠돌아 다녔다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아우들도 많이 얻었지.”

 아우라는 말에 용병들이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격이 불같고 무식하긴 했지만 카포네는 좋은 대장이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힘으로 찍어 누른 소군악과는 딴판이었다.

 하지만 그런 티는 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용병들이었다.

 소군악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거, 대, 대장은 왜 용병이 되었소? 그만한 실력이면 어딜 가도 기사 작위를 줄 터인데?”

 대장이란 말이 쉽게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지 떠듬떠듬 카포네가 물었다.

 용병들은 다시금 귀를 기울였다. 안 그래도 그 이유가 궁금하던 참이었다.

 “나도 자네처럼 아우들이 있네. 마법 때문에 갇혀 있지.”

 “으음. 거 안 됐소.”

 카포네가 진심으로 위로했다.

 소군악은 카포네의 단순함에 실소하면서도 그가 순수한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두면 절대 배신하지는 않을 사람이었다.

 “그 마법을 깨트릴 방법을 찾기 위해 라이츠 마탑으로 가는 길이지. 한데 병사들이 통행 제한을 했더군. B급 이하의 용병은 지나지 못하도록 말이야.”

 “으음. 그런 거라면 말하지 그러셨소. 우리 용병대도 본래는 라이츠시로 가는 길이었는데, 솔깃한 의뢰가 있어 그것만 처리하고 갈 생각이었단 말이오. 말했다면 도와주었을 것을.”

 카포네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저 통행을 목적으로 했다면 흔쾌히 자신의 용병대에 위장 가입을 시켜 줬을 것이다.

 소군악으로서는 당장 급하다 보니 과감하게 일을 처리한 것이라 별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듣자하니 이번에 라이츠 마탑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때, 제이크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두 왕국에서 일부러 판을 짜고 라이츠 마탑과 라이츠시를 곤경에 밀어 넣은 것과 일부러 용병의 통행을 억제하고 B급 이상의 용병들에게는 돈을 미끼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도록 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카포네는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제길! 어쩐지 그딴 의뢰에 30골드나 준다고 했더니만.”

 카포네는 진심으로 속았다는 듯이 괴로워했다.

 “잘되었소. 지금이라도 라이츠시로 가게 되었으니 참 잘된 일이오.”

 카포네의 말에 제이크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라이츠시에 가면 곤경에 처할 수도 있는데 괜찮다니 무슨 말이오?”

 카포네가 씨익 웃었다.

 “목숨 내어 놓고 하는 일인데 칼잡이 용병에게 곤경이야 당연한 일이지. 우리 대원 중 막심의 동생이 라이츠 마탑의 마법사로 있소. 당연히 우리 용병대가 도우러 가야 하는 것 아니오?”

 카포네의 말에 소군악이 웃었다.

 정말 단순무식한 성격이다. 좋게 말하면 호방하고 의리 있는 자.

 “그럼 대장은 그 마법을 풀 방법만 알면 뭘 할 거요?”

 카포네의 물음에 제이크가 집중했다. 저리 대신 물어 주니 속이 다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사람이 생각이 없다 보니 질문도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한 것 같았다.

 “나는…….”

 소군악은 흑룡대를 구한 이후를 생각했다. 막연히 생각해 둔 몇 가지는 있었지만 그것은 흑룡대를 구해 내고 그들의 의견을 먼저 들은 후에 결정하기로 한 것이었다.

 중원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만, 소군악은 가급적이면 이곳에서 자유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세력을 얻고자 했다. 어차피 중원 땅으로 돌아가 봐야 흑룡대가 설 곳은 없었다. 억울한 누명의 길로 돌아가는 것밖에 안 될 것이었다.

 소군악은 문득 평생을 진리처럼 믿고 살았던 배화교의 교리가 떠올랐다.

 배화교도들은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날 명왕을 기다리며 희망을 품고 세상을 버텨 왔었다. 위선 가득한 정파인들의 횡포와 부패한 황궁의 횡패, 세상은 이미 지옥과 진배없었지만, 명왕은 어디에도 없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배화교도들을 비롯한 천년신교의 교도들을 마인이라 낮잡아 이르며 배척하는 무리들뿐이었다.

 ‘이곳이라고 무엇이 다를까?’

