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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스네이크맨
작가 : 엄길윤
작품등록일 : 2017.11.8

뱀의 능력을 가진 남자가 성범죄자를 처단한다.

 
죽음이 너를 바라본다(2)
작성일 : 17-11-28 00:57     조회 : 327     추천 : 0     분량 : 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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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신히 303동 옥상 난간을 붙잡았다. 주변으로 총알이 빗발쳤다. 난간이 총에 맞아 부서지고, 외벽에 총알이 박혀 군데군데 움푹 팼다. 부서진 난간이 흔들리자 몸도 같이 들썩였다. 갑자기 오른쪽 허벅지가 불에 댄 듯 따끔했다. 기울어진 난간에 매달린 채 밑을 내려다봤다. 구멍 난 허벅지에서 피가 줄줄 샜다. 이런, 씨발! 끙끙대며 옥상으로 기어 올라왔다. 헐떡이며 반대편에 선 형사들을 살폈다. 이건 나를 죽이려고 작정한 거다.

 

 형사들이 총알을 장전하고, 다시 총을 겨누었다. 배에서 솟은 피가 허벅지를 타고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복부와 오른쪽 다리가 온통 피투성이였다. 예상했었지만, 이 몸으로는 총알을 막지 못했다.

 

 일어나 맞은편 304동을 향해 내달렸다. 일단 피해야 한다. 허벅지와 배가 쿡쿡 쑤셨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다시 총성이 들려왔다. 저 개새끼들이! 이미 많은 피를 흘렸다. 이번에 맞으면 진짜 죽는다.

 

 옥상 난간을 밟고 올라 304동으로 뛰었다. 윽! 오른쪽 허벅지가 아파 제대로 힘을 주지 못했다. 몸이 공중으로 솟다가 힘없이 추락했다. 아직 304동에는 반도 도달하지 못했다. 뒤에서 날아온 총알이 내 머리를 스쳐 허공으로 사라졌다. 제대로 뛰었다면 아마 왼쪽 어깨를 관통했을 거였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몸이 뒤집혀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휘몰아치는 바람이 얼굴을 마구 할퀴었다. 상처에서 솟은 피가 사방에 흩날렸다. 이대로 떨어지면 안 된다. 지금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발바리 때처럼 몸을 회전시킬 힘이 없었다. 고개도 간신히 들 정도였다.

 

 아스팔트 바닥이 저 밑에서 달려들었다. 이 아파트는 20층이었다. 떨어지면 온몸이 작살난다. 주위를 살폈다. 붙잡을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허공뿐이었다. 침을 꿀꺽 삼켰다. 하는 수 없다. 이대로 바닥에 부딪혀야 한다면, 최소 머리는 보호해야 한다.

 

 팔로 머리를 감쌌다. 두 다리를 들어 몸을 웅크렸다. 끙! 벌어진 상처 때문에 절로 신음이 터졌다. 팔 사이로 시커먼 아스팔트 바닥이 커다랗게 들이닥쳤다. 질끈 눈을 감았다.

 

 ‘퍽!’

 

 온몸이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에 그대로 들러붙었다. 팔다리가 모두 부러지고, 갈비뼈와 엉덩이뼈가 박살 났다. 부러진 뼛조각이 몸 안에서 살을 찔렀다. 단단한 근육이 피멍으로 얼룩졌다. 몸이 아스팔트 바닥으로 축 늘어졌다. 뒤늦게 머릿속을 뜨거운 쇠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쏟아졌다.

 

 “······!”

 

 소리도 낼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었다. 이를 악물었다. 온몸이 끊어졌다 다시 붙기를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하는 것 같았다. 너무 아팠다. 눈물이 쏟아졌다. 부옇게 흐려진 눈앞으로 하늘이 보였다. 그 옆의 302동 옥상 난간에서 형사들이 아래를 굽어보다가 금세 사라졌다. 나를 잡으러 내려오는 거다.

