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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흑첨향
작가 : 박재영
작품등록일 : 20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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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추배도(推背圖)3.
작성일 : 16-04-03 16:31     조회 : 744     추천 : 0     분량 : 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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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화. 추배도(推背圖)3.

 

 

 

 막능여는 어둡기 전에 떠나겠다는 곽자의와 좌천강을 배웅하고 동굴로 돌아온 직후, 동굴 벽에 기대앉아 휴식을 취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분명히 별로 피곤하지도 않았고 졸리지도 않은 상태였다. 약간의 취기가 남아 있기는 했으나 단지 기분이 흔쾌해지는 정도일 뿐이었다.

 막능여는 걷잡을 수 없이 수마(睡魔)에 빠져들며 문득 자신이 엉뚱한 곳으로 이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과연 엉뚱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막능여는 잠을 자는 상태에서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잠에서 깨어나면 지금 꾸고 있는 꿈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늘 그랬다. 예지가 담겨 있는 꿈을 꾸면서 깨어나도 이 꿈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잠에서 깨어나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방에 짙은 안개가 깔려 있어 삼 장 전면이 보이지 않는다.

 막능여는 안개를 헤치며 길을 나아가기 시작해 잠시 후에 하나의 언덕을 넘어설 수 있었다. 언덕을 넘어가자 어둠에 잠긴 한 채의 장원이 보였다.

 막능여는 예의 장원이 꽤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자신은 어느새 장원의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장원은 짙은 안개와 어둠에 잠겨 있었고 문은 열려져 있었지만 오가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막능여는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이 장원 안으로 들어섰다.

 장원 안에는 수십여 개의 방이 있었는데 방마다 하나의 촛불이 밝혀져 있었다.

 허름한 외부와는 달리 방들은 정갈하기 그지없었고 누가 방금 청소를 했는지 먼지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막능여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미망 속에서 수십여 개의 방들을 열어 보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라도 좋았다.

 막능여는 사람을 찾기 위해 모든 방들을 열어보았지만 장원에는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막능여는 어쩐지 섬뜩한 기분이 들어 다시 장원을 빠져나오려 했다.

 별채 쪽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막능여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별채 쪽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화원을 가로질러 별채 쪽으로 가자 다시 어둠과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한데 막 별채로 통하는 월동문을 넘어서려던 막능여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별채의 대청 중앙에 커다란 식탁이 놓여 있고 식탁 위에는 그야말로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져 있었다.

 식탁 주위에는 이십여 명도 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모두 한 식솔들 같아 보였다.

 대청의 중앙에 환하게 밝혀져 있는 수십여 개의 등 덕분에 식탁에 둘러앉아 웃으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똑똑히 보였다.

 식탁 위에 차려져 있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맛있어 보였고 사람들 또한 모두들 행복해 보였다.

 대청은 밝고 따듯해 보였으며 그곳에 모여 앉아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모두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저만치 대청에 모여 있는 사람들과 자신과의 거리가 마치 이승과 저승의 거리만치나 멀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막능여는 별안간 가슴 저 아래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행복해 보이는 그들을 대하자 어쩐 일인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막능여는 자신도 모르게 슬픔이 북받쳐 올라 월동문을 넘어서려 했다.

 "그곳에 가서는 안 되네."

 막능여의 걸음이 멈춰진 것은 뒤쪽에서 들려온 음성 때문이었다.

 막능여는 막 월동문 안으로 내딛던 걸음을 멈춘 채 뒤를 돌아보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의 뒤로는 짙은 안개가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그 뒤쪽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막능여는 자신이 화원을 거쳐 별채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뒤쪽의 전각들은 물론 화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어둠 저쪽에서 두 개의 등불이 가물거리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막능여는 어쩐지 어둠 저쪽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두 개의 등불이 무섭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별채의 대청을 보니 그곳은 따뜻했으며 밝았고, 그리고 평화스러워 보였다.

 막능여가 갈등을 하고 있는 사이에 두 개의 등불은 어느새 그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7, 8세가량 된 소년과 소녀가 각기 한 개의 등을 들고 있었고 그 중앙에 삼십 대 후반의 중년인이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중년인은 어둠처럼 검은 흑금의를 걸쳤고 손에는 역시 검은색의 부채를 들고 있었다. 단아한 얼굴에 비해 어쩐지 상대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기이한 어둠의 힘이 엿보이는 인물이었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습니까?"

 막능여는 중년인을 대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어느 게 꿈이고 어느 게 현실인지 누가 구분할 수 있겠는가. 자네가 있는 곳에서 보면 이곳이 꿈일 테고 이곳에서 보면 자네가 있는 곳이 꿈이네."

