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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흑첨향
작가 : 박재영
작품등록일 : 20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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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추배도(推背圖)2.
작성일 : 16-04-03 16:30     조회 : 928     추천 : 0     분량 : 7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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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화. 추배도(推背圖)2.

 

 

 

 곽자의의 검이 다시 두 팔을 벌린 채 덮쳐 오고 있는 시체의 허리를 양단했다. 한데 그가 다른 시체를 상대하는 순간, 지면에 떨어진 시체의 상체가 기어와 그의 다리를 잡고 늘어지지 않는가.

 두 발이 잡혀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 또 다른 시체들이 우르르 곽자의를 향해 몰려왔다.

 와직!

 좌천강이 자신에게 몰려오고 있는 시체들을 밀어낸 후 달려와 곽자의의 두 발을 잡고 있는 시체의 머리를 박살냈다.

 일단 위기에서 벗어난 곽자의는 좌천강에게 사의를 표할 새도 없이 눈을 부릅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시체들뿐이었다.

 곽자의와 좌천강은 겹치고 겹쳐진 상태로 꾸물거리며 몰려오고 있는 시체들에게 둘러싸여 벗어날 방도가 전혀 없었다.

 "만사에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는 바라, 오직 만족을 모두 채우지 아니함으로써만이 능히 낡아 헤질 수 있으며… 낡아 헤진 연후에야 또한 새롭게 이루어짐이니…"

 술 취한 주정꾼이 흥얼거리는 듯한 음성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소가주…?"

 곽자의는 전면에서 들려온 흥얼거리는 음성에 번쩍 눈을 빛냈다.

 시체들의 포위망 뒤쪽에서 거대한 도를 풍차처럼 휘두르며 다가오고 있는 인물은 막능여였다. 그는 정확히 시체들의 목을 양단하며 포위망을 뚫고 곽자의에게 다가왔다.

 "머리를 잘라야 해. 그래야 움직이지 않네."

 어느새 곽자의에게 다가온 막능여는 곽자의와 좌천강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거친 폭풍처럼 시체들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쥐어진 거대한 도는 한번 허공을 가를 때마다 서너 구의 시체를 양단시켰다. 엄청난 괴력이었다.

 "어느 쪽으로 왔는가? 혹시 오는 도중에 공동묘지 같은 걸 본 적 있는가?"

 "산 아래, 마을에서 벗어난 곳에 공동묘지가 있는 걸 보긴 했습니다만… 하지만 거긴 여기서도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무심코 대답하던 곽자의는 문득 고개를 돌려 막능여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이 시체들이 그 묘지에 묻혀 있던 시체들이란 말입니까?"

 "이런 산속에 죽은 시체들이 저렇게 많을 리는 없을 테니까."

 대답과 함께 막능여는 거대한 도를 휘둘러 서너 구의 시체를 쓰러뜨렸다.

 지겹게 몰려오던 시체들도 막능여의 놀라운 위세에 질린 듯 주춤거리는 것 같았다.

 곽자의가 막능여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다소 놀란 눈빛이었다.

 "이건 강시(疆屍)도 아니고… 그냥 시체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뿐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건지? 소가주는 이 시체들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입니까?"

 "시령술(屍靈術)이네."

 '시령술?'

 곽자의는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는 시체들을 둘러보며 내심 고개를 저었다.

 막능여가 나타나는 바람에 다소 여유가 생겨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곽자의는 막능여를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시체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까?"

 막능여는 좌우에서 덮쳐 오는 시체들의 머리를 잘라내며 대꾸했다.

 "기다리게. 곧 시령술로 시체들을 부리는 자가 나타나겠지. 그자를 죽이면 돼. 그래, 저기 오는군."

 어느새 여명이 솟아올라 있었고 사방을 뒤덮고 있던 새벽안개가 흩어져 주위의 모습이 환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여명 아래, 어둠처럼 검은색의 도포를 걸친 한 명의 노도고(老道姑)가 서 있었다.

 얼굴 전체가 온통 주름살투성이였다. 일견하기에도 나이가 일백은 넘었을 듯한 노파였다.

 그저 한 무더기의 어둠이 그렇게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기이하게도 사위를 새하얗게 밝혀주고 있는 여명조차 노파의 몸에 이르러서는 빛을 잃는 듯했다.

