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다가오면서 말했다.
“이제는 친구까지 데려와서 이러기에요?”
동생이 나서서 대꾸했다.
“친구는 무슨, 형! 저 여자 뭐야? 이 아저씨는 또 뭐고? 악마니 뭐니 이런 말 하지 말고.”
동생의 물음에 아무 답도 하지 않은 채 뱀 여자와 중년 남자를 살폈다. 내가 놈을 상대하고, 동생이 여자를 상대해야 한다. 호흡이 중요했다. 그러려면 서로를 믿어야 한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다. 뭐라고 하든 믿지 않을 게 뻔했다. 뱀 여자에게 물었다.
“저 아저씨는 어떻게 찾으셨대? 보니까 무슨 가정집에서 문 것 같던데.”
그녀가 웃었다.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 몰라요? 생각보다 성범죄자들이 많더라고요. 다 뱀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차가운 기운이 스멀스멀 온몸으로 번졌다. 맞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전국에 성범죄자가 얼마나 될까? 만약 모두가 뱀이 된다면? 그건 곧 지옥이었다. 뱀 여자에 대한 공포를 억눌렀다. 막아야 한다. 지금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그럴 일 절대 없을 거야. 널 죽여 버릴 테니까.”
“어머, 무서워라. 근데 왜 당신이 벌벌 떠는 게 느껴질까요?”
동생이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형,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중년 남자가 뱀 여자에게 되물었다.
“확실히 저 새끼가 스네이크맨 맞지? 같은 뱀이 아니라?”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같이 온 남자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동생이었네요. 어쨌든 여자들을 강간하려면 우선 저놈부터 처리해야 하는 거 알죠?”
“알다마다. 동생 놈부터 없애면 되는 거 아냐? 그럼 일이 간단해진다며?”
동생이 화를 냈다.
“어이, 아저씨. 놈이라니. 뭔 말을 그따위로 해요?”
“꼬맹이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네. 네 형이 말 안 하든? 너네 둘은 좆된 거야. 이제 세상 하직이라고.”
“하, 내, 내가 어이가 없어서 말이 다 안 나오네.”
동생의 목소리가 떨렸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절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직접 맞부딪치는 수밖에. 믿을 건 나 자신뿐이었다. 동생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쳤다.
“우리 좆같은 동생은 이 형님만 믿으면 돼야.”
동생이 피식 웃었다.
“우리 좆같은 형이나 이 동생님만 믿으셔. 보니까 여자한테 쪽도 못 쓰더만.”
“마! 여자를 어떻게 때리냐?”
“그러신 양반이 쇠파이프를 휘두르셨어요?”
그 모습을 본 중년 남자가 으르렁거렸다.
“거, 형제가 쌍으로 미쳐서 어른한테 개기기나 하고. 니들 그러다 나중에 시체도 곱게 못 찾는다?”
뱀 여자가 주위를 살피며 재촉했다.
“누가 보기 전에 빨리 해치우죠. 우리 둘 다 시간 없잖아요. 동생의 시체는 유기해야 한다고요.”
중년 남자와 뱀 여자가 나란히 접근했다. 쇠파이프를 치켜들며 동생을 쳐다봤다.
“설명하려면 좀 복잡한데, 일단 들어봐. 내가 저 덜떨어진 꼰대를 맡고, 네가 여자를 맡는다. 오케?”
“씨바, 존나 복잡하네.”
동생이 투덜대고는 침을 삼켰다. 긴장되는지 손끝이 살짝 떨렸다. 중년 남자가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어디서 배워먹은 말버릇이냐? 네 애미 애비가 그렇게 가르치던?”
쇠파이프를 단단히 쥐고, 팔 근육에 힘을 줬다.
“가정교육을 잘 받으셔서 신상공개가 되셨나? 이 강간범 새끼야!”
상대적으로 근육이 덜 붙은 머리를 향해 쇠파이프를 날렸다. 놈이 고개 숙여 피하고는 내 복부로 주먹을 뻗었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주먹을 몸을 옆으로 비틀어서 흘렸다. 바로 놈의 어깨가 아래쪽으로 훅 들어왔다. 두 팔로 내 허리를 붙잡고 밀어붙였다. 엄청난 힘에 뒤로 넘어졌다.
