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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스네이크맨
작가 : 엄길윤
작품등록일 : 2017.11.8

뱀의 능력을 가진 남자가 성범죄자를 처단한다.

 
그녀(1)
작성일 : 17-12-11 00:33     조회 : 281     추천 : 0     분량 : 3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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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놈이 형사들에게 죽은 지 며칠이 지났다. 스네이크맨에 대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터넷을 찾아봤다. 뉴스에서는 스네이크맨의 시신을 누군가가 훼손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리고 피해자의 시신도 덩달아 사라졌다고.

 

 구급 요원은 피해자의 시신이 저절로 벌떡 일어났다고 증언했다. 깜짝 놀라 자신이 사람들을 데려온 사이 이미 사라졌다는 것이다.

 

 경찰들이 근처 CCTV를 찾아 나섰지만, 현장을 비추는 CCTV는 한 대뿐이라고 전했다. 게다가 119구급차에 가려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확인하기가 어려웠다고.

 

 아마도 이후에는 스네이크맨이 지하철역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던 놈이라는 게 알려질 거다. 그럴 수밖에 없다. 경찰 입장에서는 뭐라도 잡아야 하는데 그렇게 보는 게 아귀가 딱 맞는다. 그래서 성범죄자들을 죽이고 다닌 거지. 희생자는 지하철역 앞에서 그와 다투던 사람이고.

 

 웃긴 건 복면을 쓰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놈을 죽였다는 사실이었다. 놈과의 전투 대부분 던지기를 당하거나 얻어맞았다. 누가 봐도 난 희생자였다. 더구나 떨어져 죽을 때에는 얼굴이 온통 피로 물들어 신원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을 거였다. 이대로 사라지면 된다. 찾지 못할 거다. 이제 스네이크맨은 없다. 단지, 나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뱀 여자를 죽여야 한다.

 

 더는 시간이 없었다. 연쇄 강간살인마가 죽었을 때, 그녀도 느꼈을 게 틀림없다. 아마도 내 소행이란 걸 알아채고, 날 죽이려고 이를 박박 갈겠지. 조만간 다른 사람을 물어 힘을 주입할 거였다. 그게 문제였다.

 

 그럼 또 다른 뱀이 생기는 거고, 그럴수록 무고한 시민이 죽어 나간다. 뱀과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마지막에 옥상에서 떨어질 때도 형사들 아니었으면 놈을 죽이지 못했다. 다른 뱀이 생기기 전에 어떻게든 그녀를 찾아내야 한다. 만약, 찾아낸다고 해도 그녀를 죽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뱀 여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졌다. 마치 개미가 코끼리에게 대적하는 격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개미는 절대 코끼리를 죽일 수 없다. 만나면 일초컷이 될 게 분명했다.

 

 더 무서운 건 세상에 대한 저주와 악의였다. 그 밑도 끝도 없는 증오는 어디에서 온 걸까? 분명한 건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기 전까지 절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가만히 놔두면 뱀의 숫자를 계속 늘릴 것이다. 그게 한두 명에서 몇십 명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녀는 아무나 물지 않았다. 꼭 발바리나 소시오패스와 같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남을 짓밟는 악인에게만 힘을 주입했다. 그런 놈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지옥에 더 가까워진다.

 

 그럼 나는? 형광 뱀이 떠올랐다. 뱀 또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물었다. 하지만, 다 죽었고, 나 혼자만 능력을 받은 채 살아남았다. 모든 게 뱀 여자를 막기 위한 형광 뱀의 의도였을까? 뱀 여자는 나쁜 놈이고, 나는 좋은 놈일까?

 

 그럴 리가. 원래 그런 이분법을 가진 사람일수록 악인일 확률이 높다. 나는 뱀 여자와 그녀가 만들어낸 뱀처럼 악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착한 사람도 아니었다. 성범죄자들을 처단한 건 순전히 내 만족이었다. 그건 인정해야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는 걸 막기 위해 뱀 여자를 죽이려는 게 아니다. 그냥 그녀가 죽어도 될 짓을 했기 때문에 죽이려는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뱀 여자는 악인에게만 힘을 주입한 거고, 형광 뱀은 아무한테나 힘을 주입한 거다. 그 차이였다. 다양성과 그렇지 않은 것.

 

 그러니까 그녀를 죽일 수밖에 없다.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은 상관없다. 원래대로라면 이번에 놈에게 죽었어야 한다.

 

 그녀를 어떻게 찾을까? 일단 지금껏 봐온 뱀들처럼 체온이 무척 낮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무엇보다 가까이에 있으면 위압감이 느껴질 터였다. 아마도 직접 대면하면 후달려서 질질 쌀지도?