 노파는 십여 장 거리에 이르러 걸음을 멈춘 뒤 오랫동안 막능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곽자의와 좌천강에게는 아예 관심도 없는 태도였다.

 노파가 뿜어내고 있는 잔잔한 살기 속에는 알 수 없는 사악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곤오극(崑吾極)! 이제야 네놈을 찾았구나."

 문득 노파의 음성이 바람처럼 들려왔다. 마치 한 마리 뱀이 땅을 기어가는 느낌을 주는 음성이었다.

 팟!

 노파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아니, 솟아올랐다고 느껴진 순간 허공을 단축하며 그대로 막능여를 향해 미끄러져 왔다.

 노파의 갈고리 같은 손이 막능여의 머리를 향해 밀어닥쳤다.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막능여의 도가 그 손을 마주쳐 가자 노파의 전신이 가벼운 종이로 만들어진 듯 뒤로 젖혀지며 도가 미치는 범위에서 빠르게 물러났다.

 하지만 막능여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는 물러나는 노파에게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노파가 미처 신형을 바로 세우기도 전에 다시 도를 휘둘렀다.

 "헉!"

 노파는 비명처럼 소리친 후 그 도가 몸에 닿기 직전에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막능여의 도가 미처 빈 허공에 원의 궤적을 완성시키기도 전에 노파의 몸은 반대 편 허공에서 나타나며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은 마치 고무줄이 늘어나듯 일 장 거리를 늘어나 막능여의 가슴을 쳐 왔는데 속도가 전광과 같았다.

 미처 피할 수 없어서인지 막능여는 그 손을 피하지 않은 채 오른손의 도를 회수해 노파를 향해 휘둘렀다.

 어찌 보면 무모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었다. 도가 상대의 몸에 이르기 전에 노파의 손이 먼저 그의 가슴을 꿰뚫어 버릴 상황이었던 것이다.

 펑!

 철판을 두드리는 음향과 다급해하는 비명 소리가 동시에 울려 나왔다.

 막능여는 노파의 손에 가슴을 강타당한 상태에서도 쓰러지지 않았고 노파는 오히려 막능여의 도에 왼쪽 어깨에 상처를 입고 뒤로 퉁겨졌다.

 "무모하구나. 무모해! 하지만 과연 건곤철축의 후예다워."

 노파는 막능여가 살을 내주고 뼈를 깎는 식의 공격을 해올 줄 몰랐다는 듯 왼쪽 어깨에서 피를 흘리며 원독에 찬 음성을 흘려냈다.

 막능여는 태산처럼 굳건한 자세로 서서 노파를 바라볼 뿐이었다.

 "흥! 오늘은 물러난다만 네놈의 종적을 찾아냈으니 이제부터 너는 본 문의 추적을 뿌리칠 수 없을 것이다."

 노파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연기 흩어지듯 흐려지기 시작했다.

 노파가 사라지자 그때까지도 일행을 공격하던 시체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춘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시체들이 움직임을 멈추자 곽자의와 좌천강은 검을 회수하고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노파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한 연후 막능여는 돌연 울컥하고 한 모금의 선혈을 뱉어냈다.

 "그 노파는 날 추적하고 있는 태방시원의 장로이네. 무모하지만 물리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어. 그건 그렇고 자네들이 휘말려 고생할 줄은 나도 몰랐네."

 "소가주님을 대합니다."

 "소가주님!"

 긴박한 상황이 일단락되자 그제야 좌천강과 곽자의는 막능여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

 막능여는 몸을 숙이려는 곽자의의 두 손을 황급히 잡으며 미소 지었다.

 "이 친구… 제발 그러지 말라고 내 부탁하지 않았는가! 우린 친구란 말일세."

 막능여와 마주친 곽자의의 눈에 훈훈한 열기가 감돌았다. 그의 뇌리에 언뜻 십 년 전의 일이 스쳐 갔다.

 

 곽자의가 막능여를 처음 저잣거리에서 만나 친구가 된 것은 십 년 전이었다.

 곽자의는 당시 오갈 데 없이 떠돌며 구걸이나 소매치기를 해서 간신히 연명하고 있던 처지였는데 성질 나쁜 무림인의 은자를 소매치기하려다 발각되어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를 구해준 것은 우연히 길을 지나던 막능여였다.

