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지훈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 브리핑은 이걸로 끝이다. 내일 아침 식사하고, 07시 5분까지 장비 수령해서 막사 앞에 집합한다.”
“응……?”
세찬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니, 내일 임무 나간다면서 이걸로 끝입니까……?”
뭔가 더 자세한 브리핑을 원했다.
하지만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공략이라는 건 사실 별거 없다. 번식지 단계는 공략이 단순하거든. 전투광인 악마의 습성을 이용하면 그만이다. 외곽 도는 경계병 애들 털어먹고, 천천히 진입해도 돼. 훈련소에서 기초는 배웠을 텐데.”
“아, 그거야 그렇지만.”
훈련소를 3주 만에 떼었다.
이론은 확실히 갖춘 상태라 자부할 수 있었다.
“그 정도 지식만 있으면 이 정도 번식지는 쉽게 해치울 수 있다.”
지훈이 그대로 일어나려다 멈춰섰다.
“그러고 보니, 이 하사. 공대 장비를 안 맞췄지……. 서노을.”
“응?”
“이 하사한테 장비 맞춰 줘. 그리고 필요한 것도 좀 알려 주고. 나머지는 자율.”
“아, 왜 나야…….”
“네가 돈 나 다음으로 많이 받으니까.”
“오빠는 뭐 하게?!”
“내일 레이드 간다고 신고하고 이것저것 준비해야지. 맞춰 놔.”
“응…….”
노을이 입을 삐죽이긴 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그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두 사람은 어떡할 거야?”
하은과 중환이 서로를 바라보며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찰나의 순간 결론이 났는지 하은이 먼저 얘기했다.
“난 좀 쉴래. 피곤해.”
“저도 쉬겠습니다.”
“으으……. 결국 나랑 이 하사만 가는 건가…….”
노을이 한숨을 푹 내쉬고 세찬에게 말했다.
“이 하사, 빨리 가자. 나도 좀 쉬고 싶어.”
“네……. 근데 장비가 뭡니까?”
“장비. 헌터는 총 별로 안 써. 악마는 냉병기에 마나 코팅해서 때려잡는 게 빠르거든. 사역마들이야 총으로 쓸어 버리지만.”
“아…….”
뭔가 남자의 로망을 건드리는 얘기다.
노을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나같이 직접 전투계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대물 저격총이나 쏘는 거지.”
“그렇군요.”
그러는 사이, 그들은 막사 쪽으로 움직였다.
장비를 수령하는 곳은 막사 2층에 위치해 있었다.
장비실이라 써놓기는 했는데 실상은 대장간에 가까워 보였다.
들어가자마자 땀내 나는 아저씨들이 냉병기를 손질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노을이 활기차게 외쳤다.
“안녕하세요!”
그 중,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데다 덩치까지 커서 마치 장비를 연상케 하는 아저씨가 반응했다.
“아, 서노을 중위! 오늘 신입 들어왔다며!”
“네. 그래서 장비 좀 맞추러 왔어요.”
“그래?”
아저씨가 노을 쪽으로 다가왔다.
노을이 아저씨를 세찬에게 소개했다.
“인사해. 이쪽은 군무원 장익덕 아저씨.”
“……풋!!”
세찬은 이름을 듣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생긴 게 장비같이 생겼는데, 이름까지 장비였다.
익덕이 유쾌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그래. 보통 그런 반응이지. 와핫하!!”
생긴 대로 성격도 무척이나 호탕해 보였다.
노을은 이제 익덕에게 세찬을 소개했다.
“이쪽은 우리 공대 신입 이세찬 하사예요. 능력은 괴력!”
“괴력……, 괴력이라. 그러면 아무래도 장병기가 좋을걸?”
익덕이 장병기로 가득 채워진 벽면을 가리켰다.
“청룡언월도부터 봉까지! 모두 다 있다! 자네, 무기 좀 쓸 줄 아나?”
“……어, 그건 아닙니다.”
“그럼 이게 제일 낫지!”
익덕이 벽 한쪽 구석에 있는 봉을 가리켰다.
봉의 끝부분에 무거운 쇳덩이가 달려 있어 타격력을 훨씬 높인 형태였다.
익덕이 말했다.
“자, 강철로 창대를 만들고, 끝부분엔 헬리키움으로 마무리했지. 무게중심도 휘두르기 알맞게 조정했고.”
헬리키움.
지옥에서 나오는 광물 중 하나였다.
철보다 훨씬 밀도가 높고 강도도 높은데 가공성이 좋은 금속이다.
“단돈 150만 원.”
“게엑……?!”