 이 세계 역시 사람이 살아가긴 힘들고 모진 곳이었다. 좋은 영주들도 있지만 영지민들을 길가의 개미만도 취급하지 않는 썩어빠진 영주들의 수가 더 많았다.

 전쟁 고아로 버려져 고아원에서 자라난 제이미의 기억으로 본 이 세상은 그랬다. 또 하나의 중원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이 중원과 다른 점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자신들이 설 자리를 좀 더 쉽게, 보다 확고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내가 명왕이 되어 세상을 구하리라.’

 흑룡대원들이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이미 소군악의 친형제들이었다. 그들이 중원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전념을 다해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다.

 뜻을 같이 하지 않아도 좋다. 자신이 이 세상의 명왕이 되어 구하리라.

 “명왕이 될 것이다.”

 카포네는 물론 제이크까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명왕이 무업니까?”

 “세상을 구할 왕이다.”

 “허어…….”

 모두가 숨을 죽였다. 소군악의 엄청난 말에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두근, 두근.

 놀란 와중에도 제이크는 심장이 뛰었다.

 ‘이분은 크게 된다. 크게 될 분이다!’

 자신이 품었던 개개인의 복수는 이제 사소한 일이 되어 버렸다. 가문을 망하게 한 라모스 상단에 대한 복수 같은 것은, 이제 정말 아무래도 좋았다.

 “제가 도울 것입니다.”

 제이크의 진지하고도 진심 어린 말에 소군악이 피식 웃었다.

 지금 자신이 말한 것은 먼 훗날의 계획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선뜻 따르겠노라 천명하는 제이크를 보니 소군악은 가슴에 무언가가 와 닿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거, 그런데 어떤 왕국을 구한다는 말이오?”

 카포네의 말에 제이크가 실소하며 말했다.

 “부대장. 꼭, 어느 왕국을 구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영주나 왕의 횡포에 눈물 흘리는 자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새로운 질서를 가진 왕국을 건국하겠다는 겁니다.”

 그저 간단히 말한 것을 이리도 정확히 간파하는 제이크의 지식은 정말이지 대단한 것이었다. 노예로 전락한 삶을 살기에는 아까운 인재인 것이 맞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소군악에게는 퉁명스러우면서도 제이크에게는 어렵게 대하는 카포네였다.

 제이크가 웃으며 답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카포네의 얼굴이 신중해졌다. 그러고는 슬쩍 소군악을 보았다. 어느 순간 뚝 떨어져 용병대를 휘저은 불한당일 줄만 알았는데, 설마하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저, 그거 저도 같이 해도 되는 겁니까?”

 소군악이 파안대소했다.

 “하하하, 물론이지. 큰 힘이 될 것이다.”

 소군악의 말에 카포네는 어리둥절한 와중에도 씩 웃었다.

 그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용병대원들도 너도나도 소군악을 따르기를 맹세했다.

 

 *

 

 “멈추시오!”

 하루를 더 달려 도착한 국경관문엔 병사들이 바글바글했다.

 산의 능선을 타고 쭉 늘어선 성벽이, 침묵의 평야와 로스크 왕국 사이를 분절했다.

 로스코 왕국 쪽에서 침묵의 평야로 들기 위한 길은 오직 다섯 개의 성문을 통과하는 것뿐이다.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문을 지키고 선 병사들도 많았다.

 성벽 위로는 혹여라도 있을지 모를 오크들의 습격에 대비하여 정찰을 도는 병사들이 보였다.

 그로부터 머지않은 곳에는 군사들의 병영이 있었다.

 그들은 당장에라도 오크들의 씨를 말려 버릴 병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까이 접근하는 오크들만 쫓을 뿐, 성벽의 방어만을 고집했다.

 카포네가, 22기의 기마를 제지하는 병사들에게 다가가 자신의 용병패를 내밀었다.

 “붉은 늑대 용병대의 카포네요. 라이츠시로 가야겠소.”

 병사가 난감한 얼굴로 상급자를 쳐다보았다.

 ‘아무도 라이츠시로 보내지 말라는 장군의 명이 있었다.’

 상급자가 고개를 가로젓자 병사가 용병패를 돌려주며 말했다.

 “돌아가십시오. 이곳은 통행할 수 없습니다.”

 “왜 안 된단 말이오? 우리용병대는 B등급의 용병대요.”