 막능여는 곽자의를 구해준 다음 그를 건곤철축으로 데려가 막무가내로 부친의 제자로 만들어 버렸다.

 근본도 알 수 없는 거지 소년을 친구라며 데려와 부친에게 제자로 삼아달라고 떼를 쓴 그때의 일은 아직까지도 건곤철축의 제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정도였다.

 건곤철축의 가주는 철왕(鐵王) 곤오승이었는데 그는 아들이 곽자의를 막무가내로 제자로 삼아달라고 고집하자 결국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곽자의는 무공을 익히기에 뛰어난 천품을 지니지도 못했고 무공에 입문하기에도 이미 나이가 늦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철왕 곤오승의 네 번째 제자가 된 뒤부터 스스로 혹독하게 무공을 연마해 십 년이 지나자 철왕의 제자로서 사부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평범한 재질을 지닌 그가 비범한 재질을 지닌 채 먼저 입문한 사형들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음이니 그간의 신산이 오죽했겠는가.

 그 십 년 동안 내내 막능여는 곽자의를 친구로 대해줬지만 곽자의는 예의를 잃지 않은 채 수하임을 자처해 왔다.

 

 곽자의는 빙긋이 미소하며 막능여를 바라보았다.

 "한데 소가주께서 은밀히 내게 보낸 서찰 말미에 막능여라고 서명이 되어 있던데 또 이름을 바꾸셨습니까?"

 "노자께서는 상삼황(上三皇) 때 현중법사(玄中法師)가 되었고, 하삼황(下三皇) 때는 금궐제군(金闕帝君), 복희 때는 울화자(鬱華子), 신농(神農) 때는 구령노자(九靈老子), 황제(黃帝) 때는 광성자(廣成子)가 되었다고 하네."

 막능여는 곽자의와 좌천강을 데리고 산속 깊이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원생십이화경(元生十二化經)을 살펴보면 노자께서 아직 관(官)에 들어가기 전의 본래 이름이'담'이었는데 이름이나 자를 자주 바꿔 비단 담이라는 이름 하나만이 아니었네."

 "한 사람의 이름이 그렇게나 많았다는 겁니까? 도대체 그렇게 이름을 자주 바꾼 이유가 뭡니까?"

 좌천강이 혀를 내두르며 질문을 던졌다.

 막능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구궁(九宮)이나 원진경(元辰經)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각각 액회(厄會=액운을 만나는 것)라는 것이 있는데 그때가 되기 전에 이름을 바꿈으로써 수명을 연장시키고 액을 면할 수 있다고 했네."

 "아하! 그래서 소가주님도 이름을 또 바꾸신 것입니까?"

 좌천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곽자의와 눈을 마주치며 질문을 던졌다.

 막능여는 진지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곤오극이라는 이름을 놔두고 날 굳이 십삼점이라고 부른 것은 역시 액회를 피하기 위함이었네. 이런 식으로 부모님 또한 내 이름을 수시로 바꾸었는데 나라고 못 바꿀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재촉하는 동안 해가 높이 떠올랐고 그들은 어느덧 두 개의 계곡을 건너 높은 산 위로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막능여가 가고 있는 곳은 산정이 아니라 산정을 이루고 있는 절벽의 중턱에 있는 동굴이었다.

 일단 산정에 오른 뒤에 늘어져 있는 칡넝쿨을 타고 가파른 절벽을 십여 장 내려오자 돌출된 암반이 있었다.

 암반 위에 내려서자 그 뒤로 커다란 동혈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자자, 여기가 내 거처이네. 아침이면 일출을 볼 수 있고 밤에는 달빛이 스며드는 아주 명당자리이네. 태방시원에서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알아냈는지 몰라도 함부로 공격해 올 수 없는 곳이니 맘 푹 놓고 쉬게나."

 곽자의는 동굴 안에 들어서면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도대체 이곳에서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정말 도사가 되시려는 겁니까?"

 "아냐, 아냐! 득도를 해서 선인이 된다고 해도 선인들은 대개 궁벽한 곳에서 살기를 좋아하여 속세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지 않는 법이네. 그러니 설령 장생불사한다 하더라도 인정을 버리고 영락을 멀리하는데, 그것은 마치 참새가 대합조개로 변하듯 그 본질을 상실하는 셈이니 내가 생각해도 그런 신선은 바람직하지 않네."