 

 아무리 늦더라도 뱀 여자가 다른 사람을 물기 전에는 찾아야 한다. 힘을 주입하면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될 거다. 그때는 늦는다.

 

 낮이 되자 뱀 여자를 찾아 돌아다녔다. 중심상가와 상일 고등학교 앞 사거리 어디에도 차갑게 식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발바리와의 대결에서는 몇 날 며칠을 대기탄 끝에 찾은 거고, 일인시위 하던 놈은 대놓고 지하철역 앞에서 어그로를 끄는 바람에 발견한 거였다.

 

 어디에 있을까? 찾지 못해도 문제고, 찾아도 문제다. 혹시 다른 지역에 있는 걸까? 가까이에 있다면 진작 느꼈을 거다.

 

 그때였다. 순간, 눈앞이 컴컴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낮인데도 주변 건물들에 검은 그림자가 졌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맑은 날씨였다. 다시 주위를 살폈다.

 

 건물들에 진 그림자가 인도와 가로수로 번졌다.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었다. 몹시 어둡고, 차가웠다. 하아. 내쉰 숨이 하얀 입김으로 변했다. 몸이 감기에 걸린 것처럼 으슬으슬 추웠다. 형사들에게 총을 맞고 죽기 직전 추위를 느끼던 때와 똑같았다.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폈다. 그들의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주변 전체가 그림자로 뒤덮였다. 저 멀리 햇볕을 받은 아파트 단지가 빛을 냈다. 딱 이 근처에만 그림자가 진 거다. 검은 그늘 안을 오가는 사람들은 평온한 얼굴로 저마다 갈 길을 재촉했다.

 

 혹시 나한테만 보이는 건가? 침을 꿀꺽 삼켰다. 맞은편 빌딩과 빌딩 사이 어두운 골목에서 차가운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졌다. 그 안에서 누군가 걸어 나온다. 얼어붙을 듯 시퍼런 체온을 가진 사람이었다. 마치 그림자가 겹쳐진 것처럼 주변의 어둠이 더 짙어졌다. 이 느낌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녀였다. 뱀의 여자. 몇십 미터 떨어진 상태지만, 한 번에 알아챘다. 코끼리와 개미의 비유는 잘못됐다. 단순한 힘의 차이가 아니었다. 이건 사자와 임팔라의 관계였다. 임팔라가 사자를 잡아먹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거스를 수 없는 세상의 이치였다. 그녀는 포식자고, 나는 피식자였다. 다른 가능성은 없다. 무조건 달아나야 한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뒤돌아 뛰었다. 이제껏 잘못 생각했다. 뱀 여자를 찾으러 다닐 게 아니라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했다. 단순히 죽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와 마주친 순간 알았다. 그녀에게 잡히면 산채로 잡아먹힌다.

 

 도로로 뛰어들어 달리는 차 사이를 가로질렀다. 사방에서 차들이 멈춰선 채 경적을 울렸다. 살을 찌르는 듯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뒤를 돌아봤다. 주변에 안개처럼 흐르던 차가운 기운이 순식간에 그녀에게 빨려 들어갔다. 그녀가 숨을 들이쉬고 나를 향해 뛰었다. 차가운 몸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주위를 뒤덮은 그림자가 해가 질 때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지더니 사방으로 춤을 췄다.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 게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녀의 몸에서 뻗은 어둠이었던 거다.

 

 도로를 건넌 후 허겁지겁 상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체온을 올려야 했다. 하필 시간대가 낮이었다. 차가운 몸은 주변의 높은 온도에서 눈에 확 띄었다. 핫팩이든 랜턴이든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니면 죽는다.

 

 고개를 뒤로 돌려 뱀 여자를 살폈다. 체온이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둠이 나를 향해 쏘아졌다. 빛줄기가 갈라지듯 사방으로 뻗는 어둠에서 뱀 여자의 분노가 느껴졌다. 그녀는 세상을 원망한 게 아니었다. 바로 사람 자체를 증오하고, 저주했다.

 

 그녀가 점점 가까워졌다. 뛰는 게 아니었다. 상체를 점점 숙이더니 몸 전체가 지면과 가까워졌다. 마치 미끄러지듯 지면 위를 달렸다. 오한으로 턱이 덜덜 떨렸다. 딱 형광 뱀이 잡아먹히기 전의 상황과 똑같았다.

 

 떼어내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차가 쌩쌩 달리는 3차선 도로로 뛰어들었다. 그대로 건너는 게 아니라 차가 달려오는 방향으로 역주행했다. 어차피 뱀 여자에게 죽든 차에 치여 죽든 죽는 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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