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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대군주
작가 : 진설우
작품등록일 : 20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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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악룡 크로크슈가 지배하는 하늘산은 발 붙인 자는 있어도 생환한 자는 없는 금지된 곳으로 크로크슈에 맞서기 위해 한 기사가 걸음을 들였다. 그리고 그가 하늘산을 내려왔을 때 그의 영혼은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수하들을 위해 목숨마저 내걸었던 중원 천년신교의 2공자, 소군악의 영혼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거짓 정의와 거짓 평화는 진실인 척 가증스럽다. 위선 가득한 자들의 비열한 구원, 부패한 자들의 그릇된 자비로 인해 세상은 이미 지옥과 다름이 없으니, 내 친히 명왕이 되리라. 세상을 송두리째 갈아 치울 검은 기사의 행보가 펼쳐진다.

 
15화
작성일 : 16-06-08 16:40     조회 : 750     추천 : 0     분량 : 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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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소군악은 소피아가 돌아간 그다음 날, 아침 일찍 여관을 나서서는 토둔산을 찾았다.

 토둔시에서 곧장 산으로 향하는 길은 광산 개발로 인해 잘 닦여져 있었다.

 하지만 소군악은 그 반대편의 산의 초입으로 올랐다.

 지금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덩굴이 이리저리 자라는 등 길이 험해졌지만, 본래는 광산 개발을 위한 것으로, 탐험가들이 곧게 다져 놓은 길이었다.

 세 개의 봉우리를 가진 토둔산은 방대했지만, 위험하진 않았다. 대대적인 몬스터 토벌 뒤로 토둔산에서 몬스터는 대다수가 자취를 감췄던 것이다.

 그 먹이가 되는 야생 동물들 또한 무차별적인 사냥으로 줄어들어 토둔산의 먹이 사슬이라 봐야 별게 없었다.

 가끔 토끼나 다람쥐 같은 작은 초식동물들이 나타나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 첫날, 토둔산에서 소군악은 폐광산 하나를 발견해냈다. 그 뒤로 보름째 이곳을 찾았다.

 을씨년스럽게 버려진 통나무집들이 몇 있어서 정 갈 데가 없다면 이곳에 아예 자리를 잡고 폐관 수련을 해도 괜찮을만큼 멋진곳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무도 찾지않는 곳인지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압!”

 휘익, 파앙!

 허공에 내지른 창이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후우웅, 후우웅.

 휘두르기는 어찌나 빠른지 창대가 활처럼 휘어져 보였다. 극창십결의 1초식부터 10초식까지 차례로 펼쳐 보인 소군악은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치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5성에는 든 것 같군.”

 이미 뻔히 알고 있는 창술을 다시 익히는 게 무에 어렵겠느냐만은 머릿속의 생각과 실제 펼쳐 보이는 움직임 간에는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절대 초식의 수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이유였다.

 어느 정도 내력이 꼭 뒷받침되어야만 비로소 펼칠 수 있는 초식도 있는바, 정기신을 고루 다져야 함에 대한 중요성이 다시금 드러난 것이다.

 “화랑, 취아.”

 화르르, 위이이잉.

 소군악의 부름에 곧장 화랑과 취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군가 접근하면 내게 알려다오.”

 소군악의 명에 둘은 곧 그 자리에서 사라지듯 없어져 버렸다. 모습만 감췄을 뿐이지, 정령들은 주변을 배회하며 소군악의 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소군악은 바닥에 털썩 앉고는 창을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병기가 완성되기 전에 수련용으로 사용하는 창일 뿐이었지만, 소중히 다뤘다.

 “흐으으읍.”

 소군악은 가부좌를 틀고는 두 눈을 감은 채 호흡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버려진 광산의 영향인지, 아니면 지리상 서쪽에 가까워 응달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곳은 음기가 제법 강했다.

 대천자마존공이 양강의 심법이라고는 해도 음기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음양의 조화를 무시하는 심법은 하나도 없다. 다만 어느 것이 더 주가 되느냐? 음이 앞에서느냐 양이 앞에 서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음기든 양기든 기운이 강한 땅은 지금 소군악에게 있어 최적의 수련장이었다. 기운이 강한 땅에서 하는 운기조식은 내력을 축적하는 데 있어 이로운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인지 지금 소군악의 내력은 30년에 육박했다.

 제이미의 몸을 차지하고 20년의 내력을 쌓는 데까지 50일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 토둔 도시에 온 후의 45일 동안 고작 5년의 내력밖에 쌓지 못한 꼴이었지만, 소군악으로서는 만족할 만한 성취였다.

