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잠시 후 세찬은 일단 85K 무전기를 찾았다.
뭘 하든 일단 보고부터 해야 했다.
이제는 본능처럼 각인된 군인본능이 세찬의 몸을 움직였다.
힘들게 찾아낸 무전기는 다행히 무사한 상태였다.
세찬은 머릿속을 정리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여기는 거푸집 3. 거푸집 3. 참매미 응답하라, 이상.”
=거푸집 3, 여기는 참매미. 무슨 일인지? 이상.”
“540고지에서 A급 악마와 조우, 본인을 제외한 모든 소대원의 사망을 보고함. 이상.”
=거푸집 3! 잠시 기다려주기 바람!
무전기 너머에서 통신병이 자신이 처리할 일이 아닌 것을 느꼈는지 통신관에게 보고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무전기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야! 이 하사 뭔 일이야, 다 죽었다니?!
얼마나 다급했는지 통신관이 평문으로 말을 걸어왔다.
세찬도 이런 상황에 통신문을 사용하는 것도 우스워서 평문으로 대답했다.
“통신관님. A급 악마 새끼가 저희 소대원들을 다 죽였습니다. 저만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뭐?!
“저만 살아남아서 겨우겨우 놈을 죽였습니다. 60트럭이고 뭐고 놈이 다 박살 냈다구요. 여기로 차 좀 보내주십쇼!”
=야 인마! 좀 천천히 말해! 거기 어디야?!
“540고지 올라가기 전에 차 대는 곳이요. 빨리 좀 와주세요.”
=알았으니까. 거기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뭔 일 있으면 무조건 무전 날리고!
통신관의 말을 끝으로 무전이 끝났다.
세찬은 수화기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넋을 놓고 멍하니 있자 갑자기 오만가지 잡생각이 생각났다.
그 중에는 앞으로 자신에게 있을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 꼼짝없이 특전사로 강제 편입되는 건가…….”
군대 내에서 각성을 하게 되면 그게 누구든 특전사로 강제 편입된다.
아무런 탈 없이 조용히 전역한다는 자신의 계획과는 10억 광년 떨어진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건 사양하고 싶은데…….”
세찬이 중얼거리자 워라투스가 물었다.
-왜 그러지? 특전사에 편입되면 안 좋은 건가?-
“그걸 말이라고. 특전사가 되면 악마들이랑 싸워야 한다고.”
-악마들이랑 싸우면 좋은 거 아닌가? 놈들을 포식해서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잖아!-
워라투스가 가지고 있던 스킬이 포식귀라서 그런가.
얘기가 갑자기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려 했다.
세찬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야 그렇겠지. 하지만 내 목표는 그저 조용히 있다가 전역하는 거라고. 악마들이랑 싸우는 것같이 위험한 일은 사양이야.”
-그래? 그럼 안 가면 그만 아닌가?-
“강제 편입이라고, 강제 편입. 강제라는 말 뜻 모르냐?”
세찬은 면박을 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쏘가리의 몸은 곤죽이 됐으니 상관살해죄는 어떻게 넘어갈 테지만, A급 악마를 세찬이 처리한 것을 가지고 각성했다며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군대는 A급 악마를 단신으로 처리한 헌터를 가만히 놔둘 정도로 무능하지 않았다.
설령 세찬이 부인하더라도 마나 감응기를 사용해 각성 여부를 파악할 터였다.
“하아……. 마나를 숨길 수 있다면 간단한 일이지만…….”
-그거라면 간단하다!-
“응……?”
워라투스의 말에 세찬이 당황했다.
워라투스는 말을 이었다.
-나는 마나를 숨기는 게 가능하다. 내가 너의 몸에 있는 마나를 숨기면 되는 건가?-
“그, 그게 가능하단 거야?!”
그렇다면 세찬은 오늘 있던 일을 어떻게 잘 덮어서 보고하고, 조용히 버티다 전역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러니 걱정 마라.-
“오!”
워라투스의 장담에 세찬이 감탄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내 찜찜함을 느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워라투스에게 물었다.
“너 말이야……. 목적이 뭐야?”
-악마 시체를 먹는 게 나로선 좋지만, 딱히 네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서로 이해관계가 맞으면 그만 아닌가?-
“으음…….”
사실 맞는 말이다. 다만 여전히 걸리는 게 있다.
이 사태가 벌어진 근본적인 원인.
‘대체 이놈은 뭐 하는 존재지?’
-그건 대답할 수 없다.-
세찬이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워라투스가 말했다.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으니까 말이지. 그렇게 놀라진 마라. 아무튼, 답을 준다면. 모르는 게 나을 거다.-
‘뭐……?’
-나는 그저 회복해서 원래 육체를 되찾을 생각뿐이다. 단지 네게 해가 되는 존재가 아니란 것만 알면 된다.-
‘좋아……. 일단 믿겠어.’
세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빌어먹을 상황에서 목숨까지 구해 준 녀석을 의심하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그는 그대로 자리에 드러누웠다.
세찬은 차가 올 때까지 이 사건을 적당히 둘러댈 시나리오를 생각했다.
