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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흑첨향
작가 : 박재영
작품등록일 : 20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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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말괄량이 살수(殺手)2.
작성일 : 16-04-02 08:35     조회 : 817     추천 : 0     분량 : 4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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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화. 말괄량이 살수(殺手)2.

 

 

 

 삼 일 뒤, 여교는 전당강의 강변을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그녀가 찾는 장원은 이내 눈에 들어왔다. 야산을 등지고 운치 있게 세워져 있는 장원이었다.

 장원의 굳게 닫혀 있는 대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려던 여교의 손이 멈춰졌다. 무언가 이상했다. 조용한 것은 둘째 치고 장원 내에서 일체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에이, 설마 그까짓 일 때문에 가족들을 몽땅 데리고 도망친 건 아니겠지?"

 여교는 고개를 갸웃거린 뒤 담을 뛰어넘어 장원 안으로 스며들었다. 몸이 수직으로 떠오른 뒤 다시 수평으로 일직선으로 뻗어가는 놀라운 신법이었다.

 전각의 지붕 위에 내려섰다가 다시 밑으로 뛰어내리는 여교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피 냄새?'

 장원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그녀의 코로 흘러든 것은 짙은 피비린내였다.

 '설마…?'

 여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조심스레 좌우를 둘러보았다.

 장원 안은 어둡기 이를 데 없었는데 여기저기 서너 구에 달하는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여교는 몸을 움직여 마당 한쪽에 쓰러져 있는 시신 앞에 쪼그려 앉아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이십 대 후반의 청년이었는데 좌측 어깨로부터 왼쪽 하복부까지 길게 양단되어 있었다. 자신이 흘려낸 피 웅덩이 속에 쓰러져 있는 청년의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어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이 왜 죽는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장원을 지키던 호위 무사들이야.'

 여교는 이 장원을 황급히 빠져나가야 한다는 본능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본능은 또한 자신이 이 장원을 결코 살아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제자리에서 생각에 잠겨 있던 여교는 잠시 후 고개를 번쩍 든 후 거침없이 전각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전각 안의 광경은 더욱 끔찍했다.

 우선 통로에는 마당보다 더 많은 호위 무사들이 죽어 있었고, 부서진 채 열려져 있는 방에는 무인들이 아닌 아녀자들과 어린아이들마저 죽어 있었다.

 전곽은 가장 안쪽의 내실에 노모와 함께 죽어 있었다. 그의 시체를 대한 여교는 망연자실 제자리에 멈춰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일체의 기척도 없다가 폭풍처럼 공세가 시작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꽈꽈꽝!

 천정과 창문이 동시에 터져 나가며 흑영들이 쏘아져 왔다. 그들의 공세는 너무도 절묘하고 완벽해 피할 방위도 없었고 막아낸다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아악!"

 여교는 창문을 뚫고 쏘아져 온 흑영의 검세를 피하기 위해 몸을 틀었다가 천정에서 덮쳐 온 또 다른 흑영의 검에 의해 좌측 어깨로부터 하복부까지 길게 양단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시체가 되어버린 여교의 주위로 내려선 흑영들은 모두 세 명이었다. 머리끝에서부터 흑의 복면을 뒤집어쓴 흑영들의 기도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가자!"

 여교의 죽음을 확인한 흑영들 중 한 명이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나머지 두 명도 천천히 걸음을 옮겨 내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문득 가장 늦게 내실을 빠져나가던 한 흑영이 고개를 돌려 죽어 있는 여교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바로 천정에서 기습을 해 여교의 몸을 둘로 갈라 버렸던 흑영이었다.

 "베어지는 감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가 내려다보고 있는 여교의 몸은 왼쪽 어깨부터 하복부까지 양단 되어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미 호흡과 완전히 끊겨 있었고 일체의 생기(生氣)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긴장을 했던 건가?'

 마지막 흑영은 잠시 여교의 시체를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잠시 후 장원 한쪽에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불길은 바람을 타고 이내 장원 전체를 휘감아 버리기 시작했다.

 내실 한구석에 쓰러져 있던 여교의 시체에서 미미한 움직임이 시작된 건 불길에 휘감긴 전각의 지붕이 터져 나가며 기둥마저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몸이 양단되어 내부의 장기마저 밖으로 흘러나와 있는 여교의 시신 위로 안개처럼 흐릿한 또 한 명의 여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끔찍한 몰골로 쓰러져 있는 여교의 시체 위로 멀쩡한 여교의 모습이 환영처럼 겹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파문이 번져 나가는 물위에 비쳐지는 듯한 영상이라고나 할까?

 전신이 길게 베어져 양단되어 있는 여교의 모습이 점차 흐려지며 바닥에 똑바로 누워 있는 여교의 모습이 완연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시체의 모습이 사라진 자리에 멀쩡한 모습의 여교가 나타났다.

 "흥! 베어지는 감각이 없었던 게 아무래도 이상했을 거야."

 여교는 몸을 일으켜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중얼거렸다.