 중년인은 빙긋이 미소를 머금었는데 그 미소를 대하자 막능여는 불현듯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우연이 세 번이나 겹칠 리는 없지 않습니까? 누구십니까? 생각해 보니 밀법 중에 다른 사람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밀법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날 이 태행산에 인도한 것도 당신이었군요. 그때도 꿈속에서 만나 뵌 적이 있지요."

 "자네가 기억 못하는 것까지 합하면 우리는 세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만났네. 자네 말대로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네. 자네가 태행산에 가게된 것도… 나와 만난 것도… 앞으로 추배도를 얻게 되는 것까지 모두 말일세. 이 모두가 정해진 인과율에 의한 것일 뿐이네."

 '추배도…?'

 막능여는 중년인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중년인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곧 자넬 부르는 힘이 있을 것이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부름에 응하게. 그 일을 반드시 성취해야 하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까? 깨어나면 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까?"

 막능여는 다시 미망 속을 헤매며 질문을 던졌다. 어쩐지 자신이 바보가 되어 그 말밖에 할 줄 모르는 것같이 느껴졌다.

 중년인은 막능여의 질문을 무시한 채 다시 말을 이었다.

 "이계칠군 중 이미 세 명이 탄생했네."

 '이계칠군…?'

 막능여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심령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응이 전달되어 오는 느낌이었다.

 "이계칠군 때문에 흑첨향의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네. 그래서 우리는 자넬 선택한 걸세."

 "우리?"

 꿈이 점차 희미해져 갔다.

 망연히 바라보니 앞에 서 있던 중년인과 어린 소년, 소녀의 모습이 안개로 만들어진 인간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중년인은 연기처럼 희미하게 흩어지며 불쑥 질문을 던졌다.

 "어머님은 안녕하신가?"

 막능여는 깜짝 놀라 새삼 중년인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이미 반 이상 흩어져 있어 그 용모가 뚜렷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중년인은 그의 어머님과 어딘가 닮은 데가 있는 것 같았다.

 막능여는 울컥하고 치솟는 반가움에 자신도 모르게 무어라 말을 걸고 싶었지만 중년인과 소년, 소녀의 모습은 이미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막능여는 허무한 기분에 빠져들었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고개를 돌려보니 별채의 대청 안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기이하게 변해 있었다.

 밝고 평화스러워 보이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식탁 위에 차려져 있던 산해진미들은 온갖 악취가 풍겨 나오는 오물로 변해 있었고 행복해 보이던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음침하게 변해 있었다.

 원독과 증오만이 남아 있는 처절하고도 무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들도 점차 흐릿해지고 있었다.

 ···

 

 막능여는 몸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자신이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산 전체가 흔들리는 진동이 계속되는 바람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실로 기이한 느낌이 계속되고 있었다.

 땅이 미미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고 땅속 깊은 곳에서 묵직한 진동이 울려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진인가?'

 막능여는 계속되는 미미한 진동에 기이하게도 마음이 설레는 기분이었다.

 무언가 터져 나가는 듯한 음향이 동굴 안쪽에서 들려온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동시에 막능여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기이한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와 감응되고 있다고나 할까?

 알 수 없는 어떤 존재가 땅속 깊은 저 아래에서 막능여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막능여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십여 장을 들어가자 막혀 있던 동굴 안쪽이 계속되는 진동으로 인해 갈라진 듯 세 개의 새로운 동혈이 생겨나 있었다.

 두 개는 그저 바위벽에 균열이 일어난 정도로 좁았지만 또 하나는 그 균열이 무척 넓게 벌어져 한 사람이 능히 빠져나갈 만했고 안쪽으로부터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막능여를 부르는 듯한 어떤 느낌은 바로 그 동혈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막능여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어 새로 생겨난 동혈로 들어섰다.

 동혈은 이리저리 휘어지며 때로는 수직으로 아래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빛이 강렬해졌다.

 막능여가 결국 거대한 지하 공간에 도착한 것은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세 시진 가량을 고군분투한 끝이었다. 무엇인가가 강하게 잡아끄는 느낌이 없었다면 제아무리 강인한 막능여로서도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곳이었다.

 막능여가 그 거대한 지하 공간에서 목격한 것은 새하얀 섬광을 뿜어내고 있는 거대한 입석(立石)이었다.

 표면에 빽빽이 무엇인가 새겨져 있는 것 같은데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너무도 강렬해 그 글귀들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입석을 대한 순간 막능여는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압도당했다고 할까?

 막능여는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고 무엇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는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오랫동안 입석 앞에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입석에 새겨져 있는 무수한 글귀와 알 수 없는 문양들이 그의 뇌리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막능여는 태방시원의 장문인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황언령이 그 글귀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고수 체득해 온 가문의 모든 무공 비결 역시 자신의 뇌리 속에 스며들고 있는 글귀들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무학의 끝이었고 또한 법(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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