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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흑첨향
작가 : 박재영
작품등록일 : 20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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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신분의 비밀(秘密)3.
작성일 : 16-04-02 13:48     조회 : 759     추천 : 0     분량 : 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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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신분의 비밀(秘密)3.

 

 

 

 능비령은 약초를 입으로 씹어 침으로 갠 뒤에 마른 헝겊으로 여교의 상처를 감쌌다.

 여교는 능비령이 입으로 약초를 씹고 침으로 갠 뒤에 상처에 붙이는 걸 보면서도 더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을 위해 독을 빨아내고 약초를 구해온 능비령에게 어느 정도 감동하고 있던 중이었다.

 능비령의 치료가 신속했던 탓인지 여교는 독사에 물리고도 이내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중독된 현상도 보이지 않았다.

 관도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능비령을 뒤따라오던 여교가 능비령의 좌측 허공을 향해 불쑥 입을 열었다.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여는 듯한 수줍어하는 태도였다.

 "저어, 언니는 왜 모습을 감추는 건가요?"

 놀란 것은 흑화고만이 아니었다. 능비령 역시 크게 놀라 걸음을 멈춘 채 여교를 멍청히 바라보았다.

 "날 감지할 수 있느냐? 놀랍군, 그 나이에 그 정도의 밀법을 익힐 수 있었다니."

 흑화고가 공령을 풀어 모습을 드러내며 여교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교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더듬거렸다.

 "사실 전 그 정도로 수행이 깊지는 못해요. 아마 같은 류의 밀법이라 쉽게 언니의 존재를 알아낸 것 같아요."

 "설마 너의 사문이 흑천밀(黑千密)이란 말이냐?"

 "예, 언니는 역시 저와 같은 사문이었군요."

 여교는 무척이나 반갑다는 듯 환한 표정으로 빤히 흑화고를 바라보았다.

 흑화고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난 흑천밀의 사람이 아니다."

 여교가 멍청해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 저는 믿을 수가 없어요. 저는 아직 수행이 깊지 못해 언니처럼 공령을 펼칠 수는 없지만 언니가 펼친 수법은 분명히 종문의 어른들이 펼치던 것으로써…."

 여교는 고개를 저으며 웅얼거리다가 돌연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는데 절대로 꾸민 태도가 아니었다.

 "설마 비요둔(秘妖屯)의…?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비요둔은 대대로 단 한 사람에게만 계승되는 문파로써 전대의 문주인 흑화고라는 분이 후대를 남기지 못하고 실종되어 절맥되었다고 들었는데…."

 "흑천밀과 비요둔은 같은 나무에서 뻗어 나간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전해져 오는 밀법들이 비슷한 게 많지. 그리고 비요둔은 절맥되지 않았단다."

 흑화고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여교는 눈앞의 여자가 흑화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황급히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며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제자 여교가 사숙조님을 대합니다."

 "흑천밀과 비요둔이 비록 근원이 같다고는 해도 이제는 전혀 다른 종문으로 갈라졌다. 넌 나를 사숙조라고 불러선 안 된다. 그리고 무서워할 필요 없다. 내 눈에 거슬리지만 않는다면 죽이지 않을 것이다."

 "예, 예. 감사합니다."

 흑화고가 손을 뻗어 여교를 일으켰다. 그 위엄이 보통이 아니었다.

 능비령이 고개를 저었다.

 '팔십 년 전의 사람일지라도 그 기간 동안 가사 상태였으니 실제 나이는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한데 저 여자를 알아보는 사람들마다 모두들 공포에 떨고 있으니 실로 위세가 대단하구나.'

 간신히 몸을 일으킨 여교는 눈에 띄게 풀이 죽은 기색이었다.

 흑화고는 빙그레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한데 무엇 때문에 뱀에 물리는 연극을 했지?"

 "예. 그게… 사실은… 저어… 난 원래 어제부터 저 오빠를 미행하며 자연스럽게 접근할 방법을 찾고 있던 중이었어요. 한데 그만 뱀을 만나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되었어요. 원래 뱀을 무서워하거든요."

 여교는 민망스럽다는 듯 배시시 웃어 보인 후 말을 이었다.

 "뱀을 만나 소리를 지르면서 속으로 생각했어요. 잘됐구나 하고요. 생각지도 않은 뱀을 만나 놀라기는 했지만 내 비명 소리를 듣고 저 오빠가 달려와 주면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 아는 사이가 될 것 같았거든요. 정말이지 뱀이 물어버리기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흑화고의 질문에 여교는 능비령이 듣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감히 흑화고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나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니?"

 능비령은 의아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로서는 여교가 누군지 몰라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교의 말이 이어졌다.