 "하긴, 환영을 베었으니 감각이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그 환영이 마치 진짜 검에 베어진 것처럼 몸이 갈라지기까지 했으니 눈치 챌 리는 없지."

 여교는 엄청난 불길이 휘감아오고 있는 주위를 둘러보며 아미를 찌푸렸다. 점점 거세지는 불길을 대하고도 전혀 당황해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개자식들! 한번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 태워 죽이기까지 해? 그나저나 환법을 익힌 자가 한 명도 없어서 다행이었어. 하마터면 시집도 못 가보고 밥숟가락 놓을 뻔했다고."

 문득 여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눈 깊은 곳에는 은은히 경악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황실(皇室)의 무공이었어. 설마 일개 용병을 죽여 달라고 한 청부가 황궁 쪽에서 나왔다는 건가?"

 여교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의 신형은 불길 때문에 치솟는 연기와 함께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 남겨진 것은 거세기 이를 데 없는 불길과 나직한 음성뿐이었다.

 "한데 너무 잔인해. 이렇게까지 하면서 자신을 감춰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건가? 이렇게 되고 보니 정말로 궁금해졌어. 그 용병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말이야."

 

  * * *

 

 수많은 거목들이 미로와 같이 얽혀 있는 숲 속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폭우였다.

 비는 마치 양동이로 쏟아 붓듯이 쏟아지고 있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지면에는 이내 엄청난 물이 계류가 되어 이리저리 흘러간다.

 그 엄청난 폭우을 맞으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능비령과 막능여였다.

 능비령은 막막해하는 표정이었다. 비는 전혀 그칠 것 같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겁니까?"

 능비령은 거칠게 쏟아져 내리는 비를 올려다본 뒤 한 걸음 앞서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는 막능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막능여는 나뭇잎에 의해 빗줄기가 가로막히고 있는 거목 아래에 멈춰 서서 능비령을 돌아보았다.

 "멀지 않았네. 그곳에 가면 자네에게 딱 맞는 무기를 구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제발 좀 그만 구시렁거리고 얌전히 따라오게나."

 능비령은 울상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막능여가 능비령의 도와 바꿀 수 있는 무기를 구할 수 있다면서 막무가내로 능비령을 끌고 더욱 깊은 숲 속으로 들어온 지가 벌써 삼 일 째였다.

 처음에는 막능여의 목적지가 어차피 능비령이 가는 방향과 같아 별 생각 없이 동행했는데 막상 막능여조차 정확한 지리를 모르는 것 같아 점차 불안해지던 참이었다. 게다가 폭우까지 쏟아지는데 비를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강행군을 하자 능비령은 정말이지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요. 좋다고요! 가는 건 좋은데 우선 이 비나 좀 피한 뒤에 가자고요."

 "그렇군. 아무래도 비를 피할 곳을 찾아봐야겠어."

 막능여는 비가 쉽사리 그칠 것 같지 않자 그제야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이어 비를 피할 수 있는 동굴 같은 곳을 찾아보겠다며 숲 안쪽으로 사라져 갔다.

 막능여의 모습이 거센 빗줄기 저쪽으로 사라져 버리자 능비령은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왜 계속 모습을 감추는 거지?"

 능비령이 보고 있는 좌측 허공에 흑화고의 모습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그 엄청난 폭우 속에서도 그녀의 옷은 물기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도사잖아."

 능비령이 막능여와 함께 행동한 이후 흑화고는 식사조차 혼자 해결하며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게 뭐 어때서?"

 능비령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화고가 싸늘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 사람에게서는 내가 알고 있는 문파만의 특이한 법력(法力)이 느껴져. 서로 부딪쳐서 좋을 게 없어.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저 사람의 문파에 알려지면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

 "그럼 내가 저 사람과 함께 행동할 때까지는 계속 안 나타날 거야?"

 흑화고가 문득 능비령을 빤히 바라보았다. 문득 장난기 어린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맺혔다.

 "설마 내가 보고 싶다는 건 아니겠지?"

 "뭐, 뭐야?"

 "정신 차려! 난 내 몸에 심어진 귀속박주를 푸는 순간 널 죽일 사람이란 말이야. 물론 너도 법신검의 진체를 얻게 되면 반드시 날 죽여야 해. 난 정극풍천의 늙은이들이 말하는 이단과 사악에 빠져 버린 좌도의 술사이니까!"

 "끄응, 기껏 걱정이 되어 말을 걸었더니 좀 다정하게 말해 주지 않고. 알았어, 알았다고! 제발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능비령은 할 말이 없다는 듯 신음을 터뜨렸다.

 흑화고의 신형이 연기처럼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행여 함께 지내다 보면 정이 들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 귀속박주가 풀리는 순간 난 어떤 일이 있어도 널 죽일 거니까."

 능비령이 고개를 저었다. 아예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능 소제, 이쪽으로 오게. 저 앞에 동굴이 있어."

 그 순간 멀리서 막능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능비령은 동굴을 찾았다는 그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빗속을 치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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