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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흑첨향
작가 : 박재영
작품등록일 : 20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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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신분의 비밀(秘密)2.
작성일 : 16-04-02 11:31     조회 : 797     추천 : 0     분량 : 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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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신분의 비밀(秘密)2.

 

 

 

 아침이 되자 능비령은 막능여와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객청으로 나갔다. 물론 은밀히 점소이를 시켜 흑화고의 방에 음식을 가져다주는 걸 잊지 않았다.

 싸움이 벌어지고 사람이 두 명이나 죽었지만 소동은 벌어지지 않았다.

 자문정의 살수들이 능비령을 공격하다가 오히려 죽었지만 워낙에 은밀하게 진행된 데다가 흑화고가 시체들을 흔적 없이 처리해 객점 안의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객청은 한산한 편이었다. 시간이 다소 이른 탓인 듯했다.

 잠시 후, 시킨 음식이 나와 시장하던 김에 서둘러 먹으려던 능비령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능여의 태도가 기이했다.

 막능여는 눈앞의 음식을 두고도 먹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굳어져 있었다. 그의 눈은 객청의 입구에 딱 못 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는데 무척이나 놀라고 당황해하는 표정이었다.

 객청의 입구로 십이, 삼 세가량 되어 보이는 소녀와 대략 이십 대 중반가량 되었을 듯한 여인이 들어서고 있었다.

 소녀는 무척이나 청순하면서도 아름답고 귀엽기가 천상옥녀 같았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전신에 위엄이 떠돌고 있었고 그 눈빛 또한 깊은 고요를 간직하고 있었다.

 소녀와 함께 들어선 여인은 마치 소녀를 수행하듯 한 걸음 뒤쳐진 옆에서 걷고 있었는데 조용했으며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가 넘쳐 보이고 있었다.

 막능여가 당황해하며 꼼짝도 못하고 객청으로 들어서고 있는 소녀와 여인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소녀와 여인은 이미 그의 앞에 도착했다.

 소녀가 입을 열었다. 소녀답지 않은 위엄이 가득한 음성이었다.

 "흥! 이 어미를 결국 강호에 나오게 만들었으니 참으로 효자로구나, 네놈은!"

 "어, 어머니!"

 막능여가 소녀의 싸늘한 눈빛에 오금이 저린 듯 쩔쩔매는 표정으로 더듬거렸다.

 능비령의 눈이 커졌다. 놀랍게도 커다란 체구를 지닌 막능여는 체구도 자신의 반밖에 안 되고 나이도 훨씬 어린 소녀를 어머니라 칭하고 있었다.

 "상공…!"

 막능여가 소녀 앞에서 진땀을 흘리며 쩔쩔매자 한 걸음 뒤에 서 있던 여인이 안타까운 듯 막능여를 불렀다.

 막능여는 두터운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쳐 내며 여인을 바라보았다.

 "아… 부인, 당신도 왔구려."

 막능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마치 도망칠 방향을 찾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자 소녀가 혀를 찼다.

 "쯧쯧쯧, 못난 놈! 당장 일어 나거라. 집으로 가자."

 "하, 하지만…."

 막능여가 울상이 된 채 머뭇거렸다.

 소녀의 태도가 더욱 싸늘해졌다.

 "이젠 감히 이 어미의 말조차 무시할 셈이냐!"

 "그, 그건 아니고···"

 "그리고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기에 방문좌도의 집단인 태방시원 놈들이 널 찾아다니는 것이냐?"

 "그, 그건 별일 아니니 어머님께서 심려하실 일이 아니고…."

 막능여와 소녀의 대화를 듣고 있던 능비령은 그야말로 정신이 다 없었다. 아무리 봐도 십이, 삼 세가량 되어 보이는 소녀가 한 사내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무공의 경지가 드높아지면 어느 날 갑자기 노인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반노환동(反老還童)의 경지로 된다더니 과연 막형의 모친은 그렇게 된 거란 말인가? 게다가 못생기고 성질이 더럽다던 부인은 내가 보기에 온화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지니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구나.'

