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우리 동네에 소문이 돌았다. 마을에 발바리가 살고 있다고 했다. 그 발바리가 몇 년 동안 동네에 혼자 사는 여자들을 강간했다고. 피해자가 벌써 20명이 넘는다고 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 소문으로 동네가 발칵 뒤집혔고, 동네 담당 경찰서로 하루에만도 30건이 넘는 문의 전화가 들어왔다. 그 소문이 맞느냐고. 경찰 측에서는 절대 아니라고. 헛소문이라고 했지만, 마을 주민들은 경찰을 어떻게 믿느냐며 대부분 믿지 않았다. 딸자식 가진 부모들은 밤이 되면 만사 제쳐두고 딸부터 챙겼다. 그게 맞지. 나라도 안 믿겠다. 발바리가 활개 친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경찰이 아니라고 하니 소문이 더 사실 같았다. 우리나라 경찰을 어떻게 믿나?
만약 발바리가 내 앞에 나타난다면, 아니 내가 범행 현장을 목격한다면 얼마 전에 병장 만기 전역한 예비군으로서 놈을 떡실신시킬 것이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전역하기 몇 달 전부터 사회에 나온다고 헬스도 열심히 하고, 담배도 끊었다. 정확히 뭘 해야겠다는 개념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될 거로 생각했다. 지옥 같던 군대도 버텼는데 그깟 사회쯤이야.
조금만 더 쉬다가 슬슬 직장을 잡자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군대 물부터 빼야 한다. 부대에서 먹은 짬이 아직 다 똥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군인으로 오해되는 건 심히, 상당히, 불쾌한 일이었다. 아저씨라니. 어딜 봐서? 누가 봐도 오빠고만.
내내 친구들과 술로 헬파티를 하다가 간만에 쿨타임을 가졌다. 소주병만 봐도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설사도 오지게 했다. 몸부터 챙기자. 내일은 등산이라도 해볼까.
오늘따라 저녁인데도 집에 아무도 없었다. 아빠는 일 때문에 밤에 온다고 했고,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 떤다고 카페로 갔고. 동생 놈은 왜 안 들어오는지 모르겠고. 뭐 곧 현역으로 입대할 놈이니 하루하루 똥줄 타겠지. 가서 조뺑이 쳐봐야 이 형님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거다. 슬슬 배가 고팠다. 밥통을 열어보니 어제 먹다 남은 밥이 벌써 누렇게 변했다. 에이 썅. 그렇다고 새로 밥하기는 귀찮고. 라면이나 때리자.
트레이닝복을 대충 걸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황해 세트로 먹어야겠다. 거기에다가 삼각 김밥 추가해서. 음식을 사서 편의점을 나오는데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고딩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는 게 보였다. 한숨부터 나왔다. 쟤들은 저게 간지라고 생각하겠지. 조금만 더 나이 먹어 봐라. 이불킥 할 걸? 슬쩍 훈계라도 할까 생각했지만, 참았다. 뭐, 담배 펴봤자 지들만 손해지. 자기 건강을 해치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다. 시대가 변하기도 했고. 옛날이나 훈계가 먹혔지. 요즘 애들한테는 꼰대라는 소리만 들을 거였다. 그래, 알아서들 해라.
그러고는 담배 연기가 자욱한 골목 앞을 지나치려는데 담배 피우는 고딩들 뒤로 움츠린 한 아이가 보였다. 세 명의 고딩이 걔를 둘러싼 채 찰지게 발길질을 하는 중이었다. 그 세 명을 가리는 포지션으로 담배를 피우는 두 명의 고딩 중 한 명이 맞는 애를 돌아보며 낄낄댔다. 캭, 퉤. 그 옆의 놈은 나를 꼬나보면서 침을 걸쭉하게 뱉는다. 허, 저 놈 봐라? 어른들이 그냥 지나가니까 자기들이 무서워서 그러는 줄 아나. 어디 좆고딩이.
손에 든 검은 봉지를 내려놓고 문지기처럼 건들거리며 담배를 빠는 두 명의 고딩에게 다가갔다. 담배를 피우는 건 그럴 수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한 애를 다구리 까는 건 다른 문제였다. 남을 때리는 건 나쁜 짓이다. 그건 그냥 넘어갈 수 없지.