놈이 상체를 타고 앉더니 주먹을 내리꽂았다. 쇠파이프와 팔꿈치를 동시에 들어 얼굴을 막았다. 놈이 양 주먹으로 쇠파이프와 팔꿈치 위를 두들겼다. 격렬한 진동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졌다. 쇠파이프를 쥔 손목이 얼얼했다. 팔꿈치에 금이 갔는지 쿡쿡 쑤셨다. 언제까지 이렇게 막고 있을 수만은 없다.
두 다리로 놈의 옆구리를 힘껏 감았다. 허벅지 근육에 힘을 줘 몸통을 조이자마자 놈이 때리는 걸 멈추고 양손으로 다리를 잡았다. 상체가 텅 비었다. 기회였다! 몸을 일으키면서 놈의 이마를 쇠파이프로 내리쳤다. 기다렸다는 듯 허리를 뒤로 꺾어 피하고는 끙! 하는 신음과 함께 몸통을 조이던 다리를 두 손으로 풀었다. 놈의 힘은 나보다 훨씬 셌다.
이건 못 피할걸? 배에 타고 앉은 놈의 옆구리를 쇠파이프로 내질렀다. 놈이 뒤로 펄쩍 뛰며 내 몸에서 떨어졌다. 쇠파이프가 허공을 갈랐다. 앞쪽으로 나온 오른쪽 다리를 노리고 재차 쇠파이프를 날리자 다리를 들어 피해버렸다. 아무리 휘둘러도 내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예전의 뱀들처럼 내 공격이 한눈에 다 보이는 거다.
뱀 여자가 순식간에 다가와 손에 쥔 쇠파이프를 잡았다. 어? 미처 저항할 새도 없이 빼앗겼다. 바로 내 머리를 쇠파이프로 날렸다. 피할 틈도 없었다. 쇠파이프 끝이 아래턱에 맞자마자 머리가 핑 돌면서 온몸이 굳은 채로 콘크리트 바닥에 쓰러졌다.
“형!”
동생이 뱀 여자의 쇠파이프를 빼앗는 게 보였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바닥을 엉금엉금 기는 와중에 중년 남자가 동생에게 다가갔다. 뱀 여자가 뒤로 물러선 채 웃었다. 지금의 동생에겐 저항할 힘이 없다.
“도망가! 얼른 튀라고!”
동물처럼 네발로 기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눈앞에서 콘크리트 바닥과 어두운 골목길이 마구 뒤섞였다. 중심을 잡지 못 해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놈이 동생의 멱살을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동생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숨이 막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두 다리가 허공에서 허우적댔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저 꼰대를 때려죽이면 된다! 주먹을 꽉 쥐고, 다리에 힘을 줬다. 넘어지려는 걸 온 힘을 다해 버텼다. 바로 앞에 놈에게 매달린 채 축 늘어진 동생이 보인다. 그 순간, 뱀 여자가 나타나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멈출 수는 없었다. 불에 뛰어드는 나방이라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비켜! 이 썅년아!”
그녀의 복부를 머리로 들이받았다. 차가운 손이 내 머리를 잡더니 그대로 바닥에 짓눌렀다. 컥! 얼굴이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에 내리꽂혔다. 볼과 관자놀이 쪽이 울퉁불퉁한 지면에 쓸렸다. 두 손을 짚고 일어나려고 끙끙댔다. 머리를 바닥에서 뗄 수 없었다. 마치 콘크리트 바닥과 머리가 한 몸인 것처럼 달라붙었다. 뱀 여자가 위에서 내 머리를 누르며 발로 옆구리를 걷어찼다.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입에서 피가 튀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녀가 머리를 짓누르는 손에 힘을 줬다. 머리 전체에 압력이 가해졌다. 이대로 머리를 납작하게 만들려는 거였다. 두 손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뱀 여자는 잡히지 않았다. 귓가에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머리뼈에 금이 가는 소리였다.
깡! 경쾌한 소리가 났다. 쇠파이프가 부딪치는 소리였다. 뒤이어 몇 차례 더 들리더니 머리를 누르는 압력이 사라졌다. 벌떡 일어났다. 뱀 여자가 두 손을 들어 아무 짓도 안 했다는 행동을 취하며 뒤로 물러섰다. 얼른 동생을 살폈다. 중년 남자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매만졌다. 동생이 헐떡거리며 쇠파이프로 그녀를 겨냥했다. 동생의 뒤에서 놈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일어섰다. 내 공격을 예측할 수는 있어도 보통 사람의 기습은 피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놈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리 예측해도 피할 시간이 없을 거다. 이미 내 몸은 놈의 코앞이었다. 손으로 머리를 감싸던 놈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상체를 숙이고, 지면을 힘껏 박찼다. 놈의 복부를 어깨로 냅다 들이받았다. 한껏 독이 오른 스피어였다.