 "선인이라는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군요."

 좌천강이 우습다는 듯 미소를 머금었다.

 막능여가 말을 이었다.

 "인간의 도는 마땅히 단 음식을 먹고, 가볍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음양의 이치를 따르고, 스스로 신분을 높여야 하네. 내가 이곳에 숨어 황언령을 연마하는 것은 도사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이네."

 "어쩔 수 없다고 하셨습니까?"

 이번에는 곽자의가 의아해하며 질문을 던졌다.

 막능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쩔 수 없지. 아암… 어쩔 수 없고말고. 태방시원에 쫓기지 않으려면 천상 그들의 장문이 되어야 하는 것이네. 그건 그렇고, 집안에 별일은 없겠지?"

 곽자의가 빙긋이 미소했다.

 "가모님의 동태가 궁금하신 거라면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는 소가주님을 찾는 걸 포기하신 것 같으니까요."

 "다행이군, 다행이야! 난 어머님이 날 찾아 강호를 헤매는 걸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거든."

 막능여가 문득 곽자의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가를 꺼낼 듯한 태도였는데 기이하게도 얼굴을 붉힌 채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곽자의가 다시 미소했다.

 "작은 부인께서도 잘 지내고 계십니다."

 "아… 난 그저···"

 막능여가 머쓱해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십승관 대관주의 후계자를 선출하는 기일이 이제 겨우 일 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일은 비단 십승관만이 아니라 천하 무림인들의 관심거리인데 소가주님은 정말 관심이 없는 겁니까?"

 "대관주 자리 같은 거 거저 준다고 해도 내가 사양하고 말 걸세."

 "하지만···"

 곽자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가 이내 번쩍 눈을 들었다.

 "삼십 년마다 대관주의 후계자 쟁탈전이 벌어지고 그때마다 십승관의 십대 세력 중 두세 곳이 멸문당하며 자리바꿈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소가주는 계속 엉뚱한 일만 벌이시겠다는 겁니까?"

 "건곤철축은 이미 삼백 년 동안 십승관의 십대 세력에 속해온 가문이네. 설령 이번의 후계자 쟁탈전에 휘말려 다른 세력들과 전쟁을 벌이는 일이 있더라도 별일 없을 것이네."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곽자의의 태도에 비하면 막능여는 태연할 따름이었다.

 막능여의 성품을 잘 알고 있는 곽자의는 더 이상 입을 열어보았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막능여의 그런 성품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사실은 좀…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대관주의 두 제자들이 다가올 후계자 쟁탈전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강호를 떠돌고 있는 것입니다."

 막능여의 눈에 의혹의 빛이 솟아났다.

 곽자의가 말을 이었다.

 "혹시… 추배도의 전설을 아십니까?"

 "추배도라면 인간 세상의 다가올 일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는 참서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대관주의 두 제자는 오래전부터 그 추배도를 찾아 강호 곳곳을 뒤지고 있다 합니다."

 "추배도라…?"

 막능여는 별 관심 없다는 듯 웅얼거린 뒤 새삼 곽자의와 좌천강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곽자의와 좌천강의 손에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실망한 빛을 떠올렸다.

 "끄응···! 하긴 밤새도록 시체들에게 쫓겨 다녔을 테니 갖고 오던 술이 온전할 리가 없겠지."

 곽자의는 그제야 막능여가 찾는 게 무엇인지 깨닫고 짐짓 짓궂은 미소를 머금었다.

 "시체들과 싸우느라 목이 말라 반은 우리가 마셔 버렸고 나머지 반은 그놈들에게 쫓기면서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소가주님에게 술을 가져다주기 위해 왔다가 죽을 뻔했다 이겁니다."

 "아니, 술은 그저 오는 길에 가져오라고 부탁한 거고… 난 집안일이 궁금해서···"

 막능여가 당황해서 쩔쩔매는 순간 곽자의가 품속에서 작은 술병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겨우 이거 한 병만 건졌지만 절대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막능여의 눈이 번득거렸다.

 "물론이네. 이거라도 어딘가!"

 셋은 대충 부상을 치료한 후 동굴 바닥에 둘러앉아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안주라고는 막능여가 준비한 산채 두 종류가 전부였고 술도 터무니없이 부족했지만 세 사내는 술이 아니라 인간의 정에 흔쾌히 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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