 카포네가 완강하게 버티자 고참병사가 다가왔다.

 “안 됩니다. 지금 밖에는 오크들이 진을 치고 있어 B등급 이상의 용병이라도 나갈 수 없습니다.”

 “내가 괜찮대두!”

 “괜한 목숨만 버릴겝니다.”

 그때 소군악이 무영의 안장을 박차고 솟구쳤다.

 그의 신형이 쭉쭉 하늘을 날아 성벽 위에 안착했다.

 근처를 지키던 병사가 깜짝 놀라 주춤 물러서며 창을 겨누었다.

 소군악은 그에 개의치 않고 성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성벽에 올라서 보니 침묵의 평야의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병사의 으름장과는 달리 성벽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안력을 돋우어 보니 평야의 한가운데 아스라이 콩알만큼 보이는 것이 있었는데, 아마도 라이츠시인 것 같았다.

 성벽은 침묵의 평야를 쭉 감싸며 라미에 왕국까지 이어져 있었다.

 두 왕국 사이를 아예 성벽으로 틀어막고 그 한가운데 미끼인 라이츠시를 놓아 둔 형국이다.

 정황이 이러하니, 오크들이 라이츠시를 공략하는 것도 당연했다. 많은 병력들이 주둔한 성벽은 오크들이 공격할 리 없었던 것이다.

 ‘어처구니없군.’

 성벽의 구조도 웃기고, 라이츠시의 상황도 웃기지만 어찌 되었든 당장의 시야에 닿는 곳에 오크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소.”

 소군악의 확인에 카포네가 병사를 압박했다.

 “거짓말로 우리 용병대의 통행을 방해하는 이유가 뭐요!”

 “그, 그것이…….”

 대답이 궁색해진 병사가 말을 얼버무리는데 기사제복차림의 사내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냐?”

 병사가 쪼로로 달려가 귓속말로 상황을 전하자, 기사가 턱짓으로 성문을 가리켰다.

 “보내 주어라.”

 병사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하오나 장군께서 누구에게도 출입을 엄금하라 명하셨는데…….”

 제3성문 경비 책임을 맡은 기사 말콤은 눈을 부라렸다.

 “제깟 놈들 몇이 라이츠시로 간다 하여 뭐가 달라지느냐? 괜한 분란 생기기 전에 오크 밥으로나 던져 주는 게지.”

 병사가 하는 수 없이 명을 따랐다.

 장군의 명이 있다 해도 지금 성문의 최고 책임자는 말콤이니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콤은 어느새 성벽 위에서 훌쩍 뛰어내려 무영의 등에 안착한 소군악을 유심히 보았다.

 B급 용병이라 하기에는 터무니없는 자이다.

 ‘저 많은 무장을 하고도 가볍게 성벽을 뛰어오르다니.’

 그때 고개를 돌린 소군악과 말콤의 시선이 얽혀들었다.

 말콤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내가 고작 용병 놈의 기에 눌린 건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소군악을 위시한 붉은 늑대 용병대가 성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으음.”

 신음하는 말콤의 옆에 병사가 따라붙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괜찮을런지요?”

 “글쎄다.”

 아까와 대답이 달라진 말콤을 보며 병사는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말콤의 시선은 말을 달려 멀어져 가는 소군악의 등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쩌면 협상이 길어질 수도 있겠어.’

 대강의 사정을 아는 말콤이다.

 오크들의 공격을 이용해 라이츠시를 압박하는 왕국의 치졸한 행태에 분노가 일었으나, 어설픈 호의로 라이츠시를 도와줄 수는 없다.

 라이츠시가 곤경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하루 빨리 왕국과 협상하여 도움을 청하는 길뿐이다.

 라이츠시에 희망이 사라질수록 협상의 시간은 빨리 찾아올 것이며, 자신을 비롯한 구원군이 속히 오크들을 토벌할 것이다.

 라이츠시가 살길은 그것뿐이다.

 매년 있어 온 오크들의 공격이지만 올해의 오크들의 기세는 유난히 무섭다.

 부족사회를 이룬 오크들을 통합한 대족장 쿠르카가 오크 대군을 규합해 진격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명예로운 기사인 말콤은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하루 빨리 출전 명령이 내려져 오크들을 토벌하고 라이츠시의 인간들을 구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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