 원래 내공이란 경지가 높아질수록 기운을 축기하기가 쉽지 않은 법이었다.

 사라락.

 소군악은 기분 좋은 미풍에 눈을 떴다.

 다름 아닌 취아가 보내는 신호였다. 모습을 드러낸 취아는 소군악의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더니 산 위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무가 우거져 보이지는 않지만 산의 능선을 타고 접근하는 무리의 기척이 느껴졌다.

 ‘대략 열 명쯤 되나?’

 소군악은 조용히 잠행술을 펼치려 하였다. 굳이 사람들과 마주할 이유가 없었다.

 그때 화랑이 나타나 산아래 쪽을 향해 짖어 댔다.

 “으음.”

 소군악이 올랐던 길을 따라 또 다른 무리가 올라오고 있는 기척이 느껴졌다. 제법 뚜렷이 느껴지는 그 기척은 대략 스물을 헤아렸다. 기척을 숨기지 않은 고수들의 출현이다.

 소군악은 이대로 몸을 피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굳이 자신이 피할 이유는 없었다.

 두 무리가 무슨 용건으로 이곳으로 접근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소군악은 자신이 관련된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은 그저 조용히 숨어 있다가 두 무리가 일을 끝내고 사라지면 다시 이 장소를 차지하면 될 일이다.

 제법 큰 나무를 재빠르게 오른 소군악이 큰 나무 줄기에 앉아 온전히 기척을 숨겨 버렸다.

 휘이이익.

 취아가 느릿한 미풍을 동원해 소군악의 냄새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기특하구나.’

 소군악의 칭찬에 취아는 짐짓 부끄러운 듯 앙탈을 부리며 더욱 신나 소군악의 냄새가 흘러가지 않도록 바람을 조절했다.

 잠시 후, 산 위에서 내려온 무리와 산 아래에서 올라온 무리가 소군악이 수련하던 버려진 탄광의 너른 공터에서 맞닥트렸다.

 

 *

 

 열두 명의 사내들이 산길을 걷고 있었다. 모두 덩치가 좋고 힘깨나 쓰게 생긴 것이, 뒷골목의 건달 아니면 용병쯤으로 보이는 자들이었다. 다만 저마다 병장기를 하나씩 휴대하고 있으니 건달보다는 용병으로 보는 것이 타당했다.

 그들은 줄에 묶인 사내를 질질 끌고 왔는데, 그 행색이 남루한 것이 딱 봐도 탄광에서 일하는 노예 같았다. 다만 끌려가는 노예라 하기에는 기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의 눈이 남루한 몰골에 어울리지 않게 총명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점이었다.

 “어찌 나를 이리 끌고 간단 말이오?”

 “아, 우리도 의뢰 받은 거야. 눈알 굴리지 마라. 콱 뒈지는 수가 있으니까.”

 용병대 대장 라우터의 말에 노예 사내는 흠칫하고 놀랐다. 도망갈 기회만 노리고 있었는데, 이들의 감시하에서 그 기회를 잡는 것은 쉽지 않을 듯했다. 사실 기회를 잡는다 해도 손이 꽁꽁 묶인 채로 열두 명이나 되는 사내들을 뿌리치고 도망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물리적인 힘으로 도망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이용하는 수밖에…….

 “누구의 사주요?”

 “아, 알 것 없다니까. 우린 네놈을 무사히 넘기고 돈만 받으면 돼.”

 노예 사내 제이크는 머리를 굴렸다.

 상단을 운용하던 자신의 가문은 파산하여 막대한 빚더미를 짊어졌다. 아버지의 빚이었으나 그 책임은 자신에게도 돌아와 노예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런 자신을 원하는 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제이크는 퍼뜩 떠오르는 인물이 있어 넌지시 물었다.

 “라모스 상단이오?”

 용병대 대장 라우터가 흠칫 놀랐다가 말을 얼버무렸다.

 “아, 몰라. 한 번만 더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재갈을 물려 주마.”

 제이크는 죽을상이 되었다. 자신의 가문을 파산시킨 장본인이 경쟁 상단인 라모스 상단의 상단주였다. 이렇게 철저하게 짓밟았으면 되었지, 이제 와서 왜 갑자기 자신을 찾는단 말인가?

 ‘혹시?’

 제이크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노예의 삶을 살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이던가? 가문이 파산하며 모든 재산이 몰수당했지만 몇 군데로 나누어 숨겨 둔 비자금이 있었다.