세찬이 흠칫 놀라 익덕을 바라봤다.
하지만 오히려 익덕이 물었다.
“뭘 그렇게 놀라나?”
“아니……. 대한민국 특전사인데 지원도 안 해 줘요?”
“그거 10% 할인 들어간 거야. 직원가.”
“와 씨…….”
세찬이 노을 쪽을 바라봤다.
노을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말했다.
“장비는 자비로 맞춰야 돼. 그래서 월급을 많이 주잖아?”
“아니……. 총은 보급이면서 이건 왜…….”
“총은 공장에서 찍어내잖아. 아, 맞다.”
노을이 활짝 웃으며 세찬에게 말했다.
“총도 일반탄환은 보급인데, 특수탄은 자비 지출이다? 그래서 나 총 쏠 때마다 돈 내야 돼. 바렛 탄환은 특수탄으로 분류되더라고.”
“와……. 그런 거 웃는 얼굴로 말하는 건 그만둬요. 너무 비참하잖아요.”
“대한민국 군대잖아? 월급을 늘리면 다른 쪽을 깎기 마련이지.”
“하하…….”
세찬이 억지로 웃어 보였다.
일단 세찬은 익덕이 권한 봉을 쥐어봤다.
휘두르기 딱 알맞게 무게 중심이 조정돼 있었다.
거기에 노을이 말했다.
“쥐고 있는 물건이라면 마나 코팅이 가능해.”
그녀의 설명을 듣고 바로 봉에다 마나 코팅을 해 봤다.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주먹에 걸듯 철봉에도 마나 코팅 상태로 만들 수 있었다.
웅-. 웅-.
몇 번 휘둘러보고는 손에 맞는 것을 느낀 세찬은 별수 없이 철봉의 가격을 결재했다.
그대로 철봉을 가져가려는데,
“그거 가져가면 안 돼.”
익덕이 딱 잘라 말했다.
세찬이 무슨 소린가 싶어 익덕을 바라봤다.
“자네는 총을 언제나 들고 다니나? 필요할 때 수령해서 쓰지. 서류 작성해 놓을 테니, 후에 여기서 수령해 가게.”
“쓸데없는 부분에서는 진짜 군대 같네요…….”
그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세찬이 서류까지 작성하자, 노을이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자, 그럼. 장비도 맞췄고, 이제 군장셋을 맞춰야겠네?”
“으엥???”
군장셋을 맞추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 노을을 바라봤다.
“뭐야, 그럼. 설마 한국 군장을 메고 다닐 거야? 그럼 어깨 나갈 텐데?”
한국 군장이라니.
세찬이 노을에게 물었다.
“한국 군장이라뇨. 그럼, 군장셋이란 게 다른 나라 겁니까?”
“응. 미제야. 해 봤는데 그게 제일 낫더라고.”
“그것도 돈 내야 됩니까?”
“응. DLC거든.”
“하아…….”
세찬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조그맣게 불평을 내뱉었다.
“국산겜이 가챠에 과금 안 하면 플레이를 못 한다더니…….”
“여기도 그래. 순정템으로 못 버티거든.”
“그럼 사야죠. 별수 있나…….”
그리고 미국 군장까지 사고 필요한 장비 몇 개를 더 사자, 세찬의 월급 절반이 쭉쭉 빠져나갔다.
그는 통장 잔액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거면 그냥 보급으로 챙겨주지.”
“어쩔 수 없어. 자, 이제 장비도 다 갖췄으니 난 쉬러 갑니다~.”
노을이 세찬에게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세찬도 기지개를 한 번 켰다.
“으아, 나도 좀 쉬고 싶은데…….”
-아니, 쉬기 전에 사역마들을 보여 줘라. 어차피 내가 다 알고 있긴 하겠지만, 인간들의 용어랑 좀 맞춰 봐야 될 것 같군.-
“알겠어, 알겠어…….”
세찬이 그의 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다음날.
“삐삐삐삐삐-.”
세찬은 신경에 거슬리는 기상나팔이 아니라 기분 좋은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알람시계를 끄고 나서 그가 중얼거렸다.
“어우, 기상나팔 소리만 안 들어도 살겠네.”
그는 얼른 씻고, 간부 식당으로 향했다.
간부 식당에 가자 존데리아와는 다르지만 분명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워라투스가 놀라 말했다.
-여긴 짬밥을 만드는 데가 아니던가?-
“그건 그런데……. 특전사라서 다른 모양이야.”
그가 신이 나서 룰루랄라 식판을 집어 배식대로 향하는데,
“식권 사셔야 됩니다. 식권은 5000원입니다.”