 

 “으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널브러진 몸을 뒤틀었다. 팔다리가 부러져 걷거나 뛸 수 없었다. 곧 있으면 형사들이 도착한다. 근육은 피멍만 들었지, 어느 정도는 사용 가능했다. 빨리 달아나야 한다.

 

 엎드린 상태에서 온몸의 근육을 꿈틀거려 앞으로 움직였다. 벽이나 건물을 탈 때 쓰는 방법이었다. 눈이 뒤집힐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몸이 흔들릴 때마다 배와 허벅지에서 피가 한 움큼씩 쏟아졌다.

 

 이제는 스네이크맨이 아니라 진짜 스네이크였다. 뱀처럼 바닥을 기며 304동 아파트 외관에 달라붙었다. 주변으로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는가 하면, 셀카를 찍거나 소리를 지르며 상황을 지켜봤다.

 

 고통을 참으며 뒤를 돌아봤다. 내가 흘린 피가 아스팔트 바닥 위로 붉은 길을 만들었다. 흔적을 지워야 한다. 302동 현관에서 형사들이 튀어나왔다. 주위를 살피다 304동 1층에 붙은 나를 발견하고는 일제히 총을 겨눴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러다가 시민이라도 다치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사람들을 확인한 형사들이 총을 거둬들이고, 우르르 뛰어왔다. 아파트 모서리의 외관을 기어오르다 옆면을 타고 뒤쪽으로 향했다. 304동 뒷면은 층마다 일렬로 펼쳐진 복도였다. 4층 복도 난간으로 향하다가 머리가 띵했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 순간적으로 온몸의 근육에 힘이 풀렸다. 주르륵 미끄러졌다. 윽! 간신히 3층 복도 난간 턱에 상체를 걸쳤다. 팔과 다리를 쓸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모든 걸 뱀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꿈틀거리며 3층 복도 안으로 떨어졌다. 핏자국이 난간을 타고 복도로 이어졌다. 이러면 형사들에게 흔적을 들키고 만다. 어떻게든 출혈을 멈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주위를 살폈다. 301호와 307호 중에 303호에만 사람이 없었다. 지금은 가택 침입이니 뭐니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303호 현관문에 달라붙었다. 그대로 온몸의 근육을 움직여 상체를 위로 끌어당겼다. 문손잡이를 쥐었다. 팔과 다리가 부러졌을 뿐, 아직 손은 멀쩡했다.

 

 “으악!”

 

 손아귀에 힘을 주자 부러진 팔의 통증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졌다. 누군가가 야구 방망이로 전신을 뚜드려 패는 것 같았다. 웩! 피를 한 사발 토했다. 떨어져 나온 문손잡이를 쥔 채 문 앞으로 쓰러졌다. 현관문이 끼익 열렸다. 바닥이 빙글빙글 돌았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형사들은 304동 현관을 거쳐 여기로 오는 중일 거다. 1층부터 2층까지 전부 수색한다 해도 걸리는 시간은 고작 몇십 분이었다. 그사이에 어떻게든 쇼부쳐야 한다.

 

 열린 문을 비집고 기어들어갔다. 부엌을 지나 욕실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 구멍이 뚫린 복부와 허벅지를 물로 씻었다. 욕실 바닥이 피로 물들었다. 슬라이드장에서 수건을 있는 대로 다 꺼낸 후 손과 입을 사용해 상처를 꽁꽁 싸맸다. 이제 아까만큼의 흔적은 남지 않을 거다.

 

 다시 303호를 나가려는 와중에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추웠다. 뱀의 능력이 생긴 후로 한 번도 추위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근육도 점점 힘을 잃어갔다. 바닥을 기는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머리로 303호 문을 밀치고 나왔다. 복도 끝에서 여러 명이 계단을 박차고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형사들이다! 어떻게 하지? 난간에서 복도로 이어진 핏자국을 피해 다시 난간을 기어올랐다. 밑을 내려다봤다. 지금은 3층에서 떨어지면 그대로 죽는다. 계단 쪽을 돌아봤다. 붉은 형체 여섯이 쿵쾅거리며 3층에 도착했다. 다른 방법이 없다.

