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지마, 개 짖는 흉내라니, 지금 장난하는 걸로 보여?.”
“그렇게 말하셔도, 제가 할수 있는 최선인데요….”
대화로 단번에 전후사정을 파악한다. 비장의 멍멍이 흉내는 보기 좋게 실패한 모양이다. 되려 심기를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수준낮은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어조가 험악하다. 주변의 술렁거림까지 가세해서 꽤 뒤숭숭한 분위기다.
“저기,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될까요? 무릎이라도 꿇을테니까….”
“한 두번이 아니잖아. 그 싸구려 자존심은 이제 비웃는 것도 질린다고.”
식당 앞은 통로가 교차하는 넓은 광장 같은 장소다. 그런 곳에서 남자 여럿이 여학생을 위협하고 있다. 당연히 특수한 상황이다. 당연히 시선을 끈다. 당연히 정의감 넘치는 왕자님이 나타나주지 않는 건, 가련한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게 낸시 타타나이기 때문일까.
“너 같은게 아직 학교에 달라붙어 있다니, 마법사도 어지간히 만만한 직업이군.”
자존심의 어느 부분을 푹 찔렸는지, 낸시는 그대로 시선을 올려 상대방을 흘끗 째려본다.
평소라면, 아마 평소의 낸시라면 그런 모욕은 아무렇지 않게 여겼으리라 짐작한다.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기고 무릎을 꿇건 개처럼 짖건, 여차하면 물건을 돌려주건 무슨 수를 써서 상황을 빠져나갔겠지.
“…말라비튼 식물 종자나 만져대는 주제에.”
그럼에도 나오는대로 도발을 내뱉은 건 그러니까, 분명 기분이 팍 상해있는 탓이다. 조그맣게 말한 그 대사는 분명 상대방 귓구멍까지 무사히 도착한게 분명하다. 한순간에 종이 접듯이 구겨진 인상이 그 증거다.
“그래, 얻어맞은 적이 없어서 꽤 기고만장한 모양인데!”
평소라면, 분명 평소의 나라면 이런 상황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다.
우선 관계없는 사건이다. 낸시 타타나는 만난 지 하루는 커녕 대화를 합쳐 1시간이 안되는 사이다. 6대1의 불합리한 싸움도 무섭다. 난 이런 돌발 이벤트에 무턱대고 뛰어드는 성실한 성격이 아니다. 분명 아니지만.
앗 하고. 눈치 챘을 땐 이미 둘 사이에 뛰어든 뒤였다. 특별구제반, C등급 마도구, 낸시 타타나의 팍 상한 기분… 혹은 진심으로 휘두르는 주먹이 13살에 성장정지한 몸으로 받아내기엔 지나치게 아프게 보였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일단 둘다 진정하고. 로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쾅 하고.
입을 열기도 전에 쾅. 하는 폭발음이 귀를 터트린다. 쾅 하고. 귓청이 폭발한다. 아니, 폭발한 건 내 얼굴이다. 일단 아프다. 아프다는 생각보다, 먼저 의식이 멀어진다. 시야는 하얗다. 하얗다가 번쩍인다. 번쩍이고 흐려진다. 그러니까, 꽤 오래된 시절의 관용구를 인용하자면…
눈 앞에 별이 반짝였다.
6
누가 뽑아내려는 것처럼 턱이 아파와서 눈을 뜬다. 눈가는 시큰하고 윗입술도 두 배쯤 부어올라 피맛이 느껴진다. 그와중에도 치아는 열외 없이 전원 생존이라, 개중 반가운 소식이다. 그제서야 새하얀 시트에 누워있는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슬쩍 시선을 돌리면 선반 위에 붕대 따위의 의약품이 보인다. 화상에 듣는 고형 연고에서 분말식의 지혈제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짐작컨대 병실인가. 교내 부상자를 쉬게 할 용도로 만들어진 장소다. 바닥은 과할 정도로 청결하고, 침대는 적당한 느낌으로 푹신하다. 푹신하지만 언제까지고 누워 있을만큼 엉망인 몸 상태는 아니다. 상반신을 벌떡 일으키면.
“아파….”
어째선지 얻어 맞았을 터인 안면보다도 뒷통수 쪽에 강렬한 아픔을 느낀다. 손을 대면 전류같은 고통이 온몸을 한 바퀴 질주한다. 아프다. 꽤 아프다. 잠깐 몸을 뒤틀며 시트를 꾹 부여잡을 정도로 아프다. 바닥에 부딪히면서 다친건가. 생각하기엔 커다란 망치에 후려맞았다고 여길법한 통증이다.