라며 취사병이 세찬을 제지했다.
세찬이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이것도 DLC냐……!!”
아침 식사를 끝내고, 장비를 다 갖춰서 딱 07시에 막사 앞으로 향했다.
막사 앞에는 세찬을 빼고 전부 모여 있었다.
“와써~? 졸리진 않고?”
세찬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 무리에 합류했다.
노을은 이제 시계를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으음……. 슬슬 올 때가 됐는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멀찍이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세찬이 그 엔진 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두돈반도, 그렇다고 레토나 엔진 소리도 아니었다.
노을이 엔진 소리가 들린 쪽을 보며 말했다.
“오, 왔다, 왔다!”
“저건…….”
레토나와 코란도 스포츠카를 대체하는 신형 전술 차량 K-151이었다.
전술 차량은 부드럽게 세찬 일행 쪽으로 와서 멈춰 섰다.
세찬이 그걸 보고 적잖이 놀라 말했다.
“와! 때깔 죽인다! 처음 보는 건데요. 엄청 좋아 보이는 데요?”
일반 부대에는 아직 보급되지 않는 신형 차량이었기 때문이다.
세찬이 감탄하고 있는 동안 지훈이 전술 차량 쪽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짐 실어라. 가자.”
“아, 네.”
세찬이 짐을 싣고 전술 차량에 몸을 맡겼다.
* * *
이틀 뒤 아침-.
이동하면서 적절히 휴식을 취하고, 유류보충을 하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세찬과 일행은 새벽 안개 속에 미군 단독군장을 갖춘 채 엎드리고 있었다.
그는 저 멀리에서 붕붕 소리를 내며 배회하고 있는 킬러비를 노려봤다.
킬러비는 말벌을 사람 크기까지 키워놓고 거기에 날개를 네 개 정도 더 붙여놓은 형태다.
‘벌 모양 푸킷몬스터가 생각나는데…….’
-저번에 그 짬밥에서 기괴한 생선튀김도 푸킷몬스터라더니. 대체 푸킷몬스터가 뭐냐?-
‘그런 게 있어.’
실없이 워라투스와 만담을 나누던 도중,
타앙.
총성과 함께 번식지 주변을 배회하던 킬러비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그러고 세찬의 귀에 꽂은 초소형 무전기에서 노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단 하나 처리.”
한 놈이 당하자, 번식지에서 경계를 돌던 다른 킬러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노을이 저격으로 하나하나 차례대로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킬러비들이 정리되고, 지훈이 입을 열었다.
“경계병 처리가 됐다. 선봉은 강 중사. 이 하사와 정 하사는 잠시 대기.”
중환이 대답했다.
“네. 이 하사, 잠깐 견학 좀 하라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훈과 중환이 번식지 쪽으로 걸어갔다.
경계병인 킬러비가 당하자, 번식지 쪽에서 다른 사역마들이 나왔다.
이번엔 이족보행 하는 거대한 장수풍뎅이 비슷한 괴물인 뿔기갑충이었다.
갑각이 워낙 단단해 웬만한 개인 화기로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존재였다.
하지만 중환은 당당히 뿔기갑충 앞으로 걸어가 복싱 자세를 잡았다.
오른손의 가드는 시선까지 올리고, 왼손은 배 쪽에 놓은 형태.
세찬이 알고 있는 가드였다.
‘크랩 가드잖아?’
-크랩 가드가 뭐냐.-
‘복싱에서 가드를 올리는 방법이야. 예전에 만화책을 읽어서 잘 알아. 그때 그 만화에선 저 크랩 가드 상태에서…….’
워라투스에게 설명을 하는 동안 중환이 움직였다.
그는 왼손을 자유자재로 늘리며 마치 채찍처럼 뿔기갑충을 난타했다.
세찬이 경악했다.
“프, 플리커 잽?!”
중환이 팔을 자유자재로 늘릴 수 있는 덕에 그의 플리커 잽은 진짜 만화처럼 움직였다.
게다가 중환은 주먹에 착실하게 마나 코팅을 한 덕분에 두꺼운 뿔기갑충의 갑각을 뚫고서 착실하게 데미지를 누적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일격은,
“후읍……!”
그가 단숨에 오른팔을 늘려 뿔기갑충의 머리를 후려쳤다.
갑각이 부서지며 안에 있던 걸쭉한 곤충 피가 사방에 튀었다.
중환이 웃으며 다름 뿔기갑충에게 손짓했다.
“다음은 너냐? 덤벼.”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번식지 단계라 순조롭군. 오늘 밤이 되기 전에 여왕까지 쓰러뜨리고, 회수반에 연락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