 제이크의 유일한 희망은 그것이었다. 탄광에서 성실히 노예 생활을 하다가 라모스 상단의 감시의 눈길이 뜸해지면 탈출하는 것, 그리고 숨겨 둔 재산을 찾아 노예의 신분을 벗고 재기하는 것이다.

 부유한 상단의 자제였던 제이크답게 왕궁 아카데미에서도 수학한지라 여러 귀족가의 자제들과도 친분이 깊었다. 그들의 힘, 그리고 그들의 인맥이라면 라모스 상단에 복수하는 것도 꿈으로 끝날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어찌 알았을까?’

 정황상 라모스 상단이 비자금의 존재를 눈치챈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위치를 아는 이는 오로지 자신뿐이다. 비자금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아냈지만 어디에 감춰 두었는지 모른다는 것, 라모스 상단에서 노예로 전락한 자신을 잡아가려는 이유는 그것이 분명했다.

 ‘제길. 토둔 탄광은 안전할 줄 알았건만.’

 토둔 탄광은 잠비 자작이 직접 운영한다. 품삯을 받고 일하는 평민들도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상당 비율을 노예가 차지하고 있었다.

 잠비 자작은 노예들의 채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두 가지 정책을 내세우고 있었다. 5년을 일하면 농노로 격상시켜 줌과 동시에 농사 지을 땅을 하사한다는 당근, 그리고 도망쳤을 때는 엄벌을 내려 복종케 하는 것이 바로 그 두 가지였다.

 열심히 일하며 5년을 채우는 것 외에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탄광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노예의 가족들이 돈을 모아 와도 절대 노예를 팔지 않았다.

 라모스 상단에 자신을 팔아넘길 리도 없으니 제이크로서는 토둔 탄광이 가장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용병대를 동원하여 자신을 납치하기까지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잠비 자작의 사병들이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제이크의 말에 용병들이 낄낄거렸다.

 “네놈은 제 발로 도망친 걸로 되어 있으니, 네놈 걱정이나 하거라.”

 “뭐, 뭣이오?”

 라우터는 상황 파악을 못하는 제이크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갈겼다.

 “새끼야, 좀 닥치고 그냥 따라와. 잠비 자작이 뒷돈 안 받는다고 그 똘마니들까지 뒷돈을 안 받을까? 네놈은 어차피 도망쳐 봐야 잠비 자작한테 죽은 목숨이야.”

 제이크는 고개를 푹 숙였다. 탄광을 감시하는 병사들에게 뒷돈을 먹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탄광으로 돌아간다 하여도 미래는 없다.

 ‘차라리 라모스 상단주와 거래를 하는 게 좋을까?’

 자신이 입을 열지 않으면 비자금의 위치를 알 수가 없으니 차라리 그것을 무기로 협상을 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최소한 목숨은 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쪽이 확실해?”

 대장 라우터의 말에 토둔시 출신의 부하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합니다. 이쪽에 버려진 탄광이 하나 있는데, 놈을 숨겨 두기엔 최고의 장소입니다.”

 지금쯤 잠비 자작의 병사들은 사라진 노예를 찾기 위해 탄광과 토둔시를 샅샅이 뒤지고 있을 것이다. 도망친 노예 하나가 아까운 게 아니라, 그로 인해 다른 노예들이 동요할지 몰라 일벌백계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제이크는 잡히지 않을 것이고, 며칠 지나면 잠비 자작도 포기하고 잠잠해질 것이다. 그때 제이크를 끌고 가 약속된 장소에서 넘겨주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다.

 버려진 탄광에 도착하자 라우터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것이, 일부러 사람들이 찾아올 만한 곳은 아니었다.

 “적당히 있을 만한 곳 찾아봐.”

 부하들 몇이 탄광 관리소로 쓰였을 통나무집을 뒤지려 했다. 그때, 산 아래서부터 인기척이 들려와 용병대는 바짝 긴장하며 주위를 살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병장기를 뽑아 들자 금세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병사들이 벌써 온 거 아냐?”

 용병대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올라오는 이들은 잠비 자작의 병사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검을 차마 회수하지 못하고 긴장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탓이었다.

 왼쪽 가슴에 붉은 장미가 새겨진 옷은 누가 보더라도 기사 제복처럼 보였다. 그런 이들이 열다섯이고,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가 한 쌍이다. 그 옆에 허리를 반쯤 낮춘 쥐 수염의 사내가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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