그래서, 다시 확인하려 한 번 더 손을 대면.
“아프잖아!”
“무, 무슨 일이죠?!”
칸막이 커튼이 휙 걷히면서, 비명에 놀라 달려온 성의 차림의 여학생과 눈이 마주친다. 물론 고통에 몸부림치는 꼴불견 자세 그대로.
-
“그러니까… 난 지금 실습 교재로 쓰이고 있단 소리지?”
“네, 요즘은 기절하거나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다쳐서 오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곧 방학이기도 하고.”
여학생은 그렇게 말하며 선반에서 연고를 꺼내든다. 들은 말에 따르면 ‘교내 폭력 행위의 주동자이자 부상자’인 내 몸뚱아리는 치료계통 수업의 실습에 쓰이는 중이라고 한다. 어째서 내가 주동자인가. 는 제쳐두고, 다친 사람을 교재로 사용하는 실습은 자주 있는 일이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실습 수업은 지금 없을텐데. 네 말대로 곧 방학이고, 역량평가도 끝났잖아.”
“하하… 실은 저, 보충이에요. 성적이 별로 좋질 않아서.”
맥없이 웃으면서 손가락 듬뿍 묻은 연고를 가까이 가져온다. 그 한마디로 신용이 뚝 떨어져, 다가오는 손가락이 독 바른 화살처럼 위험하게 느껴진다.
“직전에 그런 소리를 들으면 불안하잖아. 그거 확실히 연고 맞지?”
“걱정마세요. 의약품 취급은 자신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곤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눈 근처에 손을 댄다. 굳은 기름같은 모양새의 연고는 차가운 감촉과 함께 상처 부위를 완전히 뒤덮는다. 이어서 지혈초를 말린 가루를 입술에 도포하는 보충 학생의 얼굴은 꽤 신중하다. 내가 담당교수라면 태도에서 가산점이 들어간다.
“그런데, 그 얘기가 사실인가요?”
“뭐가?”
나는 입 근처에 묻은 약품을 조심하면서 되묻는다. 조금 과하게 치덕치덕해서 방심하면 입 안까지 들어올지도 모른다.
“낸시 타타나가 식당에서 시비붙은 학생을 원펀치로 넉다운시켰다… 그런 소문이 교내에 파다하거든요.”
“뭐라고?”
원예학 이야기는 쏙 빠지고 낸시 타타나의 포악함과 내 초라한 모습만 남아있는 소문이다. 여학생은 약품을 다시 밀봉해 선반에 올려놓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닌가요?”
라고 묻는다. 물론 당사자 입장에서 ‘아닌가요, 고개 갸웃.’ 에 대한 대답은 ‘아닌데요. 고개 끄덕.’ 이지만, 어째서 얘기가 그렇게 퍼졌을까. 주변에 있던 눈알만 해도 합치면 포도 한 송이는 나올텐데. 단순히 소문의 와전이라기엔 뒤가 구리다.
“일단 싸운 건 내가 아니라 낸시랑 원예학 애들인데. 난 말리다가 얻어맞은거고.”
“원예학이요? 아, 그러면 그쪽에서 거짓 소문을 퍼트리고 있겠네요.”
여학생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 말을 한다. 자세히 설명을 하지 않아도 어련히 알고 있겠거니 하는 말투다.
“거짓 소문?”
“이미지가 실추되면 안되니까요. 원예학 학생들은 전부 귀족 출신이니까.”
귀족. 얼핏 그럴듯한 명함이지만 실상 대단한 것도 아니다. 이 좁아터진 던전 안에 한 뼘이라도 자기 땅을 가지고 있으면 귀족으로 취급해준다. 물론 정말 한 뼘짜리 땅으로 으스대봤자 비웃음만 한가득 사겠지만, 작물을 기를 정도로 넓은 토지라면 이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그래도, 주변에 목격자가 한 둘이 아니었는데.”
“그걸 전부 통제할 정도로 힘이 있는거죠. 뭐, 보통 원예학이라고 하면 평범한 귀족들 모임 정도로 생각하지만요.”
“넌 꽤 자세히 알고 있네.”
마치 자기는 그 ‘보통’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 같은 대사다. 여학생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가지런히 모은다. 그 행동은 귀족스럽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기품이 있어보인다.
“제가 속한 지망도 조금 특수한 편이라서.”
“어느 지망인데? 부상자 치료가 실습에 포함되는 쪽이면….”
나는 앉은 채 여학생을 위아래로 훑는다. 어깨부터 시작해 발목 부근까지 닿는 로브는 특이하게도 검붉은 빛을 띄고 있다. 흔히 성의라고 부르는 옷이다. 그걸로 유추하면 신을 받드는 성직자 계열이겠지만 그리 특별한 지망은 아니다.