 "저어, 아까 하는 이야기 다 들었는데… 자문정이라면 찾아갈 필요가 없어요. 제가 바로 자문정에서 왔거든요."

 "너의 본가가 자문정이었느냐?"

 "예."

 "뭐야? 그럼 너도 살수란 말이냐?"

 흑화고는 전혀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능비령은 크게 놀라며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지만 흑화고의 태연한 태도를 보고 이내 경계심을 풀었다.

 여교가 능비령을 향해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귀엽기 이를 데 없는 태도였다.

 "청부는 취소되었어요. 이제 더 이상 자문정에서 오빠를 추적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난 형제들에게 그 명령을 전해주러 뒤쫓아 왔는데 늦고 말았던 거예요."

 능비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포기한 건가?"

 "청부 자체가 없어진 거예요. 우리에게 청부를 맡겼던 첫 번째 중개인이 죽었으니 저절로 청부자가 없어진 셈이지요."

 "청부가 취소되었다면 무엇 때문에 내게 접근하려고 했느냐?"

 능비령이 아직도 완전히 의심을 풀지 않은 눈빛으로 질문하자 여교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인 채 나지막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나, 나를… 경계하지 않아도 돼요. 오빠가 내 형제들을 죽인 사람이지만 원한은 없어요. 살수로서의 운명이 그러하니까요. 내가 일부러 접근한 이유는 단지 궁금했기 때문이에요. 정화군에 속해 있던 일개 용병이 어떻게 우리 형제들의 손에서 살아남은 것인지, 그리고 왜 황궁 쪽의 인물들이 노리고 있는지 말이에요."

 "황궁? 날 죽이라고 청부를 한 사람이 황궁에서 나온 사람이란 말이냐?"

 여교는 능비령에 대한 청부가 보기 드물게 두 명의 중개자를 거쳐 맡겨졌다는 사실과 첫 번째 중개자였던 전곽이 죽고 그녀 자신도 죽을 뻔한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었다.

 "황궁 쪽의 누군가가 무엇 때문에 오빠를 죽이려 하는지는 몰라도 오빠가 우리 형제들에게 죽지 않은 이유는 이제 알았어요."

 여교가 흑화고를 슬쩍 바라보며 말을 끝맺었다. 아마도 흑화고가 허공에 몸을 숨긴 채 능비령을 도왔기 때문에 자문정의 형제들이 실패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흑화고는 그간의 자세한 사정을 여교에게 굳이 이야기해 줄 필요를 느끼지 않아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않은 채 능비령을 바라보았다.

 "정화였군. 그가 아니면 그의 측근에 있는 누군가가 청부한 거야. 그들은 법신검을 찾기 위해 정극풍천을 공격했지만 아무 소득도 없었지. 혹시 하는 생각에서 너를 시험해 본 게 분명해."

 일행은 다시 관도가 있는 방향으로 숲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여교는 난생처음 보는 괴상한 동물이 능비령을 따라오자 귀엽다는 듯 화고를 어르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영락없이 강아지와 장난치는 어린아이 같았다. 화고도 여교가 싫지 않은 듯 그녀의 팔을 타고 기어 올라가 양쪽 어깨 위를 오갔다.

 "꺄악! 오빠, 얘 나 줘요. 너무 귀여워요!"

 여교는 화고를 두 손으로 잡아 얼굴에 부비며 능비령에게 애원했다.

 "그놈은 내 물건이 아니라 그냥 친구일 뿐이야. 너에게 가고 안 가는 건 그놈 맘이야."

 능비령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 순간 화고는 여교의 손을 빠져나와 쪼르르 팔을 타고 어깨로 오르더니 허공을 박차고 능비령의 어깨로 옮겨왔다. 그리고는 여교가 아무리 불러도 다시는 그녀에게 가지 않았다.

 "너, 너! 내가 그렇게 귀여워했는데…."

 여교가 울상이 되어 화고를 노려보았다.

 여교의 이런 모습에 능비령은 빙긋이 미소 지었고 흑화고는 혀를 찼다.

 흑화고가 능비령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잔뜩 굳어진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골치 아프게 되었어."

 "자문정이 날 죽이는 데 실패하는 바람에 자문정에 청부를 맡겼던 인물이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뜻이야?"

 "그래. 어쩌면 황실의 인물일지도 모르지. 법신검을 찾기 위해 정화를 움직여 정극풍천을 공격하게 만든 인물이야. 그 힘이 어디까지인지는 가늠할 수가 없어."

 미지의 거대한 힘이 자신을 조여 오는 듯한 불안한 마음이 들어 능비령은 무어라 입을 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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