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하지 말 걸 그랬어.”
보라색 합격 화면을 바라보며 하지가 말했다. 그러자 주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하, 짧게 숨을 뱉었다.
“왜?”
“난 두 시간이나 걸려서 출근하기 싫어.”
“아직 최종 합격도 아니잖아.”
“그래도.”
미영이 어이없다는 듯 미간을 있는 힘껏 찌푸렸다.
“너 그게 할 말이냐? 김민서는 필기 떨어졌대.”
하지가 김민 떨어졌어? 진짜? 라고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미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잠깐 납득하는 듯 했지만, 다시 부루퉁한 얼굴로 돌아왔다.
“차라리 떨어지는 게 낫지. 면접 보지 말까?”
“야!”
결국 미영은 하지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리곤 아프다고 하며 투덜거리는 하지를 뒤로 하고 무역과2반으로 향했다.
2반에는 민서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가까이 가지 않아도 울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미영이 가까이 다가가자, 민서가 눈가를 훔치며 몸을 일으켰다.
“이하지 붙었다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민서를 보며 미영은 다시 한 번 미간을 찌푸렸다. 속이 없다, 이 아이는.
“어.”
미영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와 민서는, 같은 회사에 지원했다. 두 명 다 서류는 붙었었다. 하지만 이어진 필기시험은 달랐다. 하지는 붙고, 민서는 떨어졌다.
평소 성적을 보자면 민서 쪽이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한 과에 80명이 조금 안되는 머릿수에서 항상 꼭 10등 안에는 들던 민서였다. 내신 따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다는 무역과이기에 시험 한 달 전부터 야자실, 도서관에 틀어박혀 교과서를 줄줄 외우다시피 한 애였다. 민서는.
하지만 하지는 아니었다. 같은 무역과지만 등수는 60등, 아니면 70등 내외. 야자실에서는 그림을 그리거나, 핸드폰으로 노래를 듣거나 하면서 딴 짓하기 바빴던 아이다. 항상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느라 공부 같은 건 뒷전으로 미룬 채. 휴지 같은 성적표에 부모님께 혼나면서도 공부에는 절대 신경 쓸 여유조차 없는 그런 애였다.
그런데 학교 내신과 채용 시험은 다른 것일까?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하지 필기 붙었다며? 야 짜식 축하한다.”
“김민 나 면접 보기 싫어. 이 회사 붙을 마음도 없었는데.”
“뭐래! 우리나라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인데? 빨리 면접연습이나 해.”
아이들은 하지를 둘러싸고 각자 축하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정작 그 중심에 서있는 하지는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았다. 미영은 그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이하지 말이야.”
하굣길이었다. 민서와 미영과 지나는 같은 동네에 살았다. 그래서 항상 같이 하교를 했다.
“이하지가 왜.”
민서가 귀에서 이어폰을 빼며 물었다. 집에서 키우는 개가 물어뜯어 한쪽이 망가진 이어폰이었다.
“왜 그런 대기업인데 가기 싫어하지? 나라면 완전 땡큐인데.”
“그러네.”
덜컹 덜컹, 지하철이 흔들렸다. 반대편 창문에 비친 나란히 앉은 세 아이의 얼굴도 흔들렸다.
“걔가 말 안했어? 집이 멀어서 가기 싫다잖아.”
“그걸 모르겠냐? 가만히 있으면 반은 간다, 박지나.”
“응 미안, 됐냐.”
“그래 됐다.”
지나는 눈을 다시 핸드폰 화면으로 돌렸다. 항상 비슷한 연예기사의 헤드라인이 말했다. ‘○○걸그룹 컴백.’
미영은 한참동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다시 말했다.
“야, 김민서.”
“왜.”
민서는 다시 이어폰을 꽂은 채였다. 물론 한 쪽 뿐이지만.
“너는 이해해?”
“뭐를.”
“이하지.”
“하지가 뭐.”
“멀어서 가기 싫다는 거. 그거 진심일까.”
“….”
민서는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었다. 자는 듯이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고를 반복하며 그저 눈을 감고 있었다. 이어지는 침묵에 미영도 대답을 포기하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민서가 듣는 노래를 같이 들으려 한 쪽 이어폰을 잡아보았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한쪽이 망가진 이어폰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강미영.”
지나가 핸드폰 화면을 끄며 말했다.
“너, 지금 이하지가 대기업 가기 싫다고 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지?”
그러자 미영이 발끈하며 대꾸했다.
“내가 언제?”