 

 밑으로 몸을 떨어뜨렸다. 2층 복도 난간이 눈앞에 들이닥쳤다. 저걸 잡지 못하면 끝장이다. 온몸을 힘껏 뒤틀었다. 사지가 찢어지는 충격에 비명이 터졌다. 이를 악물었다. 빠득. 얼마나 세게 다물었는지 이 몇 개가 부서졌다.

 

 2층 복도 난간 턱에 허리가 찍혔다. 몸이 활시위처럼 뒤로 꺾인 후 난간 벽을 타고 안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 눈앞으로 별들이 펑펑 터졌다. 위에서 형사들이 고함을 질렀다.

 

 “최형사! 여기 좀 보라고! 놈의 흔적이야.”

 

 “이 새끼, 303호로 들어간 모양인데? 문까지 부수고. 어쨌거나 독 안에 든 쥐야.”

 

 “일단 총부터 꺼내. 생포하면 좋은데 상황이 엿 같으면 사살해도 상관없어. 위에서 직접 내려온 지시라고.”

 

 303호에 내가 없다는 걸 금방 알아챌 거다. 복도에 일렬로 늘어선 집 안을 살폈다. 이번에는 201호와 205호에 사람이 없었다. 복부와 허벅지를 싸맨 수건을 살폈다. 피가 배어 나와 붉게 물들었다. 다행히 난간이나 바닥으로 핏자국이 번지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201호로 기어갔다. 자꾸 눈이 감겼다. 이제는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면서 마치 물속에 잠긴 듯 몸이 느리게 움직였다. 겨우 201호 문손잡이를 뜯어낸 후 다시 제자리에 꽂았다. 열린 문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발끝으로 문을 걸어서 당겼다. 철컥. 201호 문이 닫혔다.

 

 신발장 옆을 기며 생각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안방으로 향했다. 점점 잠이 쏟아졌다. 이대로 자면 안 된다. 그럼 죽는 거다. 일단 형사들이 철수하면 그때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많이 먹고 푹 쉬면 몸이 다시 회복될지도 모른다.

 

 머릿속이 쾅쾅 울렸다. 복부와 허벅지에 맨 수건은 이미 피로 흠뻑 젖었다. 다시 씻거나 새 수건으로 갈 힘도 없었다. 이가 덜덜 떨렸다. 부서진 이 조각이 입안을 맴돌았다. 마치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한겨울에 땅바닥을 기는 것 같았다. 추위로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위층에서 형사들의 탄식이 들렸다.

 

 “이 개새끼가 어디로 간 거지?”

 

 “흘린 피로 보면 분명히 이 근처인데.”

 

 들키면 안 된다. 살아야 한다. 끙끙대며 안방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왔다. 더는 다른 곳으로 움직일 힘이 없다.

 

 “최형사, 이형사는 이 근방을 뒤지고. 나머지는 날 따라와. 4층으로 올라가자고.”

 

 위층을 바라봤다. 붉은 형체 두 명이 3층에 남고, 나머지 넷이 계단을 올랐다. 저들이 날 찾아낼까?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졌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면서 온몸이 나른했다. 안 된다. 지금 자면 끝이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자꾸 눈이 감겼다. 바닥에 짓눌린 머리를 힘겹게 들었다. 끝까지 버텨야 한다. 어둠 사이로 축 늘어진 몸이 보였다. 뭔가 이상하다. 피멍으로 얼룩졌던 피부가 온통 시커멓게 변했다. 이건 살이 썩어들어 갔음을 의미했다. 바로 괴사였다.

 

  눈이 천천히 감겼다. 들었던 고개를 처박았다. 지금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 시야를 가렸다. 눈을 감았다. 가느다란 호흡이 뚝 끊어졌다. 쿵쾅대던 심장 박동도 멈췄다. 아무런 느낌도 없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난 그렇게 201호 침대 밑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걸로 모든 게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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