“억!”
놈이 짧은 비명과 함께 뒤로 넘어졌다. 올라타 놈의 목을 물었다. 마취액을 있는 힘껏 내뿜었다. 놈이 손을 들어 내 목을 움켜쥐었다. 단번에 숨이 막혔다. 피가 거꾸로 몰리는 느낌이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다른 방법은 없었다. 놈의 목을 잘근잘근 씹었다. 마취액을 더 주입하기 위해 아랫배에 잔뜩 힘을 줬다. 다른 쪽 손이 날아와 내 얼굴을 잡았다. 힘겹게 코와 입을 더듬더니 중지로 오른쪽 눈을 찔렀다. 놓아주지 않으면 적어도 한쪽 눈은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경고였다.
상관없다. 눈 한쪽만으로 놈을 식물인간으로 만든다면 나름 성공한 셈이었다. 손톱이 눈알에 깊이 파고들었다. 마치 머리가 터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럴수록 더 놈의 목을 물고 늘어졌다. 목을 쥔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현기증이 나더니 눈앞이 흐려졌다. 나야말로 경고해주고 싶었다. 내가 죽어도 놈 또한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목을 쥔 손이 스르르 풀렸다. 눈 속을 후비던 중지가 움직임을 멈췄다. 얼굴을 움켜쥔 손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눈물범벅이 된 오른쪽 눈을 깜빡였다. 주위가 약간 부옇게 보일 뿐 사물의 색과 모양은 그대로였다. 다행히 심한 손상은 입지 않은 모양이었다.
놈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팔다리가 축 늘어졌다. 드디어 마취되기 시작한 거였다. 몸에 남은 모든 독을 놈에게 퍼부어야 한다.
놈에게 독을 주입하면서 동생을 돌아봤다. 동생은 여자에게 쇠파이프를 겨누기만 했다. 차마 휘두르지는 못하고, 여자 앞을 서성이며 고민했다.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일단 여자였으니까. 오늘 처음 본 거고, 지금껏 해온 악행을 모를 거였다. 어차피 저 여자는 내가 죽여야 한다. 이 꼰대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후에.
뱀 여자가 나와 동생을 살피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흩날리는 앞머리를 귀로 곱게 넘겼다. 그녀의 몸이 살랑거리며 움직이는 듯했다. 유난히 몸의 곡선이 도드라졌다. 그녀가 동생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뭐, 어때요?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지. 경우에 따라서 큰 피해를 주거나, 죽일 수도 있지 않나요?”
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노려봤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동물의 세계를 보세요. 동물이 다른 동물을 잡아먹잖아요. 당신도 그러고 싶지 않나요? 그건 육식동물의 본능이라고요. 지금 내가 널 잡아먹고 싶은 것처럼.”
뱀 여자가 육감적인 몸을 흔들며 동생에게 다가갔다. 동생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녀가 나긋나긋한 손짓으로 동생의 목을 어루만졌다.
“내가 힘을 줄게요. 그럼 얼마든지 욕망에 이끄는 대로 할 수 있어요. 죽여요. 잡아먹으라고요. 원한다면 나도 그리 해도 좋아요. 자연스러운 거니까.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거예요.”
중년 남자의 목에 독을 주입하다 얼른 입을 뗐다. 큰일이었다. 저런 식으로 유혹할 줄은 몰랐다.
“개년아! 뭔 수작이야? 얌마! 넘어가지 말라고! 사람을 죽이는 게 말이 되냐? 상식적으로 따져 봐. 저거 다 개 헛소리라고!”
동생이 열에 들뜬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형은 좀 짜져 있어 봐. 지금 중요한 이야기를 하잖아.”
“뭐? 야이 새꺄!”
눈앞에 쓰러진 놈을 살폈다. 아직 식물인간이 될 정도로 독이 주입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멈춘다면 언제 놈이 다시 깨어날지 몰랐다. 하지만, 동생이 문제였다. 저러다가는 또 다른 뱀이 될지도 모른다.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