맞는 애를 비웃던 애가 다가오는 나를 돌아보더니 슬쩍 눈길을 피했다. 저 새끼는 쫄았고. 앉아서 걸쭉한 침을 뱉던 고딩이 일어나서 자기 옆의 놈을 보더니 자신만만한 얼굴로 톡, 담배 재를 턴다.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는 깊숙이 들이마신 후 연기를 내뱉었다. 기가 차 피식 웃음이 나왔다. 끝까지 가오 좀 잡아 보겠다는 거였다. 주머니에 찔러 넣은 두 손을 뺐다. 성큼성큼 고딩들에게 다가갔다. 교복 바지를 줄이고 머리는 무슨 패션인지 모를 이상한 꼬락서니로 해 놓은 게 지들 딴에는 먹어주는 모양이었다. 그래 봤자 내가 보기엔 개찐따지만. 팔다리가 얇고 머리만 큰 게 무슨 외계인이냐? 끝까지 담배를 끄지 않는 고딩들 앞에 서서 말했다.
“야, 니들 뭐하냐?”
살짝 쫄은 한 놈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에요? 우리가 담배를 피든 말든.”
“그래. 담배를 피든 말든 내 알바 아니지. 근데 너네들 뒤에 그거 뭐냐고.”
실실 쪼개며 침만 뱉던 다른 녀석이 일어나서 담배를 내던졌다.
“그래서, 뭐? 뭐 어쩌라고. 아나, 씨발. 안 그래도 담탱이 때문에 기분 좆같은데. 이제는 꼰대가 와서 지랄이네. 저놈처럼 맞고 싶으세요?”
풉. 너무 귀엽게 말을 하는 바람에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오케이. 인정.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냅다 달려가서 놈의 면상에 귓방망이를 후려쳤다. 놈이 몸이 휘청거리며 허리가 뒤로 꺾였다. 그대로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따귀를 때렸다. 한 대. 두 대. 세 대. 놈은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정신없이 맞기만 했다. 살다 살다 고딩에게 욕까지 들어먹고. 내가 어이가 없어서. 움켜쥔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말했다.
“방금 한 말 다시 해봐.”
휘청거리던 놈이 고개를 숙이고 훌쩍였다. 양쪽 볼은 이미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게 아니라요. 오늘 기분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요.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냐? 이걸 그냥 확.”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옆의 놈도 덩달아 흠칫했다. 좋아. 이 두 녀석은 접수했고. 고딩의 머리를 놓아주고, 멍하니 이쪽을 보는 세 명의 고딩에게 말했다.
“야, 너네들 이리 와.”
이미 상황 파악이 끝난 녀석들이 비척거리며 다가왔다. 가장 깝치는 한 놈을 제압한 순간 상황은 끝난 거다. 녀석들의 어리둥절한 얼굴에서 두려움이 엿보였다. 어디 피지컬도 안 되는 것들이 개겨. 저런 비리비리한 놈들은 세 명이 다 덤벼도 발라줄 수 있었다. 놈들에게 말했다.
“애를 왜 때리는 거냐? 여기가 교실이야? 어디 좆고딩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한 놈씩 머리통을 때린 후 맞은 애한테 다가갔다. 움츠린 채 떨던 녀석은 두 팔로 얼굴을 가리다가 자신을 때리던 놈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슬며시 팔을 치워 나를 바라봤다.
“저 새끼들 뭐냐? 왜 너를 때리는데?”
맞은 애는 아직도 놈들이 두려운지 힐끔힐끔 눈치를 봤다.
“학교 폭력이 심각하다는 말만 들었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디 사람들 다 지나는 길 한가운데에서 이 짓거리야.”
혀를 차고는 뒤에서 한데 모여 수군거리는 놈들을 불렀다.
“뭘 보고 섰어? 새끼들아. 빨리 와서 얘한테 사과해.”
5명의 고딩이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왔다. 몸을 돌려 쓰러진 애를 일으킨 후 말했다.
“핸드폰 줘 볼래?”
녀석이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자 내 전화번호를 찍고 통화 버튼을 누른 후 종료했다.
“저 새끼들이 또 때린다 싶으면 언제든 형한테 전화해. 알겠어?”
핸드폰을 받아든 애가 엉거주춤 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말 안 할 거야? 왜 때렸냐니깐? 뭐 뻔하지. 삥 뜯는데 돈 안 준다고?”
이상하게도 녀석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하, 답답하네.”
이번엔 등 뒤에 선 놈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때린 이유가 뭐냐고.”
새끼들도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미쳤네. 아주 개념을 상실했고만. 이번에는 다섯 놈 앞으로 가 한 놈씩 돌아가며 머리통을 때렸다.
“그래서, 때린, 이유가, 뭐냐고, 묻잖아.”
열중쉬어 자세로 머리를 맞은 놈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이 없었다. 슬슬 화가 났다. 이건 나를 알로 본다는 이야기였다.
“야이, 씨발 새끼들아. 내가 묻잖아. 귓구멍에 좆 박았냐?”
다시 녀석들의 대갈통을 수차례 갈기며 소리쳤다.
“학교 폭력을 일으키는 새끼들은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해. 알아?”
“씨발. 좆도 모르면서.”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