* * *
세찬이 부대로 복귀하자 큰 소란이 벌어졌다.
지옥의 후방이라 할 수 있는 안전지대에서 26명이 사망했다.
의무대와 헌병대가 급파되어 사망자의 유해를 수습하고, 부대엔 비상이 걸려 경계가 강화됐다.
그리고 연대장이 직접 세찬을 찾아왔다.
“충성!”
의무실에서 쉬고 있던 세찬은 벌떡 일어나 경례를 했는데, 웬일인지 연대장은 부드러운 말투로 세찬을 달랬다.
“이 하사, 무리하지 말고 앉아 있게.”
“네!”
“나도 보고를 듣긴 했네만, 이 하사가 직접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서 왔네.”
“네!”
“그러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겠나?”
“네! 알겠습니다!”
세찬은 복귀하기 전 머리를 싸매고 생각하던 시나리오를 연대장에게 보고했다.
정찰 도중 B급 악마의 반응을 확인.
놈은 E급 마나반응을 흡수하는 것으로 판단되어 소대는 곧바로 철수를 준비.
그러나 준비 도중 B급 악마는 A급 악마로 승격하여 소대를 확인하고 습격을 개시.
습격당한 소대는 A급 악마에게 응전을 하였으나, 대항하기엔 역부족이었음.
자신을 제외한 소대원들은 모두 전멸하여 죽음을 각오하였는데, 갑자가 A급 악마가 이상반응을 보이더니 쇠약해지는 것을 확인.
자신은 소지하고 있던 수류탄을 사용하여 놈을 공격하였는데 다행히 놈이 즉사했다는 것이다.
“그래, 그랬군. 이 하사가 고생이 많았네. 뒷일은 내가 처리할 테니 이 하사는 병원에서 정밀검사도 받고 잠시 쉬도록 하게나. 당분간 휴가로 처리하겠네.”
“충성!”
연대장은 세찬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몸을 돌려 의무실을 빠져나갔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세찬은 곧바로 지옥의 군병원인 국군지옥병원으로 이송되어 입원하고는 정밀 검사를 시작했다.
삼일 간 피검사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검사가 시행됐다.
그 중엔 MRI, CT 등 평소라면 예약하고 한 달이 넘게 걸려야 찍을 수 있는 검사도 순식간에 처리됐다.
세찬은 악마의 신체를 먹고 회복했기 때문인지 신체의 상태는 최상이었다.
처음에 넝마가 된 세찬의 옷을 보고 놀라던 군의관들도 정상이라고 나오는 검사결과를 보고는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그중 한 군의관이 세찬에게 물었다.
“이 하사. 혹시 마나감응기로 각성자 검사 한 번 해 보는 게 어때? 아무리 봐도 각성한 모양인데?”
“각성자 검사요?”
“그래. 각성자 검사.”
“괜찮습니다. 한 번 해 보죠. 저도 제 몸이 왜 멀쩡한지 궁금하니까요.”
“그래? 딴 놈들은 아니라고, 안하겠다고 발뺌하는데. 이 하사는 무덤덤하네? 그럼 잠시만 기다려봐.”
군의관이 떠나자 세찬은 워라투스에게 말을 걸었다.
‘야. 진짜 괜찮은 거 맞지?’
군의관 앞에서는 당당하게 말하긴 했지만, 마나감응기를 가져온다니 갑자기 걱정이 들었다.
-괜찮으니까 걱정 마라. 난 거짓말 안 한다.-
‘진짜지? 너만 믿는다.’
-그래, 믿어라. 쓸데없는 걱정하지말고.-
세찬이 워라투스와 이야기하는 사이 군의관이 마나감응기를 가지고 왔다.
마나감응기는 머리에 쓰는 왕관 비슷한 장치에, 심전도 검사할 때 쓰는 전극이 몇 개 붙은 형태였다.
머리에 왕관 비슷한 걸 쓰고, 전극을 몸에 붙이자 검사가 시작됐다.
검사 결과는 금방 나왔다.
“음……. 각성자가 아니라니……. 신기하군.”
“그러게 아니라니까요.”
세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킬킬거렸다.
다만 군의관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넌 진짜 연구 대상이야……. 아무튼. 장치가 각성자가 아니라는데 어째. 푹 쉬고 있어.”
“예, 알겠습니다.”
“일단 멀쩡하다고 나왔으니까 부대에 보고하도록 해. 퇴원 수속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고.”
“예. 충성.”
군의관은 마나감응기를 가지고 병실을 빠져나갔다.
세찬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잠시 후 병실을 나섰다.
“보고, 보고라.”
지옥에서 무전 전파가 안 터지긴 해도, 유선 연결까지 먹통은 아니었다.
그래서 부대에 있을 땐 85K가 아니라 유선으로 이어진 전화를 이용했다.
세찬은 병원 행정반으로 들어가 경례를 하고는 부대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 부대 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통신보안. 태산 부대 행정반입니다.
“나 이세찬 하사야.”
=충성. 이세찬 하사님, 괜찮으신 겁니까?
“그래. 난 괜찮다.