 막능여는 결국 모친의 말을 거역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일으켰다.

 그가 체념한 듯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걸어 나오자 소녀는 몸을 돌려 앞장서 걸어갔다.

 순간 막능여가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동시에 그의 신형이 허리도 굽히지 않은 상태로 뒤로 미끄러졌다.

 꽝!

 객청의 벽면이 그대로 부서지며 어느 사이에 막능여의 신형이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상공!"

 "십삼점! 네 이놈!"

 여인과 소녀는 크게 놀라 막능여가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막능여를 쫓아 뛰쳐나갔는데 막능여처럼 객청의 벽을 부수고 사라져 벽에는 커다란 구멍 두 개가 생겨나 있었다.

 "내가 올 때까지 멀리 가지 말고 기다리게."

 여인과 소녀의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멀리서 한줄기 전음이 능비령의 귀로 파고들었다.

 

  * * *

 

 막능여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기 때문에 능비령은 길을 떠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행에 필요한 물품과 건량들을 구입하며 객점에서 3일이나 기다려도 막능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결국은 붙잡혀서 집으로 끌려간 모양이구나.'

 나흘째가 되는 날, 능비령은 어쩔 수 없이 객점을 나와 산으로 들어가지 않고 관도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목적지인 북당하로 가려면 배를 타거나 말을 구하는 것이 빨랐지만 혹시 막능여가 되돌아와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관도를 따라 천천히 여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의도현을 벗어나 오전 내내 관도를 따라 걸어가자 길은 좌우로 숲이 우거진 언덕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관도에 사람이 보이지 않자 흑화고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 능비령과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어디에 몸을 감추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화고 역시 모습을 드러낸 채 능비령의 앞장을 서서 걷기도 하고 바싹 옆에 따라붙기도 했다.

 "자문정 말이야."

 "자문정?"

 말없이 걸음을 옮기던 흑화고가 불쑥 입을 열었다. 싸늘하게 굳어져 있는 얼굴이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위협당할 수는 없어. 언제고 빠른 시일 내에 자문정을 한번 찾아가야 되지 않을까? 네가 원한다면 자문정 정도의 살수들은 나 혼자서 몽땅 죽일 수 있어."

 능비령이 고개를 저었다.

 흑화고의 말처럼 자문정이 계속 자신을 노린다면 무척이나 성가시고 위험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쫓아가서 죽여야 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자문정이라는 살수 단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누가 날 죽여 달라고 청부했을까? 이유가 뭘까?'

 흑화고가 자문정에 대해 입을 열자 능비령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누가 무엇 때문에 자문정에 청부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꺄악! 꺅!"

 돌연, 관도 좌측의 숲 안쪽에서 소녀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절박하기 이를 데 없는 비명 소리였다.

 능비령은 황급히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관도를 벗어나 오십여 장 정도 들어가자 숲 속에 한 소녀가 주저앉아 있었다.

 무릎 위를 간신히 가리는 짧은 단삼에 댕기 머리를 한 청순하기 이를 데 없는 소녀, 바로 자문정의 말괄량이 살수 여교였다.

 여교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는데 능비령이 도착한 순간 독사 한 마리가 그녀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었다.

 '뱀에 물렸구나.'

 능비령은 멀어져 가는 뱀을 보니 이내 전후의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다.

 쉬익!

 화고가 뱀을 보더니 몸을 번뜩였다. 뱀과의 거리는 십여 장이 넘었는데 어느새 뱀을 덮쳐 머리부터 뜯어먹기 시작했다.

 '저놈… 뱀도 잡아먹을 줄 아는구나.'

 능비령은 화고가 순식간에 독사 한 마리를 먹어 치우는 것을 보고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감탄하고만 있을 형편이 아니었다.

 능비령은 주저앉아 있는 여교의 발치에 쪼그리고 앉아 독사에 물린 상처를 살펴보았다.

 발목에서 한 치 위에 뱀에 물린 자국이 있었다.

 맹독을 지닌 뱀이 확실했다. 어느새 물린 부위가 검게 변색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선 독을 빨아내야 하니 가만히 있어라."