“이하지 성적에는 붙지도 못할 회사인데 불평하니까 아니꼽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복에 겨웠다면서, 누구는 떨어져서 우울한데 그런 말이나 한다고 생각하잖아.”
“그럼 아니야? 솔직히, 개념이 있으면 적어도 민서 앞에서 그런 거지같은 말은 하면 안되잖아.”
“그래. 민서 앞에서 말한 건 실수지. 근데 넌 그거에 화난 거 아니잖아? 넌 전부터-”
“다 닥쳐.”
민서였다.
“안 그래도 기분 개같으니까 둘 다 그냥 닥쳐.”
민서는 그렇게 말하고는 벌떡 일어나 다른 자리로 가버렸다. 멍하니 그걸 바라보던 미영이 말했다.
“네가 먼저 시비 걸었다.”
그러자 지나가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덜컹 덜컹, 지하철이 흔들렸다. 반대편 창문에 비친 나란히 앉은 두 아이의 얼굴도 흔들렸다.
*
민서는 하지와 친했다.
2학년 초였다. 과가 나뉘고 모두가 어색한 분위기에서, 앞자리 미영이 먼저 민서에게 말을 걸었다. 덕분에 미영과 민서는 친해졌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민서는 미영의 친구인 하지에 대해 듣게 되었다.
‘쟤도 너처럼 그림 그리고 만화 보는 거 좋아해.’
그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뻤었지.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민서는 그 후로 하지와 친해지려 노력했다. 먼저 다가가고, 말을 걸고, 전화번호도 교환하여 결국엔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남짓한 시간동안 이하지에 대해 알아낸 사실은, 유쾌하고, 마이웨이 성향이 강하고, 스킨쉽을 좋아하는 아이…. 모두와 두루두루 친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인상을 가진 아이었다.
많은 낮 동안 대화하고, 많은 밤 동안 메신저를 나누었다. 그만큼 친했고 그만큼 좋아했다.
하지가 같은 회사에 지원한다고 들었을 때는 기뻤었다. 같이 출퇴근을 하고 같이 회사생활을 하는 꿈을 꾸었었다. 혹시 하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열심히 기도도 했다. 그리고 서류 발표가 나던 날, 민서는 문득 떠올렸다.
‘만약 하지만 붙고 자신은 떨어진다면?’
그렇게 된다면, 하지에게 축하를 건넬 수 있을까? 친구를 질투하고 시기하지 않을까? 민서는 기도했다. 진심으로 하지를 위해 축하해주는 자신이 될 수 있도록, 같잖은 질투와 원망으로 친구를 잃지 않도록.
그리고 기도는 이루어졌다.
*
뚜루루, 뚜루루루. 딸깍.
신호음이 길게 가지않고 끊겼다.
“여보세요?”
“민서야.”
“강미영.”
미영은 끝내 민서가 답답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책상에 엎드려 울던 민서가 생각났다. 그래서 생각 끝에 전화를 걸었다.
“이런 시간에 왜 전화했냐?”
“그냥….”
미영은 손끝으로 아랫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심심했어? 메신저 해도 괜찮았는데.”
“응. 저기.”
미영은 말할까 말까 조금 망설였다. 하지에게 조금은 미안했다. 사실 그 애는 아무 잘못도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너무 솔직하다는 것 정도?
“김민서, 그러니까, 너 아까 교실에서….”
“….”
민서는 말이 없었다. 순간 괜히 말했나 싶었다. 하지만 미영은 마음을 굳혔다. 말할 것이다.
“음, 울어도 괜찮다고,”
“….”
“솔직히 내가 너랑 이하지랑 남인 것도 아니고, 좀 솔직해져도 된다고, 이하지 말고 너 말이야.”
“….”
“이게 말이 되는 진 모르겠는데, 굳이 안 그러고 속상해했어도 된다고. 물론 애를 축하해주긴 해야 되는데, 그러니까, 어….”
“….”
“너 듣고 있긴 해? 에이씨…내 말은 괜찮은 척 안 해도 된다고. 그런다고 걔가 너한테 뭐라고 할 만큼 속 좁은 애도 아니고. 알았어?”
미영은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말을 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민서라면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그렇게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전화선 너머에서 조그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나도….”
“응.”
“나도오…붙고 싶었다고…부러운데, 부러운데, 미운데, 나는 하지 친구니, 까, 나는 그러면 안되는데에…나만은 그러면 안되는데, 나는 아는데, 다 아는데…그러는 내가 싫어서, 미워서, 하지가 하지가 왜 그러는지 나는 아는데, 나는 그러면….”
엉엉, 큰 큰 소리로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화기도 전화선도 슬픈지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