그러고 나서 부대의 상황을 물었다.
“부대는. 괜찮냐?”
=장난 아닙니다. 그동안 아예 뒤집어졌습니다.
“고생 많았다. 근데 행보관님은 계시고?”
=행보관님 지금 밖에 있습니다. 전해드립니까?
“그래? 그럼 나 몸 건강하다고 결과 나왔고, 내일 소대원들 장례식 참석하려고 하니 차 좀 보내달라고 해 줄래?”
=그럼 그렇게 보고 드리겠습니다. 결과는 이 번호로 연락드림 됩니까?
“그래, 중대장님이랑 행보관님이 뭐라 하면 바로 알려 줘.”
“넵. 충성!”
“그래. 충성.”
전화를 끊은 세찬은 행정병에게 이쪽으로 전화가 오면 연락 달라는 말을 하고는 병실로 돌아갔다.
1시간 정도 후에 부대에서 연락이 왔다.
“원하시면 내일이라도 차를 보내주겠다 하셨습니다. 다만…….”
“다만?”
“내일 오전에 헌병대가 병원에 들려서 간단하게 조사한다니까 그것만 마치시랍니다.”
“그래?”
세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병원에 있어 봤자 할 일도 없었다.
세찬은 곧바로 군의관에게 내일 퇴원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군의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마라. 검사에선 멀쩡해도 나중에 뭔 일 생길지 모르는 게 군대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래. 암튼 잘 가라. 웬만하면 오지말고.”
마지막으로 군의관에게 인사를 마친 세찬은 병실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 * *
다음날.
세찬은 병원으로 방문한 헌병대와 조사를 빙자한 대화를 간단하게 끝내고 병원 밖으로 나갔다.
국군지옥병원 주차장에는 자신의 소속한 태산부대의 레토나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세찬은 레토나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본부 중대 소속의 유현식 중사.
그가 세찬을 발견하고는 아는 체를 했다.
“왔냐.”
그는 김 중사와 친분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 유 중사의 얼굴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세찬이 유 중사에게 가볍게 경례를 했다.
유 중사가 경례를 받고는 말했다.
“그래, 타라.”
세찬이 차에 오르자 운전병이 레토나를 출발시켰다.
유 중사는 표정처럼 마음이 심란한지 아무 말이 없었다.
30분 정도 시간이 지나 드디어 지옥과 현계를 잇는 터미널에 다다랐다.
세찬은 레토나에서 내리며 유 중사에게 경례를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야, 세찬아.”
터미널 쪽으로 몸을 돌리는 세찬을 유 중사가 불러 세웠다.
그는 말보루 레드를 꺼내며 말했다.
“담배 하나 피고 갈 시간 있지? 말레인데. 하나 피고 가.”
“…….”
세찬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유 중사는 운전병까지 데리고 흡연실로 향했다. 그는 세찬에게 말보루 레드를 물려주고, 담배에 불까지 붙여 줬다.
세찬이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유 중사는 담배가 완전히 타들어가자 털어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태식이, 좋은 녀석이었는데.”
세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 중사가 말을 이었다.
“먼저 가서 좀 추스르고 있어라. 장례식 시작되면 나도 갈 거야.”
세찬이 무슨 말인가 싶어 유 중사를 바라봤다.
유 중사가 말했다.
“장례식 일정 잡히면 가서 도와주라고 하더라. 그래서 하사 몇 명이랑 나까지 해서 가게 됐다.”
“아…….”
“하, 진짜.”
한숨을 내쉰 유 중사는 다시 담배를 물고는 불을 붙였다.
유 중사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한마디 했다.
“그래도, 네가 먼저 간다니까 안심했다. 정말 고맙다. 넘어가면 연락할게.”
그는 세찬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레토나를 타고 돌아갔다.
세찬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터미널 쪽으로 걸어갔다.
세찬은 일단 접수처 쪽으로 걸어갔다.
세찬의 하사 계급장을 본 일병이 세찬에게 경례를 하고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78사단 128연대 2중대 소속 이세찬 하사다.”
“아, 네. 연락 받았습니다. 조금 있으면 개통 시간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병사는 세찬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세찬은 순식간에 서류를 작성하고는 병사에게 건네줬다.
“수고하십시오. 충성.”
“그래, 충성.”
가볍게 경례를 답하고 접수처를 지나 브릿지 쪽으로 걸어갔다.
브릿지란 인간이 지옥과 현계를 무사히 이동할 수 있도록 게이트를 안정화 하는 장치였다.
브릿지는 여섯 시간 동안 충전을 하여 한 시간씩 안정화를 시킬 수 있었다.
세찬은 그 모습을 보면서 갈려진 공돌이에게 슬픔을 느꼈다.
=곧 브릿지 가동 시간입니다. 게이트를 이용하실 분은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피커로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세찬은 줄을 섰다.
=1분 후 개통합니다. 준비하십시오.
곧이어 브릿지가 작동하고, 그는 안정화된 게이트를 넘었다.
곧 이어 지옥과 같은 그러나 지옥과는 다른 접수처가 눈에 들어왔다.
세찬은 그곳을 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서울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