“성녀 지망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희생’ 교단의 성녀 지망입니다.”
“학교에 합쳐서 3명 있다는 그 성녀?”
“네에,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에요.”
성녀는 멋쩍게 시선을 돌린다. 성의의 붉은색은 교단의 상징 색깔인가. 원색인 화려한 빨강은 아니지만 어쩐지 피를 연상시키는 불길한 색이다. 생각하고 있으면 이어서.
“게다가 전 이번 학기는 낙제하기도 했고….”
하고, 흘려듣기 힘든 발언을 한다. 이쪽도 낙제생인가. 그렇다고 해도 구제반이 어쩌니 하는 화제를 곧장 꺼내기엔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입을 열기를 망설이고 있자니.
“아,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치료의 마무리를 해야죠!”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말을 하면서, 시선을 내려 성의 안쪽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몰라도 금속 같은 게 부딪히는 짤랑짤랑 소리가 난다.
“회복마법이라도 걸어줄 생각이야? 성녀라면 백마법도 쓸수 있을테니까.”
“쓸 수는 있지만, 약 바르는 것보다 효과가 적을거에요.”
성녀는 여전히 주머니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한다. 하긴, 연고보다 못한 수준의 백마법이니 실습 보충을 받고 있겠지.
뭘 그리 많이 넣고 다니는건지, 한참을 뒤적인 후에야 성녀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낸다.
그 가늘고 새하얀 손에는 예리하게 조명빛을 반사하는 면도날이 들려있다.
“…그건 어디에 쓰려고? 수술이 필요한 상처는 없는데.”
“설마요, 애초에 외과 수술은 배운 적도 없어요. 이건 기도를 위한 물건이랍니다.”
“기도?”
면도날과 기도 만큼 연관성 없는 단어를 찾기도 힘들겠다.
“교단마다 기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건 알고 계셨나요? 손을 모으고 기도문을 외우는 게 대부분이지만… 희생 교단은 훨씬 간단하거든요.”
피를 보이면 됩니다. 하고 말하며 성녀는 칼날 부분을 이쪽으로 보인다. 면도날은 그 단면이 희미한 실처럼 보일 정도로 날카롭다.
부상자한테 피를 흘리게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아이러니다. 나는 섬찟한 기분에 휩쌓여 엉덩이를 약간 뒤로 움직인다. 낙제의 원인은 여기에 있던건가. 성녀는 온화한 미소를 얼굴 가득 띄운 채 면도날을 높이 들어올리더니.
“자, 잠깐만… 아직 준비가….”
하고, 내가 얼빠진 소리를 하는 사이에, 그것으로 자기 손바닥을 베어가른다.
가느다란 선 같은 칼날이 하얀 피부를 갈라내어, 새빨간 피가 주륵주륵 비집고 나온다. 망설임도 없이 손바닥 전체를 사선으로 베어냈다. 보는 사람이 되려 숨을 삼킬 만큼 커다란 상흔이다.
성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손을 모은다. 그대로 눈을 감고 가볍게 묵념하는 사이에 피는 물이 흐르는 기세로 그녀의 옷자락을 향해 떨어져내린다. 원래가 피처럼 검붉은 성의니 아무리 더럽혀도 티 하나 나지 않는다.
“자, 끝났습니다. 어때요?”
빈혈이 걸리는게 아닐까 걱정될 즈음이 되어서 성녀는 눈을 뜨더니 그렇게 말한다.
“어떻냐니… 놀라서 증상이 악화된 것 같아.”
“상처는요?”
여전히 입술은 부어있고 눈은 시큰하고 턱이 당긴다. 통증은 적어졌지만 그건 아마 약을 발랐기 때문이다.
“상처는 그대론데.”
“역시 그런가요….”
성녀는 지혈초를 뿌리고 붕대를 손에 둘러감으며 침울한 표정을 짓는다. 뭐라고 위로를 하려고 해도 상황이 이해가 안가니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잠시 동안 말없이 손에 응급처치를 한 뒤에.
“실습 시간이 거의 끝났어요.”
하고 말하며 가볍게 인사하고 병실을 떠난다.
다친 곳은 아직 얼얼하고, 찌릿하게 아픈 뒷통수는 봐주지도 않았지만, 친절한 태도와 냅다 손바닥을 그어버린 기세를 높게 사서 실습대상 반영 평가는 만점을 주기로 결심한다.
얼마 쯤 뒤에 타샤가 찾아와, 폭력행위에 대한 징계로 상업지구에서의 교외봉사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