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난 후 송도대교를 지나 인천국제공항 근처 호텔의 작은 방 침대 위에 대 자로 엎어진 효은과 그 옆에 걸터 앉아 있던 진명은, 호텔 텔레비전 모니터에 중계되는 롯데 자이언츠 대 두산 베어스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해설워원의 비음 섞인 목소리는 잔뜩 흥분된 것 같았고, 화면에 나온 문규현 선수의 안타에 효은은 어린애마냥 침대 위에서 거의 날뛰면서 온 몸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너 영국 가면 밤마다 심심해서 어떡하니? 거긴 야구 중계 안 해 준다.”
잠시 다시재생을 위해 문규현 선수의 안타가 느린 배속으로 반복되고 있을 때, 진명은 넌지시 효은에게 물어 보았다. 효은은 그 말에, 이런 것쯤은 미리 다 생각했다는 듯 천진난만하게 미소를 씨익 지어 보이며, 눈은 여전히 화면에 고정된 채 대답했다.
“야구 못 보믄 축구 보믄 되제...정 허전하믄 디엠비루다가 보믄 되고.”
“디엠비가 안 되면 어쩔 건데?”
효은의 대답하는 투가 귀여워 보여서 진명은 살짝 약 올리는 듯 장난스런 미소를 씨익 짓고, 효은의 귓가에 대고 그렇게 다시 말을 건네었다. 하지만 효은은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시선은 여전히 텔레비전에 고정하고 그 화면 안에 있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듯 잔뜩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마, 조용히 쫌 해 빠라. 아습이 안타 쌔맀다!”
기분이 좋아서 날아갈 듯 방방 뛰는 효은을 따라, 진명도 잠시 눈길을 효은으로부터 텔레비전 화면으로 살며시 돌렸다. 화면 안에서는 두산의 남색 유니폼을 입고 있는 투수 유희관이 던진 공을 김문호 선수가 쳐서, 그 공이 하늘 위로 로켓마냥 쭉쭉 뻗고 있었고 텔레비전 속의 롯데 자이언츠 팬들도, 전명과 효은 두 사람의 시선도 공을 따라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남색 유니폼을 입은 수비수들이 공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홈에서 2루까지 마치 작은 경비행기처럼 전속력으로 달리던 김문호 선수는 얼빠진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유격수 근처의 2루로 안전하게 착지하고, 신나게 비명을 질러 대는 효은은 침대에서 몸을 흔들고 이불을 걷어 차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 모습을 보던 진명은 귀엽다는 듯 효은을 한 번 쳐다보고 난 후, 밤 하늘이 어두침침하게 뒤덮고, 저 멀리 보이는 공항의 활주로와 관제탑 조명, 차의 불빛, 가로등 불빛들이 빛을 만들어 주는 호텔 밖 풍경을 잠시 내다보았다. 조그맣게 보이는 사람들 몇몇이 거리를 지나가고, 이는 그 인공적인 풍경에 약간의 ‘사람 사는 도시’다운 요소를 만들어 주었다.
영국으로 유학 갔다는 김애란이라는 그 여자는 과연 어떻게 살아 가고 있을까. 결혼은 했을까? 가정을 이루었을까? 혹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소식밖에 듣지 못하고 오는 건 아닐까. 잘 지내고 있을까, 아니면 어젼히 그 사람을 잊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까. 그 사람은 이제 없고, 이 세상을 떠나 버렸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혹은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인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니, 이 모든 것을 넘어서 과연 그녀는 왜 유학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진명은, 한 때 그 음악가의 연인이었던 그녀, 김애란이라는 여자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았다. 하지만 봇물 터지는 그 질문들을 일단 자신의 마음 속에 접어 두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여기까지 힘들게 취재하고, 발품을 팔고 나름 여러 인맥을 동원해서 알아낸 것도 꽤 많다는 걸 생각하니, 진명은 갑자기 자신이 꽤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이제 그 방대한 자료를, 영국이라는 그 서쪽 이역만리에 있는 섬나라에 가서 완성할 차례였다.
수능 1교시 언어영역 시험지를 자리에 앉아 받는 수험생마냥, 진명의 가슴은 괜한 긴장감감과 설렘으로, 박동 소리가 달팽이관을 타고 흔들 만큼 두근거리고 떨려 왔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 새 타석에는 6번 타자인 강민호 선수가 나타났고, 텔레비전 속 유희관 선수가 2루의 김문호 선수를 향해 견제구를 던진 후, 이를 기다렸다는 듯 효은은 텔레비전 속 롯데 팬들과 함께 “마! 마! 마!”라고 있는 힘껏 외쳐댔다. 갑자기 피곤해진 진명은 그 옆에서 불쑥 침대 뒤로 넘어 가 버리고, 아이보리색 천장 밖에 들어 오지 않는 진명의 눈동자는 점차 감겨 오고 있었다.
시험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