 능비령은 소도를 꺼내 상처 부위를 찢은 후 거침없이 입을 가져갔다.

 아무리 어려 보인다고 해도 상대는 여자였다. 독을 빨아내기 위해서라지만 여자의 맨살에 입을 대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건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여교는 몇 차례나 입으로 독을 빨아내 지면에 뱉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능비령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 깊은 곳에는 당황해하는 빛보다는 기이한 빛만이 번뜩였다.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난 약초를 찾아오겠다."

 잠시 후 어느 정도 독기를 빨아낸 능비령은 주위의 숲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교가 주저앉아 있는 곳을 중심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무언가를 찾는 능비령을 보며 흑화고가 몸을 드러내 질문을 던졌다.

 "뭘 찾는 거지?"

 "독사 주위에는 반드시 그 독사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약초가 있는 법이야."

 능비령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후 계속 숲 속을 뒤졌다. 독을 대충 빨아내기는 했지만 혈관 속으로 스며든 독을 완전히 해독하려면 약초를 찾아내야 했다.

 '독사 주위에는 반드시 그 독사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약초가 있다고? 결과가 있는 곳에 원인이 있다는 불가의 선문답 같은 말이군.'

 흑화고는 제자리에 우뚝 서서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능비령의 말을 듣는 순간 한 가지 영감이 그녀의 뇌리에 번뜩였던 것이다.

 "바보같이!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흑화고가 번쩍 고개를 쳐들며 소리치듯 입을 열었다.

 능비령은 결국 약초를 찾아 캐내면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무슨 뜻이지?"

 "정극풍천! 그곳에 가면 내 몸에 심어져 있는 귀속박주(歸屬搏呪)를 풀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독사가 나타난 곳에는 반드시 그 독사의 독을 풀어낼 약초가 있다는 너의 말처럼 내 몸에 심어놓은 귀속박주를 푸는 방법은 바로 정극풍천에 있었던 거야."

 "아, 그럴지도 모르겠군. 아니, 확실히 그곳 어딘가에 흑화고를 내게 귀속시켜 버린 밀법에 대한 단서가 있을 거야."

 능비령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반가워했다.

 "정극풍천으로 돌아가야 해."

 흑화고가 입을 열었다. 다급해하는 태도였다.

 능비령이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설마 날더러 함께 가자는 건 아니겠지? 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으니까 만약 가려면 너 혼자서 가."

 "안 돼!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는 널 내버려 두고 나 혼자 갈 수는 없어. 네가 죽어버리면 억울하게 나까지 죽게 된단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고생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능비령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화고의 태도가 너무 강경해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과연 그녀는 단호한 태도였다.

 "너 역시 법신검의 진체를 융화시켜야 하니 돌아가서 그 안에서 법신검을 운용할 수 있는 법문을 찾아봐. 그 일은 너에게도 큰 이득이야. 폐쇄된 단전을 회복할 수 있을 테니까."

 "폐쇄된 단전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능비령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흑화고를 바라보았다.

 흑화고가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물은 바다를 범람시킬 수가 없어. 그와 같은 이치로 더 큰 힘은 작은 힘을 능히 억누를 수 있는 법이야. 네 단전을 폐쇄시킨 사람의 공력이 법신검의 힘을 능가할 수는 없을 테니 법신검을 융화시킬 수 있게 되면 폐쇄된 단전도 회복될 게 분명해."

 '으음, 과연 그렇게 될까?'

 능비령의 심사는 복잡했다.

 흑화고는 귀속박주가 풀리면 법신검을 빼앗기 위해 능비령을 죽이려 들 게 분명했다. 게다가 능비령 또한 법신검과 융화되면 흑화고를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의 능비령은 절대로 흑화고를 죽일 생각이 없지만 법신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이 워낙에 기이해 어쩌면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그녀를 죽여야만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능비령은 그런 생각을 하며 여교에게 돌아왔다. 모습을 드러냈던 흑화고는 다시 허공에 몸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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